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03화
무릎을 꿇는 척하면서 신유현은 한줄기 질풍처럼 이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검집에 들어 있는 레바테인의 손잡이 끝을 내질렀다.
“뭣?!”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반은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쩌적! 콰창!
레바테인의 손잡이 끝은 이반이 착용하고 있는 후드 코트의 자동 발동 배리어를 깨부수면서 명치에 꽂혀 들어갔다.
퍼억!
“크헉!”
그 때문에 이반은 비명과 함께 헛구역질을 했다.
‘얕았나?’
하지만 신유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레바테인의 손잡이가 배리어를 부수는 순간, 이반이 뒤로 몸을 날린 탓에 피해를 경감시켰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강하군.’
방금 전 일격은 완벽한 기습에 가까웠다.
거기다 신유현은 6성에 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다가가 공격을 가했건만 피해 버릴 줄이야.
“쿨럭쿨럭!”
‘뭐, 뭐지? 이놈은?’
뒤로 물러난 이반은 기침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반은 7클래스 마법사로 아무리 기습을 당한다고 해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현의 움직임은 이반조차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재빨랐다.
“이건 무슨 짓이지? 우리에게 인질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
어느 정도 속을 진정시킨 이반은 신유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스르릉.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신유현은 레바테인을 뽑아들었다.
하얀 달빛 아래에 붉은 화염 문양이 새겨진 칠흑의 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이반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파천검가는 인질이 어떻게 되도 상관이 없나보군.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이반은 상황이 변했음을 직감했다.
파천검가의 중요인물이라고 생각하고 납치한 여성이 설마 이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줄이야.
인질로서 효용가치가 없다면 판을 새로 짜야 했다.
“여자를 죽여라.”
이반은 품에서 마도공학 기술이 들어간 아티팩트 무전기를 꺼내서 나머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인질로 사용할 수 없다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으니까.
실제로 블랙 맘바의 멤버 두 명이 인질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인질을 죽인다면 나머지 두 명을 이곳에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대답이 없지? 보리스 응답해라.”
무전기에서 응답이 오지 않았다.
그저 노이즈가 섞인 잡음만이 새어나오고 있을 뿐.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다.”
“뭐? 그게 무슨…… 설마?”
신유현의 말에 대답하던 이반은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인질을 구출했다는 소리냐?”
“그 말대로다.”
신유현은 음침한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이반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신유현이 크리스를 향해 달려들었을 때, 작전은 시작되었다.
티르달에게 어머니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 후 다섯 명의 블랙 맘바의 멤버와 싸울 때도, 마리아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이반 일행이 나타났을 때도 티르달과 정보를 계속 주고받았다.
강릉의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4성 유니크 보스 이자르에게서 얻은 A급 스킬 분할 사고를 사용해서.
그리고 신유현은 블랙 워치 놈들이 잠복해 있는 건물 앞에서 일부러 소란을 일으켰다.
이쪽에 신경을 쓰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래야 티르달과 그의 권속들이 어머니를 찾고 구출할 테니까.
이른 바 양동작전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티르달로부터 어머니를 구출했다는 텔레파시가 전해져 온 것이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이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침한 성격만큼 신중한 이반은 건물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보고 양동이라 의심을 품었다.
그래서 건물 주변에 탐색 마법을 펼쳐서 수상한 자들이 없는지 확인했었다.
그때 걸려든 건 마리아 일행들과 신유현뿐이었다.
이반이 펼친 탐색 마법은 인간들, 특히 초인들이 가진 마나 파장을 감지할 수 있었으니까.
설마 시간을 달리는 사냥개인 티르달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 티르달과 그의 권속들은 은신 능력이 뛰어났다.
그 때문에 애초에 티르달을 감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각오는 되어 있겠지?”
신유현은 이반 일행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이전 삶에서 지키지 못했던 어머니를 이번 삶에서는 지키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납치할 줄이야.
용서할 수 없었다.
“각오라니 무슨?”
하지만 그런 신유현의 속을 알 수 없는 이반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눈을 피해 인질을 구출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라웠다.
하지만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인질을 어떻게 구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잡으면 되는 일 아닌가? 이번에는 아예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잘라 버려야겠군.”
이반은 신유현을 향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
쿠구구구궁!
이반은 등줄기 위로 전율이 흘렀다.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운과 함께 살기가 피어올라왔기 때문이다.
스팟!
직후, 신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조금 전과 달리 이반은 긴장한 표정으로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주변 탐지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이반을 보호하듯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도 좌우에 섰다.
그때 이반의 탐지 마법에 기척이 감지되었다.
이반은 정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정면이다!”
스스슥!
그와 동시에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조금 전부터 캐스팅을 하고 있던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4클래스 흑마법,
볼텍스 스피어(Vortex Spear)!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회전하는 암흑의 마창 4개가 이그로와 스베틀라나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이반의 정면에서 레바테인을 뽑아든 신유현이 나타났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신발, 탈라리아의 고유스킬, 블링크를 시전해서 빠르게 접근한 것이다.
슈아아악!
그 직후 이고르가 볼텍스 스피어 두 자루를 신유현에게 날렸다.
이어서 스베틀라나의 볼텍스 스피어 두 자루도 뒤를 따랐다.
스스슥!
그런데 볼텍스 스피어들이 신유현에게 닿으려는 찰나, 신유현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마치 잔상과도 같은 모습에 이고르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이반이 소리쳤다.
“등 뒤다!”
그 소리에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등 뒤를 돌아봤다.
“어, 어느 틈에?”
하얀 색에 가까운 은발과 붉은 눈을 가진 미인, 스베틀라나는 경악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 신유현이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있었으니까.
블링크로 이반의 정면으로 이동한 후, 전광석화로 뒤를 잡았던 것이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삼식(三式), 격멸(擊滅).
콰아아앙!
이고르와 스베틀라나가 뒤로 몸을 돌리며 신유현을 확인한 순간, 레바테인에서 발생한 흑염과 충격파가 그들을 덮쳤다.
“크윽!”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다급하게 방어마법을 펼치며 서로와 이반을 보호했지만, 충격파에 의해 뒤로 쭉 밀려났다.
하지만 아직 신유현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깡! 까강!
흑염을 두른 레바테인으로 신유현은 이고르와 스베틀라나가 합쳐서 발동한 방어 마법의 배리어를 두들겼다.
블랙 맘바의 대장과 부대장인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5클래스 마법사였다.
그들이 협력해서 만든 방어 마법은 제법 단단했다.
하지만,
파천검법(破天劍法).
오식(五式), 천충(天衝)!
파천검법의 일점집중 초식.
흑염과 오러가 집중된 레바테인의 검 끝을 이반 일행에게 겨누며 신유현은 돌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이고르와 스베틀라나가 합동으로 만들어 낸 방어막은 손쉽게 꿰뚫렸다.
콰창!
“헉?!”
방어막이 박살 나자 이고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사이 이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패럴라이즈! 블러딩 포이즌!”
이고르와 스베틀라나가 신유현의 공격을 막고 있는 사이 디버프 계열의 흑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큭!”
순간 달려들던 신유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패럴라이즈로 인해 몸이 마비가 되어 버렸으니까.
거기다 출혈독 때문에 눈과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상황.
“디버프 마법인가?”
신유현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이반 일행을 바라봤다.
“큭…….”
그 모습에 이반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몸이 마비가 되고 출혈독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신유현이 웃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죽여 주마!”
이반은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도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우리들이 있다는 걸 잊었어?”
마리아와 크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 뒤에는 서포터인 엠마가 붙어 있었다.
신유현의 활약을 지켜보던 마리아가 상황이 좋지않아 보이자 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이고르. 스베틀라나.”
그들의 등장에 이반은 나직한 목소리로 수하들을 불렀다.
그 소리에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이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나 마리아와 크리스 앞을 막아섰다.
“네놈들의 상대는 우리다.”
“정말 끈질기구나, 마리아.”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는 마리아 일행을 알고 있었다. 과거 몇 차례 서로 맞붙은 전적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걸?”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리고 마리아 일행은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이고르와 스베틀라나와 자주 현장에서 마주쳤었지만, 음침하고 신중한 이반은 흑의 시계탑에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반이 한국으로 움직였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도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이반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크리스와 엠마 둘 만 데리고 블랙워치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설마 정말로 이반이 한국에 있었을 줄이야.
‘이건 기회야.’
마리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반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이반을 호위하고 있는 인물이 현재 이고르와 스베틀라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이고르와 스베틀라나가 강자들이긴 하지만, 평소 이반을 호위하는 마법사들은 약 수십 명은 넘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단 둘뿐.
그리고 이쪽에는 서포터인 엠마와 이반 일행들을 상대로 혼자서 활약한 신유현까지 있었다.
가장 이반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상황인 것이다.
“마무리를 지어 주마.”
이고르와 스베틀라나를 마리아 일행에게 보낸 이반은 음침한 눈으로 신유현을 노려봤다.
현재 신유현은 패럴라이즈와 블러딩 포이즌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었다.
치직! 치지직!
그런 신유현 앞에서 이반은 손바닥 위에 칠흑의 번개를 흘리고 있었다.
살상능력이 높은 6클래스 흑마법, 다크 썬더 볼트였다.
“죽어라.”
이반은 신유현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캐스팅 하고 있던 흑마법을 발동하려고 했다.
그 순간,
“커헉!”
이반은 시전 중이던 흑마법을 취소하면서 피를 토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반의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없었으며 내장까지 피해를 받았는지 시커멓게 죽은피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또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반의 귀에 신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도 똑같이 당하니까 어떻지?”
“대, 대체 무슨 짓을……?”
이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눈앞에 있는 놈은 자신의 마비와 출혈독 마법에 걸려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자신을 공격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