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57화
[이건…….]
오르페는 침음성을 삼키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존재를 바라봤다.
바알이 열쇠검 레메게톤으로 불러낸 거대한 존재.
[차원 전함인가.]
은백색 금속의 유선형으로 생긴 거대한 함선.
전체 길이만 300미터에 달하는 거대 전함이었다.
“도마뱀 주제에 잘 아는군.”
차원 전함을 소환한 바알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신유현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수도 모스크바 상공에 떠 있는 수백 미터 크기의 거대한 차원 전함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신유현의 말에 바알이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어리석고 멍청한 버러지답군. 차원을 여행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차원 사이에는 네놈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고차원 생명체들이 존재하니 말이야.”
차원 이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차원과 차원 사이의 보이드 공간에는 게티아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었으니까.
기본적인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시간과 공간조차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존재, 보이드 이터들.
카오스 신들조차 그들에게만큼은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워낙 위험한 존재들이었기에.
그 덕분에 게티아들은 차원을 여행하며 카오스 신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이드 이터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차원 항행이 가능한 함선, 레메게톤을 개발한 것이다.
차원 함선 레메게톤과 게티아들이 힘을 하나로 합친다면 짧은 시간이나마 보이드 이터에게 저항하고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사실 단탈리온처럼 다른 차원에 선발대를 보내는 일은 상당히 위험했다.
차원 이동이 가능한 디멘션 슈트를 착용한다고 해도 보이드 이터와 운 없이 조우하게 되면 손쓸 틈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알았겠지? 네놈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쓸데없는 저항은 하지 말고 순순히 노예가 되어라.”
위이잉! 철컹!
바알의 말과 함께 차원 전함 레메게톤의 포탑들이 오르페를 향했다.
아무리 오르페가 강하다고 해도 거대한 차원 함선을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최초의 게티아이자 가장 강한 바알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바알은 오르페와 신유현이 절망에 물들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걸 느긋하게 기다렸다.
싸우지 않고 끝낼 수 있다면 편했으니까.
하지만,
“오르페.”
신유현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오르페를 불렀다.
[알겠다.]
그리고 신유현의 부름이 오르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지지직!
그 직후 오르페 주변이 푸른 스파크가 생겨나더니 푸른 갑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컥철컥!
이윽고 푸른 갑주는 오르페를 감쌌다.
백은룡 오르페 전용 무장인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멍청한 놈들. 레메게톤을 보고도 저항하겠다는 거냐?”
바알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원 함선 레메게톤을 소환한 순간 상황은 끝났다.
지구상의 존재 중 어느 누구도 레메게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싸움을 선택할 줄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파지직!
신유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르페의 등 뒤에서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지?”
그 모습에 바알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페의 등 뒤에 생겨난 차원의 균열은 순식간에 커졌다.
바알이 차원 함선 레메게톤을 소환했을 때처럼.
쿠구구구궁!
이윽고 차원의 균열을 통해서 수백 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초인들의 시스템이 아닌 불사왕의 전술 지휘창에서 메시지가 한줄 떠올랐다.
[불사왕의 차원요새, 이터널을 소환합니다.]
직경 500미터 크기의 차원 요새.
각종 첨탑들이 늘어서 있고 거주구뿐만이 아니라 넓은 장소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성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차원 요새, 이터널의 전체적인 모습은 작은 요새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마, 말도 안 돼. 지구에 이런 게 있을 리가……?”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차원의 균열을 바라보던 바알은 차원 요새 이터널의 등장에 잠이 달아났다.
이터널이 차원 여행이 가능한 요새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신유현 또한 차원 요새 이터널의 거대한 모습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시련의 탑 7층에 이런 게 있을 줄은 나도 몰랐지.’
시련의 탑 7층을 공략한 신유현은 오르페로부터 불사왕의 마지막 유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불사왕의 마지막 유산을 봤을 때 신유현은 경악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건이 있었으니까.
‘초대 불사왕은 지금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걸까?’
게티아들이 차원 함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오르페도 몰랐다.
다른 세븐 아크스들도 마찬가지일 터.
지금까지 바알이 차원 함선을 다른 차원에서 보여 준 적이 있었지만, 목격자들을 전부 제거하였기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초대 불사왕은 지금 상황을 예측이라고 한 것처럼 차원요새를 준비한 것일까?
“어디서 저 요새를 손에 넣은 거냐!”
나른하고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던 바알의 표정이 깨졌다.
그리고 바알은 신유현을 노려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세계는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지. 악마도, 뱀파이어도.”
바알은 게티아 간부들과 싸우고 있는 세븐 아크스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지구에는 초인과 던전의 마수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지?”
바알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유현을 노려봤다.
지구에 없는 다른 차원의 이종족들을 거느리고 있는 존재.
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뭐긴? 지나가는 네크로맨서지.”
“이 건방진 놈이…….”
신유현의 비웃음이 섞인 대답에 바알은 살기를 피어 올렸다.
하지만 이내 살기를 거뒀다.
“네놈에게 이제 안식은 없다고 생각해라.”
차갑게 한마디 내뱉은 바알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줄기 금빛이 되어 차원 함선 레메게톤 내부로 들어갔다.
자신이 직접 레메게톤을 컨트롤 하면서 공격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오르페.”
[알고 있다. 맡겨 둬라.]
신유현의 부름에 푸른 용갑을 착용한 오르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원 요새, 이터널의 중심에 솟아나 있는 성으로 향해 날아올랐다.
오르페가 착용하고 있는 푸른 용갑은 차원 요새 이터널과 접속하기 위한 인터페이스였다.
오르페는 차원 요새 이터널의 관리자였으니까.
차원 요새 이터널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오르페의 힘이 필요했다.
‘역시 오르페를 남겨두는 게 정답이었군.’
처음부터 오르페를 전투에 참전시켰다면 게티아 간부들과의 전투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원 함선 레메게톤을 꺼내든 바알을 상대하기 힘들어졌을 테지.
결과적으로 오르페를 온존시킨 신유현의 판단은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이제 남은 건…….
‘지켜보는 것뿐인가?’
신유현은 수도 모스크바 상공에서 포격전에 들어가고 있는 차원 요새 이터널과 차원 함선 레메게톤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 * *
이터널과 레메게톤의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차원 여행이 가능한 요새와 함선이었기에 배리어보다 더 강력한 마력 장벽인 방어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가진 주포를 쏘아대도 각자가 가진 방어막에 번번이 가로막힐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수도 모스크바는 초토화가 되었다.
차원 이동이 가능한 요새와 함선의 포격은 어지간한 미사일보다 훨씬 더 파괴력이 컸으니까.
특히 주포의 파괴력은 핵폭발에 필적했다. 다만 방사능이 없을 뿐.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콰콰콰콰콰쾅!
이터널과 레메게톤 양측에서 어마어마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이미 한참 전부터 방어막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 양쪽 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이터널과 레메게톤의 전력은 서로 비슷했다.
“이대로 가다간 이터널의 피해가 크겠군요.”
그때 신유현의 옆에 슈브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털썩.
그리고 자신의 상대였던 아스타로트를 지면에 내던졌다.
“이겼나 보군.”
“네. 당연하지요.”
신유현의 말에 슈브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세븐 아크스들도 하나 둘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각자 자신들이 상대했던 게티아 간부들이 들려 있었다.
[설마 이터널까지 꺼내게 될 줄이야.]
티르달은 입에 물고 있던 아몬을 지면에 내동댕이치면서 정신감응을 보내왔다.
“가세하는 게 좋겠어요.”
이어서 루베르가 암두시아스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하나 같이 기절한 게티아 간부들을 바닥에 내던지는 세븐 아크스들을 바라보며 신유현은 쓴웃음이 나왔다.
‘이전 삶에서는 게티아 놈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었는데…….’
그런데 게티아 간부 놈들을 이렇게 굴비 엮듯이 데리고 올 줄이야.
“다들 수고했어. 감사한다.”
신유현은 게티아 간부를 제압해 온 세븐 아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게티아들을 쉽게 제압할 수 없었을 테니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십시오!”
신유현의 행동에 그리프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고개를 드세요, 마스터. 저희는 언제든지 마스터의 도움이 될 거에요.”
루베르의 말에 다른 세븐 아크스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신유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초대 불사왕과의 계약이 있긴 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세븐 아크스들은 신유현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신유현를 따라야 한다고.
그에게서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느껴졌었으니까.
“그래도 고마워. 너희들 덕분에 게티아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신유현은 다시 고개를 들며 감사를 표했다.
“마스터,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않나요?”
신유현의 말에 슈브는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아직 이터널과 레메게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간 양쪽 다 큰 피해를 입게 될 터.
“그래, 이제 끝을 내야겠지.”
신유현은 게티아들의 차원 함선 레메게톤을 노려봤다.
지금은 오르페 혼자 이터널과 접속해서 싸우고 있었지만 모든 세븐 아크스가 한자리에 모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븐 아크스 또한 오르페와 마찬가지로 차원 요새 이터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으니까.
그건 불사왕이 된 신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신유현은 세븐 아크스들과 함께 차원 요새 이터널에 올라탄 후. 중앙에 있는 불사성 내에 있는 지휘통제실에 도착했다.
차원 요새 이터널의 모든 상황과 제어를 할 수 있는 장소.
함선으로 치면 브리지였다.
지휘 통제실에는 복잡해 보이는 계기판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전면에는 다양한 수치와 화면이 표시되어 있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신유현은 지휘 통제실의 중앙에 있는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그럼 이제 끝을 보도록 할까?”
잠시 후, 신유현을 비롯한 세븐 아크스들이 탑승한 차원 요새 이터널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