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25화
길고 긴 함정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현실 같은 장소가 신유현을 맞이했다.
그리고 알현실 내부는 100평은 될 정도로 굉장히 넓었으며, 그 끝에는 거대한 칠흑의 수정이 놓여 있었다.
“저건가? 생각보다 꽤 큰데?”
신유현은 흑수정을 바라봤다.
알현실 끝에 세워져 있는 흑수정은 상당히 컸다. 너비가 2미터, 높이가 3미터나 되었으니까.
아마도 저 안에 세븐 아크스인 흑의 재상, 레이븐이 봉인되어 있을 테지.
신유현은 흑수정 앞에 있는 제단을 향 다가가기 시작했다.
분명 저 제단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을 터.
그렇게 알현실에 들어오고 나서 몇 발자국 나간 신유현은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뭐지?’
기척감지를 통해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신유현은 알현실 내부를 둘러봤다.
알현실 내부는 별다른 특징적인 건 없었다.
그저 상당히 넓은 내부와 양 옆 벽 쪽에 기사의 갑옷을 비롯한 몇몇 장식품들이 놓여 있을 뿐.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같은 수법에 고전적이군.’
알현실에 들어온 순간, 신유현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흑수정이었다.
크기가 큰데다가 신비한 느낌의 검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흑수정이 있는 알현실 끝으로 다가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자 양쪽 벽에 기사의 갑옷이 있는 게 아닌가?
분명 흑수정 주변에 기사의 갑옷을 움직이게 하는 함정이 숨겨져 있을 터.
‘선수 필승이지.’
스스슥!
신유현은 불사왕의 흑마법 중 하나인 본 스피어를 시전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 생성되기 시작하는 하얀 뼈의 창들.
슈아아아악!
이윽고 하얀 본 스피어들이 기사의 갑옷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기사의 갑옷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부술 생각이었으니까.
쾅! 쾅!
이윽고 본 스피어의 공격 앞에 기사의 갑옷들을 하나둘씩 부서져 갔다.
아무래도 발동되기 전에는 장식용 갑옷에 지나지 않는 모양.
‘그럼…….’
그렇게 기사의 갑옷들을 부수며 신유현은 다시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
기척감지를 통한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앞에 뭔가가 있는 듯한…….’
순간 앞으로 손을 내밀던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손에서 무언가 가로막힌 느낌이 났으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놀랍게도 알현실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된 미로가 존재했다.
즉 흑수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미로를 공략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어이가 없네.”
신유현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흑수정을 바라봤다.
듣던 대로 레이븐은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마지막까지 이런 까다로운 함정을 준비해 놓을 줄이야.
‘하. 기사 갑옷이 아니었다니.’
신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선택한 일이다. 당연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신유현은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흑수정을 노려봤다.
보이는 않는 미로를 지나 흑수정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복도에서 초승달 칼을 뛰어넘어 갔을 때처럼, 미로의 벽을 넘어갈 수도 없었다.
천장과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남는 건 강행 돌파뿐.
“까망아.”
뀨!
신유현의 말에 까망이가 그림자를 쭉 늘렸다.
스스슥!
이윽고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보스급 소환수들.
“힘으로 뚫고 지나가 주마.”
등 뒤로 보스급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한 신유현은 입 꼬리를 치켜 렸다.
그리고 보스급 소환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부숴.”
잠시 후, 알현실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미로의 벽은 제법 강도가 높은 모양이었지만 보스급 소환수의 공격을 버틸 수 없었다.
거의 산산조각이 난 벽을 지나 신유현은 흑수정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흑수정에 봉인되어 있던 레이븐을 깨웠다.
“화려하게 저질러 주셨네요.”
세븐 아크스 염정성의 집행자이자 흑의 재상, 레이븐.
레이븐은 신유현 앞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이븐은 위험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등까지 내려오는 칠흑의 머리카락을 가진 20살 전후로 성별을 알 수 없는 미인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자 같았고, 어떻게 보면 여자 같이 보일 정도로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함정이 이렇게 많아서야.”
신유현은 물끄러미 레이븐을 바라봤다.
성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미형의 존재.
겉모습만큼 내면도 아름다웠다면 좋았으련만 위험한 성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잘 알 수 있었다.
탐욕의 신전에 숨겨놓은 함정들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처음 봉인에서 깨어난 레이븐의 모습은 지금 같지 않았다.
사람만 한 크기의 거대한 까마귀였으니 말이다.
“그야 당연하죠. 우리 또한 계승자님이 따를만한 인물인지 확인할 권리 정도는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세븐 아크스들의 신전에서 시험 받지 않았나요?”
“뭐, 그렇지.”
레이븐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성녀 디아나를 제외한 슈브 라니그두와 루베르 번슈타인을 만나러 간 신전에서 시험을 받았다.
슈브의 신전에서는 수많은 여성의 유혹을 이겨 냈고, 루베르의 신전에서는 질투와 시기심을 이겨 냈으니까.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늑대, 혹은 폭식의 늑대인 티르달의 신전에서는 고급 음식들 앞에서 굶주림을 이겨 내야 했다.
그 시험들을 통과했기에 신유현은 세븐 아크스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넌 어떻지?”
신유현은 레이븐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자 레이븐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계승자님은 불사왕님의 힘을 얻어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복수다.”
“복수?”
“그래. 게티아 놈들에게 아주 큰 빚을 졌거든. 그래서 놈들에게 댓가를 치르게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카오스 신들도 한 방 먹여 줄 생각이고. 내가 사는 세계는 게티아들과 카오스 신들에게 유린당했으니 말이야.”
신유현은 조용히 싸늘한 살기를 피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도 게티아 놈들에 대해 떠올리면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이전 삶에서 놈들 때문에 인류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
“게티아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건가요?”
“그래.”
레이븐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스.
그때 갑자기 레이븐에게서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참, 하필이면 게티아에게 복수를 하고 싶으시다니.”
차가운 살기를 내뿜는 레이븐의 얼굴이 점점 광기로 물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게티아를 추종하는 숭배자들을 방불케 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레바테인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레이븐의 상태가 의심스러웠으니까.
“마스터께서는 저를 너무 흥분시켜 주시는 군요. 저도 게티아 놈들에게 볼일이 있거든요.”
“뭐?”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사실 제가 살던 세상도 게티아 놈들에게 멸망당했거든요.”
“뭐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레이븐의 말에 신유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레이븐의 세계가 게티아들에게 멸망당했었다니.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그럴 거예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오직 초대 불사왕님을 제외하고는.”
레이븐은 게티아와 관련된 일을 동료들인 세븐 아크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레이븐의 반응으로 보아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게티아들은 차원을 여행하며 수많은 세계를 멸망시켜 왔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힘의 원천인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때문에 그들이 멸망시킨 차원 중에서 레이븐의 세계도 있었던 모양.
“고생이 많았겠군. 위로를 전하지.”
신유현은 동병상련(同病相憐) 마음으로 레이븐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유현 또한 게티아 놈들 때문에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으니까.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신유현의 위로에 레이븐은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이미 저한테는 아득히 오래전의 일입니다. 저보다는 마스터의 세계가 더 걱정스럽군요. 현재 그놈들의 침공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선발대가 이미 와 있는 모양이야. 현재 추적 중이지.”
“어떤 놈인지 아시나요?”
“게티아 숭배자들을 찾았지만 정신 금제가 걸려 있어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어. 다만 선발대는 몇 명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직 침공 초기 단계군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놈들이 침공을 시작했다면 끔찍한 꼴을 당했을 테니.”
“끔찍한 일?”
“네. 놈들은 부의 감정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잔인한 일들을 서슴지 않습니다. 제 동료들도 많이 당했었지요.”
레이븐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레이븐이 말한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알고 있다. 고문은 기본이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걸 즐기는 놈들이지. 그러면서 자신들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쓰레기 같은 놈들.”
전생에 게티아들이 행한 짓거리들을 떠올린 신유현은 절로 이가 갈렸다.
“재미로 죽이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고통을 주는 걸 즐긴다는 사실이지. 몸이 반으로 갈라져서 내장이 쏟아져 나와도 놈들은 죽는 걸 허락하지 않아. 온갖 연명 장치들로 살려 놓지. 고통을 느끼는 채로.”
“잘 알고 계시네요?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요?”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신유현의 말에 레이븐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가 알기로 침공 초기 단계에서는 한계 이상의 고통을 가하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 일정 고통을 느끼면 쇼크사로 죽으니까.
그 때문에 한계 이상의 고통에도 죽지 않게 하려면 게티아들의 과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침공 초기 단계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필요한 자재와 인원, 기술력도 부족하니 말이다.
“게티아 놈들이 하는 일이야 뻔하니까. 나는 놈들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한다. 너는 어떻지?”
신유현은 게티아에 대해 잘 아는 사실을 대충 얼버무리며 레이븐을 바라봤다.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저도 마스터의 뜻과 같아요.”
레이븐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레이븐 또한 게티아 놈들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받았다.
그러니 게티아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주는 일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마이, 마스터.”
레이븐은 신유현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축하합니다! 불사 군단에 세븐 아크스 염정성의 집행자, 흑의 재상 레이븐이 합류하였습니다.]
[세븐 아스크의 합류로 불사 군단이 강화됩니다.]
레이븐이 충성의 맹세를 하자 불사 군단이 강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유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레이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갈까? 내가 사는 세계로.”
“예.”
레이븐은 신유현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