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01화
크리스 레이필드.
이전 삶에서 마리아를 따르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특히 크리스는 같은 화이트 워치 소속으로 마리아의 호위를 맡고 있었으며 든든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지.’
크리스는 마리아뿐만이 아니라 신유현이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던 존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나 제어법을 마리아에게서 배웠다면, 실전 훈련은 크리스에게서 배웠다.
신유현에게 있어서 크리스는 피가 이어진 가문의 형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게티아들의 협박을 버티지 못했지만.’
신유현은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게티아들은 강대한 힘을 가졌을 뿐만이 아니라 교활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게티아들은 크리스와 접촉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크리스가 마리아를 배신을 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설마 게티아 놈들에게 이용당할 줄은…….’
크리스가 마리아를 배신한 이유는 결코 사리사욕이나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게티아들은 크리스에게 생존자들을 몰살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해 오고 있었다.
즉, 그 시점에서 이미 게티아들은 마리아가 이끄는 생존자 그룹이 어디에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게티아들은 크리스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마리아를 배신하면 생존자들을 살려 주겠다고.
마리아를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수백 명이 넘는 생존자 그룹을 몰살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상황.
아마 크리스는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크리스에게 있어 마리아는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마리아를 배신하기 전 크리스의 몰골은 해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뼈만 앙상하게 남았었다.
게티아들에게 도망치는 생활이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해도 뼈만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크리스는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기로 각오했다.
마리아를 배신하고 생존자들의 목숨을 구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게티아들은 그런 크리스를 비웃었다.
‘빌어먹을 게티아 놈들.’
이전 삶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마리아를 배신한 크리스 앞에서 게티아 놈들이 생존자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크리스가 어느 쪽을 선택할 건지 내기를 한 게티아들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크리스의 고뇌는 그저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게티아들의 만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티아들은 절망하고 있는 크리스를 비웃으며 생존자들을 절반만 죽이고 떠났다.
덕분에 마리아와 신유현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배신자인 크리스까지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크리스를 비난했다.
너 때문에 자신들의 가족이 죽었다고 하면서.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크리스는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정의와 신념을 가진 사내였다.
그래서 마리아를 도와 많은 사람을 구해 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크리스는 자신 때문에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게티아들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중에는 크리스의 손을 꼭 붙잡고 자신들을 지켜 줘서 고맙다고 한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켜 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멘탈이 붕괴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결국 크리스는 분노한 나머지 생존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걸 신유현과 마리아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 또한 크리스가 게티아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을 비롯해 각자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탓에 이성을 잃고 분노하고 있는 생존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마리아와 신유현은 허무하게 크리스를 잃은 것이다.
그 때문에 크리스를 원망했다.
자신들에게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으니까.
“뭐야? 넌 누구야?”
순간 한참 신나게 크리스를 짓밟고 있던 검은 후드 코트를 입은 사내들 중 한 명이 신유현을 보고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를 함께 짓밟고 있었기에 동료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으니 말이다.
정체를 들킨 신유현은 말없이 사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우웅!
그러자 사내가 상황을 파악도 하기 전에 후드 코트가 먼저 반응했다.
사내가 입고 있는 후드 코트에서 반투명한 막이 생겨난 것이다.
후드 코트의 자동 방어 마법이었다.
‘중급형 코트인가?’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혀를 찼다.
설마 자신의 공격에 코트가 자동 방어 마법을 발동할 줄이야.
그리고 그 말은 곧 눈앞에 있는 사내들이 속해 있는 조직의 자금이나 기술력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중급형 코트의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니까.
퍼억!
하지만 신유현의 주먹은 후드 코트의 배리어 마법을 꿰뚫으며 명치에 꽂혀 들어갔다.
상대의 B 코트가 아무리 등급이 높다고 해도 이제 6성의 경지 올라 있는 신유현의 일격을 막을 수 없었다.
“꾸웩!”
그 때문에 사내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자신이 낮에 먹은 음식물을 확인해야 했다.
“뭐, 뭐야?”
뒤늦게 침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머지 네 명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신유현은 나머지 네 명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한 사내가 반사적으로 신유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타닥!
하지만 신유현은 왼손을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상대의 주먹을 바깥으로 쳐 냈다.
그리고 빠르게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오른쪽 팔꿈치로 턱을 올려쳤다.
퍼억!
“끄윽!”
이윽고 사내의 턱이 치켜 올라가자, 신유현은 곧바로 왼손으로 명치에 장타를 날렸다.
“끄어억!”
장타를 맞은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수 미터 이상 나뒹굴었다.
아무리 자동 발동이 가능한 B 코트를 장비하고 있다고 해도 품속을 파고 들어서 초근접전을 벌이면 의미가 없었다.
B 코트의 방어막은 시전자의 몸에서 약 10cm에서 20c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발생한다.
그 때문에 그 간격까지 조용히 접근해서 공격하면 방어마법을 자동으로 발동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자식이!”
그렇게 신유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명의 사내를 날려 버리자 나머지 세 명은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치지직!
이윽고 그들의 손앞에서 생성되기 시작하는 칠흑의 마력.
3클래스 흑마법인 다크 불렛이었다.
콰직!
“악! 뭐, 뭐야?”
그때 세 명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잘도 날 밟아 댔구나.”
사내들에게 밟히고 있던 크리스가 손을 뻗어서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신체 강화 마법인가?’
그 모습을 신유현은 잠깐 흥미롭게 바라봤다.
동양에 강체술이라는 신체 강화 무술이 있는 것처럼, 서양에는 무속성인 신체 강화 마법이 존재했다.
실제로 크리스는 사내들에게 밟히면서 신체 강화 마법으로 방어력을 높인 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유현 덕분에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한 명은 크리스가 저지했지만, 나머지 두 명은 신유현을 향해 다크 불렛을 날렸다.
근거리에서 날아드는 열 발에 가까운 검은 탄환들은 흡사 샷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쾅!
“뭣?!”
“뭐, 뭐야, 저건?”
신유현을 향해 다크 불렛을 날린 사내들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유현 앞에 하얀 뼈로 이루어진 방패가 나타나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불사왕의 방어 마법인 본 실드였다.
“젠장!”
“어디서 이런 녀석이!”
사내 둘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근거리에서 기습적으로 사용한 다크 불렛을 한 순간에 막아 내는 것을 보고 신유현이 범상치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흑마법사였다.
근접전 보다는 중거리에 특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쿵.
신유현은 지면을 가볍게 박찼다.
파천신법(破天迅法),
두 번째 걸음, 전광석화(電光石火).
파천신법을 펼친 신유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들을 따라잡았다.
“뭐,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사내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뒤로 물러날 때 흑마법을 사용해서 이동 속도를 높였었다.
발에서 칠흑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자신들을 따라잡을 줄이야!
그리고 그들을 따라잡은 신유현은 허리에 차고 있던 레바테인을 뽑았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스아아악!
허공에 검은 화염의 궤적을 남기며 휘둘러지는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
우우웅!
그 순간 사내들이 입고 있는 후드 코트에서 방어 마법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의 일격은 사내들의 방어마법을 강하게 후려쳤다.
쾅! 콰가가가각!
레바테인은 사내 두 명의 방어막을 후려침과 동시에 찢어발기며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크헉!”
“아악!”
그 탓에 사내 두 명은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날았다.
그래도 방어막 덕분에 참살당하지 않고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
신유현은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신유현에게 공격을 받은 사내들은 전투불능 상태로 기절했다.
남은 건, 놈들을 붙잡아서 심문을 하면 될 뿐.
그리고 심문을 할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럼.’
신유현은 크리스 쪽을 바라봤다.
신유현이 두 명을 처리하는 사이 크리스도 남은 한 명에게 마무리를 가하고 있었다.
“쿨럭.”
털썩.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 또한 크리스의 마법에 피를 토하며 자리에 쓰러졌다.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
신유현과 크리스의 시선이 서로 맞부딪쳤다.
“블랙워치 놈들은 아닌 것 같군. 넌 누구냐? 왜 날 공격한 거지?”
가장 먼저 크리스가 유창한 한국어로 신유현에게 입을 열었다.
‘한국어를 벌써 할 줄 아네?’
이전 삶에서 크리스가 한국어를 예전에 배웠다는 말을 듣긴 했었지만, 10년 전인 현재에도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블랙워치라. 이놈들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네.’
신유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한번 노려봤다.
어떤 놈들이 어머니를 납치했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설마 블랙워치였을 줄은 몰랐다.
블랙워치는 철화단의 수장인 오르카를 심문한 끝에 겨우 얻어낸 정보였다.
잿빛 교단과 연관이 있는 조직이라고.
그 후 블랙워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설마 놈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나는 파천검가의 현무전 전주, 신유현이다. 너는?”
일단 신유현은 크리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화이트 워치, 크리스 레이필드.”
그리고 크리스 또한 짤막하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댔다.
‘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전 삶에서 크리스와 친하게 지냈었기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게티아들이 침공을 해오기 전, 유럽의 여러 마탑 중 하나인 하얀 시계탑, 화이트 워치 소속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왜 날 공격했던 거지?”
하지만 크리스는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공격? 내가 언제 공격을…… 아.”
크리스의 경계가 가득한 눈빛에 의아해 하던 신유현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블랙워치 패거리들과 함께 크리스를 밟아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신유현은 크리스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번쩍!
갑작스럽게 신유현과 크리스가 있는 머리 위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