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53화
‘예상보다 너무 많은데.’
이전 삶에서 레이드 던전의 공략 실패로 뛰쳐나온 마수의 숫자는 약 500마리 정도.
등급도 무려 5성인 마수들이었다.
500마리나 되는 5성급 마수들은 그야말로 대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5성급 마수가 나타났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마수들의 종류는? 언데드 계열인가?”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신유현의 물음에 최정훈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냥 감으로.”
신유현은 적당히 둘러댔다.
‘역시 전생과 같나.’
이전 삶에서 인베이전 게이트에서 나온 마수들은 5성 모노리스 던전의 마수들과 같은 언데드 계열로 추정되었다.
등급과 종류가 비슷하다보니 더더욱 알아차리는 게 늦어졌던 것이다.
서서히 닫혀 가고 있던 인베이전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다.
“상황은?”
“현재 주민 대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하지만 주거지가 많은 지역이라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최정훈은 말꼬리를 흐렸다.
칠성산 아래에는 아파트나 주택이 모여 있었다.
칠성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수백 마리 마수로부터 주민들을 지켜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문의 검사들은?”
“각 검전에서 움직일 수 있는 무사는 전부 투입할 예정이랍니다. 현재 출발 준비 중이고요. 가주님께서도 직접 출진 하신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신유현은 살짝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현재 가주 신성일을 비롯한 각 검전의 정예들은 가문에 남아 있었다.
보통 던전 공략을 하러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었기에 정예들이 가문에 없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좋아. 그럼 우리도 간다.”
“예? 저희도 말입니까?”
신유현의 말에 최정훈의 눈빛이 흔들렸다.
“현재 현무검대의 대원들로는 5성급 마수들을 상대하기 힘들 텐데요…….”
“알고 있어. 다른 검전에서도 정예들로만 마수들을 막으려고 하겠지.”
5성급 정도 되면 각 검전에서도 정예수준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었다.
최소 4성 상급 이상은 되어야 할 터.
하지만 현재 현무전의 대원들은 3성 상급 정도가 많으며 4성 최하급이나 하급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을 대피시킬 인원이 필요할 거야.”
“그건 그렇지요.”
신유현의 말에 최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왕좌왕하며 움직이는 것보다 누군가의 지시 하에 일사불란하게 대피하는 편이 더 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준비하겠습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따라오도록.”
“네? 전주님께서는…….”
“나는 먼저 가 있겠다.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지.”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서둘러야겠군요.”
“수고해.”
“네. 전주님도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최정훈이 집무실을 나가자 신유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 * *
칠성산 산자락 아래.
왜애애애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 경보 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민 여러분! 여기는 헌터 협회 던전 대책 안전 지휘소입니다! 긴급 던전 대피 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칠성산에서 인베이전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던전 스탬피드 현상이 예상되오니 주민 여러분들은 즉시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중단하시고 신속히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현재 칠성산에서……]
“이게 뭔 일이야?”
“던전 대피 경보라고?”
“아니, 무슨 도시 안에서 던전 스탬피드 현상이…….”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 방송이 울려 퍼지자 대부분의 주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당황했다.
지금까지 헌터들이나 각 가문의 초인들이 던전들을 제때 공략을 완료했기 때문에 스탬피드 현상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인구가 많은 도시라면 더더욱.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던전 스탬피드 현상이 발생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헌터들이나 무가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던전 공략에 실패한 건가?”
“그런데 인베이전 게이트라는 건 뭐지?”
주민 중 일부는 헌터들과 무술 가문들에게 불만을 내비쳤고, 일부는 경보 방송에서 말한 인베이전 게이트가 뭔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칠성산에서 붉은 눈을 빛내며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마수들이다!”
“도망쳐!”
던전 대피 경보를 방송했음에도 미적거리던 주민들.
하지만 칠성산을 타고 내려오는 마수들의 모습을 보게 되자 다급해졌다.
불만이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 하니 말이다.
콰콰콰콰쾅!
칠성산을 타고 내려온 수십 마리의 마수는 주변 건물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억!
“으아아아악!”
“사, 살려 줘!”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눈앞에 마수들이 나타나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5성 마수, 카오스 구울>
인베이전 게이트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마수는 카오스 구울이었다.
약 1미터 80센티에 달하는 장신에 등까지 내려오는 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
그리고 뾰족한 귀를 가진 죽음의 존재들.
살아 있는 시체인 카오스 구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주민들을 덮쳤다.
쌔애액!
“헉! 아, 안 돼!”
도망치던 주민 중 한 남성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든 마수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등이나 어깨에 하늘거리며 솟아나 있는 징그러운 촉수들이었다.
카오스 구울의 등에도 8개의 촉수가 솟아나 흔들거렸다.
그리고 그중 두 개가 화살처럼 도망가던 남성의 등을 노렸던 것이다.
푸푹!
“커허억!”
쭈우욱!
등에 꽂혀 들어간 촉수 두 개는 이내 남성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남성 또한 초인이기는 했지만 헌터나 무술 가문에 소속된 무사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흐어어어어.”
카오스 구울의 촉수에 등이 꽂힌 남성은 서서히 말라 비틀어져 갔다.
키야아아악!
남성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한 카오스 구울은 만족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털썩.
미라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성은 생기를 잃은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두 번 다시 움직이는 일은 없을 테지.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은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마수들은 혼돈과 파괴를 사방에 뿌리며 인간들을 습격했다.
* * *
흐어어어어!
칠성산에서 좀 떨어진 한 주거지역의 골목길.
카오스 구울 한 마리가 골목길 사이의 건물 벽을 박차며 지그재그로 달려 나간다.
“히익!”
그 앞에는 카오스 구울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도망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카오스 구울의 움직임이 좀 더 빨랐다.
키야아아악!
카오스 구울이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내지르려는 순간,
퍼억!
사람들 사이에서 은빛 건틀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건틀렛은 카오스 구울의 손을 안쪽에서 바깥으로 쳐냈다.
그러자 카오스 구울의 팔이 활짝 벌려졌다.
키익?
갑작스러운 상황에 카오스 구울은 의아한 소리를 냈다.
그 순간,
철컥!
은빛 건틀렛의 팔등 부분이 앞뒤로 움직이면서 무언가 장전시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은빛 건틀렛이 무방비 상태로 활짝 벌려져 있던 카오스 구울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콰앙!
카오스 구울의 얼굴에 은빛 건틀렛이 꽂혀 들어감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카오스 구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머리통이 터져 나가면서 뒤로 수십 미터 이상 나가 떨어졌다.
“후.”
눈 깜짝할 사이에 카오스 구울 한 마리를 처리한 인물은 숨을 길게 내쉰 후 옆머리를 쓸어 올렸다.
놀랍게도 은빛 건틀렛의 주인은 여성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색 생머리와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한국형 미녀였다.
그리고 양손에는 카트리지 디바이스시스템을 장착한 은빛 건틀렛과 검은색 배리어 코트로 무장 중이었다.
“지영 언니, 멋져!”
은빛 건틀렛의 미녀, 이지영의 등 뒤로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고생 한 명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지현아.”
여고생, 이지현의 말에 이지영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지영과 이지현.
둘은 자매였다.
그것도 무려 대한민국 4대 명가 중 하나인 나선권(螺線拳) 이가(家)의 권왕 이서준의 손녀들이었다.
‘이곳에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이지영은 자신의 무기인 건틀렛을 내려다봤다.
정식 명칭은 카트리지식 프로토타입 디바이스 시스템 건틀렛.
남두그룹의 천재 아티팩트 개발자인 남연아가 심심풀이로 제작한 시험용 무기였다.
이지영은 남연아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나선권 가문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아티팩트 장비들은 남두그룹을 통해 구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남연아가 이지영에게 카트리지 건틀렛의 사용기를 의뢰한 것이다.
권법가인 이지영에게 있어 카트리지 건틀렛은 상당히 매력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직 프로토타입인데가 카트리지 시스템은 처음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제어가 어려웠던 것이다.
나선권 가문 내에서도 기력제어가 뛰어난 이지영이 아니고서는 사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지영은 카트리지 건틀렛이 마음에 들었다.
제어가 어렵긴 했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관리도 그녀가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지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유감스럽게도 남연아는 바쁜 일정 때문에 관리까지 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카트리지 건틀렛을 관리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얼마 전 남연아로부터 수원에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있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래서 오늘 수원에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수원에 오자마자 던전 대피 경보가 울려 퍼지면서 마수들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이지영과 이지현은 주민들의 대피를 도와주고 있는 중이었다.
4대 명가 중 하나인 나선권 가문의 일원으로서 마수들의 위험에 노출된 주민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다들 다시 움직일 수 있나요?”
이지영은 사람들을 돌아봤다.
칠성산에서 마수들이 내려오는 난리 통에 그녀가 구한 일반인들로 대부분 노인들과 아이들이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어요”
열 명 남짓한 생존자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이지영과 이지현 덕분에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럼 어서 가죠.”
이지영은 생존자 그룹을 이끌고 움직였다.
현재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헌터 협회에서 지원 나온 헌터들과 수원시에 있는 파천검가의 초인들이 마수들을 막고 있는 상황.
하지만 칠성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마수들을 전부 막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인력이 부족한데다가 마수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지영과 이지현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대피소에 도착할 테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지현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격려했다.
그렇게 일행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쿵! 쿵! 쿵!
콰콰콰콰콰쾅!
지면이 크게 울리면서 골목길에 있는 주택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헉!”
“마, 말도 안 돼.”
생존자들은 물론 이지영조차 놀란 눈으로 무너져 내린 주택 건물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마수를 바라봤다.
<5성 보스, 스켈레톤 드래곤>
“5성 보스라고?”
그곳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뼈로 이루어진 드래곤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