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20화
팟!
남연아가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워프 게이트에게 공급되던 전력이 차단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무저갱의 구멍 같던 워프 게이트가 꺼졌다.
스각!
그러자 워프 게이트를 통해 나오려고 했던 거대한 무언가의 팔이 잘려 나갔다.
그 순간 평소와 달리 일그러지며 떠오르는 메시지.
[???가 분노에 찬 괴성을 지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는 팔이 잘려 나가자 오히려 분노한 모양.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워프 게이트는 완전히 닫혀 있었으니까.
메시지가 일그러진 것도 그 때문이겠지.
“끝났군.”
신유현은 상황이 끝났음을 느꼈다.
* * *
제노모프 마더를 쓰러트리고 워프 게이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오려고 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었다.
워프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팔만 보더라도, 최소 제노모프 마더보다도 더 크고 강대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쓰러진 제노모프 마더가 가지고 있던 잔여 마나와 전력 케이블 때문에 워프 게이트는 몇 분 더 유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거대한 무언가가 기어 나왔을 터.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연아가 전원을 꺼 버림으로써 전력 공급과 함께 잔여 마나도 끊겼다.
남연아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와 줄 줄은 몰랐는데…… 정말 고마워요.”
남연아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구하러 와 달라고 전화를 하긴 했었지만, 워프 게이트가 발생하면서 생긴 전파 방해 때문에 제대로 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설마 자신을 도와주러 달려와 줄 줄이야.
“당연히 도우러 와야죠.”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역시 이번 일이 생긴 건 크리스탈 파편 때문입니까?”
“네.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크리스탈 장치는 게티아 놈들이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설마 이렇게 위험한 일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위험한 물건 일 줄은 몰랐습니다.”
신유현은 남연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위험한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미리 언질을 주거나, 그녀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하던가.
이유가 어찌되었든 크리스탈 파편을 맡김으로써 연구소는 큰 위험이 발생했고,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그 때문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사과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남연아는 고개를 저어 주었다.
“아니에요. 유현 씨도 몰랐잖아요.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어요.”
“네?”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유가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유현 씨가 크리스탈로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말했었잖아요? 그래서 어떤 원리로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었어요.”
만약 그 사실을 규명해 낸다면 인류는 마수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남연아는 최후의 실험으로 마나와 전력을 크리스탈 파편에 공급하기로 했다.
“크리스탈 파편의 작동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소의 전력과 마나를 동시에 공급하는 실험을 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겨났죠. 크리스탈 파편이 한계 이상의 마나와 전력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했거든요.”
“크리스탈 파편이 폭주했다고요?”
“네. 그래서 당장 실험을 멈추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으득!
남연아는 이를 갈았다.
“유현 씨. 예전에 절 암살하려고 했던 자들에게 게티아 숭배자에 대해서 물어봤었죠?”
“네. 그랬었죠.”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남연아를 암살하려고 했던 이지수 일행들.
그때 남연아는 게티아 숭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유현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에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게티아 숭배자가…… 연구원 중에 한 명 있었어요.”
그 말에 신유현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게티아 숭배자가 연구소에 있었다는 말입니까?”
“네. 맞아요. 결과는 뭐 보는 대로…….”
남연아는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탈 파편이 마나와 전력, 두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했을 때 막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게티아 숭배자 놈이 오히려 마나와 전력의 출력을 올려 버렸다.
그 결과 크리스탈 파편을 통해 워프 게이트가 생겨났던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건 전부 게티아 숭배자 놈 때문이었어요. 그러니 유현 씨가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남연아는 신유현을 위로했다.
신유현이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계속해서 크리스탈 파편을 실험하며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었다.
“사실 처음에는 놀라웠어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생겨났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이 시작됐죠.”
열려진 워프 게이트를 통해 제노모프 마수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을 테지.
“게티아 숭배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어요. 워프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마수들한테.”
남연아는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정말 씁쓸한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군요.”
남연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유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남연아의 연구소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니…….’
아마 실험을 방해한 게티아 숭배자는 잿빛 교단 소속일 터였다.
“다른 생존자는 있습니까?”
“아, 네. 있어요. 최대한 많은 직원을 5층으로 대피시켰거든요.”
남연아는 신유현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워프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남연아는 바로 실험실을 폐쇄시켰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리고 연구소 내부 방송으로 지하 5층으로 대피하라고 소리쳤고, 보안 요원들을 불렀다.
그 덕분에 상당수의 직원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네요.”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그나마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수들을 실험실에 격리 시킬 수는 없었어요.”
워프 게이트에서 기어 나온 마수들은 실험실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어떻게든 밖으로 기어 나가려고 했다.
실제로 몇 마리는 환풍구를 통해서 기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남연아는 곧바로 연구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시켰다.
마수들이 단 한 마리도 연구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관제실도 위험해져 갔죠. 관제실 창문은 강화 방탄유리이긴 했지만 마수들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마수들은 관제실 창문에 달라붙어서 뚫고 들어오려고 했다.
수많은 마수가 창문을 두들기자 관제실에 있던 연구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남연아는 그런 연구원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관제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까?”
“관제실에는 지하 5층으로 내려가는 비상용 통로가 있었거든요. 그곳을 통해서 관제실 연구원들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죠.”
신유현의 물음에 남연아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연아는 관제실의 연구원들과 함께 지하 5층으로 대피했다.
비상용 통로는 마수들이 들어오기에는 많이 좁은데다가, 출입문은 두께가 1미터나 되는 강철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마수들이라고 해도 뚫고 들어오기 힘들 터.
“하지만 김승철 연구원은…….”
아마도 그가 게티아 숭배자겠지.
그는 관제실 창문 밖 마수들과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유리창 일부가 깨진 후, 촉수에 붙잡혀 끌려갔다고 했다.
아마 시체조차 남지 않고 마수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남연아는 관제실을 탈출했다.
“어쨌든 연아 씨가 살아남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유현 씨가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거예요.”
남연아를 비롯한 살아남은 연구원들은 지하 5층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봤다.
지하 5층엔 각 층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CCTV 관리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하 4층 실험실을 탈출한 마수들이 격리된 지하 5층 출입구를 뚫으려 했기 때문이다.
관제실의 비상 통로로 올 수 없다고 해도, 지하 4층과 5층을 이어 주는 계단 출입구를 뚫어서 올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남연아를 필두로 살아남은 연구원들은 어떻게든 마수들이 지하 5층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거나 격리시켰다.
하지만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수들이 사라졌다.
연구소로 잠입하던 신유현을 노리러 갔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남연아와 다른 연구원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유현 씨에게 구해지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요.”
남연아는 신유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신유현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그런데 저분은 누군가요?”
남연아의 시선 끝에는 아름다운 미녀, 슈브가 있었다.
* * *
신유현이 남연아를 비롯한 연구소의 생존자들을 구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남연아의 연구소에서 있었던 워프 게이트 사건은 불문에 붙여졌다.
워프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 줄 수는 없었으니까.
대외적으로는 아티팩트 연구소에서 실험을 하다가 사고가 생겨서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진실을 은폐해야 한다는 사실에 남연아는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크리스탈 장치나 게티아 숭배자, 워프 게이트와 다른 우주에서 넘어온 마수들에 대해서까지 밝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은폐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뒷수습은 남두그룹의 초인들이 했다.
그들은 연구소에 있던 모든 증거를 없앴다.
감염된 연구원들 모두 불태워 버렸고, 제노모프 마수도 연구용으로 일부만 남기고 전부 없애 버렸다.
‘남은 건, 내가 얻은 전리품뿐이지.’
제노모프 마수들의 보스들을 쓰러트리고 얻은 보상품들.
그것들은 전부 디아의 아공간 속에 보관시켜 두었다.
나중에 확인하면 되니까.
‘문제는 아티팩트 연구소인가.’
신유현은 연구소 입구 쪽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남두그룹의 초인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남연아를 비롯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생기를 잃은 표정으로 담요로 몸을 감싸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터전이었던 아티팩트 연구소는 전부 박살이 나 버렸으니까.
그나마 멀쩡하게 살아 있는 시설은 지하 5층뿐이었다.
“연아 씨.”
“네.”
연구소 출입구 앞에서 신유현이 부르자 남연아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글쎄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남연아는 말꼬리를 흐렸다.
연구소에서 갇혀 있을 때는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구출된 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이 몰려왔다.
집이나 다름없던 아티팩트 연구소와 가족 같은 연구원들까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렸으니까.
신유현은 그런 남연아의 기분과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유현은 남연아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아 씨. 우리 집 와서 살래요?”
“……!”
생각지도 못한 신유현의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남연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