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17화
“뭐?”
신유현의 말에 알렉산더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냐니?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것일까?
“뭐, 네놈은 모르겠지. 게티아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지도 못한 채 숭배하고 있으니.”
신유현은 경멸의 눈빛으로 알렉산더를 바라봤다.
이제 게티아들이 지구에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5년도 남지 않은 상황.
신유현은 그들이 지구에 나타난 이후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봐 왔다.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알렉산더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거 아니야. 단지 네놈이 게티아를 숭배하게 되면 인류가 어떤 꼴을 겪게 될지 알려 줄 생각이거든.”
“흥. 고문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봐라. 그런다고 한들 내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네놈에게 해 줄 말도 없다.”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던 상관 안 해. 아까도 말했지만 네놈에게 게티아들이 앞으로 어떤 짓을 할 것인지 경험시켜주고 싶을 뿐이니까.”
알렉산더는 게티아들이 지구를 점령했을 때, 인류를 팔아넘긴 숭배자들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이 회귀를 한 후 작성한 살생부 리스트의 최상위권에 알렉산더가 랭크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네놈도 정신 금제가 걸려 있겠지.”
“정신 금제?”
“뭐야? 모르고 있었나? 네놈들 잿빛 교단의 간부 놈들에게는 게티아가 정신 금제를 걸어 놓았던데?”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알렉산더의 반응에 신유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정신 금제는 비밀을 발설하려고 하면 순간 기억을 잃는다거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저주였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있을 줄이야.
“그분의 뜻이라면 상관없다. 모든 건 그분의 뜻대로. 나는 그분의 의지를 따를 뿐이니.”
하지만 알렉산더는 자신이 정신 금제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개의치 않아했다.
“그렇지. 네놈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모양이군.”
신유현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렉산더를 바라봤다.
이전 삶에서 알렉산더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악행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게티아들의 명령이라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개가 있다고.
“지금이나, 그때나? 그건 무슨 말이지?”
“네놈이 알 필요 없다. 다만…….”
알렉산더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 신유현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오른쪽 엄지를 붙잡더니 그대로 뒤로 꺾었다.
우득!
“크으으윽!”
갑작스러운 신유현의 행동에 알렉산더는 이를 악물며 신음을 삼켰다.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 네놈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
게티아를 숭배하고 인류를 팔아넘긴 죗값을.
“이런 짓을 한다고 내가 그분을 배신할 것 같은가?”
알렉산더는 여전히 눈을 빛내며 비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나보군. 조금 전에 말했을 텐데. 게티아들이 인류에게 무슨 짓을 할 건지 경험시켜 주겠다고. 그리고 어차피 정신 금제에 걸려 있으니 게티아에 대한 정보는 말하지도 못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신유현은 알렉산더의 오른손 중지를 뒤로 꺾었다.
우드득!
“크흐읍!”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알렉산더의 몸이 흔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나야. 네놈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콰득! 콰드득!
“크아아악!”
신유현은 단숨에 나머지 중지와 약지, 새끼손가락까지 부러트렸다.
“크크. 이런 것도 고문이라고 하는 거냐? 손가락을 부러트리는 것 정도로 내가 굴복할거라 생각하나?”
알렉산더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신유현을 비아냥거렸다.
그 모습에 오히려 신유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네 말이 맞아. 게티아 놈들이 해 온 짓을 보면 이건 고문도 뭣도 아니지. 그냥 인사 같은 거니.”
“그래서 이 다음에는 뭘 할 거냐? 손톱이라도 뽑을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네놈에게는 통할 것 같지는 않군.”
신유현은 알렉산더의 태도를 보고 깨달았다.
고문에 대비한 훈련을 받았음을.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게티아들이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보아 왔으니까.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네놈이라면 알고 있겠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게 무엇인지.”
신유현은 알렉산더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탁 튕겼다.
화르륵!
그러자 신유현의 손끝에서 거칠게 피어오르는 검은 화염.
“바로 작열통이다.”
신유현은 부러진 알렉산더의 오른손에 흑염, 다크 소울 블레이즈를 옮겨 붙였다.
“크아아아악!”
오른손이 검은 화염에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알렉산더는 발작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흑염은 신유현의 의지대로 조작이 가능하다. 불태우는 범위부터 온도까지도.
현재 6성이 된 신유현은 최대 1800도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흑염 밖으로는 열기를 그리 많이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뜨거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흑염 속에서라면 어마어마한 열기가 흘러나온다.
“크흐으윽!”
알렉산더는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
흑염은 전투용으로도 쓸 만하지만 이렇듯 고문용으로 사용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뭘 그렇게 호들갑이지? 게티아 놈들에게 고통 받았던 인류는 겨우 이정도가 아니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지.”
게티아의 과학력은 인류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 때문에 일반적이라면 쇼크사를 하거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게티아들의 과학력이 의해 강제적으로 생을 이어 나갔으니까.
하지만 고통은 온전히 그대로 느껴야 했다. 팔 다리가 잘려 나가도, 내장이 튀어 나와도, 뇌수가 터져도.
그에 비하면 불에 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온도는 고작 300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100도를 더 올리면 어떻게 될까?”
신유현은 감정이 마모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온도를 더 높였다.
화르륵!
“크아아아악!”
불타오르는 흑염 속에서 알렉산더의 오른손은 화상을 입으며 녹아내렸다.
신유현은 일부러 낮은 온도에서 조금이라도 더 고통을 주기 위해 천천히 알렉산더의 오른손을 불태웠다.
서서히 조금씩 하얀 뼈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알렉산더의 오른손.
그렇게 한참 더 시간이 흐른 후, 신유현은 흑염을 꺼트렸다.
“크흐으으윽.”
오른손이 불타오르는 동안 기운을 소진한 알렉산더는 식은땀을 흘리며 축 늘어졌다.
지하 감옥 안에는 알렉산더의 지친 숨소리와 매캐하게 살이 타는 냄새가 자욱했다.
“슈브.”
“네.”
신유현의 부름에 슈브는 알렉산더에게 다가갔다.
알렉산더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슈브가 다가오자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 듯이.
“레스터레이션(Restoration).”
샤아아.
슈브는 알렉산더에게 회복 마법, 힐을 걸었다.
그러자 검은 빛이 하얀 뼈가 드러난 알렉산더의 오른손을 감쌌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오른손에 신경과 힘줄, 근육과 피부가 천천히 생겨나며 회복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크아아아악!”
알렉산더는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흔들었다.
“슈브는 악마지만 유능하거든. 그래서 회복 마법도 쓸 수 있지.”
하얀 뼈만 남을 정도로 깨끗하게 타버린 덕분에 고통이 그나마 가셨지만, 슈브가 회복 마법을 사용하자 신경이 재생되면서 다시 통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거기다 천천히 오른손이 복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은 길었다.
“으으으…….”
알렉산더는 지친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힘든가?”
“이 자식!”
알렉산더는 이를 악물며 신유현을 노려봤다.
그 순간,
짝! 짝!
알렉산더의 얼굴이 좌우로 한 번씩 돌아갔다.
단 두 번 귀싸대기를 맞은 알렉산더의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다.
“마스터에게 대한 모욕은 용서하지 않는다.”
알렉산더의 싸대기를 올려친 슈브는 차가운 살기를 흘리며 경고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신유현이 알렉산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이제 고작 손 하나를 불태우고 재생시켰을 뿐인데?”
“크윽.”
알렉산더는 검은 공막에 금색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슈브의 공포스러운 모습에 그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알렉산더에게 신유현은 재차 말을 이었다.
“게티아 놈들이 인간들을 고문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지. 뭔지 알아?”
“…….”
알렉산더는 신유현을 노려보며 침묵했다.
“죽음은 최대의 자비다. 이제 알았겠지? 내가 쉽게 죽이지 않겠다는 말의 의미를.”
“……!”
알렉산더는 그제야 깨달았다.
슈브의 회복 마법이 있다면 쉽게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생이 끝난 오른손은 언제 불에 탔었느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으니까.
“전부 슈브 덕분이군.”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요.”
신유현의 칭찬에 슈브는 상냥한 얼굴로 답했다.
그 모습을 알렉산더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볼 때는 전신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이었으니까.
“설마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또 불태울 셈인가?”
알렉산더는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알렉산더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신유현으로서는 그런 알렉산더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알렉산더를 비롯한 숭배자 놈들이 게티아들에게 갖다 바친 인간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애원하면서 살려 달라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눈물을 흘렸으니까.
물론 그런다고 게티아들이 용서해 주는 일은 없었다.
전부 실험동물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남자도 여자도. 어린 아이도. 노인도 전부.
퍼억! 퍽! 퍽!
“컥! 억! 크억!”
순간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알렉산더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전 삶의 기억이 떠오르자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 것이다.
신유현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알렉산더를 주먹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유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멈췄다.
철그럭철그럭.
신유현의 구타에 알렉산더는 벽과 이어진 쇠사슬에 몸을 맡기며 축 늘어졌다.
“쿨럭! 그르륵.”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며, 갈비뼈가 부서져 폐를 찢은 모양인지 입에서 피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슈브.”
“예.”
신유현의 부름에 슈브는 다시 알렉산더에게 회복 마법을 걸었다.
검은 빛과 함께 서서히 회복을 시작하는 알렉산더.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알렉산더의 몸은 완전 회복되었다.
“미안하군. 잠시 이성을 잃었어.”
분노로 알렉산더를 두들겨 팬 신유현은 사과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기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다시 시작하지. 이번에는 아주 즐거울 거야. 슈브의 흑마법 중에 재밌는 게 있거든.”
“……!”
그 말에 알렉산더는 흠칫 몸을 떨었다. 신유현의 말에서 불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악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도 증폭 마법이라고 들어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