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49화
“이, 이건?”
미하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약 100명에 달하는 비밀 요원이 꼬챙이에 꿰뚫린 채 허공에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배리어 코트가 통하지 않다니…….’
미하일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삼켰다.
FSB 비밀 요원들은 자동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주는 기능이 포함된 고성능 배리어 코트를 사용한다.
그 덕분에 사각지대에서의 공격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배리어 코트를 뚫고 동료들의 몸을 꿰뚫을 줄이야.
“순순히 항복해라. 저항은 무의미하니까.”
암두시아스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하일만큼은 산채로 사로잡아서 부의 감정 에너지를 짜낼 생각이었다.
“닥쳐라, 마녀!”
미하일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꼬챙이에 꿰뚫려 죽은 비밀 요원들은 미하일의 친구이고, 동료이며 선후배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버러지답게 어리석네.”
암두시아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미하일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항복하지 않아도 기절시켜서 생포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모스크바 각지에서 비슷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현역 헌터들이 게티아들을 상대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몰살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도 게티아들의 손짓 한 번에 쓸려 나갔다.
게티아들은 늦게 온 분풀이라도 하는 듯 모스크바에서 마구 날뛰었다.
그 때문에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고층 빌딩들은 반 토막이 나면서 무너져 내렸다.
다른 세계였다면 살인은 자중하고 최대한 사람들을 살려서 사로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도착한 게티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차렸다.
지구에는 억 단위가 넘는 먹잇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수들의 침식에 의해 인류의 생존권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30억이 넘는 인구가 남아 있었다.
게티아에게는 차고도 넘칠 정도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침략한 차원의 생명체들 숫자는 많아 봐야 수천만 명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러시아는 게티아들에게 유린당했다.
그리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나서야 세계 헌터 협회에 상황이 전해졌다.
* * *
“뭐? 러시아가?”
신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이시아를 바라봤다.
이제는 완전히 신유현의 전속 비서가 된 이시아.
그런데 조금 전 신유현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시아로부터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받았다.
“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가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고, 주변 도시들이 정체불명의 존재들에게 공격 받고 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가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니…….”
신유현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모스크바의 인구는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많았으니까.
“어떤 존재들이지?”
“그게 아직 자세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헌터 협회에서도 이제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보고가 들어왔었습니다.”
“망할 러시아.”
이시아의 말에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신유현은 전 세계 초인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세계 헌터 협회의 협력을 얻어 낼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마리아가 소속되어 있는 화이트 워치에서 큰 도움을 주었으며, 신유현 자체도 7성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거기다 신유현이 잿빛교단과 맞붙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런 조직들을 깨부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마수들이 점령한 지역들을 탈환했다.
더욱이 지난 2년 동안 마수들이 점령한 다른 지역들까지도.
그 덕분에 신유현의 이름을 모르는 초인들은 없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2년 동안 전 세계 각지의 던전들을 공략하면서 신유현은 자신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 결과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상황.
그 덕분에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나 세계 헌터 협회에 속한 초인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말이지.’
하지만 모든 국가와 초인들이 협력을 해 주는 건 아니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신유현의 요청을 무시했다.
신유현은 골치가 아픈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다른 국가들은 몰라도 러시아만큼은 협력했으면 싶었지.”
“게티아 때문이군요.”
“그래. 단탈리온의 기억에 의하면 게티아들이 전이해 올 장소는 러시아 남동부와 카자흐스탄 서부 쪽에 있는 사막 지역이라고 하니까.”
“러시아는 거부했지만 카자흐스탄은 협력해 주기로 했지요. 몇 번 도움을 줬었으니까요.”
“그래. 던전 스탬피드가 일어날 뻔한 걸 막아 주었으니 말이야.”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이 전이될 장소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부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두 국가의 협력을 얻기 위해 움직였었다.
덕분에 카자흐스탄은 전면 협력을 약속해 주었다.
다만, 러시아만큼은 협력을 얻어 내지 못했다.
애당초 러시아는 쇄국 정책으로 다른 국가와 교류를 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스 부족으로 전 세계가 난리 날 수 있었지만, 현대 초인 사회는 마나가 주 에너지원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고 마수들을 쓰러트리면 얻을 수 있는 마정석으로 난방을 하거나 발전기를 돌릴 수 있었으니까.
“러시아의 협력을 얻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카자흐스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카자흐스탄 쪽에서는 연락이 없었나?”
“네. 여전히 사막 쪽에는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감시를 하겠다고 얼마 전 보고가 왔었습니다.”
“흠.”
이시아의 말에 신유현은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게티아들이 전이해 올 사막은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덕분에 몇 달 전부터 카자흐스탄 쪽에서 헌터들이 초소를 세워서 감시 중이었다.
“이제 슬슬 게티아들이 넘어올 시기가 가까워진 상태야.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모스크바가 정체불명의 존재들에게 괴멸 당했다라…….”
게티아들이 전이해 올 예정인 사막과 모스크바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게티아들과 관계가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직 정보가 부족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정보를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직접 알아보도록 하지.”
“전주님께서 직접이요?”
신유현의 말에 이시아는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현재 신유현은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게티아들을 상대하려면 강해져야 했기에 레이드 던전들을 공략해야 했고, 현무전에 소속된 검사들이나 마법사들, 궁수들 등등 초인 헌터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모의전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게티아들의 침공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와 초인 가문들과 교류도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 파천검가의 후계자 수업까지 받고 있는 상황.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게티아들과 관련된 안건이 최우선이니 말이야.”
“네.”
이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신유현이 벌이고 있는 모든 일이 게티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현무전의 간부들을 소집해줘. 그 후에 아버지와 만나서 대책을 논의할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신유현의 명령에 이시아는 고개를 숙이며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정체불명의 존재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는 소식이 파천검가에 전해졌다.
***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어째서 이런 일이…….’
키이우에서 활약하던 6성 초인이자 B급 헌터인 젤렌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 올려다봤다.
하루 전, 키이우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에게 습격 받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새하얀 날개와 금빛 헤일로 가진 존재들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키이우 상공에서 나타난 그들이 천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얼굴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하얀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눈 하나가 박혀 있었으니까.
거기다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손에는 피처럼 붉은 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차별 공격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의 공격에 키이우는 초토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던지는 붉은 창은 폭발을 일으키면서 모든 걸 파괴해 버렸다.
키이우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이 분전하며 그들에게 대항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하루가 지나자 키이우는 쑥대밭이 되었다.
그나마 헌터들이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많은 수의 시민이 키이우를 탈출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해.’
젤렌은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대피소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철.
젤렌의 뒤편에는 아직 키이우에서 탈출하지 못한 약 100명이 넘는 생존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부모님들 품 안에 안겨서 떨고 있었고, 노인들은 세상을 다 산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생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는 헌터들 또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의 공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데다가, 지하대피소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대피소들이 천사들에게 발견된 후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 몰살당한 흔적을 젤른은 보아왔으니까.
콰앙!
“꺄악!”
“뭐, 뭐지?”
돌연 지하대피소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에 생존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
지하대피소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콰쾅! 콰콰쾅!
뒤이어 들려오는 폭발과 폭음들.
‘발각됐다?’
점점 가까워지는 폭음에 젤렌은 이를 악물었다.
콰아아앙!
이윽고 젤렌을 비롯한 고작 몇 명 남지 않은 헌터들과 100명이 넘는 생존자들의 눈앞에 눈부신 빛이 비쳐 내려왔다.
“아아…….”
생존자 중 한 명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사다!”
“도, 도망쳐!”
지하철역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천사의 모습이 보이자 생존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젠장! 너희들은 피난 유도를 해라!”
젤렌은 헌터들에게 명령했다. 지하대피소에 있는 헌터 중에서 젤렌의 등급이 가장 높았으니까.
“제, 젤린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긴 뭘 어째. 저놈을 막아야지.”
부하 헌터 중 한 명인 류드밀라의 질문에 젤렌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나마 젤렌이 있는 지하 대피소는 지하철도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 도주로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 하지만…….”
류드밀라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젤렌을 바라봤다.
그런 류드밀라에게 젤렌은 한마디 했다.
“딸을 부탁한다.”
“젤렌 님…….”
류드밀라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손길을 느꼈다.
이제 고작 여섯 살은 되었을까.
젤렌의 딸인 아리나였다.
“아빠…….”
“걱정하지 마라, 아리나. 곧 뒤따라 갈 테니 류드밀라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알았지?”
“응…….”
젤렌의 말에 아리나는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젤렌은 다시 몸을 돌렸다.
쿠궁! 쿠구구궁!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천장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지하 대피소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을 알게 된 천사들이 공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점점 더 구멍이 커져 가고 있었다.
“가라! 여기는 내가 막고 있을 테니.”
젤렌은 류드밀라와 아리나에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우우웅!
젤렌의 눈앞에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