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84화
“진짜 이기적인 놈들이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나 뻔뻔함보다 패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다는 건가?”
박우진의 극단적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생각에 신유현은 혀를 찼다.
박우진은 자신의 뻔뻔하고 이기적인 생각보다도 신유현에게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놈 탓이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우리 가문의 명예가 떨어지는 일은…….”
박우진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신유현을 노려봤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신유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박우진을 향해 다가가더니 냅다 턱을 차올렸다.
퍼억!
“컥!”
박우진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쓰러졌다.
대자로 드러누운 것이다.
하지만 신유현의 발길질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네놈들의 명예가 떨어진 건 네놈들이 한 짓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며 신유현은 박우진의 옆구리로 발로 찼다.
퍼억!
“크헉!”
옆구리를 차인 박우진은 지면을 몇 바퀴 굴렀다.
“네놈들은 명백히 조약을 위반했다.”
4대 명가는 자신들이 보호 중이거나 활동하는 도시와 지역에 간섭하지 않기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서로 견제를 하기 위해 스파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합창가에서 스파이 짓을 하는 걸 신유현에게 딱 걸려 버리고 만 것이다.
걸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걸려 버린 데다가 증거까지 넘어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진은 육합창가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나게 한 신유현을 원망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네놈들은 아직 어린 소녀에게 저주도 걸었지.”
육합창가의 만행은 스파이 짓뿐만이 아니었다. 황혼의 대자장인 김상철의 손녀에게 저주를 건 것이다.
스파이 짓이야 다른 가문도 비밀리에 하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김상철 일가에게 저지른 짓은 선을 넘었다.
그것도 스파이 짓을 하기 위해서 김상철 일가를 겁박했으며 어린 소녀에게 저주까지 걸었으니까.
“네놈들이 한 짓은 생각도 하지 않는 거냐? 이 쓰레기 놈아.”
신유현은 박우진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끄허억!”
신유현의 일격에 박우진은 속에 든 걸 게워 내며 배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육합창가는 그래도 명색이 4대 무술 가문 중 하나.
그런 명문 가문이 어린 소녀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육합창가는 상호불가침 조약 위반과 어린 소녀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사실을 발뺌할 수 없었다.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신유현이 증거를 손에 넣었으니까.
그 때문에 철혈의 검왕이자 파천검가의 가주, 신성일에게 탈탈 털렸다.
그로 인해 육합창가의 명예와 체면은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간 것이다.
“하긴, 네놈들이 한 짓을 생각했다면 날 처리하겠다고 오진 않았겠지만.”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박우진을 내려다봤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육합창가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된 계기를 제공한 신유현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암살하러 온 것일 터.
“그럼 각오는 하고 왔겠지?”
“가, 각오라니?”
신유현의 말에 박우진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날 죽이러 왔으니 당연히 죽을 각오는 하고 왔을 거 아니야.”
“……!”
순간 박우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해 50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쳐들어왔다.
당연히 죽을 각오 따위는 하지 않았다. 비록 고전을 할지언정 자신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까.
“뭐냐? 그 표정은?”
짝!
돌연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박우진의 모습에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찌검을 날렸다.
“설마 죽을 각오도 없이 온 거냐?”
짝! 짝!
“크, 크윽!”
신유현은 박우진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우진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부어올랐다.
“뭐, 됐어. 관련된 놈들 전부 족칠 생각이니까.”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육합차가의 흑창대원들 30명과 중동에서 온 듯한 20명의 용병부대가 있었다.
이들 뒤에는 육합창가의 간부들이 있을 터.
‘아버지에게 줄 선물로 딱이군.’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에 얻은 증거로 아버지는 육합창가를 탈탈 털어서 재미를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파천검가의 직계인 자신을 처리하겠다고 육합창가의 비밀 정예 부대가 찾아왔으니까.
그것도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마수들에게 빼앗긴 강릉을 되찾는 대업을 하고 있는 중에 말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육합창가는 초인사회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신유현이 강릉 탈환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더더욱.
꽈악!
“큭!”
“일단 자라.”
신유현은 박우진의 머리를 꽉 움켜쥔 후, 그대로 지면에 처박았다.
쾅!
쩌적!
박우진의 뒤통수가 바닥에 처박히면서 금이 갔다.
지면에 머리가 박힌 박우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그래도 명색이 5성급 초인이기에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유현은 박우진을 비롯한 흑창대 대원들을 살려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이놈들은 협박, 아니 교섭하는 데 유용하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육합창가가 숨기고 있는 비밀 정보들을 캐내는 데 도움이 될 테지.
‘그럼…….’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상황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흑창대와 블러드 컴퍼니 대원들을 제압하고 있는 슈브를 비롯한 보스급 소환수들과 스켈레톤 솔져들.
다만, 습격자들 중에서 유독 강해 보이는 인물들이 존재했다.
각 부대의 부대장들이었다.
특히 블러드 컴퍼니 용병대의 대장인 카밀라는 루베르와 일 대 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재밌네.”
루베르는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카밀라를 바라봤다.
붉은색 정장 슈트를 입고 자신과 비슷한 혈계 마법을 사용하는 건강미가 넘치는 미녀.
“마음에 들어.”
루베르의 붉은 눈동자가 뜨겁게 타올랐다.
설마 이런 변방 차원에서 혈계 마법을 사용하는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그 때문인지 루베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카밀라에게서 달콤한 혈향이 느껴졌으니까.
“내 것으로 만들어 줄게.”
“헛소리하지 마라!”
루베르의 말에 카밀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피로 이루어진 낫을 휘둘렀다.
깡!
하지만 루베르 또한 피로 이루어진 혈접선(血摺扇)으로 카밀라의 혈낫을 후려쳤다.
“큭!”
카밀라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양손으로 있는 힘껏 혈낫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루베르는 한 손에 든 작은 부채로 간단하게 공격을 튕겨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어때?”
순간 루베르의 앞쪽 지면에 붉은 핏빛 마법진이 그려졌다.
혈계 소환, 블러드 울프.
루베르 앞에 새겨진 마법진 속에서 붉은 털을 가진 늑대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워우---!
혈랑 두 마리는 길게 하울링을 하더니 카밀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카밀라는 혈낫을 빙글빙글 돌리며 혈랑들을 견제했다.
크르르르!
혈랑들은 이를 드러내며 카밀라의 옆을 맴돌았다.
번쩍!
그 순간 카밀라의 정면을 향해 붉은빛이 쏘아졌다.
6서클 혈마법, 블러드 레이!
카밀라가 혈랑들에게 신경이 뺏겨 있는 사이 루베르가 혈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슈아아아악!
붉은 열선이 모든 것을 불태우며 카밀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본 카밀라 또한 재빨리 혈계 마법을 발동시키며 혈낫을 방패로 변형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방에 피로 이루어진 방패를 두 개 더 생성해 냈다.
그 직후,
콰콰쾅!
블러드 레이가 카밀라를 덮치며 폭발했다. 붉은 폭염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크윽!”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 속에서 카밀라가 뛰쳐나왔다.
블러드 레이의 폭발 속에서 무사했던 모양.
루베르가 손속에 사정을 봐준 덕분이었다. 루베르의 목적은 카밀라를 죽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내 것으로 조교, 아니 교육을 해 주마.”
루베르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카밀라를 뜨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강하다.’
루베르의 태도는 둘째치고 몇 번 공수를 주고받으면서 카밀라는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붉은 드레스의 여인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확실히 자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혈계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
자신은 혈계 마법으로 다양한 무기들을 상황에 맞게 변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루베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해 피로 이루어진 소환수들을 불러내는가 하면 공격 마법까지 사용하는 게 아닌가?
즉, 공격 수단이 카밀라보다 많았다.
‘하지만 질 수 없어.’
카밀라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질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지게 된다면 지킬 수 없게 되니까.
지금까지 지켜 왔던 아이들을 말이다.
“임무는 반드시 완수한다!”
다시 몸을 일으킨 카밀라는 양손에 피로 이루어진 무기들을 생성하며 루베르와 혈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10년 전.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각각의 이슬람 세력들이 중동지역의 패권을 쥐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지하드, 성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고아들이 생겨났다.
그 전쟁에서 카밀라는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여동생을 잃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그리고 여동생은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인간들을 이단자라고 부르며 살해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살해당했다.
카밀라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맞서 싸웠으나 결국 힘이 다해 쓰러졌다.
“망할 애새끼 같으니.”
“나이도 어린 게 독하구나.”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10대 후반의 소녀를 노려봤다.
소녀의 손에 상당수의 동료들이 죽어 나갔으니까.
그 때문에 소녀, 카밀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 좀 보겠는데?”
“불신자들과 싸우는 영웅들인 우리들에게 성상납을 하게 되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은 성욕에 물든 눈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그들은 차도르, 부르카, 니캅을 쓰지 않는 세속주의 무슬림 여성들이나, 모든 비이슬람 여성들을 문란하고 퇴폐적인 치녀로 본다.
지하드 알 니카, 라는 사상 아래에서.
‘여기까지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짐승들을 바라보며 카밀라는 체념했다.
모든 힘을 전부 사용하였기에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짝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카밀라를 향해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이 손을 뻗으려는 찰나,
“인간이란 어리석은 생물이지.”
어디선가 공간을 울리며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냐!”
“감히 어떤 놈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경계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찰나에 방해를 받은 탓인지 그들은 예민한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때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 사이로 하얀 정장의 중년 신사가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아직 어린 카밀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 직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슬림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던 오러가 흘러나오는 시미터들이 중년 신사를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