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5화
“괜찮다. 어차피 가문의 위세를 믿고 날뛰는 애송이일 뿐이니. 뭐 실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호구 새끼나 다름없지.”
천무진은 신유현을 비웃었다.
김성훈을 비롯한 황금 화살의 가치가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12명에 불과한 소규모 길드와 계약하기 위해 20억이라는 거금을 내던지다니.
자기 딴에는 그게 멋있어 보였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천무진이 보기에는 겉멋만 든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럼 돈을 더 요구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멍청아. 뭐든 적당해야 하는 법이다. 애새끼가 10억에서 20억을 불렀는데 거기서 더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천무진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20억에서 더 요구를 했었다면 신유현이 황금 화살 길드를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파천검가의 직계라고는 해도 그 이상의 과한 지출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니까.
“괜히 욕심 부렸다가 20억이 아니라 2억도 못 먹는 수가 있으니 말이야.”
“과연 그렇군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천무진의 말에 경호원 두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천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내가 뭐라 그랬어? 이제 길드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습관이 돼서 아직 잘…….”
천무진의 신경질에 경호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흑야의 날개 길드.
그 전신은 폭력 조직으로, 지금 하고 있는 불법 사채와 사기 도박 같은 사업들은 그때부터 이어 오던 것이었다.
“아무튼 20억이 들어오면 바로 작업 쳐야 하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라.”
“네. 그런데 김성훈 딸년은 어떻게 할까요?”
“김성훈의 딸?”
강우혁의 말에 천무진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겨우 10살이 된 김성훈의 딸.
김성훈의 아내는 임신중독으로 딸을 낳다가 사망했으며, 그 영향인지 겨우겨우 태어난 딸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심지어 희귀 불치병까지 걸려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는 상황이었다.
“김성훈이 없어지면 뭐 별수 있나. 부모님 곁으로 가도록 놔둬야지.”
천무진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김성훈의 딸은 비싼 약과 생명유지장치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김성훈의 부성애 덕분에.
그러니 김성훈이 사라진다면 손을 쓸 것도 없이 자연스레 부모의 곁을 따라가게 될 터였다.
“이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죽고 나면 장기 밀매를 해도 되겠는데?”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소녀 하나를 병원과 손을 잡고 해 먹는 건 간단했다. 병원에 돈 좀 찔러 주면 될 테니까.
“그러고 보니 김성훈의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장이 우리 도박장의 단골 고객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럼 일이 더 쉬워지겠군.”
천무진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흑야의 날개 길드는 특이한 도박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인기가 좋아서 높으신 분들도 종종 찾아올 정도.
그중 한 명이 공교롭게도 김성훈의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병원장이었던 것이다.
“준비 철저히 해라. 황금 화살 길드원 놈들이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알아들었어?”
“넵.”
“걱정하지 마십시오. 던전에서 헌터들이 실종되는 거야 흔하지 않습니까?”
천무진의 경고에 강우혁은 걱정 말라며 가슴을 두드렸다.
던전은 인류에게 미스테리였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도 그렇고, 던전 스탬피드가 그렇다.
그뿐 아니라 안전하다고 증명된 던전에서 돌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던전만 관련되었다 하면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현상이나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그 때문에 헌터들이나 초인들은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던전을 공략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그놈들은 알고 있는 게 많아서 살려 두면 안 좋아.”
천무진은 황금 화살 길드원들을 처리하려는 이유는 생명보험금 때문만이 아니었다.
흑야의 날개 길드에서 하고 있는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조금이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넘어오지 않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황금 화살 길드원들이 파천검가로 가면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특히 도박장만큼은 결단코 드러나서는 안 됐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면 천무진은 황금 화살 길드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친구들까지 모조리 죽여서라도 입을 막을 생각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할 거면 다 없애 버려야지.”
천무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각.
천무진은 서울시 외곽의 으슥한 곳에 와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별빛들과 달이 떠올라 있는 어두운 밤하늘.
주위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들과 풀숲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츠츠츠츳!
하얗게 빛나는 공간의 균열이 허공에 생겨나 있었다.
1성 던전, 타락한 로드러너의 경주장.
흑야의 날개 길드가 관리하는 1성 상시 던전이다.
천무진은 던전 게이트 주변을 둘러봤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이것들아!”
던전 게이트 주변은 분주했다.
흑야의 날개 길드원 15명 정도가 알 수 없는 기자재들을 던전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천무진을 포함한 흑야의 날개 핵심 간부 5명은 길드원 15명에게 이것저것 명령을 내렸다.
‘정말 난 머리가 좋단 말이야.’
그들을 바라보며 천무진은 씩 미소를 지었다.
처음 상시 던전을 얻었을 때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1성이었으니까.
1성은 가치가 없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걸 어디다 써먹지 생각을 하다가 천무진은 엄청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로드러너들을 경마로 쓸 생각을 하다니.’
타조와 비슷하게 생긴 1성 마수, 타락한 로드러너.
뛰어난 각력으로 빠른 움직임을 자랑하지만, 공격력은 형편없는 마수다.
천무진은 그런 로드러너들의 특성을 이용하면 경마도박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격성이 다른 마수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기에 주의만 기울인다면 관리하는 게 어렵진 않을 테니까.
천무진은 1성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번쩍! 부우웅!
몸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던전 내부로 들어온 천무진.
그의 눈앞에 1성 던전 내부의 전경이 펼쳐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걸려 있는 기분 나쁜 붉은 달.
그리고 그 아래에 높이 10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벽들이 원형으로 솟아나 있었다.
마치 콜로세움 같은 장소였다.
그 콜로세움의 중심에는 미로처럼 벽이 세워져 있었고, 그곳이 바로 로드러너들의 경주장이었다.
“작업은 잘 되어 가고 있냐?”
“오셨습니까?”
천무진의 말에 현장을 감독하던 간부 하나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늦어도 새벽 2시 전에는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밤 12시마다 리셋만 안 되면 굳이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모든 던전이 다 그러니.”
천무진은 혀를 찼다.
로드러너들을 이용해 경마도박장을 만든다는 계획은 성공적이었으나, 여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존재했다.
바로 모든 상시 던전은 24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리셋 된다는 사실이었다.
로드러너의 경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던전 내부를 경마장처럼 꾸미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설비가 필요했다.
던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드러너들을 경주장 안으로 유도하기 위한 장치나 가벽, 그리고 던전 내부를 밝히는 전등까지.
그 외에도 손님을 받기 위한 여러 준비들을 세팅해놓아야 했다.
하지만 밤 12시마다 던전이 리셋되면 이 모든 것을 새로 전부 재설치해야 한다.
그 때문에 천무진은 어쩔 수 없이 던전 내 장비 전문 설치팀까지 따로 꾸려 놓았다.
“그래도 그만큼 이익도 크지 않습니까?”
흑야의 날개 길드 간부 중 하나인 김상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아니면 누가 이런 개고생을 사서 하겠어?”
로드러너 도박장에서 흑야의 날개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했다.
고액의 참가료와 수수료, 그리고 돈을 잃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채 사업까지.
이곳에서 사채까지 쓰고 그 돈마저 모두 잃은 헌터들은 흑야의 날개 길드의 노예가 되었다.
그렇게 노예가 된 이들을 던전 채굴에 보내져, 평생 갚지 못할 돈을 벌어야만 했다.
즉, 이곳 하나만으로 흑야의 날개 길드의 모든 사업이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만큼은 우리가 직접 잘 관리를 해야지.”
흑야의 날개 길드의 핵심 간부는 총 6명이었다.
그중 운영팀을 관리해야 하는 부길드장을 제외한 간부 5명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로드러너 도박장은 흑야의 길드 날개의 주 수입원.
설치팀이 작은 실수라도 해서 도박장 운영이 불가능해지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그들은 매일같이 직접 나와서 이곳을 관리했다.
“조만간 황금 화살 길드 놈들도 처리해야 되는데, 그쪽 준비도 잘하고 있지?”
“네. 적당한 던전 하나 물색해 두었습니다.”
황금 화살 길드원들을 묻어 버리기 위해서.
“그럼 언제쯤 돈을 보내오려나? 슬슬 빚 청산을 해야 할 텐데.”
천무진은 신유현으로부터 돈을 받을 생각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콰콰콰쾅!
던전 내부를 밝히는 전등에 전력을 공급하던 마정석 발전기가 폭발하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냐!”
갑작스러운 상황에 천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열이 뻗쳐 올랐는지 옆에 있던 김상철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이 새끼야! 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폭발이 일어나!”
“죄, 죄송합니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김상철 또한 갑작스러운 일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폭발이 일어난 마정석 발전기를 향해 달려갔다.
“젠장! 오늘 장사 텄네.”
천무진은 분통이 터졌다.
로드러너 도박장에서 하루에 움직이는 돈만 해도 최소 수천만 원. 그리고 마정석 발전기의 가격 또한 수백만 원에 달했다.
그것을 하루아침에 날린 셈이었으니 열이 뻗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전하고 튼튼하다면서 왜 폭발이 일어나고 지랄이야.”
천무진은 욕설을 내뱉으며 마정석 발전기를 판매한 업자 놈을 조질 계획을 세웠다.
그때.
“그야 내가 터뜨렸으니까?”
“누구냐!”
천무진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곳에 붉은 달 아래에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검은 코트와 망토를 걸치고 있는 낯선 사내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천무진.”
“누구지?”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에 천무진은 가늘게 뜬 눈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하지만 사내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러면 알겠나?”
사내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사내의 모습이 한 번 흐릿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네, 네가 어째서 여기에?”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천무진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인물이 눈앞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