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15화
“헌터 협회와 협력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신철민 형님과 같습니다.”
신유현 또한 헌터 협회와 협력하는 쪽을 선택했다.
신철민의 말대로 잿빛 교단과 관련된 일은 파천검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협력을 해서 해결하는 편이 나았다.
다만, 그럴 경우 파천검가 입장에서 탐탁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
“그럼 교단의 간부들을 헌터 협회에 넘겨주어야 하느냐?”
기껏 생포한 중요한 정보제공자들을 헌터 협회에 넘겨줘야 했으니까.
“물론 간부들을 바로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헌터 협회에게 협조하겠다고 하고 말단 교도들부터 조금씩 넘겨줄 생각입니다. 잿빛 교단의 포로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그동안 간부들을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 낼 생각입니다.”
헌터 협회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면 생포한 잿빛 교단의 포로들을 넘겨주어야 했다.
현재 헌터 협회는 잿빛 교단의 위협을 알게 된 후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헌터 협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은 던전을 공략하고 마수들을 처리하는 것.
하지만 그 목적을 방해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빌런 조직들이다.
그 때문에 헌터 협회는 빌런 조직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런데 잿빛 교단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런 조직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유명했던 철화단은 잿빛 교단의 말단 조직이었으며, 유럽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블랙 워치 또한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니 헌터 협회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잿빛 교단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했다.
그런 와중에 신유현이 잿빛 교단의 중요 인물들을 생포한 것이다.
헌터 협회에서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적당히 협력하는 척을 하면 된다는 거군.”
“네. 헌터 협회에 협조를 하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굳이 척을 질 필요까지는 없으니까요. 헌터 협회와 좋은 관계가 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신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요컨대, 잿빛 교단의 간부들을 미끼로 헌터 협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흠.”
신유현의 말에 신성일은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한 달. 한 달 안에 정보를 알아내라. 할 수 있겠지?”
‘한 달이라고?’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헌터 협회에 잿빛 교단의 말단 교도들을 넘겨주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생각이었다.
거기에 잿빛 교단의 간부들을 직접 생포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유리하게 교섭을 끌고 간다면 벌 수 있는 예상 시간은 대략 보름 정도.
그런데 파천검가의 가주가 열흘 동안 시간을 벌어 주겠다고 할 줄이야.
“네. 맡겨 주십시오.”
신유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저녁 시간.
오전에 시작됐던 가주전의 회의가 드디어 끝이 났다.
잿빛 교단의 뒤처리와, 앞으로 파천검가의 방침을 정하느라 회의가 길어진 것이다.
그 외에도 자잘한 안건이 많았다.
‘잿빛 교단의 포로들을 헌터 협회에 넘기는 건 진짜 신의 한 수로군.’
신유현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신유현이 생포한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은 수백 명에 달했다.
그들은 현재 가주전을 비롯한 각 검전의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인원수가 많았기에 관리가 쉽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식비가 꽤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모조리 몰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잿빛 교단과 연관되어 있는 빌런 조직들의 정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거짓 정보를 부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교차 검증도 해야 했다.
그런데 헌터 협회에 넘겨줌으로써 포로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포로들에게서 알아낸 정보들은 헌터 협회를 통해 들으면 될 터.
시일이야 좀 걸리긴 하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간부들을 통해 잿빛 교단과 관련된 정보들을 먼저 알아내면 되니까.
‘잿빛 교단의 일은 다른 조직에게 넘겨줄 수 없지.’
잿빛 교단은 황금 고블린이나 다름없었다.
털면 털수록 보물들이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 크리스탈 마인드 컨트롤 장치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공간이동이 가능한 게이트까지.
단거리 공간이동이 가능한 블링크와 같은 마법이나 스킬이라면 모를까 수백 킬로미터라는 대륙과 대륙을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언제 어디서든 기습이 가능하다는 소리였으니까.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 나간 기술들이었다.
그 때문에 헌터 협회를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의 유명한 초인 가문들은 잿빛 교단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세력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문제는 게티아의 기술들이라는 사실이지.’
인류보다 과학 문명이 발전한 게티아.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게티아들의 과학력은 어마어마했다. 차원과 차원을 이동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그들이 가진 기술은 위험했다.
잘못 사용할 경우 세계가 멸망할 수 있었기에.
아티팩트 연구의 천재라고 불리는 남연아조차 게티아의 크리스탈 장치를 조사하던 중 이계의 문이 열렸으니 말이다.
신유현이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티팩트 지하 연구소뿐만이 아니라 지상에도 상당한 피해가 생겨났을지도 몰랐다.
크리스탈 장치로 열린 이계의 문 너머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마수들과는 뭔가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었으니까.
‘일단 하나씩 해결하자.’
현재 신유현이 해야 할 일은 잿빛 교단의 간부들의 심문이었다.
잿빛 교단의 본거지를 알아내고 나머지 잔당들을 전부 소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잿빛 교단에 있는 게티아를 포획 혹은 처리해야 했다.
그러려면 간부들에게서 게티아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할 터.
“현무전 전주님 오셨습니까?”
그때 신유현에게 말을 걸어오는 가문의 검사가 있었다.
신유현은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 가주전 옆에 붙어 있는 별채가 있었으며, 가문의 검사들이 별채를 감싸며 경비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다름 아닌 블랙 워치로부터 구출한 어머니가 요양을 하고 있는 장소였다.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신유현은 별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문의 경비 검사들에게 안내를 받으며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에는 가문에서 부른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의사들의 진단에 의하면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에게 어떠한 위해도 입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정신적으로 놀라 있을 뿐.
잠시 후 신유현은 어머니가 쉬고 있는 별채의 큰 방에 도착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들, 왔니?”
어머니는 초췌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음고생이 컸었는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반, 망할 자식.’
그 모습에 신유현은 속으로 어머니의 납치를 주도한 블랙 워치의 탑주, 이반을 욕했다.
비록 어머니를 무사히 구출해 오고, 주모자인 이반을 붙잡기는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 역행을 하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로 다짐했었는데, 어머니의 납치를 허용해 버렸으니까.
‘어머니를 납치한 대가는 확실히 치르게 해 주마.’
신유현은 현무전의 지하에 감금되어 있는 이반을 떠올리며 속으로 이를 한번 갈았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숨기며 신유현은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많이 나아진 것 같구나.”
어머니는 초췌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앉아 있는 푸른 갈기털을 가진 대형견의 머리와 턱밑을 쓰다듬었다.
그르렁.
그러자 티르달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만끽하고 있나 보네.’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티르달은 어젯밤 어머니를 구출한 후 계속 붙어 있었다.
호위 겸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
실제로 티르달과 함께 있는 어머니는 꽤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적어도 불안과 초조함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신유현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 * *
지하 연구 시설.
하얀 전등이 빛나는 넓고 밝은 공간.
각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전자장비들이 늘어선 채 돌아가고 있었으며, 중앙에는 거대한 붉은색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중앙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케이블들이 연결된 원통형 실험관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산소마스크를 쓴 남성이 있었다.
그 남성은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정면을 바라봤다.
남성의 눈앞에는 연구실의 장비들을 컨트롤 하는 콘솔이 있었고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금색 외눈 안경을 오른 쪽에 착용한 하얀 정장 차림의 사내.
탐구의 신, 단탈리온.
사내는 다름 아닌 게티아였다.
“역시 인간들 중에서 우수하다고 해도 열등한 건 변함이 없는가.”
단탈리온은 콘솔을 조작하며 혀를 찼다. 그를 숭배하며 찬양하는 추종자들이 만든 조직, 잿빛 교단.
지금까지 단탈리온은 잿빛 교단의 활약에 만족해왔다.
실질적으로 잿빛 교단을 이끌던 인간, 총대장 알렉산더는 우수한 인물이었고 단탈리온 또한 모든 일들을 맡겨 왔다.
그런데 약 이틀 전, 장거리 게이트 크리스탈을 사용한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자신이 연락하면 꼬박꼬박 받던 알렉산더에게서 답변이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잿빛 교단의 간부 조직인 아르스 노토리얼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잿빛 교단의 약 1천 명에 달하는 숭배자들까지도.
“재미있군. 이번에도 한국인가?”
지금까지 잿빛 교단에서 임무를 실패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간 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교단의 임무가 실패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사실에 단탈리온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열등 종족인 인간들의 일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차원을 열 수 있는 크리스탈을 만들어야 하지.’
차원의 저편에서 자신의 동족인 게티아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로 이어지는 차원 통로가 열리기를 말이다.
“카오스 놈들만 아니었어도 이런 행성에 오는 일은 없었을 텐데.”
단탈리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카오스 신들에 의해 모성이 멸망하고 까마득한 세월을 차원을 전전하며 떠돌았다.
그동안 그들이 멸망시킨 세계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세계의 지성체들은 게티아들 입장에서는 열등하고 하등했다.
지금 단탈리온이 있는 지구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놈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은 없지만…….”
단탈리온은 마법진 중앙에 있는 실험관을 바라봤다.
그는 잿빛 교단이나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연구와 실험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되니까.
그리고 잿빛 교단 또한 대체할 인간들이라면 얼마든지 많았다.
인간들을 조종하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었기에.
“계획을 앞당겨야겠군.”
단탈리온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콘솔의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우우웅!
그러자 그가 있는 연구 실험실의 장비들이 격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그리고 지면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과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잠시 후, 거대한 마법진에서 시작된 붉은 스파크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성이 들어 있는 실험관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