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39화
[분노의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칠흑의 성처럼 솟아나 있는 검은 신전.
끼이익.
신유현은 신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크고 넓은 로비가 신유현을 맞이했으며 바닥에는 검은 카페트가 복도까지 깔려 있었다.
신유현은 로비를 지나 복도 끝에 있는 문을 향해 다가가 열었다.
“뭐지?”
문을 열고 들어간 신유현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문 너머에 상당히 큰 중세 시대 느낌의 2층 저택이 있었던 것이다.
‘설마 신전 안에 저택이 있을 줄이야.’
신유현은 신기한 눈으로 저택을 바라봤다.
쾅!
순간 저택 2층의 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붉은 화염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굉음을 동반한 폭발에 신유현은 화들짝 놀란 눈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붉은 화염 속에서 사람 몇 명이 튀어 나오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건…….’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틈엔가 저택 현관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의 복장으로 보아 대부분 집사나 메이드로 보였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귀족 여성들과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들 주위에는 검은 망토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복면을 한 자들이 있었다.
거기다 검은 복면의 사내들은 시미터 같은 곡도를 한 손에 들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스윽.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신유현은 빠르게 몸을 숙이며 허리에 차고 있는 레바테인에 손을 가져다댔다.
바로 그때,
“장부는 어디에 숨겼지?”
조금 전 폭발이 일어난 2층 장소에서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내가 뛰어내렸다.
그리고 폭발 속에서 튀어나오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30대 중반의 귀족 사내에게 다가갔다.
“내가 말할 거라 생각하나?”
“그래야 할걸? 그렇지 않으면…….”
검은 망토 사내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검은 망토의 사내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을 내려다보며 시미터를 들어 보였다.
여차 하면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이래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귀족 사내의 말에 검은 망토 사내는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푸푹! 서걱!
그러자 검은 복면들 중 일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시미터를 휘두르는 게 아닌가?
“크아아악!”
“꺄아악!”
그들의 곡도가 빛을 발하자 붉은 피가 튀어 오르며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네, 네놈!”
그 모습에 귀족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망토의 사내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꿇어, 이 새끼야!”
하지만 검은 망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귀족 사내의 얼굴을 손에 들고 있던 시미터의 손잡이로 후려쳤다.
퍼억!
“컥!”
얼굴을 얻어맞은 귀족 사내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퍽! 퍽!
이어서 검은 망토 사내는 귀족 사내를 향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가죽 부츠가 무자비하게 귀족 사내의 옆구리와 배에 꽂혀들었다.
“커헉!”
귀족 사내는 피를 토하며 땅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장부는 어디에 있지.”
“모, 몰라.”
“끈질기군. 그냥 말하는 편이 좋을 텐데.”
검은 망토 사내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귀족 사내 입장에서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검은 망토 사내가 찾고 있는 장부란 다름 아닌 국가 반역자 리스트였다.
귀족 사내는 수년 전부터 다른 국가와 내통하고 있는 귀족들을 조사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배신자로 의심되는 귀족들의 장부 목록을 만들어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지금 검은 망토의 사내들이 저택을 습격해 온 것이다.
“데려와라.”
검은 망토 사내는 복면 사내들을 향해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자 복면 사내들이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을 데리고 왔다.
“디, 딜런.”
“아, 아버지.”
10대 중반의 귀족 소년, 딜런은 두려운 눈으로 귀족 사내를 바라봤다.
“장부를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라.”
“…….”
검은 망토 사내의 말에 귀족 사내는 침묵으로 답했다.
“어쩔 수 없지.”
슈악!
순간 검은 망토 사내의 시미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휘둘러졌다.
“아아악!”
그러자 딜런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시미터가 오른 손가락 세 개를 자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 안 돼!”
그 모습에 귀족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들려고 했지만 저지 당했다.
어느 틈엔가 검은 복면의 사내들이 다가와 어깨를 누르고 있었으니까.
“장부는?”
“네, 네놈…….”
귀족 사내는 이를 악물며 검은 망토 사내를 노려봤다.
그러자 귀족 사내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미터를 빙글빙글 돌렸다.
“나라고 이런 짓을 하고 싶은 줄 아나?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그러니 순순히 말해라. 그러면 자비를 베풀어 주지.”
“큭.”
이를 악문 귀족 사내의 눈에 갈등의 빛이 생겨났다.
이대로 가면 아들인 딜런을 비롯한 아내까지 살해당할 수 있었기에.
눈앞에 있는 검은 복면을 하고 망토를 걸치고 있는 자들은 상당히 강한 자들이었다.
저택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으니까.
그 때문에 귀족 사내는 어딘가의 대귀족이 보낸 기사들이 변장을 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장부는…….”
결국 한참을 고뇌한 끝에 귀족 사내는 장부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저택의 숨겨진 방의 비밀 금고에 장부가 있다고.
이미 많은 사람이 저택에서 죽어 나갔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지켜야 했기에 귀족 사내는 검은 망토 사내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져와라.”
검은 망토 사내는 장부가 숨겨져 있는 장소로 부하들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부하들이 꽤 두꺼워 보이는 장부를 가지고 돌아왔다.
“확실히 맞군.”
장부를 확인한 검은 망토 사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약속은 지켜 주겠지?”
귀족 사내는 이를 악물며 검은 망토 사내를 바라봤다.
유감스럽지만 주도권은 검은 망토의 사내가 쥐고 있었다.
조금 전 검은 망토 사내의 말대로 그의 자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약속은 지킨다.”
장부를 손에 넣었기 때문일까.
검은 망토 사내는 귀족 사내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시미터를 허리에 차는 척하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딜런의 등에 꽂았다.
“커헉! 쿨럭!”
갑작스럽게 등에 시미터가 꽂힌 딜런은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딜런!”
그 모습에 귀족 사내는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멀리서 기품 있어 보이는 귀부인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쓰러졌다.
아마 귀족 사내의 부인이자, 딜런의 어머니일 테지.
“약속과는 다르지 않은가! 장부를 넘겨준다면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귀족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검은 망토 사내를 노려봤다.
“무슨 말이지? 내가 언제 살려 준다고 했지? 난 분명 자비를 베풀어 주겠다고만 말했을 뿐인데?”
검은 망토 사내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귀족 사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나는 자비를 베풀어 줬을 뿐이다. 고통 없이 빠르게 죽여 줬으니까.”
“이 자식!”
귀족 사내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검은 망토 사내의 말장난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죽여라. 아, 약속은 지켜야지. 자비를 담아서 죽여라.”
검은 망토 사내는 귀족 사내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표정을 알 수 없는 검은 복면들은 기계적으로 시미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슈악! 서걱!
시미터들이 빛을 발할 때마다 머리가 날아가고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귀족 사내의 부인도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 모습을 지켜본 귀족 사내는 실성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눈앞에서 죽어갔으니까.
거기다 저택에서 자신을 따르던 가신들까지도.
“이 개자식들! 쳐 죽여 주마!”
귀족 사내는 검은 망토 사내를 노려보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저택 2층에서 있었던 폭발로 인해 마나홀이 손상된 상황.
그 때문에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분노를 인해 무리하게 마나를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커헉! 쿨럭쿨럭!”
역시나 손상된 마나홀 때문에 마나가 역류하면서 귀족 사내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가족들이 죽어 가는 장면을 보고 분노한 귀족 사내에게 피를 토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눈앞에 있는 저놈.
검은 망토의 사내만이라도 쳐 죽여 버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 순간,
[당신의 분노에 차원의 저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의 여신’이 관심을 가집니다.]
사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까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유현의 눈에도 보였다.
‘여기서 어둠의 여신이 왜 나와?’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환영이었다.
그 증거로 눈앞에 있는 자들은 신유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망토 사내와 귀족 사내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신유현은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손을 내밀어봤지만 통과해서 지나갔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기억인건가. 그런데 어째서 어둠의 여신이?’
신유현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귀족 사내가 어떤 심정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전 삶에서 자신을 챙겨주던 사람들과 어머니가 게티아들에게 살해당한 모습을 보았으니까.
푸아아악!
순간 갑자기 귀족 사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뭐, 뭐야?”
폭주한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검은 마나를 터트리는 귀족 사내의 모습에 검은 망토 사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귀족 사내의 눈까지 새까맣게 변하는 게 아닌가?
“죽인다!”
스스슥.
새까맣게 변한 귀족 사내의 손에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맣게 변한 눈.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흘리며 칠흑의 마검을 들고 있는 귀족 사내.
그 모습은 타락하고 폭주한 상태처럼 보였다.
“크아아아아!”
이윽고 귀족 사내는 검은 망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분노에 몸을 내맡긴 채 마검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깡! 까강!
“크윽!”
강렬한 힘으로 내리치는 마검을 검은 망토 사내는 가까스로 막아 냈다.
“뭐해! 이 새끼 막아!”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귀족 사내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귀족 사내와 검은 망토의 습격자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큭!’
신유현은 지면에 꽂은 레바테인에 기대며 겨우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이건…….’
마치 귀족 사내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전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 사내가 싸우고 있는 검은 망토 사내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던 게티아, 사냥의 신 바르바토스의 모습으로.
그리고 검은 복면 사내들도 다른 게티아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게티아 놈들!’
기억과 똑같은 생생한 게티아들의 모습에 신유현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티아 놈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모습과, 신유현 또한 놈들에게 모진 고초를 겪었으니까.
그리고 게티아에 대한 분노와 귀족 사내의 분노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어마어마한 광분이 신유현을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신유현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태 이상, 광분을 감지했습니다.]
[정신 방벽을 발동, 상태 이상 광분에 저항합니다.]
“큭.”
일순 광분에 빠져 있던 신유현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눈앞에 있던 2층 대저택과 인질들, 검은 망토의 습격자들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다만, 한 존재.
검은 망토의 습격자들에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귀족 사내가 여전히 광분에 빠진 상태로 검은 기운을 흩뿌리며 신유현의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