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38화
‘마그나이트 광석을 얻었으니.’
미스릴에 가까운 보라색 마법 광석.
마나 전도율이 좋기 때문에 A급 이상 무기를 만들 때 미스릴 대체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베르카 금속도 있지.’
이 두 가지를 합친다면 제법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 터.
그리고 괴짜 같은 성격인 황혼의 대장장이, 영감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신유현은 세 번째 세븐 아크스를 얻으러 가기 위한 최종 점검을 마쳤다.
“준비 끝났어요.”
때마침 슈브도 준비가 끝났는지 신유현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슈브를 바라봤다.
슈브가 서 있는 지하 훈련장 바닥 위에 검은 빛과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직경 5미터의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끝났어.”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쩌저적!
그러자 칠흑의 마법진 위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차원 균열이 발생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차원의 균열이 열렸다.
“열었어요.”
“그럼 갔다 올게.”
슈브와 디아에게 인사를 남긴 신유현은 망설임 없이 균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균열 속으로 들어가자 몸이 붕 떠오르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걸 느끼면서 차원 이동을 완료했다.
이동이 끝난 직후, 신유현은 속이 울렁거리면서 메스꺼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차원 이동의 후유증인 모양.
잠시 속을 추스른 신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세 번째 세븐 아크스가 있는 차원인가?’
별천지와 다름이 없는 세상.
어두운 밤하늘에 거대한 붉은 달이 떠올라 있었고, 그 아래에는 새하얀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신유현의 눈앞엔 붉은 선혈의 신전이 보였다.
[경고. 세이비어 시스템 링크가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타임 디멘션 프로토콜 검색. 실패. 연결 가능한 프로토콜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시공관리국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슈브가 봉인되어 있던 신전이 있는 차원으로 이동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공관리국과 연결이 끊어졌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인 모양이었으니까.
‘그럼 가 볼까.’
신유현은 붉은 신전의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질투의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과연, 그래서였나.’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슈브가 참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한 것이다.
세 번째 세븐아크스인 진조의 공주, 루베르가 봉인되어 있는 신전의 시련은 질투였으니까.
신유현은 붉은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자 붉은 카페트가 깔린 호화롭고 넓은 홀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슈브가 있던 신전과 비슷하군.’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복도 끝에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고급스러운 붉은빛이 감도는 거대한 양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문틈 사이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빛에 신유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여기는…….’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느 틈엔가 주변 풍경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가주전의 회의실이었다.
그리고 회의실에는 가문의 가신들이 모여 있었고, 그 앞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신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능한 놈 같으니.
‘그 나이가 되도록 기력 개방을 못 하는 것이냐?’
‘동생보다 못한 못난 놈.’
아버지는 신유현을 나무라듯 말했다.
신유현의 형들과 누나들, 막내 동생인 신철호는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너 같은 애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네 형제자매들이 부럽구나.’
그뿐만이 아니라 어머니 또한 신유현을 향해 한탄스럽게 말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신유현은 가슴 한쪽이 시큰거렸고 부러웠다.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데 배다른 형제자매들은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니까.
스르륵, 번쩍!
그때 주변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하얀 빛이 터져 나오더니 풍경이 바뀌었다.
‘나, 이제 지긋지긋해. 다른 사람 생겼으니까 우리 그만 헤어져.’
이전 생에서 신유현의 연인이었던 마리아 테스타로사가 이별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 옆에 서 있는 금발 미청년을 본 신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리아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을 비웃고 있었으니까.
그는 생긴 건 괜찮으나 개차반 같은 성격에 여자 문제가 많았던 악연 중 한 명인 크리스였다.
[상태 이상 질투가 발생합니다. 상태 이상에 저항합니다.]
그때 신유현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
신유현은 길게 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을 꽉 움켜쥐었다.
스아악!
이내 레바테인이 검집에서 뽑혀져 나오며 휘둘러졌다.
허공에 그려지는 검은 화염의 궤적.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의 고유 스킬 흑염일섬을 발동합니다.]
콰자장창!
그러자 신유현의 주변 공간이 깨져 나가는 게 아닌가?
날카롭게 압축된 흑염의 칼날이 신유현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환영을 부숴버린 것이다.
“이런 수작이 통할 줄 알았나?”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감정에 휩쓸려 넘어갈 뻔했다.
가족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다른 형제자매들이 부러웠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으니까.
그것도 하필 평소 마리아에게 집적거리던 크리스와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이 실제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라 시련의 탑에서 개화한 고유 스킬, 기척감지(S)로 주변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높은 정신력 덕분에 상태 이상에 저항하면서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이 환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슥.
이윽고 주변 공간에 깨어져 나가면서 현실 공간이 드러났다.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는 큰 방이었다.
신유현은 방을 지나며, 반대쪽 문을 향해 나아갔다.
털컹.
문을 열고 나가자 또 다시 넓고 긴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복도뿐만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계승자님.”
방문 밖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장발과 붉은 눈을 가진 중년 사내.
그는 검은색 연미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누구지?”
“루베르 님의 첫 번째 권속 아프라레 블라드라고 합니다.”
중년 사내, 아프라레 블라드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권속이라고?”
“네. 저는 계승자님이 저희의 공주님을 구하러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블라드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신유현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언젠가 불사왕님의 계승자가 찾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래 기다렸겠군.”
“네. 정말 긴 세월을 기다려 왔지요.”
씁쓸하고 회한이 서려 있는 목소리.
그는 혼자서 붉은 신전을 관리하며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불사왕의 계승자를 기다리면서.
“……고생했다.”
신유현은 홀로 외롭게 기다려 온 블라드에게 한마디 했다.
그 말에 블라드의 눈빛이 잠깐 빛났다가 사라졌다.
“아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블라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쪽으로.”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며 신유현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신유현은 블라드를 따라 복도 끝에 있는 거대한 양문을 향해 다가갔다.
“저 문 너머에 루베르 님이 봉인되어 계십니다.”
“봉인은 어떻게 풀지?”
“문 너머에 계신 루베르 님을 만나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신유현은 복도 끝에 있는 거대한 양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양문을 밀려고 하는 순간,
채채챙!
갑자기 신유현의 주변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헉!”
뒤이어 블라드의 놀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블라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신유현의 등 뒤에 서 있던 블라드는 손바닥에서 피로 이루어진 촉수 세 가닥을 날렸다.
그런데 신유현의 그림자 속에서 예니체리로 배속된 싸울아비와 팔랑크스, 그리고 프로스트 레인저들이 순식간에 뛰쳐나오면서 촉수들을 막아 낸 것이다.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신유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의 기습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블라드를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속일 생각이었으면 연기를 더 잘했어야지.”
처음 블라드와 만났을 때, 그는 너무 담담했다.
오랜 세월 드디어 불사왕의 계승자인 자신과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좀 더 기쁨을 표현해도 되건만 너무 담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며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신유현은 통수를 치는 인간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게티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밀고를 하는 인간, 음식을 훔치기 위해 사기를 치는 인간 등등.
그 틈바구니 속에서 지낸 적이 있었기에 자연히 사람 보는 눈이 생겨났던 것이다.
‘뭐,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건 기척감지 덕분이었지만.’
그리고 혹시 몰라 A급 스킬, 분할 사고로 기척 감지를 상시 발동시키면서 등 뒤에 있는 블라드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블라드가 의심을 살 만한 움직임을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지체 없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까망이를 통해 예니체리에 배속한 스켈레톤들을 불러낸 것이다.
“역시 불사왕의 계승자인가.”
공격이 막힌 블라드는 뒤로 물러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물었다.
“어째서 날 공격한 거지? 루베르의 봉인을 풀고 싶지 않은 거냐?”
“닥쳐라! 초대 불사왕 때문에 공주님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 뱀파이어 족이 잃은 게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느냐 말이다!”
블라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신유현이 알 리가 만무했다.
과거의 불사왕과 세븐 아크스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모르니까 물어보잖아. 과거에 너희와 초대 불사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신유현의 말에 블라드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신유현을 죽일 듯을 노려볼 뿐.
잠시 후 블라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나는 더 이상 공주님이 상처 받지 않기를 원한다. 돌아가라.”
블라드는 차가운 표정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신유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싫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 네놈의 분수를 깨닫게 해 주는 수밖에.”
“할 수 있으면 그래 보던가.”
신유현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블라드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루베르를 만나기 전에 교육부터 먼저 시켜야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