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44화
한눈에 봐도 소녀의 상태는 희귀병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버지?”
신유현 일행이 방에 들어서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어린 소녀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김상철을 바라봤다.
“와서 인사해라. 파천검가에서 오신 분들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김상철의 말에 부부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파천검가의 분들이 여긴 무슨 일로……?”
김상철의 아들, 김영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수연이를 보러 왔지.”
“예?”
김영진은 무슨 소리라는 표정으로 김상철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어르신을 찾아뵙다가 손녀분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저희 가문에는 회복 능력을 가진 초인도 있거든요.”
“저, 정말이십니까?”
신유현의 말에 김영진은 반색했다.
“제발 저희 딸 좀 살려 주십시오!”
“부, 부탁드려요.”
김상철의 아들 부부는 신유현에게 매달렸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알 수도 없는 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으며 쇠약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차, 대한민국 4대 가문 중 하나인 파천검가의 초인들이 도와주겠다고 온 것이다.
그들로서는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파천검가라면 자신의 딸을 살려 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일단 상태부터 좀 보겠습니다.”
신유현은 아들 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으며,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 정도로 몸에 힘이 없어 보였다.
“오빠는 누구?”
신유현이 다가가자 김상철의 손녀, 수연이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겨우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우리 수연이 치료하려고 왔지.”
“수연이 병 나을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거짓말…….”
아직 열 살도 되지 못한 어린 소녀가 희망이라고는 없는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보며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의사와 약사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전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들을 수연은 전부 지켜봤다.
그래서 어린 나이였지만 깨달았다.
자신의 병은 나을 수 없다는 걸.
“오빠를 믿어 보렴.”
신유현은 가만히 수연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차크라 연공법을 운용하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오자 수연이는 살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신유현 덕분에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서 몸이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파리한 얼굴에 혈색이 조금이지만 돌아왔다.
‘역시.’
가까이에서 수연을 바라본 신유현은 확신했다.
희귀병이 아니라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마나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기운이라거나 기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지금 수연의 몸에는 극단적으로 마나가 부족했다.
마치 급격하게 마나를 소모한 것처럼.
그리고 이런 증상이 생기는 이유는…….
“증상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예?”
신유현의 말에 김영진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건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대체 우리 아이는 무슨 병인가요?”
수연의 어머니인 이서영은 절박한 심정으로 말했다.
“병이 아닙니다.”
“네?”
“저주입니다.”
신유현은 이서영뿐만이 아니라 김영진과 김상철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 저주?”
“저주라니 그게 대체?”
그러자 김영진과 김상철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어린 아이가 저주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아이는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었겠죠.”
신유현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어린 소녀를 내려다봤다.
첫눈에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사령안으로 수연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었으니까.
‘전투가 아니라도 다른 방식으로 사령안을 쓸 수 있지.’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힐끔 최진성을 바라봤다.
최진성의 숨겨진 고유 특성, 마탄의 사수도 사령안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사령안으로 김상철의 손녀를 확인한다면 원인불명의 희귀병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사령안의 정보창에 김수연이 저주 상태라고 떴으니까.
“저주라니 내 딸이 저주라니. 대체 누가…….”
“아, 이제 어떻게 해야…….”
저주라는 소리에 김상철 일가족은 패닉에 빠졌다.
단지 희귀병인 줄로만 알았다가 저주라는 말에 정신이 멍해진 것이다.
“정신 차리세요.”
신유현은 김수연이 자고 있었기 때문에 마나를 이용해 김상철 일가족만 들을 수 있게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말에 김상철 일가족은 다시 정신 줄을 붙잡았다.
“여러분들이 어떤 심정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생각하셔야죠. 여러분들이 정신을 놓으면 어떡합니까?”
“손님들 앞에서 못난 꼴을 보였구만.”
신유현의 말에 김상철과 아들 부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주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문제를 해결하면 되니까요.”
“그, 그 말은 그럼?”
김상철은 기대감이 깃든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이제 저주만 풀 수 있으면 손녀가 다시 건강해질 테니까.
하지만 신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저주를 풀 수는 없습니다.”
“아…….”
신유현의 말에 김상철 일가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주를 풀 수 없는 건가?”
“네. 애초에 저주는 장시간 지속되지 않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풀리게 되어 있죠.”
“풀리게 되어 있다고? 그, 그럼 우리 손녀는 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저주를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던 거죠. 저주술사를 찾아내야 멈출 수 있습니다.”
“그, 그런…….”
“대체 어떤 놈이 내 손녀에게 저주를 걸고 있단 말인가?”
“그것까진 저도…….”
신유현은 말꼬리를 흐렸다.
누군가가 김수연에게 저주를 걸어 마나를 소모시키고 있다는 사실까진 알아냈다.
아마 저주술사가 김수연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일 터.
그리고 지금은 저주를 걸고 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유현이 마나를 나누어 주자 김수연의 상태가 상당히 나아졌기 때문이다.
“증상이 가장 심해지는 때가 있습니까?”
“아…… 네. 유독 밤 12시가 되면 애가 많이 괴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유현의 물음에 김영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때인가 보군요.”
신유현은 직감했다.
그 시간에 김수연이 저주를 받고 있다고.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영진은 불안한 얼굴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저주를 받고 있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김상철과 아내인, 이서영도 마찬가지.
그런 그들에게 신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방법이 있으니. 디아야?”
“넹!”
신유현의 부름에 디아가 도도도 거리며 다가왔다.
“이 아이한테 축복 좀 걸어 줘.”
“맡겨 주세영!”
디아는 김수연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귀엽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당신의 소환수, 어둠의 성녀 디아가 3단계 고양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디아는 귀여운 고양이 흉내를 내며 춤을 췄다.
그러자 디아에게서 푸른빛이 나더니, 이내 김수연에게로 흘러들었다.
[어둠의 성녀 디아가 김수연에게 어둠의 축복을 내립니다.]
[김수연의 몸이 회복됩니다. 앞으로 하루 동안 저주로부터 보호합니다.]
“허.”
김상철 일가족은 놀란 표정으로 디아를 바라봤다.
뜬금없이 귀여운 고양이 춤을 추기 시작해서 의아함 반, 흐뭇함 반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푸른빛이 생겨나더니 김수연에게로 흡수되는데 아닌가?
“제가 처음 말했던 회복술사가 이 아이거든요.”
“네? 이 아이가요?”
신유현의 말에 김영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기 딸이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디아가 회복술사였다니!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디아의 푸른빛을 흡수한 후, 김수연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해졌으니까.
“이제 오늘 밤은 무사할 겁니다. 이 아이가 축복을 걸어 주었거든요. 몸도 꽤 회복 되었을 테고, 하루 동안 저주에서 보호를 해 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신유현의 말에 김영진 부부는 연신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상철 또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왔다.
‘어둠의 축복인 건 모르겠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김수연을 치유하고 보호를 해 준 축복은 흑마법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흑마법은 어둡고 불길한 이미지 때문에 꺼려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오직 신유현의 눈에만 보였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다.
“아직 문제가 끝난 건 아닙니다. 저주술사를 찾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음.”
신유현의 말에 김상철 일가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신유현이 한 일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디아가 걸어 준 저주 보호의 효과는 길어 봐야 하루 정도.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김수연이 고통 받고 있는 근본 원인인 저주술사를 찾아내지 못하면 해결을 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적이 있습니까?”
“모르겠네. 지금까지 살면서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네만.”
“저희도 잘…….”
김상철 일가족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말싸움을 한다거나 의견충돌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저주를 받을 만큼 악독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럼 손녀 분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무슨 일이라…….”
김상철 일가족은 생각에 잠겼다.
어린 김수연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모르겠네.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는데…….”
김상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습니까?”
신유현은 생각에 잠겼다.
김상철의 성격상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건 김영진 부부 내외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확실히 지금 이 시기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지.’
이전 삶에서도 딱히 큰일은 없었고, 후에 의정부 쪽으로 이사를 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 외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어쨌든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신유현은 끝까지 김상철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최진성의 전용 무기를 만들고, 앞으로 있을 게티아들과의 전쟁에서 김상철의 대장장이 실력이 필요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이전 삶에서 신유현은 김상철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이번 삶에서는 자신이 도와줄 차례였다.
쾅쾅쾅!
“영감! 김 영감 어딨어!”
“빨리 나와!”
그때 돌연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전 삶에서 자신을 도와주고 손을 내밀어주었던 김상철을 업신여기는 듯한 목소리.
그 소리에 신유현은 눈살을 팍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