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02화
갑작스러운 상황에 신유현과 크리스는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위를 돌려다봤다.
그리고 상공에 나타난 눈부신 황금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미녀, 마리아.
목까지 내려오는 포니테일 스타일의 주황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귀엽게 생긴 소녀, 엠마.
그녀들은 섬광탄처럼 터져 나온 황금빛 속에서 빠르게 크리스 곁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리스! 이쪽으로!”
플라이 마법으로 크리스 곁에 떨어져 내린 마리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금빛으로 빛나는 화살들이 신유현의 주위에 5개 정도 생겨났다.
마리아가 시전한 공격마법이었다.
아무래도 크리스와 대치하고 있던 신유현을 적이라고 판단한 모양.
“마리아 님. 괜찮습니다. 이 자는 적이 아닙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크리스의 말에 마리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엠마도 마찬가지.
설마 크리스가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옹호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크리스의 말에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마리아는 금빛 화살을 거둬들이며 사과했다.
빠른 판단과 결단력.
이전 삶에서나 지금이나 마리아는 신유현이 기억하는 모습대로였다.
‘역시 주변에 있었던 건가.’
그리고 신유현은 마리아를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를 봤을 때 혹시나 했었다.
마리아는 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이트 워치 수뇌부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호위를 붙였다.
그 호위가 바로 크리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가 주변에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젊구나.’
신유현은 가만히 마리아를 바라봤다.
확실히 약 10년 전 과거이다 보니 기억 속의 모습보다 젊어 보였다.
하지만 상냥하고 항상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과 지기 싫어하는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신유현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전 삶에서는 자신과 한없이 가까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이전 삶에서 마리아와 만나게 된 시점은 게티아가 침공하면서 전 세계의 초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통칭 1년 전쟁이었다.
1년 만에 전 세계 각국의 초인들이 게티아들에게 패했었으니까.
그 이후는 레지스탕스를 조직해서 대항하거나 게티아를 피해 도망 다니는 나날이었다.
“크리스 님. 그럼 이분은 누구신가요?”
그리고 이번에는 엠마가 의아한 얼굴로 크리스를 향해 질문했다.
그녀의 말에 신유현은 엠마를 바라봤다.
‘설마 엠마인가?’
엠마 브라이튼.
소심한 성격에 남몰래 혼자 자주 울던 여동생 같은 존재였다.
여린 성격 때문에 그녀는 게티아들을 피해 도망치는 나날들을 버티기 어려워했었다.
결국 오랜 도망자 생활 끝에 지쳐 버린 엠마는 게티아들이 퍼붓는 공격에 몸을 날렸다.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마리아와 크리스는 크게 상심했었다.
그녀를 지켜 줄 수 없었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는 마리아를 배신했다.
“파천검가의 사람이라고 하더군.”
“파천검가요? 파천검가의 사람이 이 시간에 왜 이런 곳에?”
크리스의 대답에 엠마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들은 블랙워치의 흔적을 쫓아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파천검가의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블랙워치 놈들과 같이 날 밟아대기도 했었지.”
“뭐라고요?”
이어지는 크리스의 말에 엠마는 볼을 부풀리면서 신유현을 노려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마리아의 눈초리 또한 조금 날카로워졌다.
동료인 크리스를 밟았다고 하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니, 그건 이놈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
그제야 신유현은 크리스가 던졌던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를 밟아댄 이유는 블랙워치 놈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블랙워치 놈들은 신유현이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신유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꽤 밟은 것 같던데…….”
“기분 탓이겠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크리스의 모습에 신유현은 딴청을 피웠다.
사실 블랙워치 놈들이 신유현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 기습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 자신이나 마리아에게 상담도 없이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결국 배신까지 한 크리스에게 조금 앙갚음을 해 준 것이다.
엠마에 이어 크리스까지 게티아 놈들에게 이용당한 끝에 잃게 되자 마리아가 굉장히 힘들어 했었으니까.
그건 신유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조금 실린 모양.
“아무튼 화이트 워치의 마법사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입니까?”
신유현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마리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전 삶에서 지금 이 시기에 마리아나 크리스, 엠마가 한국에 왔었다는 사실은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애초에 화이트 워치는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마법사 집단이었다.
그들이 굳이 한국에 올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은…….
“블랙워치 때문이에요.”
‘역시나 그런가.’
마리아의 대답에 신유현은 속으로 납득했다.
화이트 워치와 블랙워치는 서로 사이가 나빴다.
단순히 블랙워치가 흑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양한 능력들을 가진 초인들이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박해하지 않는다.
당장 흑마법의 일종인 시체들을 다루는 네크로맨서들도 능력이 있다면 인정해 준다.
세상 모든 초인은 동양의 무인이든, 서양의 마법사든 힘이 있으면 인정을 해 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리를 벗어나지 않았을 때 이야기였다.
블랙워치는 흑마법을 사용한 인체실험이나 납치, 감금, 테러 등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였다.
그 때문에 화이트 워치는 블랙워치를 굉장히 싫어하고 있었다.
그건 블랙워치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때문에 마리아 일행들은 블랙워치의 정예들인 블랙맘바가 한국에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럼 당신은요?”
이번에는 마리아가 신유현을 질문했다. 그녀의 질문에 신유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유현이 이곳에 온 이유는 납치범들을 쳐 날리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이 일이 가문의 체면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상관없나.’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대담하게도 블랙워치 놈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어머니를 납치했다.
그 때문에 SNS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
머지않아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 일행 또한 블랙워치 놈들이 어머니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
“어머니가 납치당해서 구하러 왔습니다.”
“네?”
신유현의 대답에 마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으니까.
신유현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를 납치한 범인들을 추적한 끝에 이곳에 도착했다고.
“여기에 도착해서 보니 저분이 납치범들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더군요. 그래서 놈들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 저분을 밟다가 기습을 가했었습니다.”
신유현은 여기서 또 한 번 더 크리스를 밟아댄 이유가 도와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그, 그랬었군요.”
신유현의 말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리고 엠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크리스를 밟았다는 말에 신유현을 안 좋게 생각하고 노려봤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신유현은 손사를 치며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콰아아앙!
그들이 서 있는 15층 빌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후두두둑!
5층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유리조각들과 콘크리트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웅!
5층 높이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린 것이다.
“쥐새끼들이 들어왔군.”
음울한 눈빛의 사내.
사내는 신유현과 마리아 일행을 섬뜩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마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반 로마노비치 볼프스키!”
“브, 블랙워치의 탑주가 어째서 이런 곳에…….”
엠마 또한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이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그리고 크리스는 말없이 이반을 주시하며 경계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이반은 블랙워치, 즉 검은 시계탑에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이반이 움직였다는 말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파천검가에서 온 줄 알았더니 화이트 워치 놈들이었군.”
이반은 싸늘한 눈으로 마리아 일행을 바라보며 영어로 말했다.
이반을 비롯한 블랙워치의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러시아인이지만 영어를 필수적으로 배웠다.
왜냐하면 마법의 대부분이 영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반은 이미 한참 전에 자신들이 잠복해 있는 건물 앞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반은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곧바로 주변을 탐색했다.
건물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자들 외에도 다른 침입자들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걸 확인하고 나서 블랙맘바의 대장, 이고르와 부대장인 스베틀라나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도 참 얕보였나 보군. 고작 네 명이서 나를 잡으러 왔다니.”
아무래도 이반은 신유현을 마리아 일행과 같은 화이트 워치 소속이라고 생각한 모양.
“네놈을 잡는데 네 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때 신유현이 앞으로 나서며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이전 삶에서 마리아와 크리스에게서 영어를 배워 두었으니까.
“뭐라고?”
자신의 앞을 막아선 신유현의 말에 이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동양인 청년.
“파천검가의 쥐새끼도 있었나.”
신유현의 정체를 알아챘지만 이반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유현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역시 동양인들은 멍청하군. 파천검가의 여자를 구하러 왔을 테지만 네놈 혼자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이미 이반은 주변 탐색을 했다.
그렇기에 마리아 일행과 신유현 외에 초인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나 혼자서 네 명을 제압했다. 네놈들을 제압하는 건 손 쉬운 일이지.”
비록 기습을 하긴 했었지만, 이유가 어쨌든 신유현 혼자 블랙워치 네 명을 쓰러트린 건 사실이었다.
“감히 우리를 이 녀석들이랑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반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들이 정예들인 블랙맘바의 멤버들이라고 해도 이반이나 이고르, 스베틀라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장 이반만 해도 블랙워치의 탑주이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우리들에게는 파천검가의 여자가 있다. 다른 부하들이 지키고 있지. 허튼 짓을 하면 죽이겠다.”
역시나 이반은 어머니를 인질로 삼으며 마리아 일행과 신유현에게 제약을 걸려고 했다.
“그런…….”
그 때문에 마리아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블랙워치의 시계탑에만 있던 이반을 사로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인질을 방패로 삼고 있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아니,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순순히 투항해라. 그러면 남자는 고통 없이 죽이고, 여자는 목숨만큼은 살려 주마.”
“큭.”
“히익!
이반의 말에 마리아는 이를 악물었고, 엠마는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이반의 말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자신과 엠마를 블랙워치의 노예로 삼겠다는 소리였다.
블랙워치의 노예가 된 여성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흑마법을 이용한 갖가지 인체 실험과 약물 실험으로 폐인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면 무릎을 꿇어라.”
이반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신유현과 크리스를 바라봤다.
“알겠다.”
결국 신유현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인질로 잡혀 있는 이상 이반의 말대로 허튼 짓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신유현이 무릎을 구부리자 이반은
“그래야지. 쓰레기 같은 동양인 놈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지.”
이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순간,
콰앙!
신유현이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쏘아지듯 이반을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신유현이 무릎을 꿇은 이유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신유현은 이반이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텔레파시로 한 가지 메시지를 받았었다.
[어머니를 구출했다.]
세븐 아크스 중 하나, 탐랑성의 폭식자이자 시간을 달리는 사냥개, 티르달로부터.
그렇게 신유현은 엄청난 속도로 이반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