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23화
‘어, 어느 틈에?’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 또한 초인이었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정도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까지 사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 방에 있었던 것일까?
이시하라 마코토는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내가 누군지 굳이 알아야 하나?”
“그럼 무슨 목적이요?”
“말귀를 빨리 알아 들어서 다행이군.”
이시하라 마코토의 말에 단안경을 쓰고 하얀 정장을 입은 신사는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육식 동물을 눈앞에 둔 초식 동물이 이런 기분일까.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마코토는 싸늘한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눈앞에 있는 인물이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당장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가 있는 장원에만 해도 헌터 출신의 경호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상황.
그들의 숫자는 수십 명은 되었으며, 실력 또한 상당한 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엄중한 경호를 뚫고 자신들 눈앞에 서 있었다.
분명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인물일 터.
“너희들의 이야기는 잘 들었다.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도와준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시하라 마코토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얀 정장의 신사를 바라봤다.
“한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도와주겠다는 말이다.”
“……!”
하얀 정장 신사의 말에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본 국회에서 한국과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자신들을 비웃으며 헛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신들은 그저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발언했을 뿐인데 말이다.
한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소리에 찬성한 건 그저 한국이라면 싫어하는 극우 혐한 세력들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넷우익들로 인터넷 상에서 글만 쓰는 녀석들 뿐.
실질적으로 월야회를 도와줄 세력은 없었다.
차별과 편견을 가지지 않은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일본 초인들은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설마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인물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굉장히 강해 보이는 존재가 말이다.
“왜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거요?”
“파천검가 때문이지.”
“파천검가!”
이시하라 마코토는 눈을 빛냈다.
그가 한국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파천검가 때문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파천검가가 철화단을 괴멸시켰고, 지금까지 아무도 이뤄 내지 못했던 마수들의 점령지역을 탈환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들은 공통된 목표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파천검가를 무너트릴 생각이 있다면 힘을 빌려 주도록 하지.”
“당연한 소릴. 파천검가를 없애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오.”
“잘됐군.”
하얀 정장의 신사, 단탈리온은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인간 놈들.’
파천검가를 무너트리는데 도와주겠다고 하니 좋다고 들러붙는 꼴이라니.
물론 단탈리온이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주면서 신뢰감을 심어 주는 심리조작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간단히 넘어올 줄이야.
“너희들에게 이것을 주마.”
단탈리온은 품속에서 붉은 수정을 꺼냈다.
“이, 이건?”
그것을 본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붉은 수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어마어마한 마나를 느꼈기 때문이다.
“달의 마나를 응축한 수정이다.”
던전에 존재하는 검붉은 달.
그 에너지를 모아놓은 문 크리스탈이었다.
“이게 너희들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우우웅.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를 향해 내민 크리스탈이 진동하듯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방 전체를 불길한 붉은 빛이 가득 채웠다.
이시하라 마코토와 사쿠라이 신타로는 방 안에서 점멸하는 붉은 빛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 * *
현무전 지하 연무장.
시련의 탑 4층을 공략하고 현무전으로 돌아온 신유현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티르달을 찾았다.
티르달이 봉인에서 풀려 난지 며칠이 지난데다가 슈브나 루베르때와 달리 현재 신유현은 6성이 되면서 꽤 강해진 상태였다.
덕분에 다음 세븐 아크스의 신전이 있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티르달. 이번에 만나야 하는 세븐 아크스는 어떤 존재지?”
지하 연무장에서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인 티르달을 향해 신유현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만날 세븐 아크스 말인가?]
신유현의 말에 티르달은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한 마법진을 지면을 그리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간단히 말하면 속이 시커먼 놈이라고 할 수 있지. 난 대체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모르겠더군.]
티르달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속이 시커멓다라…….”
티르달의 반응을 봐서는 아무래도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존재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명색이 세븐 아크스니까.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대 불사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놈이니 말이야.]
“그렇군.”
티르달의 텔레파시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달의 말대로 세븐 아크스들은 초대 불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따르던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던 간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뭐, 우리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를 꼽으라고 한다면 슈브겠지.]
“뭐?”
예상치 못한 티르달의 말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유현에게 있어 그녀는 항상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상냥한 누님 같은 존재였으니까.
[몰랐나 보군. 초대 불사왕 때부터 그녀는 자비가 없는 존재였다. 모든 존재들에게 살의를 가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지. 그래도 뭐 초대 불사왕과는 잘 지냈었지만.]
“적들에 한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다. 초대 불사왕이나 우리들 세븐 아크스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존재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외교나 교섭은 속이 시커먼 놈이 맡았었지.]
“상상이 되질 않는군.”
티르달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적들에 한해서 슈브는 차가운 면모를 보여 주긴 했었다.
그리고 파천검가의 사람들과 관계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상대했으니까.
[뭐, 확실히 지금은 많이 둥그러진 모양이지만.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건가.]
티르달 또한 지난 며칠간 파천검가에서 지내면서 슈브를 지켜봤다.
초대 불사왕 때와 비교 한다면 슈브는 많이 누그러진 모양새였다.
그 때문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슈브가 신유현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초대 불사왕 때보다도 더 친근해 보였으니까.
우우우웅!
그때 티르달이 지면에 그리고 있던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작동하기 시작하는군.]
티르달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다음 세븐 아크스, 흑의 재상 레이븐이 있는 차원으로 갈 수 있는 준비가 끝난 것이다.
파츠츳!
이윽고 푸른빛의 마법진 위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면서 차원 균열이 생겨났다.
“준비가 끝난 건가?”
[그래. 이제 가면 된다. 행운을 빌지.]
“어.”
티르달의 말에 신유현은 손을 들며 답했다. 그리고 눈앞에 열려 있는 차원 균열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지그재그로 붉은 금이 가 있는 차원의 틈새.
“그럼 다녀올게.”
이미 신유현은 차원을 넘어갈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부우웅!
그와 동시에 몸이 떠오르면서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츠츠츳!
잠시 후 붉은 스파크를 몸에 두른 신유현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붉은 스파크는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 들었다.
“여기가 레이븐이 있는 곳인가?”
흑의 재상, 레이븐이 봉인되어 있는 차원에 도착한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완연한 어둠이 내린 세계.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밝게 빛나는 커다란 황금빛 달과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별빛이 밤하늘에 걸려 있었으니까.
[경고! 세이비어 시스템 링크가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타임 디멘션 프로토콜 검색. 실패. 연결 가능한 프로토콜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시공관리국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여기도 마찬가지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신유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세븐 아크스들이 봉인되어 있는 차원에서는 시공관리국의 시스템과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아마 세븐 아크스들이 봉인된 차원들은 격리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곳이네.”
지금 신유현이 서 있는 곳은 직경이 고작 10미터밖에 안 되는 땅덩어리 위였다. 그리고 땅 밖은 별들이 박혀 있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수많은 별이 보이는 우주 공간과 같았다.
또한, 신유현이 서 있는 땅덩어리와 이어져 있는 좁은 길이 있으며, 그 끝에 황금빛 보름달이 비치고 있는 칠흑의 신전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분명 흑의 재상, 레이븐이 봉인 되어 있는 신전일 테지.
쿠구구구궁!
순간 신유현이 서 있는 좁은 땅덩어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후두둑!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면적을 가진 땅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땅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신유현은 빠르게 신전과 이어져 있는 좁은 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칠흑의 신전과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상황.
거기다 조금 전 신유현이 서 있던 좁은 땅덩어리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없었다.
남은 건, 신전과 이어진 좁은 길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며 신유현의 등 뒤를 쫓고 있었다.
쿠구궁!
아니 신유현의 이동 속도보다 길이 무너져 내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지만 신유현은 피식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이런 걸로 날 막을 수는 없지.”
사실 지면이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신발 탈라리아의 고유스킬, 스카이스텝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케이론을 소환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신유현은 일단 스카이스텝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 순간,
[경고! 시스템 스킬 사용을 금지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땅이 전부 무너지기 전에 탐욕의 신전 입구 앞에 도착하십시오. 스킬을 사용하거나, 신전까지 이어진 길이 무너지면 탐욕의 신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신유현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스킬을 금지한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킬을 금지당한 건 상당히 위험했다.
신유현이 달리는 속도보다 좁은 길이 무너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으니까.
이대로라면 신유현이 신전에 도달하기도 전에 먼저 길이 무너져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스킬 사용을 하지 말라니?
정말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확실히 속이 시커멓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힌트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 스킬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그 말은 즉,
‘파천 신법은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지.’
시스템 스킬이란 장비나 보상으로 얻은 스킬들을 의미했다.
하지만 검술이나 신법, 마나연공법 등등 몸으로 직접 체득한 기술이라면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파천신법 세 번째 걸음, 뇌전보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