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37화
세븐 아크스에 의해 제압당한 단탈리온은 사령술의 세 번째 스킬, 원혼의 복수에 의해 정신세계에 갇혔다.
지금까지 단탈리온이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지성을 가진 존재들.
단탈리온은 그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던 죽음의 순간들을 정신세계 속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덕분에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단탈리온이 정신세계에 갇히면서 서울시 상공에 떠올라 있던 핏빛의 마법진이 사라졌으니까.
남은 건, 핏빛 마법진을 통해 소환된 마수들을 처리하는 일뿐.
‘일단 급한 불은 껐군.’
신유현은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사령술 덕분에 단탈리온이 계획하고 있던 일의 전모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게티아들이 가진 힘의 원천인 부의 감정 에너지.
단탈리온은 서울 사람을 제물로 삼아 어마어마한 부의 감정 에너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게티아들이 있는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단탈리온의 계획은 실패했다.
신유현이 막아 냈으니까.
정신세계에서의 시간은 현실세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른다.
그 때문에 현재 단탈리온은 현실 세계 기준으로 20초에 한 번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단탈리온의 정신력이 약해졌을 때, 신유현은 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단탈리온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구나.”
“뭔가 잘못되었나요?”
신유현의 중얼거림에 슈브가 궁금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녀의 질문에 신유현은 세븐 아크스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3년. 3년 후 게티아들이 몰려올 거야.”
* * *
단탈리온의 습격 이후 신유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월야회의 기습과 단탈리온이 벌인 일의 뒷수습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단탈리온은 현무전 지하 감옥에 수감 중이었다.
어차피 정신세계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위협은 되지 않았다.
단탈리온이 다시 정신을 차릴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었으니까.
신유현이 사령술의 서드 스킬을 해제하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단탈리온이 살해한 약 9천만에 가까운 지성체들의 모든 죽음을 경험하던가.
전자의 경우는 신유현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깨울 수 있었고, 후자의 경우는 현실 세계 기준으로 최소 60년은 지나야 했다.
‘앞으로 3년인가.’
신유현은 집무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사령술 덕분에 신유현은 단탈리온의 정신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던 정보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게티아의 침공 시기였다.
이전 삶에서 신유현은 회귀한 시점을 기준으로 약 5년 뒤에 게티아들이 나타난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게티아 놈들은 그보다 훨씬 일찍 지구에 와 있었다.
단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행동하고 있었을 뿐.
단탈리온의 계획을 살펴본 신유현은 게티아들이 늦어도 3년 뒤에 지구에 오기로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탈리온이 선발대로 지구에 온 이유는 최대한 빨리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함이었다.
만약 단탈리온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약 1년 뒤쯤 게티아들이 지구로 왔을 것이다.
‘계획을 막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신유현은 정신이 아찔했다.
‘1년은 너무 짧아.’
게티아들을 상대하려면 불사왕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고, 전 세계 초인의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못해도 2년은 필요했다.
‘아직 가문을 손에 넣지도 못했으니.’
이제 회귀를 한 지 고작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신유현은 많은 것을 빠르게 이루어 냈다.
무너져 가던 현무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가문 내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불사왕의 유산들을 얻으며 강해졌다.
기력 해방을 하고 2성이 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6성 초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건 지금 시대에 게티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이미 게티아가 있다는 사실에 신유현은 위기감을 느꼈으니까.
‘그런데 왜 4년 동안 잠복해 있었던 걸까?’
이전 삶에서 단탈리온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면 앞으로 1년 정도 뒤에 지구로 넘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4년 동안 게티아들은 조용히 지냈다.
4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만큼은 단탈리온의 정신을 뒤져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게티아들의 변덕 때문인지, 아니면 4년간 조용히 지내야 할 무슨 이유가 지구로 넘어오면서 생긴 것인지.
‘놈들이 넘어오면 알 수 있겠지.’
앞으로 3년 뒤 게티아들이 지구에 오게 되면 알 수 있을 터.
‘3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돼.’
예상보다 시간이 2년이나 줄었다.
하지만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3년 안에 모든 준비를 완료할 것이다.
지구를 만만하게 보고 쳐들어온 게티아 놈들을 전부 쳐 죽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단탈리온의 정신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 가지 이점이 생겼다.
‘다행히 놈들이 어디로 올지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야.’
이전 삶에서 게티아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마법사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이었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을 선보이며 런던을 멸망시켰다.
영국의 마법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게티아는 하나 같이 마스터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탈리온의 정신을 파헤쳐 본 결과 게티아들이 차원을 넘어서 도착한 장소는 영국 런던이 아니었다.
‘차원 이동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
단탈리온은 부의 감정 에너지를 모아서 강제적으로 서울시 상공에 차원의 문을 열려고 했다.
신유현의 방해로 인해 계획이 늦어졌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최초로 문을 열게 된 장소는 따로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마나가 집중되어 있고, 그만큼 가장 위험한 장소.
“사하라 사막.”
신유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던전 스탬피드로 마수들이 점령한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그냥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마수들만 해도 최소 5성 이상이었으니까.
설마 그런 곳에서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을 줄이야.
‘골치 아프군.’
신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례대로 해야겠지.’
그나마 며칠 동안 고생한 덕분에 어느 정도 뒷수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숨통이 조금 트인 현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루베르, 티르달.’
[네. 부르셨나요?]
[무슨 일인가? 마스터여.]
신유현이 의사전달로 텔레파시를 보내자 루베르와 티르달이 응답해왔다.
‘너희들이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기꺼이.]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시던 차였다. 무슨 일이든 맡겨라.]
루베르와 티르달의 응답에 신유현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텔레파시로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 * *
일본 월야회의 비밀 별장.
“이런 빌어먹을!”
탕!
일본 극우 시민 단체의 회장, 이시하라 마코토는 분에 찬 표정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 몰래 월야회에서 키우던 비밀 요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어디 그뿐인가?
월야회의 특공대들이 강릉에 침투한 후,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그 때문에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에서 월야회는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회장인 이시하라 마코토와 부회장인 사쿠라이 신타로는 일본 국회와 법원으로부터 출두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출두 명령을 거부하고 월야회의 비밀 별장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정말 매국노들이 따로 없군요. 우리들 보고 국제 범죄자라니.”
“그러게 말이야. 야생 동물 같은 한국인들의 말을 대체 왜 일본이 들어야 하지?”
사쿠라이 신타로의 경멸에 찬 말에 이시하라 마코토 또한 맞장구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야회의 특공대원들이 한국의 강릉을 침투했다는 사실에 한국 정부와 헌터 협회에서 엄중한 항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어서 국회에 출두해서 해명을 하고 마땅한 처벌을 받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처벌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오히려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판 아닌가? 그리고 용사들의 안위는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같은 일본인이 맞는 건가?”
이시하라 마코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일본 정부를 향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그래도 같은 일본인이니 정부에서 월야회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한국의 편을 들어 줄 줄이야.
“대 일본제국이 어쩌다 한국 같은 식민지 국가에게 쩔쩔매고 있는 건지 통탄스럽습니다.”
사쿠라이 신타로 또한 이시하라 마코토와 마찬가지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직 자기중심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월야회의 특공대원들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의 눈을 피해 숨어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뿐이었다.
“망할 한국 놈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앞잡이가 된 것 같군요.”
그들은 서로 혀를 차며 비밀 별장의 다다미방에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술을 퍼마셨다.
그때,
콰아아앙!
“뭐, 뭐야?”
갑작스러운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시하라 마코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서, 설마 벌써 이곳에? 어째서?”
이시하라 마코토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비밀 별장은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밖에 모르는 은신처였다.
그리고 아직 이 은신처에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
아무리 추적 능력이 뛰어난 초인이 있다고 해도 자신들을 찾는데 최소 2~3일은 더 걸릴 거라 예측했다.
그런데 벌써 이곳에 도달한 자들이 있다니!
탁!
그때 사쿠라이 신타로가 일본주를 마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후. 이제야 왔나 보군요.”
“쩔쩔매고?”
그 말에 이시하라 마코토는 의아한 표정으로 사쿠라이 신타로를 바라봤다.
“아마 일본 정부에서 파견한 헌터일 겁니다. 제가 이 장소를 알려 줬었거든요.”
“뭐?”
이시하라 마코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장소를 알려 줬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거, 참. 말귀를 못 알아 들으시네. 우리 함께 다 같이 죽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요.”
사쿠라이 신타로는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며 이시하라 마코토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