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141화 (141/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41화

신유현은 복슬이와 케이론 그리고 까망이와 예니체리들만 남기고 나머지 소환수는 그림자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 남은 소환수들과 함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복잡한 기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방 안.

그곳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동면캡슐들이 좌우로 다섯 개씩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원통형 실험관 안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가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루베르 일 테지.

[불사왕의 인자를 확인. 봉인을 해제합니다.]

그때 방 안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지면서 루베르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 * *

“세븐 아크스 중 한 명이자 불사 군단장인 루베르 번슈타인이 계승자님을 뵙습니다.”

신유현의 눈앞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해 왔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검은색 제복 차림을 한 권속 열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신유현이다.”

그녀의 인사에 통성명을 한 신유현은 루베르를 내려다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눈동자를 가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

그리고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가슴에 붉은 장미 장식이 달린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유럽의 귀족 영애 같았다.

그녀가 바로 세븐 아크스 중 한 명, 녹존성의 처형자이자 뱀파이어들을 이끄는 진조의 공주, 루베르 번슈타인이었다.

“계승자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신유현의 물음에 루베르는 장미 문양이 새겨져 있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어 보였다.

“그분께서 저희를 버릴 리 없으니까요. 언젠가 그분의 의지를 이으신 분이 올 거라 믿고 있었어요.”

“나는 초대 불사왕이 아닌데?”

그 말에 루베르는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중요한 건 계승자님께서 저희들을 찾아 주셨다는 사실이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녀는 초대 불사왕을 믿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들을 찾아와 줄 거라고.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 불사왕의 권능과 유산을 이어 받은 계승자가 있지 않은가?

“너희들은 정말 그것만으로 괜찮은 거냐?”

“네. 저희들에게 계승자님은 그분과 다름없는 존재이니까요.”

루베르는 미소를 지으며 슈브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말을 했다.

세븐 아크스는 초대 불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로 계약한 존재들.

그 계약에 따라 계승자에게도 종속해야 했지만 불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신유현이 만난 세븐 아크스는 대부분 호의적이었으니까.

“불사왕님과의 계약에 따라 계승자님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루베르와 그녀의 권속들은 신유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충성을 맹세했다.

“알겠다.”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 불사왕과의 계약에 따라 자신을 따르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루베르는 불사왕의 군단 중 정보와 암살을 담당하는 특수 부대를 이끌었다.

그런 그녀가 군단에 합류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잘 부탁하지.”

“맡겨 주세요.”

신유현의 말에 루베르는 장미 부채를 착 펼치고 입을 가리며 웃어 보였다.

* * *

신유현은 루베르와 그녀의 권속 열 명을 데리고 가문으로 귀환했다.

“성공하셨네요.”

“마스터. 오셨어여?”

질투의 신전이 있는 차원에서 현무전의 지하 훈련장으로 귀환하자마자 슈브와 디아가 반겨 왔다.

“다들 살아 있었네.”

그리고 루베르는 감회에 젖은 눈으로 디아와 슈브를 바라봤다.

“앗! 루베르 언냐닷!”

루베르를 발견한 디아는 다다다 거리며 달려들더니 허리춤에 안겼다.

“뭐야? 디아나는 왜 이렇게 작아졌어?”

예전보다 훨씬 어려진 디아나의 모습에 루베르는 당황했다.

“헤헤.”

“정신연령도 어려진 것 같고.”

루베르는 허리춤에 안겨서 귀엽게 웃고 있는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본래 디아나 또한 전성기 시절에는 20대 외모였고 성격도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오랜 세월 마도서인 프나코틱 바이블에 봉인되어 있는 탓에 힘을 잃으면서 나이가 어려졌다.

거기다 정신연령까지 현재 나이만큼 어려진 모양.

“오랜만이네, 루베르.”

“슈브.”

오랜 세월을 지나 드디어 서로 만나게 된 슈브와 루베르.

그녀들은 서로 노려봤다.

쿠구구구궁!

말없이 노려보는 그녀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이번만큼은 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거야.”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슈브와 루베르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 갑자기 신유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스터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실 건가요?”

뜨거운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보고 있는 슈브와 루베르.

그리고 갑작스러운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의미지?”

“이제 루베르의 봉인을 풀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갔으면 해서요.”

“다음 단계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는 신유현을 향해 루베르가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누구를 부르실 거죠?”

“뭐?”

그 순간 신유현은 알아차렸다.

그녀들의 눈빛과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음.’

신유현은 고민을 하며 눈을 돌렸다.

그때 눈을 돌린 그곳에 귀엽게 웃고 있는 디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디아로.”

“네?”

“디, 디아라니?”

신유현의 말에 슈브와 루베르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여기서 디아를 선택할 줄이야.

“디아야. 오늘밤은 같이 자자.”

“만세!”

아무것도 모르는 디아는 신유현과 함께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양손을 들며 만세를 외쳤다.

‘당분간 디아를 방패로 써야겠군.’

신유현은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리고 있는 디아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디아는 귀엽게 웃으며 신유현의 얼굴에 볼을 비볐다.

그 행동에 신유현은 얼굴이 풀림을 느꼈다.

고양이 귀와 꼬리를 가진 디아의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었으니까.

“디아라면 어쩔 수 없네요.”

그리고 슈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런 꼬맹이한테 지다니…….”

루베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디아를 바라봤다.

“디아, 루베르 언냐 좋아여. 미워하지 마영.”

그때 디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루베르를 바라봤다.

“정말 어쩔 수 없네.”

그 모습에 루베르는 한숨을 내쉰 후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러나저러나 어려진 디아는 세븐 아크스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성능 확실하네.’

그렇게 디아 덕분에 위기를 넘긴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저녁에 디아가 좋아하는 고드바 초콜릿 볼을 왕창 사다 주었다.

* * *

다음 날.

신유현은 여러 가지 일들로 정신이 없었다. 세븐 아크스 중 한 명인 루베르가 합류하게 되면서 현무전과 가문에 이야기를 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신유현은 자신이 네크로맨서이며 디아와 슈브, 복슬이 등등의 소환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인재 영입을 이유로 현무전에 황금 화살 길드원들이나 적탑의 마법사들도 합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루베르와 권속 열 명이 합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루베르가 내 소환수 중 하나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어디 그뿐인가.

루베르는 뱀파이어들을 이끄는 진조의 공주였다.

그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가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안개화나 박쥐화 같은 특수한 뱀파이어 전용 스킬을 사용한다거나 송곳니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정체를 숨기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혈액을 어디서 구하느냐 라는 건데…….’

루베르와 열 명의 권속들은 주기적으로 피를 마셔야 한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피를 구한단 말인가?

그것도 인간의 피를.

아무리 루베르가 자신의 소환수라고 해도 피를 구하기 위해 인간들을 습격시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빌런이라면 또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가문의 힘을 사용하는 수밖에.’

현대 사회에서 피를 구하려면 한 군데밖에 없었다.

바로 병원이다.

병원이라면 혈액팩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가문의 힘을 사용한다면 병원에서 혈액팩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번거롭기는 해도 그만큼 도움이 될 테지.’

루베르와 열 명의 권속들은 상당한 전력이었다.

루베르만 해도 슈브와 같은 6성급이었고, 권속들은 5성 최하급에서 하급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마저도 본래 실력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는데다가,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유현이 아직 등급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디아와 슈브처럼 제한이 걸려 있었다.

‘숭배자 놈들을 먹잇감으로 던져 줘야겠군.’

신유현은 게티아들을 신봉하고 숭배하는 놈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놈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올라왔으니까.

‘슬슬 놈들이 입을 열 때가 되었을 것 같은데.’

신유현은 5성 모노리스 레이드 던전에서 생포한 숭배자 열 놈을 떠올렸다.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고 풍림화산 길드까지 쳐들어갔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이미 잿빛 교단의 숭배자 놈들이 움직였는지 풍림화산 길드는 몰살당해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이후 헌터 협회와 정부가 움직였다.

이 시대에 벌써부터 게티아 숭배자들이 암암리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유현이 헌터 협회와 정부에게도 위험성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헌터 협회와 정부도 게티아 숭배자들의 조직으로 추정되는 잿빛 교단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 협력 체계를 이루어 냈다.

이제 헌터 협회와 한국 정부도 게티아 숭배자들을 찾기 위한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신유현은 생포한 숭배자 열 명 중 다섯 명을 헌터 협회에 넘겼고 나머지 다섯 명은 정부에 넘겼다.

‘뭐, 입을 연다고 해도 중요한 정보는 모를 테지.’

문제가 생기자마자 잿빛 교단의 숭배자 놈들은 풍림화산 길드원들을 몰살 시켰다.

언제든, 몇 명이든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분명 이번에 생포한 숭배자 놈들은 말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철화단의 간부들과 단장조차도 잿빛 교단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겨우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물며 말단인 숭배자 놈들이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 봐야 얼마나 될까?

‘어쨌든 레이드 던전을 공략했으니 남두그룹으로부터 선행투자를 받아 내야지.’

신유현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미 남연아를 통해 남두그룹의 회장인 남현철과 약속을 잡아 두었다.

남은 건, 그와 만나서 구체적인 협상을 하는 것뿐.

그때는 현무전의 재정관리부장인 김재현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이제 루베르도 얻었으니 슬슬 준비해야지.’

마수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강릉을 수복하기 위한 준비를.

‘마수들이 점령한 지역들도 점점 한계일 테고.’

아직 현 시대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던전에 마수가 넘쳐나서 스탬피드 현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마수들이 점령해 있는 지역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마수가 뛰쳐나오는 지역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