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13화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성과는 잿빛 교단의 간부들을 전원 사로잡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이놈들을 심문하면 게티아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터.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신유현은 고개를 돌려 마리아 일행을 바라봤다.
때마침 마리아 일행도 신유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상황.
신유현은 마리아 일행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리아 일행은 굳이 잿빛 교단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잿빛 교단과의 전투에 참여해서 전투원들을 쓰러트렸다.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도와준 것이다.
신유현은 그 점이 고마웠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지요. 신유현 님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마리아는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마리아와 크리스, 그리고 엠마가 싸워 주었지만 도움을 줬다고 하기에는 미약했다. 고작 수십 명 정도의 교도들을 쓰러트렸을 뿐이니까.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거죠.”
잿빛 교단과의 전투 초기 때는 신유현이 불리했다.
그때 마리아 일행이 상황을 보고 도망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남아 신유현을 도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이전 삶과 같네.’
신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정말……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마리아는 감동에 가까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잿빛 교단을 바라봤다.
당초 마리아 일행의 목적은 화이트 워치의 라이벌인 블랙 워치의 탑주, 이반의 동향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반의 목적을 알아냈다.
아시아에서 유명한 대한민국 4대 명가 중 하나인 파천검가의 직계를 암살하려 한다는 사실을.
다만, 문제는 지금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블랙 워치의 배후 세력이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장거리 공간이동 게이트를 통해서 말이다.
기껏해야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 정도 단거리 공간 이동 마법이라면 모를까, 수백 킬로미터의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은 아직 실현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장거리 공간 이동 게이트를 통해서 블랙워치의 배후세력, 잿빛 교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마리아는 눈앞이 캄캄했었다.
전력(戰力)의 차이가 너무 컸으니까.
이쪽은 전부 다해봐야 고작 네 명이었지만 잿빛 교단은 무려 천 명에 달했기에.
그 때문에 마리아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들이 잿빛 교단을 쓰러트려 버린 게 아닌가?
그렇게 된 일등 공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사내였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렇게 많은 초인을 신유현 님 혼자 쓰러트리다니…….”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죠.”
마리아의 말에 신유현은 하얀 달빛 아래에서 폐허가 된 도시의 도로 위에서 대기 중인 소환수들을 바라봤다.
스켈레톤 솔져들과 보스급 소환수들, 그리고 세븐아크스들까지.
불사왕의 언데드들이 아니었다면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을 쓰러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언데드 소환수들은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전투원들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잿빛 교단과의 전투에서 많은 수의 전투원이 사망했지만, 운 좋게 죽지 않고 기절했거나 심문을 하기 위해 살려 둔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대단한 거죠. 혼자서 이렇게 많은 소환수들을 가지고 있다니…… 대체 신유현 님은 뭐 하시는 분인가요?”
마리아는 경외심이 깃든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녀는 신유현이 불러낸 존재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왔다.
스켈레톤 군단부터 시작해서 보스급 언데드들과 슈브, 루베르, 디아까지.
신유현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이 전부 소환수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열 몇 마리 정도의 언데드들을 거느릴 수 있을 뿐이니까.
그에 반해 신유현은 그야 말로 1인 군단이나 다름없었다.
“파천검가의 직계입니다.”
마리아의 질문에 신유현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아무리 그녀가 이전 삶에서 자신에게 마력 제어를 가르쳐 준 스승이고 연인이었다고 해도 불사왕에 관한 비밀은 함부로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특히 등 뒤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과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슈브와 루베르, 디아가 있다면 더더욱.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마리아는 잿빛 교단의 간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눈앞에 있는 놈들은 그야말로 잿빛 교단의 핵심 인물.
그 때문에 슈브와 루베르는 칼리와 페르젠을 죽이지 않고 생포했다.
간부 놈들을 통해 게티아들에 대한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으니까.
“그거라면 마리아 님에게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네. 그리고 그전에…….”
신유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먼 곳을 응시하듯 바라봤다.
“뒤처리를 할 지원군들이 왔네요.”
“네?”
신유현의 말에 마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현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수많은 초인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 직후,
후우우웅!
신유현과 마리아의 눈앞에 강풍이 불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풍압 속에서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으며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유현. 이게 무슨 일이냐?”
파천검가의 가주이자 철혈의 검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신성일이 나타난 것이다.
* * *
다음 날.
파천검가는 또 다시 난리가 났다.
강릉에서 잠복 중이던 블랙 워치의 흑마법사들 뿐만이 아니라, 신유현이 그동안 경고해 왔던 잿빛 교단의 핵심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신유현이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을 전부 제압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수고했다.”
가주전 회의실.
가문의 가신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서 신성일이 신유현을 치하했다.
“감사합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숙였다.
오늘 가주전 회의에 참석한 이유는 어머니를 납치한 블랙 워치와 잿빛 교단에 대해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잿빛 교단과 관련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논의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네가 말한 잿빛 교단을 잡게 될 줄은 몰랐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신유현의 말에 신성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겠지. 네가 아니었으면 오히려 당했을 수도 있었다.”
신성일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젯밤 거대한 늑대처럼 생긴 푸른빛의 갈기털을 가진 개 한 마리가 가문을 방문했다.
그 때문에 가문의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이 마수가 나타났는지 알고 공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내 늑대개 등 뒤에 한 여인이 정신을 잃고 업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가문 상층부에 연락을 날렸다.
늑대개에게 업혀 있는 여인이 가문의 안주인인 신유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문지기 무사들은 깜짝 놀랐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어머니를 가문의 별실로 옮기고 의사를 부른 것이다.
신기하게도 늑대개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어머니의 안전을 확인한 늑대개가 어딘가로 이동하려고 하자, 보고를 받은 신성일은 가문의 초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푸른 늑대개를 따르라고.
그 후 신성일은 바로 늑대개를 따라 강릉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신유현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회색 코트를 입은 수많은 초인과 마수들, 그리고 수많은 언데드까지.
“이야기는 미스 마리아에게 들었다. 네가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을 쓰러트렸다고 하더군.”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을…….”
“혼자서 쓰러트렸다는 말인가…….”
신성일의 말에 가신들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릉에서 발견한 잿빛 교단의 전투원들은 최소 천 명은 되었으며, 거기에 교단 간부들과 마수들까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신유현 혼자 쓰러트렸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따로 도와준 세력이 있었던 게 아닌지…….”
“화이트 워치에서 비밀리에 도와준 게 아닌가?”
가문의 가신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신유현과 마리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때 회의실 뒤편에서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전부 사실입니다. 이번 일에서 화이트 워치는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저희 셋 밖에 없었으니까요. 잿빛 교단을 쓰러트리건 신유현 님이 맞습니다.”
자리 뒤편에서 일어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아 테스타로사였다.
“마리아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 저도요!”
뒤이어 크리스와 엠마 또한 마리아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허. 말도 안 되는…….”
“혼자서 어떻게…….”
마리아의 확언에도 가문의 가신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신유현이 아니라, 다른 직계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00명이나 되는 초인들을 상대하려면 가주인 신성일 정도는 되어야 이룩할 수 있는 업적이니까.
“정확히 말한다면 혼자는 아니죠. 소환수 덕분이니.”
“그만한 소환수들을 다룬 인물이 다름 아닌 신유현 님이잖아요.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라면 이룰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에요.”
마리아는 눈을 빛내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도 아니면서 마스터와 다를 바 없는 업적을 이룬 인물.
적어도 현재 마리아의 속에 새겨진 신유현의 이미지는 그러했다.
그 덕분에 마리아와 크리스, 엠마는 목숨을 구원받을 수 있었다.
잿빛 교단이 화이트 워치 소속인 마리아 일행을 가만 놔둘 리 없었으니까.
“확실히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충분한 업적인 건 같군.”
“……!”
“가, 가주님?”
조용하면서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가주 신성일의 목소리가 가문의 가신들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직계 형제자매들인 장남 신철민, 장녀 신유라, 차녀 신지아, 그리고 막내인 신철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나. 신유현이 지금까지 가문을 위해 해온 일들을 생각한다면 너희들 못지않지.”
신성일은 청룡전을 이끌고 있는 장남 신철민과 백호전을 이끄는 장녀 신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철민과 신유라 또한 가문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다.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외부 활동을 많이 해 왔으니까.
하지만 최근 불과 몇 달 사이에 신유현이 해온 일들과 비교하면 부족했다.
파천검가를 노린 철화단의 습격.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두그룹에게 큰 은혜를 입혔다.
남두그룹의 후계자였던 남민혁을 통해 남두그룹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잿빛 교단의 음모를 박살 냈고 장녀인 남연아를 구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현재 파천검가는 남두그룹과 이전에 없을 정도로 친밀해졌으며 자금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다른 4대 명가보다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터.
그뿐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