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94화
“어째서 일이 이렇게…….”
남두그룹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남현철은 회장실 의자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파천검가에서 남민혁이 신유현에게 암살자들을 보냈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남민혁이 파천검가의 직계를 노린다는 말인가?
대체 왜?
그런데,
“설마 진짜였을 줄이야.”
남현철은 눈앞이 캄캄했다.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이 직접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남민혁이 잿빛 교단과 한패라고.
그뿐만이 아니라 기다렸다는 듯이 남연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남민혁이 자신을 노려왔다고 말이다.
그와 관련된 증거들로 남두그룹에서 남민혁이 저질러 왔던 비리와 횡령, 그리고 잿빛 교단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장부까지 보내왔다.
‘어째서 이런 일을…….’
남현철도 남민혁이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일을 벌이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저 자신의 손자를 믿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실제로 남민혁은 남두그룹 내에서 평판이 좋았고 유능했다.
그리고 만약 남민혁이 경력에 흠이 될 만한 일을 했다고 해도 무마해 줄 생각이었다.
그 일로 인해 무언가 교훈을 배운다면 남민혁의 인생에서, 그리고 남두그룹의 후계자로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남민혁은 선을 크게 넘었다.
남현철이 애지중지하는 손녀인 남연아와 파천검가의 직계 자제인 신유현을 암살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세계적으로 위험한 잿빛 교단과 내통을 하고 있었다니?
“대체 왜…….”
남현철은 도무지 남민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현철은 자신의 모든 걸 남민혁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잿빛 교단과 손을 잡고 남연아마저 노렸단 말인가?
남민혁이 벌인 일 때문에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던 남현철은 회장실 의자에 앉아 조금씩 머릿속을 정리하자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손자라고 믿고 있었던 놈이 뒤통수를 아주 호되게 후려쳤으니까.
“어리석은 놈 같으니…….”
남현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남민혁이 저지른 죄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할 터.
똑똑.
그때 남현철이 있는 회장실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누구냐?”
“비서실장 최현식입니다.”
“들어와라.”
끼이익.
남현철의 말에 남두그룹의 비서실장인 최현식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현식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현철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남민혁 실장이 잡혀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파천검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최현식은 짤막하게 보고를 하며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이 남두그룹 본사 건물에 찾아왔다고 알렸다.
현재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올 것이 왔군.”
최현식 비서실장의 보고에 남현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민혁에 대한 일로 파천검가와 회담을 해야 했으니까.
* * *
수 일 후.
남두그룹과 파천검가, 그리고 신유현은 정신없이 바빴다.
남민혁이 잿빛 교단의 게티아 숭배자이고 배신을 저지른 일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릉을 탈환한 뒤처리 일도 겹쳐 있었기 때문에 더 바빴다.
‘그래도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지.’
신유현은 현무전 집무실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며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남민혁의 배신 덕분에 남두그룹 회장인 남현철은 신유현과 파천검가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연아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 신유현을 남민혁이 암살하려 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남민혁을 조사한 결과, 남두그룹에서 온갖 스파이 행위를 한 사실이 판명되었다.
놀랍게도 잿빛 교단의 말단 조직인 철화단이 파천검가를 습격했을 때 남민혁이 편의를 봐준 사실까지 드러난 것이다.
철화단이 대한민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남민혁 때문이었던 것.
그 때문에 파천검가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철화단의 습격 때문에 파천검가가 입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으니까.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남현철은 파천검가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득을 많이 보게 되었지만.’
강릉을 탈환하고 난 후, 남두그룹의 지원을 받아 자원채굴을 하려고 했었다.
채굴, 가공, 제작, 판매 등등.
강릉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들로 할 수 있는 모든 과정과 공정을 남두그룹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에 괘 많은 비율을 가져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남두그룹에서 투자하는 비용이 컸으니까.
하지만 남민혁 사건으로 남두그룹이 가져갈 수 있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사실상 이번 강릉 지역을 개발하는 것으로 남두그룹이 얻는 순이익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투자비용을 겨우 건질 수 있을 정도였다.
남두그룹에서 이익을 포기하고 파천검가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남현철 회장도 골치가 아프겠군.’
남민혁 사건은 굉장히 이슈가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알려진다면 남두그룹은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터.
그 때문에 남현철 회장은 거래를 제안했다.
남민혁과 관련된 사건은 묻어 달라고.
그래서 강릉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남두그룹에서 현무전을 중심으로 파천검가에 투자하기로 했다.
남두그룹에서 남민혁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나름대로 진 것이다.
물론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천검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나중에 큰 이일을 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으니까.
파천검가는 세계최초로 마수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탈환했다.
그 말은 즉, 앞으로도 마수들이 점령한 다른 지역들을 탈환할 수 있다는 소리.
그리고 마수들이 점령한 지역에는 희귀한 광물과 영약들이 잠들어 있었다.
강릉에서는 이익을 보지 못해도, 다른 지역에서는 비율을 정상적으로 조율해서 이익을 볼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남민혁과 김이신은 지금쯤이면 끝났겠군.’
남민혁과 김이신은 둘 다 가문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하고 가문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남현철 회장과 육합창가의 가주인 창왕, 김명환의 체면을 봐서 사형을 시키진 않았다.
다만, 초인으로서는 죽음보다 더한 처벌을 내렸다.
과거 정태성 일행이 신유현에게 하려고 했던 짓을 한 것이다.
바로 단전 폐쇄였다.
전 세계 인류 중에서 약 90%가 넘어가는 초인들.
남민혁 또한 초인이었다.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호신용으로 배운 무술을 단련한 덕분에 3성 초인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이었다.
지금쯤이면 남민혁뿐만이 아니라 김이신도 단전이 폐쇄되고 헌터 협회의 감옥에 갇혀 있을 테니까.
그건 흑창대도 마찬가지.
육합창가의 가주인 김명환은 눈물을 머금고 가문의 정예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이신과 흑창대는 잿빛 교단과 연관이 있는 남민혁과 엮여 버렸으니까.
비록 초인으로서는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목숨만이라도 부지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했다.
‘문제는 잿빛 교단 놈들인가.’
신유현은 검지로 집무실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잿빛 교단은 철저하게 정보가 통제되어 있었다.
남두육성호에서 남민혁을 심문해봤지만 잿빛 교단의 간부급에 해당하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
당연히 헌터협회에서도 남민혁을 심문하고 있겠지만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남민혁이 주로 접선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루베르가 남민혁이 실토한 인물을 추적하고 있었다.
‘아직 잿빛 교단에 대해 알아낼 방법은 남아 있지.’
신유현은 씩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현재 카밀라를 비롯한 블러드 컴퍼니 용병대는 신유현이 붙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루베르와 그녀의 권속 뱀파이어들이 블러드 컴퍼니 용병대를 교육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블러드 컴퍼니 용병대가 마음에 든 모양.
비록 블러드 컴퍼니 용병대는 잿빛 교단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었으나 카밀라가 알고 있었다.
다만, 카밀라의 정신에 걸려 있는 금제 때문에 조심스럽게 조금씩 정보를 알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이라도 잿빛 교단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할 일이 정말 많네.’
신유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강릉을 탈환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되면 조금 쉰 다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련의 탑 공략도 해야 하고, 세븐 아크스들도 회수해야 하고.’
잿빛 교단에 있을 게티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초대 불사왕이 안배한 시련의 탑을 공략하고 전설급 장비들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븐 아크스들도 회수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좀 쉬자.’
신유현은 의자에 몸을 기댄 체 잠시 눈을 붙였다.
* * *
그날 저녁.
하루 일과를 끝낸 신유현은 지하 수련장으로 내려갔다.
시련의 탑 3층을 공략하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때 신유현은 마침 현무전 로비에 들어오고 있는 한 무리들과 마주쳤다.
연무장에서 오늘 하루 수련을 끝마치고 들어오는 현무전 소속 현무 2검대 대원들이었다.
2검대를 이끄는 대장은 다름 아닌 이대영이었다.
이대영은 신유현을 보더니 반색한 표정으로 2검대를 대표해서 경례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전주님. 이 시간에 어디 나가십니까?”
“지하 수련장에 일이 있어서.”
“이 시간에 수련을 하러 가시는 겁니까?”
신유현의 대답에 이대영은 물론 현무전 2검대 대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하는 시간에 수련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래 많이 바쁘셨을 텐데 밤늦게까지 수련까지 하고 계셨다니.”
이대영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영처럼 현무검대를 이끌고 있는 간부급 초인들은 알고 있었다.
최근 강릉 탈환과 남민혁과 관련된 사건 때문에 신유현이 정신없이 바빴다는 사실을.
그런데 설마 그런 와중에 밤늦게까지 개인 수련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대영은 가슴에 불이 붙었다.
“얘들아 오늘은 야근이다!”
“와, 와아…….”
자신들의 대장의 말에 2검대 대원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영은 2번대 대원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하드코어한 수련을 해 왔다.
그래서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복귀했건만 다시 훈련을 나가야 한다니.
‘아, 집에 가고 싶다.’
2건대 대원들은 한결 같은 표정으로 이대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이대영은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주가 수련을 하는데 자신들이 쉬고 있을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 전주님 수련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오늘은 야근 수련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이대영은 신유현을 향해 다시 경례를 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2검대 대원들에게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가자!”
“와…….”
이대영의 말에 2검대 대원들은 죽어가는 표정으로 대답하며 뒤를 따라 나갔다.
그렇게 2검대는 연무장으로 나가서 야근 수련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훈련에서 흘린 땀방울이 실전에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법이지.’
훈련을 해서 강해지면, 실전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굳이 이대영을 말리지 않았다.
‘그럼 나도 가 볼까?’
그리고 신유현은 지하 수련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련의 탑 3층을 공략하러 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