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93화
스르륵.
“아…….”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확인한 남민혁과 그 부하들은 감탄사를 흘렸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미녀들이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누구 앞이라고 서 있는 거지? 무릎을 꿇어라.”
“큭!”
남민혁과 부하들은 이를 악물며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들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펄럭.
그뿐만이 아니라 슈브의 머리에 산양 같은 검은 뿔이 솟아났고 허리 쪽에는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인간화를 풀고 악마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거기다 검은 공막 위에 빛나고 있는 금색 눈으로 남민혁과 부하들을 노려봤다.
“히, 히익!”
그 모습에 부하 중 절반 정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슈브의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공포감을 느꼈으니까.
“마스터를 어떻게 하겠다고?”
철썩!
그리고 루베르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혈접선을 채찍으로 변형시키더니 남두육성호의 갑판 위를 내려쳤다.
콰직!
그저 가볍게 내려쳤을 뿐인데 갑판 바닥이 부서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남민혁과 부하들은 흠칫 놀랐다.
신유현의 눈앞에 보고 열이 뻗쳐올라 죽이려고 했다가 교단에 데려가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했던 남민혁.
공명심에 눈에 멀어 신유현을 반쯤 때려잡을 생각이었던 부하들.
하지만 눈앞에서 차례차례 나타나는 신유현의 소환수들과 본능적으로 공포감이 느껴지는 여인들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들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럼 각오는 되었겠지?”
“가, 각오? 각오라니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냐고?”
남민혁의 말에 신유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새끼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거 아닌가?”
“책임?”
남민혁은 기가 막혔다.
그에게 있어 책임이라는 건 아랫놈들이나 지는 것이었으니까.
남두그룹에 있으면서 자신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을 때마다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부하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책임을 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보고 책임을 지라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남민혁은 신유현을 향해 소리쳤다.
“개소리는 집어치워!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는…….”
쌔액!
철썩!
“크아아악!”
신유현을 향해 소리치던 남민혁은 비명을 질렀다.
루베르의 블러드 휩, 선혈의 채찍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몸통에 가격당한 남민혁은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흘렸다.
“역시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내가 시간을 들여 조교시켜 주마.”
루베르는 아찔하지만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숨기지도 않네.’
이전에는 조교가 아니라 교육을 시켜 주겠다고 말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남민혁과 부하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눈앞에 있는 소환수들을 보고 자신들이 얼마나 크게 신유현을 오판하고 있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왕 바다에 나왔으니 이곳저곳 유람이라도 해 볼까. 아무래도 돌아가는데 긴 시간이 걸릴 것 같군.”
신유현은 남민혁과 부하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은 남민혁과 부하들에게는 악마와 다를 바 없었다.
철썩! 철썩!
그리고 신유현 옆에서 루베르는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내려쳤다.
잠시 후, 남두육성호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남두그룹의 후계자이자 장남인 전력기획팀 실장, 남민혁.
그는 중요한 피의자였다.
잿빛 교단과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카밀라에게서 얻어 낸 정보들을 바탕으로 남민혁을 떠보면서 교차 검증도 해야 했다.
둘의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게 네놈이 알고 있는 전부인가?”
“그, 그렇습니다.”
신유현은 자신의 눈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벌벌 떨고 있는 남민혁을 내려다봤다.
슈브와 루베르의 심문은 가혹했다.
절대로 신유현에게 존대를 하지 않을 것 같던 남민혁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몸을 떨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남민혁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전신은 채찍질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오른 손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오른 쪽 손등에 작은 흑색 마법진을 칼로 새긴 후, 저주 마법을 발동시켰기 때문이다.
저주 마법을 발동시키면 마법진이 뜨거워지면서 상대에게 고통을 준다.
마치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것처럼.
“제법 오랫동안 잿빛 교단과 연을 맺은 것 같은데 이 정도 밖에 모른다고?”
신유현은 싸늘한 눈으로 남민혁을 바라봤다.
이미 남민혁은 수년 전부터 잿빛 교단과 연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남민혁이 실토한 내용은 썩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남민혁이 주로 접선하던 인물과 잿빛 교단의 조직 구성도 뿐이었으니까.
“교, 교단 조직의 구성도도 이야기해 드렸지 않습니까?”
“교단의 구성도라고?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치나.”
신유현은 남민혁의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자 슈브가 우아하게 하얀 손을 들더니 엄지를 접었다.
치이익!
“끄아아악!”
그러자 갑자기 남민혁이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잡더니 발버둥하기 시작했다.
슈브가 새긴 마법진이 발동하면서 남민혁에게 고통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소리는 집어치워. 이런 뻔한 정보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고통 받기 싫으면 잿빛 교단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
신유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끄윽! 끄으으윽!”
하지만 남민혁은 신유현의 말을 제대로 들을 정신이 없었다.
슈브의 손가락이 계속해서 접히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엄지였고, 지금은 중지까지 손가락이 접혔다.
그리고 슈브의 손가락이 접혀질 때마다 남민혁은 오른 손등에서 격렬한 고통이 점차 커져감을 느꼈다.
잠시 후 신유현은 손을 들어올렸다.
뒤이어 접혀져 있던 손가락이 전부 다 펴졌다.
“허억허억!”
오른 손을 달구던 고통이 사그라들자 남민혁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숨을 헐떡였다.
“남민혁. 다시 한번 말한다. 네놈이 알고 있는 교단에 대한 정보를 말해라.”
신유현은 싸늘한 눈으로 남민혁을 노려봤다.
남민혁이 고통을 받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남연아와 자신의 목숨을 노렸으니까.
거기다 자신의 철천지원수인 게티아와 연결되어 있는 잿빛 교단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남민혁으로부터 정보를 끄집어내야 할 터.
잿빛 교단의 구성도 같은 쓸데없는 정보는 필요 없었다.
“조직 구성 정보는 뻔하지. 정보, 암살, 전투, 자금, 인사담당 등등.”
어느 조직이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서들.
당장 파천검가만 해도 정보부대와 전투부대가 존재했다.
거기에 가문의 자금을 운영하는 부서나, 인재들을 담당하는 인사부서 등등.
“내가 알고 싶은 건, 교단의 중추다. 교단 간부들이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그, 그건 나도 몰라! 나 같은 외부 협력자에게는 중요 정보 같은 건 주지 않는다고!”
“외부 협력자?”
발작하듯 소리치는 남민혁의 말에 신유현은 눈을 빛냈다.
“네놈은 게티아 숭배자가 아니었나?”
“그분을 네놈의 입에 담지 마라!”
신유현이 게티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남민혁은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게티아는 잿빛 교단 내에서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그 때문에 게티아라는 말도, 이름도 부르지 않고 오직 그분이라고 호칭했다.
그런데 신유현이 게티아라고 부르자 잿빛 교단의 신자인 남민혁이 거부감을 보인 것이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그때 남민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슈브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저주 마법을 발동시켰다.
치이익!
“끄아아아아악!”
그 때문에 남민혁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게티아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라.”
신유현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슈브에게 저주 마법을 해제시킨 것이다. 그 덕분에 고통이 사라진 남민혁은 잠시 숨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재, 잿빛 교단의 신입니다.”
“신이라고?”
남민혁의 말에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게티아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약탈자들이었고 침략자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신이라니.
“하긴 게티아 그놈들은 항상 자신들을 신이라고 했었지.”
신유현은 싸늘한 살기를 흘리며 웃어 보였다.
그 때문에 남민혁은 게티아를 비웃는 신유현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싸늘한 살기를 흘리는 신유현의 앞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진짜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잿빛 교단에 있는 게티아는 누구지? 그리고 어디에 있지?”
“그분이 누구인지 아는 존재는 간부들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하거나 찾아온다고 밖에는…….”
슈브에게 한바탕 당한 후였기에 남민혁은 고분고분해졌다.
하지만 게티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없는 듯했다.
잿빛 교단에서 게티아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정체에 대해서는 간부들 밖에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간부들에 대해 말해 봐라.”
“간부들에 대해서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각자 자신들의 세력을 이끌고 있으며 서로 간섭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직 간부들끼리만 얼굴을 보고 회의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독립된 세력이라고?”
남민혁의 말에 신유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교단은 단일 조직이 아닌 건가?”
“모, 모릅니다.”
남민혁은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거지? 방금 전에도 교단은 독립된 세력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신유현은 남민혁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아무래도 잿빛 교단은 각기 다른 여러 조직들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같은 교단 소속이라고 해도 각각의 조직원들은 다른 세력이나 집단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각 세력을 이끄는 수장인 간부들만 따로 모이는 듯했다.
그리고 분명 교단을 운영하기 위해 관리하는 인물이 존재할 터.
“그럼 네놈이 접선하고 있다는 인물에 대해 좀 더 들어볼까?”
신유현은 싸늘한 눈으로 남민혁을 내려다봤다.
남민혁이 잿빛 교단에 중추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고 해도, 잿빛 교단에 그와 접선을 하는 인물을 잡는다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그건…….”
신유현의 말에 남민혁은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잿빛 교단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말했다간 살해당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나?”
신유현은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남민혁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
아니, 굳이 있다고 한다면 단 둘뿐이었다.
지금 당장 신유현에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잿빛 교단의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할 것인지.
“뭐,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말이야.”
남두육성호가 인천항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크윽…….”
지금 당장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민혁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건 신유현의 블러프였다.
신유현은 남민혁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남현철 회장의 체면을 세워 줄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남민혁에게 가한 고문의 흔적들도 전부 치료해 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인천항으로 돌아가는 동안 슈브와 루베르의 심문에 남민혁의 정신이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신유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남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최대한 버텨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