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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126화 (126/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26화

헌터 협회에서 정보를 얻고 가문으로 돌아가는 차안.

‘이제 좀 기억이 나는군.’

뒷좌석에 몸을 기댄 신유현은 눈을 감으며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렸다.

이전 삶에서 게티아들의 침공을 제외한다면, 이때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가문에서 잠시 근신을 당하다가 쫓겨 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한 상황.

그때 풍림화산 길드의 3팀장, 이강훈이라는 인물이 이야기를 걸어왔다.

풍림화산 길드에 오지 않겠냐고.

어디 하나 의지할 데가 없었던 신유현은 이강훈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신유현은 속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기뻐했다.

이강훈이 자신을 인정해 주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신유현은 이강훈이 있는 3팀에 배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력개방조차 하지 못한 반쪽짜리 초인이었기에 일단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온갖 힘들고 궂은일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꿈이 있었다.

언젠가 자신도 기력 개방을 해서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꿈이.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기력 개방을 하지 못한 자신을 풍림화산 길드원들이 좋게 볼 리 없었다.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만이 아니라 일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하냐고 갈굼 당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가문에서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가문 사람은 자신을 무시할 뿐이었고, 신철진이나 신철호는 욕을 하며 비웃은 게 다였다.

하지만 풍림화산 길드 놈들은 그렇지 않았다.

기력 개방을 하지 못한 초인이라는 이유로, 인턴이라는 이유로 온갖 괴롭힘을 당해야 했으니까.

그에 대해 이강훈에게도 한마디 했었지만 돌아온 건 쌀쌀한 한마디였다.

[사회생활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렇다고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가 너한테 투자한 돈이 많다는 거 알고 있지? 나가려면 돈 다 갚고 나가. 파천검가면 두둑하게 챙겨 주겠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신유현은 깨달았다.

이강훈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이강훈은 자신을 인정해서 손을 내민 게 아니었다. 가문의 돈을 노리고 자신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당시 신유현은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불편하지만 풍림화산 길드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때 지급받았던 아티팩트 장비들이나 숙식비, 풍림화산 길드의 유니폼 등등.

풍림화산에서 길드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지급 받는 기본 혜택들을 인턴이라는 이유로 무료로 제공받지 못했다.

그것을 이강훈은 투자라고 했다.

‘게티아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지금 기억해 보니 진짜 쓰레기 놈들이었네.’

신유현은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풍림화산 길드에 대한 기억은 애매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가문에서 쫓겨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풍림화산 길드에서 겪었던 일들은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풍림화산 길드는 신유현이 들어 간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몇 년 간 신유현은 하급 헌터로 전전하다가 게티아들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풍림화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풍림화산 길드에서 당한 쓰라린 기억보다 게티아 놈들이 인간을 잔인하게 고문하거나 개조를 하고 학살하는 모습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으니까.

‘특히 3팀장 이강훈.’

그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제대로 된 대우는 받지 못했고 매일마다 1성과 2성 상시 던전을 뺑뺑이 돌았으며, 풍림화산 길드원들에게 기합이라는 이름하에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 주마.’

이전 삶에서 10년 간, 여러 가지 수많은 일들을 경험해 왔으니까.

‘그러고 보니 진성이 형도 있었구나.’

순간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풍림화산 길드 3팀에 소속된 4성 최하급 궁수, 최진성.

그 또한 신유현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이었다.

풍림화산 길드에 빚을 지고 있었고, 초인 등급은 나쁘지 않지만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경원시 받았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최진성은 신유현에게 함께 버티자며 격려해 주었다. 그 덕분에 신유현은 풍림화산 길드에서 버텨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번 레이드 던전 공략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5성 레이드 던전, 타락한 혼돈의 모노리스.

풍림화산 길드는 레이드 던전 공략에 실패한다.

당시 신유현은 기력 개방조차 하지 못했기에 5성 레이드 던전에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최진성은 그래도 명색이 4성 초인이었기에 레이드 공략대에 차출되어 갔다.

그때 동원된 레이드 공략대의 인원은 총 30명.

보통 6명 파티를 4팀으로 만들어가지만, 풍림화산 길드는 한 파티를 더 추가해서 총 30명의 레이드 공략대를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30명 중 20명이 돌아오지 못했고 레이드 던전 스탬피드가 일어났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당시 풍림화산 길드는 4성 전후 헌터들로 구성해서 던전을 공략하러 갔다.

거기다 풍림화산 길드의 1팀장이자 5성 B급 헌터인 이상범도 있는 상황.

공략에 실패할 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공략에 실패를 하고, 곧 바로 던전 스탬피드 현상이 발생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5성 모노리스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러 갔었던가?’

그뿐만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봐도 약 보름에서 한 달 정도 빠른 감이 있었다.

아마 신유현이 과거로 돌아온 후 많은 걸 바꾸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전 삶에서 지금 이때쯤이면 한창 풍림화산 길드에 들어가서 고생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과거로 돌아온 후, 신유현은 많은 걸 바꾸었다.

아마 그 때문에 풍림화산 길드가 5성 모노리스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러 가는 시기가 조금 앞으로 당겨진 모양.

‘나도 서둘러야겠군.’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신유현은 가문에 도착했다.

* * *

5성 레이드 던전, 타락한 혼돈의 모노리스.

그곳은 규모가 큰 지하 유적지로 심플한 구조였다.

메인 통로를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복도 끝에 크고 작은 마수들의 방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메인 통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한 번씩 큰 공터가 나오는데, 그곳엔 중간 보스가 있거나, 수많은 마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하에 이런 인공 구조물이 있다니…….”

풍림화산 길드 3팀장, 이강훈은 가늘게 뜬 실눈으로 벽을 바라봤다.

지하 유적지의 내부는 일반적인 돌벽 같은 게 아닌 처음 보는 굉장히 매끄러운 금속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건설한 것처럼.

“여긴 또 어딜까요?”

이강훈의 중얼거림에 3팀의 부팀장인 박준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반 던전들은 현실과 거의 동일한 공간이었지만, 레이드 던전이나 미확인 던전 게이트의 경우는 달랐다.

다른 세상 같았으니까.

그리고 레이드 던전의 경우 공략이 까다로웠다.

일반 던전은 보스를 잡으면 공략이 되지만, 레이드 던전은 보스뿐만이 아니라 공략 조건이 따로 더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이곳 모노리스 레이드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지구는 아니겠지.”

날카로운 인상의 이강훈은 던전의 벽을 손으로 쓸었다.

단면 하나 느껴지지 않는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 벽.

거기다 금속 벽 자체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주변을 확인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잠시 휴식한다!”

그때 가장 선두에서 레이드 공략대의 대장이자 풍림화산 길드 1팀의 팀장인 이상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레이드 공략대의 가장 후미에서 뒤따라가고 있던 3팀은 발걸음을 멈췄다.

레이드 던전은 규모가 큰 만큼 안전지대가 존재한다.

지금 공략대는 안전지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야, 진상아. 커피 좀 가져와봐라.”

이강훈은 3팀의 가장 막내인 최진성을 불렀다.

“예.”

최진성은 군말 없이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이강훈에게 가져다줬다.

속으로는 진상이 아니라 진성이라고 하면서.

“아, 씁. 커피 맛이 왜 이래?”

최진성이 건네준 커피를 마신 이강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넌 커피도 제대로 못 타냐?”

“죄송합니다.”

최진성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부터 박았다.

“하, 이 진상 새끼. 커피를 못 타면 카페에서 사 오던가 해야 할 거 아니야.”

탁탁.

이강훈은 최진성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또, 지랄이네.’

“죄송합니다.”

최진성은 속마음과 달리 더욱 더 고개를 숙였다.

사실 커피는 최진성이 탄 게 아니었다.

이강훈의 말대로 카페에서 직접 사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 그럼 맛도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왔냐고, 또 지랄을 할 테니까.

그리고 자기한테 말대꾸를 하냐면서 주먹을 날릴 테지.

‘꼰대 새끼.’

그 때문에 속으로 이강훈을 욕할 뿐이었다.

“야, 잘해라. 진짜. 알았냐?”

“네.”

최진성은 속으로 화를 삼키며 대답했다. 이강훈은 3팀의 팀장이었고, 자신은 3팀의 막내였으니까.

그리고 주변에서 최진성을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 풍림화산에 들어왔을 때는 괴물 같은 마나량을 가진 전도유망한 기대주로 궁수였다.

그 덕분에 이강훈이 있는 3팀에 배정되었다. 3팀은 전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들로 이루어진 팀이었으니까.

현재 궁수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화살에 마나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마나로는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져 버리니까.

하지만 최진성은 어마어마한 마나로 굉장히 위력적인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최진성은 풍림화산 길드의 3팀 차기 에이스로 기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뒤늦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마 명중률이 나쁜 건 나도 몰랐지…….’

어이없게도 궁수로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명중률이었다.

엄청난 위력의 화살을 쏠 수 있지만 목표를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명중률을 높이는 아티팩트 장비들까지 사용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최진성이 쏘는 화살은 언제나 이상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풍림화산 길드원들은 최진성을 비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던전을 공략할 때 최진성을 데리고 다녔다.

레이드 던전을 공략을 할 때는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식량이나 여러 물자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럴 때 최진성은 일꾼으로 사용하기 딱 알맞았다. 명색이 4성 초인이다 보니 신체 능력이 좋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는 전투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최진성이 마나 부여를 한 화살은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군이 없는 상황이나, 선두에서 마수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할 때 쓸 만했다.

그래서 레이드 던전 공략에 데리고 온 것이다.

“다시 이동한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자 레이드 공략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략 대원들이 이동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사이,

쿠구구구궁!

갑자기 좌우 벽에서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뭐야?”

“왜 갑자기 벽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레이드 공략대는 긴장한 표정으로 열린 벽 너머를 바라봤다.

벽 너머 통로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열린 벽 너머로 기괴한 괴성들과 함께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그 무렵.

“여기가 모노리스 레이드 던전인가?”

5성 레이드 던전, 타락한 혼돈의 모노리스에 입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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