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42화
다름 아닌 강릉이었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나.’
강릉에는 마수들의 둥지, 하이브가 존재한다.
그리고 하이브에서 기어 나오는 마수들 때문에 언젠가 강릉을 비롯한 점령 지역에서 스탬피드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이브 퀸이지.’
하이브 퀸.
하이브를 지배하는 마수들의 여왕.
퀸의 성장에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인류는 점령 지역을 감시하며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퀸이 완전 성장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숫자로 마수들이 하이브에서 생산될 테고, 그로 인해 점령 지역이 가득 차게 되며 뛰쳐나오게 될 것이다.
이전 삶에서 그랬으니까.
‘그때는 진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전 삶의 기억을 떠올린 신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 세계 각국의 약 30% 정도가 마수들에게 점령되어 있는 상황.
그런데 그곳에서 마수들이 뛰쳐나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인류가 살고 있는 도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인류는 마수들을 막는데 성공했다.
전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초인들이었고, 점령 지역에서 마수들이 출몰하는 건 시간을 두고 돌아가면서 일어났으니까.
‘다행히 퀸이 없는 하이브도 있었고 말이야.’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숨 돌릴 틈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리고 놈들이 나타났지.’
앞으로 약 수년 간.
점령 지역에서 뛰쳐나와 전 세계를 휩쓸던 마수들이 제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타났다.
다른 차원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들, 게티아들이 말이다.
‘아마 숭배자 놈들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겠지.’
전 세계의 초인들과 헌터들이 점령 지역에서 날뛰는 마수들을 진압하고 던전 게이트들을 공략하는 동안, 잿빛 교단의 숭배자들은 뒤에서 은밀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티아들을 이쪽 세계로 부르기 위해서.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현재 신유현의 목표는 최대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재들을 모으고 새로운 부서들과 건물들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두그룹의 회장, 남현철에게 투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강릉에는 희귀한 광물들이 존재하니까.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일단 한 달 안에 강릉을 정리해야 돼.’
강릉에 있는 하이브에도 퀸이 존재한다. 그리고 퀸이 완전 성장하기까지 남은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그 전에 강릉을 점령하고 있는 마수들을 정리하고 퀸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수의 마수들이 서울을 노리고 들이닥칠 테니까.
그 때문에 이전 삶에서 4대 가문을 비롯한 헌터 협회는 마수들을 막느라 큰 피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루베르도 얻었으니 슬슬 움직여도 되겠지.’
스켈레톤 솔져 군단의 수를 조금 더 보충하고, 현무전의 대원들을 전부 동원한다면 강릉 수복도 꿈은 아닐 터.
‘선행 투자금도 받아야 하고.’
신유현은 씩 미소를 지었다.
강릉 수복을 위해 움직이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신유현은 남두그룹의 회장 남현철과 약속을 하나 했다.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면 선행 투자를 받기로.
그래서 남현철로부터 연락이 오면 협상을 하러 갈 생각이었다.
‘일단 그전에 영감님을 만나러 가야겠군.’
이전 삶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황혼의 대장장이.
얼마 전 풍림화산 길드에서 영입한 최진성이 사용할 전용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아무 총이나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이야.’
최진성의 고유 특성은 마탄의 사수.
말 그대로 마탄을 사용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일반 총은 마탄을 버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마탄에도 견딜 수 있는 금속으로 총을 제작해야 했다.
‘영감님이라면 만들 수 있겠지.’
마탄에도 견딜 수 있는 금속을.
그리고 총의 제작은 남연아에게 의뢰할 생각이었다.
아티팩트 연구의 천재인 남연아라면 충분히 총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황혼의 대장장이까지 있지 않은가?
둘이라면 최진성에게 어울리는 전용 총을 만들 수 있을 터.
소총을 만들지, 아니면 저격총을 만들지는 최진성과 또 의논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조만간 찾아가야지.’
그렇게 신유현은 자신의 계획을 조금씩 진행시켜 나가고 있었다.
* * *
전략기획실장실.
개인 사무실에 한 청년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성가시군.’
청년, 남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꾸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 믿을 수 없는 소식을 하나 들었다.
‘놈에게 투자를 하겠다고?’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남두그룹의 회장인 남현철이 파천검가의 신유현에게 스폰서가 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진작에 놈을 쳐 냈어야 했는데…….’
남민혁은 이를 악물었다.
남연아를 암살하기 위해 보냈던 암살자들의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파천검가의 신유현이라는 놈이 남연아를 위험한 던전에서 구해서 귀환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깨달았다.
신유현이 남연아의 암살을 방해했다고.
남연아가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돌아온 후, 혹시 몰라 자중하며 조용히 지냈다. 신유현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으면서.
하지만 그 후 일어나는 일들은 남민혁의 속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도 진짜 미쳤지.’
손녀를 구해 주었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가 있는 블랙 카드를 선물이라고 주지를 않나, 최근에는 신유현의 스폰서가 되겠다니.
그뿐인가?
경매 파티장에서 남민혁은 신유현 때문에 자신이 마음에 들어 했던 흡혈검 요희를 빼앗기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었지만 속으로는 배알이 뒤틀렸다.
거기다 신유현에 대해 조사를 해 보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쓰레기였지 않은가?
‘그딴 놈에게 방해를 받다니.’
남민혁은 이를 갈았다.
신유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유현 때문에 아시아에서 형편 좋게 이용하던 조직 하나가 박살 나기도 했으니까.
‘상황이 좋지 않아.’
남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재 그가 시급히 이루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남연아의 암살이었다.
남연아가 가진 재능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티팩트에 관한 연구에 한해서는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연구하고 개발한 방어 코트를 수많은 초인이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남두그룹에서 얻는 이익은 상당히 컸다.
하지만 남민혁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티팩트의 개발과 연구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남연아는 경영자로서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가 경영에 흥미가 없고 아티팩트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경영의 재능을 가진 남연아는 남민혁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남두그룹의 경영진 내에서 남연아를 후계자로 만들면 어떻겠냐 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절대 그럴 수 없지.’
남민혁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남두그룹 위에서 군림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남연아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연아에게 손을 대기가 이전보다 더 까다로워졌다.
‘빌어먹을 신유현 놈.’
남연아가 연구소에 있을 때, 손을 대는 건 쉽지 않아도 결코 불가능하진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쓰려고 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남연아의 연구소에서 사고가 난 후 문제가 생겼다.
남연아가 파천검가로 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민혁이라고 해도 파천검가를 건드릴 수 없었다.
파천검가는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무력집단이었으니까.
‘그래도 오래가진 못할 테지.’
아주 잠시 남민혁은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나마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드디어 본격적으로 신유현을 척살하기 위해 조직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유현이라고 해도 조직의 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내 앞을 막는 건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남연아도, 신유현도.
남민혁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존재를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모든 건 위대한 그분을 위해.
남민혁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 * *
다음 날.
신유현은 일행을 데리고 가문을 나섰다.
“유현 씨. 오늘 우리 어디 가요?”
남연아가 달리는 차 안에서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오늘 만나야 할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서 신유현이 남연아를 끌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건 가서 말해 드릴게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신유현은 뒤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차안에 있던 인물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최진성이 입을 열었다.
“전주님. 저도 가야 하는 일인가요?”
“응. 사실 지금 만나러 가는 분은 진성 씨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줄 거거든.”
“저한테요?”
신유현의 대답에 최진성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럼 이 아이는요?”
남연아는 품에 안고 있는 디아를 바라봤다.
그 말에 디아가 답했다.
“디아는 놀러가영!”
“아, 그렇구나.”
그 말에 남연아는 디아의 볼을 살짝 잡아당기거나 부비며 만졌다.
“말랑말랑하네.”
귀여운 디아의 모습에 남연아의 표정이 풀렸다.
아티팩트 연구로 인한 스트레스가 풀려가는 모양.
그렇게 남연아, 최진성, 디아, 신유현,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이시아까지 다섯 명은 몇 년 뒤에 황혼의 대장장이라 불리는 인물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일행을 태운 차가 멈췄다.
차를 세운 이시아는 신유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전주님, 여기가 맞나요?”
“어, 맞아.”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기에 황혼의 대장장이가 살고 있는 장소는 가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수원시 외곽 한적한 곳에 황혼의 대장장이가 사는 대장간이 있었으니까.
차에서 내린 일행은 대장간으로 보이는 주택을 향해 다가갔다.
“계십니까?”
신유현은 벨을 누르며 안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뉘시오?”
잠시 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영감님이 맞네.’
신유현은 속으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전 삶에서 영감님은 초췌하고 우울한 어둡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얼굴에서 빛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시기라면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 실력이 좋은 대장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파천검가에서 왔습니다.”
“파천검가?”
신유현의 웃는 말에 노인, 김상철은 미심쩍은 눈으로 신유현과 일행들을 바라봤다.
파천검가라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남자가 두 명에 여자가 둘, 거기에 어린 아이까지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로 오셨소?”
그래도 일단 김상철은 이유를 물어봤다.
신유현은 김상철에게 웃으며 말했다.
“의뢰를 하려고 왔습니다.”
“의뢰? 검 제작을 하러 오셨소?”
“아뇨.”
김상철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김상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이 아니라면 이곳엔 무슨 일이오?”
그의 질문에 신유현은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아그라니윰 금속을 만들어 주십시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