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7화
신유현을 중심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그 속에서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늑대 한 마리가 신유현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우-!
백랑, 복슬이였다.
“뭐, 뭐야?”
“어디서 늑대가?”
갑자기 난데없이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자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복슬아, 퇴로 차단시켜.”
크릉. 핥핥핥!
복슬이는 한동안 신유현의 얼굴에 머리를 부비고 핥고 난리를 피우다가 1성 상시 던전의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 속을 가르는 한 줄기 빛살 같았다.
“저 늑대 새끼는 또 뭐야!”
천무진은 이를 악물며 복슬이를 노려봤다. 크기로 보나 기세로 보나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은 섣불리 복슬이에게 다가가지조차 못했다.
“그래 봤자 늑대 한 마리가 더 나왔을 뿐이다! 우리가 아직 유리해!”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은 머릿수를 믿었다.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제압할 수 있을 터.
“과연 그럴까?”
하지만 신유현은 그들을 비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부우우우웅!
그러자 어디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그 직후 신유현의 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더니 공중에 떠올랐다.
붉은 달빛을 받으며 신유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존재.
헤카톤 하이퍼 비틀 케이론이었다.
“뭐지?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인가?”
“코카서스 장수풍뎅이랑도 닮아 보이는데?”
길드원들 중 장수풍뎅이에 대해 아는 놈이 있었는지 아는 척을 해 왔다.
그들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케이론은 두 장수풍뎅이를 합친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어디서 또 저런 게…….”
하지만 그들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길드원들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괴수들이 신유현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아직 안 끝났다.”
“뭐?”
신유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두 마리만 해도 상당히 강력해 보이는데 더 있다고?
길드원들 사이로 은연중에 두려움이 퍼져 나갔다. 백랑이나 케이론 같은 거대 괴수가 또 나온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까망아.”
신유현은 조용히 까망이를 불렀다.
그러자 신유현의 발밑에서 자그마한 생물체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그리고 신유현의 다리를 꼬물꼬물 타고 어깨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닌가?
“야, 이……!”
“이 자식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어딜 사기를 치고 지랄이야!”
길드원들은 작고 귀여운 그림자 슬라임인 까망이를 보더니 분개했다.
저런 작고 약해 보이는 슬라임 따위에게 자신들이 긴장을 했다니!
“우리 까망이를 무시하면 큰코다칠 텐데?”
“흥. 슬라임 따위 회를 떠 주마!”
길드원들은 까망이와 신유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뀨?
그러자 까망이의 귀엽고 작은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 길드원들을 노려보더니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질렀다.
뀨우우우우우!
제 딴에는 위협적으로 포효를 내질렀겠지만 신유현이 보기에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딜 감히 슬라임 따위가!”
길드원들은 까망이를 무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신유현의 등 뒤로 그림자가 넓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철그럭, 철그럭.
이윽고 붉은 달빛 아래에서 눈에서 푸른 귀기를 피어올리는 스켈레톤들이 그림자 속에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뭐야?”
“스, 스켈레톤?”
“어째서 스켈레톤들이…….”
길드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까망이와 신유현을 바라봤다.
지금 나타난 스켈레톤은 검과 방패로 무장 중인 세이버 5기였다.
“이게 네놈이 믿는 구석이었구나.”
“스켈레톤 따위 우리 상대가 아니지.”
세이버들을 바라본 길드원들은 기세가 등등했다. 네크로맨서의 스켈레톤들은 약한 데다가 움직임도 느리고 몇 기 조종도 하지 못하니까.
신유현이 어째서 스켈레톤들을 불러낸 건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이버들의 숫자가 5기였을 때까지는.
뀨우우우우우우!
여전히 화가 나 있는지 까망이는 다시 한번 귀엽게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스켈레톤들을 계속 꺼냈다.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5기였던 세이버는 어느덧 30기가 되었고, 랜서도 30기나 나왔다. 거기다 아쳐 20기까지.
“뭐, 뭐가 이렇게 많아…….”
그 모습을 길드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게 왜 우리 까망이 신경을 건드려서는.”
신유현은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런 썅!”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의 판단은 빨랐다. 그들은 재빨리 몸을 돌리며 던전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우-!
던전 출입구에서는 백랑, 복슬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길드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저 개새끼가 있었지.”
이제야 길드원들의 얼굴에 절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괴롭혔던 사람들이 절망과 좌절에 빠졌던 것처럼.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도 그들과 똑같아진 것이다.
“끝내라.”
신유현은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쌔애액!
그러자 가장 먼저 뒤쪽에 있던 아쳐들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쳐들이 쏘는 마나를 머금은 강철 화살들은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길드원들과 아쳐들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쏘, 쏜다!”
“막아!”
“피해, 이놈들아!”
그들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쳐들이 쏘는 강철 화살을 피하거나 막기 위해서.
그중에는 동료의 등 뒤에 숨어서 강철 화살을 피하는 놈들도 있었다.
“쓰레기 놈들.”
그들의 모습에 신유현은 냉소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그나마 천무진을 비롯한 간부 놈들은 아쳐들의 화살을 잘 막아 냈다. 그래도 명색이 4성 초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세이버들이 움직이는 순간 의미가 없었다.
카이트 실드를 앞세운 세이버들은 길드원들을 압박해 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장창을 든 랜서들이 따르고 있는 상황.
“오, 오지 마!”
“저리 꺼져!”
길드원들은 질린 표정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세이버들은 길드원들을 카이트 실드로 압박하며 회색으로 빛나는 검을 휘둘렀다.
까깡! 푸푸푹!
“끄헉!”
세이버들의 회색검 한두 개는 튕겨 내거나 막을 수 있었지만, 그 뒤에 찔러져 들어오는 랜서들의 장창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세 방향에서 엇박자로 찔러 들어온 장창 세 개가 한 길드원의 명치와 옆구리를 꿰뚫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유현은 말없이 손가락을 들더니 천무진을 향해 가리켰다.
“이 자식이!”
그러자 천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천무진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
파앙! 쌔애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천무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런 젠장!”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던 천무진은 자리에 멈춰 서며 쌍검을 교차시켰다.
빙설검, 설백.
불꽃검, 염화.
레어 등급의 쌍검으로 각각 얼음과 화염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스아아악!
천무진은 교차시켰던 쌍검을 십자가 형태로 휘둘렀다.
스아아아악!
그러자 얼음과 화염의 칼날이 서로 교차하며 천무진을 향해 헤카톤 하이퍼 비틀, 케이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드드득!
하지만 얼음과 화염의 칼날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갈려 나갔다.
케이론이 회전하는 뿔을 앞세우고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런 젠장!”
그 모습을 본 천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 직후, 케이론이 지면에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파 폭발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로 인해 흙먼지가 수 미터 넘게 치솟아 올랐고, 케이론이 떨어진 중심부는 초토화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다가 충격파에 휘말린 일부 길드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케이론이 떨어진 중심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
케이론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충격파를 정면에서 받아 낸 천무진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서 케이론이 의기양양하게 뿔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끝났군.’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길드장인 천무진이 무릎을 꿇은 상황. 더 이상 저항은 무의미했다.
“쓸어라.”
신유현은 무심한 눈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스켈레톤의 안광에서 푸른 귀기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서걱! 서걱! 푹푹!
“크아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
“내, 내 눈이……!”
그 직후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신유현은 흑야의 날개 길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들었던 정보도 있었고, 무엇보다 슈브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흑야의 날개의 정보를 너무 잘 조사를 해 왔다.
그 덕분에 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김성훈처럼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다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 혹은 생활비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거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속여서 돈을 빌리게 만들었다.
그 후 도박을 시키거나, 이자를 세게 때리는 등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빚을 갚지 못했을 경우지.’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길드원들을 노려봤다.
놈들은 돈을 빌린 이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눈이나, 신장 등등 신체의 일부를 적출 혹은 절단해서 살해하고, 시체는 던전에 던져서 실종 처리를 시켜 왔으니까.
그러니.
“네놈들도 똑같이 당해서 죽어라.”
신유현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버들에게 팔다리가 잘려 나간 길드원들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차가운 던전 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시간이 지나면 과다출혈로 죽을 테지.
지금까지 눈앞에 있는 놈들이 살해했던 불행한 사람들처럼.
* * *
얼마 지나지 않아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 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는 없었다. 전부 사망한 것이다.
남은 건 길드원들이 경주에 쓰기 위해 살려 놓은 약 20마리 정도 되는 로드러너뿐.
“전부 잘 챙겨 둬라.”
신유현은 스켈레톤들에게 뒷정리를 명령했다.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이 사용한 아티팩트 장비들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범용성이 높은 대중적인 장비들이었기에 사용한다고 해도 흑야의 날개 길드원들의 물건이라고 의심받을 일은 없었다.
‘일부 커스텀된 게 있긴 하지만 조금만 손보면 되지.’
그렇게 한다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터.
뀨!
신유현은 스켈레톤들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까망이를 쓰다듬으며 놀아 주었다.
그사이 스켈레톤 세이버 한 마리가 천무진이 쓰러져 있는 장소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세이버 1호였다.
세이버 1호는 천무진을 바라봤다.
천무진은 피를 토한 후에도 케이론과 일전을 벌였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초진동파에 당해서 쓰러졌다.
그런 그의 옆에는 쌍검이 두 자루 놓여 있었다.
빙설검과 불꽃검.
세이버 1호는 가만히 쌍검을 바라봤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이 장비하고 있던 회색 장검과 카이트 실드를 바닥에 내던졌다.
텅!
그 후 바닥에 떨어져 있던 빙설검과 불꽃검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