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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104화 (104/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4화

“그 빚, 얼마입니까?”

“파천검가의 현무전 전주님이시면 이미 그 정도 정보는 파악하고 계실 텐데요? 그리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저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형님을 데려가려고 노력했는데요.”

천무진은 능글맞은 태도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김성훈은 옆에서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참 잘 하네요. 노력을 한 게 아니라 공사를 친 거겠지.”

“예?”

갑작스러운 신유현의 도발적인 반말에 천무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말이 짧으시네?”

“천무진 길드장님, 말조심하세요. 저희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면.”

그때 이시아가 싸늘한 살기를 내뿜으며 경고했다.

파천검가의 직계인 신유현이다.

같은 4대 명가의 직계가 아니고서야 말을 높이는 건 오히려 가문의 위세를 실추시키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신유현이 평상시에 다른 이들에게 존칭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천무진은 달랐다.

신유현은 그를 존중해 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또한 존중을 해 줄 이유도 없었다. 파천검가의 이름에서 벗어나, 신유현 개인의 능력과 세력만 놓고 이야기해도 말이다.

“설마 그럴 리가요. 저희 같은 영세 길드가 어떻게 파천검가와 척을 지겠습니까?”

이시아의 경고에 천무진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신유현에게 겁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다른 직계들과 비교하면 신유현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천무진은 신유현을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까부는 철부지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신유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무진에게 계속 반말을 던졌다.

“……10억.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건 우리가 들인 노력 아니겠습니까?”

“김성훈 길드장님은 그쪽이랑 계약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지 않습니까?”

천무진은 계속해서 반말을 던지는 신유현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댔다.

김성훈에게는 꼬박꼬박 길드장님이라고 호칭해 주는 반면, 자신에게는 찍찍 반말을 내뱉으니 더더욱 참기 힘든 듯했다.

“20억.”

“네?”

“20억을 주겠다. 그걸로 황금 화살에는 손을 떼라.”

“…….”

신유현의 말에 천무진은 고민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지금껏 1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받아 낼 생각도 없이 황금 화살을 흡수하려고 한 이유는, 그 또한 황금 화살이 지닌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김성훈의 실력을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황금 화살에 속한 다른 궁수들도 실력이 출중했으니까.

천무진은 그들을 쉬지 않고 던전에 투입시킨다면 10억쯤은 금방 다시 회수할 수 있는 돈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들처럼 빚 때문에 흑야의 날개에 흡수된 놈들로 그렇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세간에서는 그 행위를 던전 채굴이라 불렀다.

‘하지만 20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쉬지 않고 굴리다 보면 그만큼 벌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 일.

리스크 없이 그만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저놈에게 돈만 빌리지 않았어도.’

천무진이 생각에 잠긴 사이, 김성훈은 억울함이 깃든 눈으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김성훈의 인생 최대의 실수는 흑야의 날개 길드에게 돈을 빌린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불치병에 걸려 있었으니까.

병원비와 약값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나갔다.

그나마 김성훈이 실력 있는 궁수 직업의 헌터였기에 어떻게든 약값과 병원비를 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그래서 평소 자신을 형님이라며 잘 따르던 천무진에게 돈을 빌렸다.

천무진이 어떤 놈인지 알지 못한 채.

그 결과, 천무진에게 빌린 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걸 빌미로 천무진은 황금 화살 길드를 호시탐탐 노리게 된 것이다.

“좋습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천무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로 순순히 물러난 것이다.

신유현은 속으로 의외라는 표정으로 천무진을 바라봤다.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천무진이 어떤 인물인가?

굉장한 수전노이며 악덕 고리대금업자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속아서 불법 도박에 빠져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된 초인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실제로 김성훈도 도박을 권유받았지만, 간신히 거기까진 손을 대지 않았기에 지금껏 길드를 넘기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됐군요. 김성훈 길드장님, 저희와 계약하시겠습니까?”

“네! 무조건 합니다!”

김성훈은 즉답했다. 흑야의 날개 같은 놈들보다 눈앞에 있는 신유현과 계약을 맺는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천무진 놈과 작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돈은 조만간 입금하지. 이제 김성훈 길드장님과 황금 화살 길드가 파천검가에 소속되었다는 걸 명심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그러죠.”

신유현의 말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재현 부장이 울려고 하겠네.’

신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설마하니 황금 화살과 같은 소규모 길드와 계약하면서 20억이나 지출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김재현이 보일 반응을 떠올리자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유현은 결코 과한 지출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황금 화살은 20억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가진 곳이니 말이다.

‘일단 경고를 하긴 했는데…….’

신유현은 슬쩍 천무진을 바라봤다.

날카롭게 쭉 째진 눈과 얼굴에 길게 나 있는 칼자국.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신유현은 속으로 웃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천무진을 속일 함정 카드를 깔아두었으니까.

천무진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었다.

* * *

향후 빚을 받아야 할 절차까지 이야기를 끝낸 천무진은 좋은 거래였다며 나름 쿨하게 돌아갔다.

그 후에도 신유현과 이시아는 김성훈과 계약과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성훈은 이제 흑야의 날개 놈들에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며 신유현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황금 화살 길드원들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떠나갔다. 지금껏 황금 화살 길드원들은 흑야의 날개 길드의 등쌀에 눌려 기를 못 피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무진 일행과 김성훈이 사라지자 이시아가 신유현에게 입을 열었다.

“전주님, 묻어 버릴까요?”

대화가 끝날 때까지 꾹 참고 있었을 뿐, 천무진의 태도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천무진의 태도는 감히 파천검가의 직계에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다른 직계 형제인 신철민이나 신유라의 앞이었다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조아리고 있었을 터.

아니, 애초에 대화에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계약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혼자 카페 구경을 하고 있던 디아가 다가와서는 물었다.

“언니, 흙놀이 해영?”

“응? 아니. 흙놀이는 아니고 쓰레기를 묻어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이시아는 디아의 말에 잠깐 당황했다가 바로 변명했다.

그러자 이시아의 변명을 들은 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쓰레기를 땅에 묻으면 안 돼영. 땅이 안 좋아져여.”

“그, 그래? 그럼 우리 디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그러자 디아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쓰레기는 태워야죠.”

“……!”

디아의 말에 이시아는 큰 깨달음이 왔다.

“그렇지. 쓰레기는 태워야지.”

생각해 보니 묻는 것보다 태워 버리는 게 더 나아보이긴 했다.

이시아는 다시 디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타지 않는 쓰레기는 어떡하니?”

“타지 않는 쓰레기가 있어영?”

이시아의 말에 오히려 디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돌아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고양이 귀가 한 번 쫑긋 세워졌을 정도였다.

“그런 쓰레기들도 있단다. 도자기나 철 같은 것들도 있으니까.”

“아, 그런 건 더 크고 센 불로 태우면 돼요.”

“……!”

이시아는 두 번째 깨달음이 왔다.

“그렇구나. 더 센 불로 태우면 되는구나.”

“넹. 흑염으로 태우면 다 타영.”

디아는 알고 있었다.

신유현의 다크 소울 블레이즈, 즉 흑염이라면 전부 다 불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러려면 무지막지하게 마나가 연소되지만 말이다.

“우리 디아는 왜 이렇게 귀엽지?”

이시아는 디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후냥.”

디아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이시아의 손길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시아와 함께 카페에 오면서 친해진 모양.

하지만 만약 이시아가 신유현을 경계하거나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결코 디아와 친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디아는 물론, 다른 세븐 아크스들은 주인인 불사왕에게 적의를 가진 존재에게는 자비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디아를 쓰다듬던 이시아는 신유현을 바라봤다.

마치 태워 죽이죠, 라는 눈빛으로.

“묻어 버릴지, 태울지는 일단 좀 지켜보고.”

“사람을 붙여 둘까요?”

“아니, 그냥 놔둬. 생각이 있으면 그놈들도 가만히 있겠지만…….”

신유현은 말꼬리를 흐렸다.

천무진은 잔머리를 잘 굴리는 만큼 야망도 큰 인물이었다. 흔히 말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자승자박 스타일.

그리고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 대 쳐 맞기 전까지는.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건가요?”

“일단 황금 화살 길드에 사람을 붙여 놔.”

“황금 화살 길드에요?”

“그래. 만약 흑야의 날개 놈들이 움직인다면 어디를 가장 먼저 가려고 하겠어?”

“황금 화살 길드겠군요.”

“그렇지.”

흑야의 날개 길드가 움직인다면 가장 먼저 황금 화살 길드에 손을 쓰려고 할 터.

신유현의 의도를 알아챈 이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김성훈의 빚을 청산하면 움직이겠지. 하지만…….’

신유현은 속으로 웃었다.

이미 천무진과 대화를 나누면서 함정 카드를 깔아 두었다.

그리고 이제 신지아에게 받은 천의 가면, 페르소나를 사용할 때가 다가온 모양이었다.

* * *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카페에서 나온 직후, 천무진의 경호원이자 직속 부하 중 한 명인 강우혁이 말을 걸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빚 청산이 끝나는 대로 처리해야지.”

“역시.”

천무진의 대답에 강우혁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들은 김성훈을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신유현에게 돈을 받으면 황금 화살 길드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미 그럴 작정으로 그들을 협박해서 생명보험에도 가입시켜 두었다.

김성훈의 빚은 신유현에게 받아 내고, 황금 화살 길드원들을 처리하면 생명보험료까지 받아 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파천검가를 상대로 사기를 쳐도 괜찮을까요?”

강우혁과 함께 천무진의 경호를 맡고 있던 또 다른 부하 한 명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천무진은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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