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3화
신유현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마셔 보네.’
초코 프라페를 들고 자리에 앉은 신유현.
그동안 이래저래 바빠서 이렇게 한가로이 여유를 즐길 틈도 없었다.
‘음. 이 맛이지.’
차갑고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호로록!
신유현의 옆에서 디아 또한 초코 프라페를 삼키듯이 마시고 있었다.
현재 까망이는 신유현의 그림자 속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슈브는 아버지와 함께 가문의 지하 감옥에서 오르카를 신문하는 중이었다.
신유현은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디아야, 천천히 마셔. 그러다 머리 아파진다?”
“넹.”
호록. 호록.
디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빨대를 빨아들였다.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던 신유현은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이시아도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랜만인지,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음미하고 있었다.
카페인이 충전된 덕분인지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디아도 그렇고, 이시아도 그렇고 둘 다 카페 음료를 좋아하는 모양.
“현무전에 카페를 한번 차려 볼까?”
“네? 카페요?”
갑작스러운 말에 이시아가 신유현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문 안에 있을 때는 이런 건 마시기 힘드니까.”
인스턴트 커피나 편의점 컵커피도 맛은 나쁘지 않지만, 역시 가끔씩은 이런 걸 마시고 싶었다.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새삼 다시 고민해 보니 진짜 카페를 하나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있으면 좋죠.”
“마스터! 카페 차리시게요?”
이시아와 디아는 신유현의 말에 눈빛을 반짝였다.
커피뿐만 아니라 디저트 종류에도 환장하는 두 사람으로서는 대환영이었다.
“일단 고민 좀 해 보고.”
신유현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딸랑.
그때 카페 입구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에 이끌려 카페 입구로 시선을 돌리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카페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오셨네요.”
그가 바로 신유현이 영입하려고 한 황금 화살 길드의 길드장, 4성 C급 헌터 김성훈이었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성훈이 고개를 숙이며 먼저 인사를 해 왔다.
“네, 안녕하세요.”
신유현은 김성훈의 인사를 받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김성훈은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설마 파천검가의 직계가 먼저 악수를 청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황금 화살과 같은 소규모 길드 입장에서 4대 명가는 하늘 위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헌터 협회조차 조심할 정도이니 소규모 길드는 그 어떤 갑질을 당한다고 해도 그저 참아야만 하는 위치였다.
김성훈은 신유현과 악수를 나눈 이후에도 계속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이야기는 들으셨죠?”
“네. 저희 길드와 전속 계약을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조율을 해보아야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 드리겠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신유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김성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어째서 저희 같은 소규모 길드를 원하시는 겁니까?”
김성훈은 제안을 받은 이후 계속 고민을 해 보았지만, 어째서 파천검가에서 황금 화살과 전속 계약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이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현무전이라면 더 좋은 길드와도 계약을 맺을 수 있을 터.
그런데 어째서 황금 화살과 전속 계약을 맺으려는 것일까?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그때, 잠시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이던 신유현이 입을 열었다.
“미래의 가능성 때문이죠.”
“네? 미래요?”
“네. 전 지금보다 황금 화살 길드가 더 강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요.”
신유현은 먼 훗날 황금 화살이 얼마나 강대한 길드로 성장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고작 12명이서 게티아 한 놈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실력을 지닌 길드.
그게 바로 황금 화살 길드였다.
투자할 가치는 차고 넘쳤다.
“저는 황금 화살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장 김성훈 길드장님만 해도 5성의 벽을 두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길드장인 김성훈을 제외한 나머지 헌터들도 가히 엄청나다 할 수 있는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 그걸 어떻게…….”
신유현의 웃는 말에 김성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유현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현재 김성훈은 5성이 되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앞으로 한두 달 안이면 5성의 벽을 넘을 수 있을 터.
‘그리고 확실한 지원까지 해 준다면 7성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이전 삶에서 김성훈은 결국 7성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게티아들과 싸움으로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도 7성에 올랐을 것이라고 신유현은 내다봤다.
이번 생에서 자신이 확실한 지원을 해 준다면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김성훈이 7성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게티아 놈들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희 가문의 정보력은 좋으니까요.”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이시아를 바라봤다.
“……?”
한때 첩보 전문인 흑영대 소속이었던 이시아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김성훈과 황금 화살 길드에 대해 조사를 해 보았지만 관련한 정보를 얻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유현이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던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러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이시아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무표정을 유지했다.
“해서 저는 김성훈 길드장님이 계시는 황금 화살 길드와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그, 그렇군요.”
신유현의 러브콜에 김성훈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김성훈이 봐도 신유현이 내민 계약 조건은 상당히 괜찮았다.
거기다 상대는 대한민국 4대 명가 중 하나인 파천검가의 직계 중 한 명.
계약 상대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계약을 하기에는 망설여졌다. 신유현이 믿을 수 있는지 인물인지 아닌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김성훈의 고민을 신유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예?”
조용한 신유현의 말에 김성훈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가주를 노리고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래서 저만의 세력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미 6성 A급 헌터이자 적법사인 이채화 님이 도와주시기로 했고, 적탑과 전속 계약을 맺었습니다.”
“……!”
신유현의 말에 김성훈은 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6성 A급 헌터 적법사, 이채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광역계 폭발 마법을 다루는 이채화는 혼자서도 어지간한 길드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실력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끄는 적탑에 속한 화염 마법사들 또한 유명 길드와 파티에서 쉴 새 없이 파견을 요청받을 만큼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적탑과 전속을 계약을 맺었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파천검문의 가주를 노리기엔 부족합니다. 그래서 다른 유망한 길드와 초인분들까지 계속해서 인재를 영입할 계획입니다.”
“하, 하지만 그러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김성훈은 빠르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황금 화살은 소규모 길드에 불과하지만, 그 규모만 하더라도 운영하는 데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런데 적탑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유망한 길드와 초인들을 영입하려고 할 계획이라니, 거기에 얼마나 자금이 필요할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아무리 파천검가의 직계라 할지라도 그만한 자금을 융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3성 상시 던전을 하나 가지고 있으며, 점점 더 늘려 나갈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잡은 마수들이 좀 많아서 자금이 부족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남두그룹의 남연아 씨와도 잘 아는 사이라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스폰서를 부탁할까 생각 중입니다.”
“아…….”
순간 김성훈은 기억이 났다.
파천검가의 셋째가 남두그룹의 장녀인 남연아를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구출해 왔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남두그룹의 장녀인 남연아 씨를 구해 오신 분이 신유현 님이셨네요.”
“네. 운이 좋았죠. 4성 헌터 분들이 도와주셨으니까요.”
“남연아 씨가 신유현 님이 아니었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봤습니다만…….”
“저야 그냥 조금 도움을 줬을 뿐입니다.”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 이야기로 김성훈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남연아를 구출해 온 인물. 그런 인물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직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신유현 님의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김성훈은 말꼬리를 흐렸다.
신유현과 전속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한 가지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흑야의 날개, 그들과 문제가 있지요?”
“어, 어떻게?”
신유현의 말에 김성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계약을 하기 전에 미리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아…… 그, 그러셨군요.”
김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을 맺기 전에 상대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신유현은 이전 삶을 통해서 이미 흑야의 날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그때 신유현은 날카롭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딸랑.
카페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내 세 명이 들어왔다.
흑야의 날개 길드장과 호위들이었다.
짧은 꽁지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얼굴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 탓에 더더욱 사나운 인상을 지닌 30대 후반의 사내.
그가 바로 흑야의 날개 길드장인 천무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천무진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신유현이 있는 카페 테이블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신유현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드러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으니까.
“우리 형님이 대단하신 분과 만나고 계셨네요. 지켜보고 있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천무진은 테이블로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았다.
허락도 없이 멋대로 합석을 하는 그 모습에 신유현은 물론 이시아까지 눈썹을 꿈틀댔다.
그리고 당연히 김성훈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내가 왜 네 형님이야!”
“아니, 형님. 형님이 저한테 빚진 게 얼만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닙니까?”
“뭐야?”
김성훈은 천무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천무진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기서 목줄을 쥐고 있는 자는 자신이었으니까.
“형님이 저한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되죠.”
“…….”
천무진의 말에 김성훈은 말없이 이를 갈았다.
흑야의 날개.
그 정체는 불법 사채와 도박으로 사기를 일삼는 길드였다.
그리고.
‘내 살생부 리스트에 있는 놈들.’
신유현은 속마음과 달리 미소를 지으며 천무진에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