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1화
파천검가의 장남이자 가장 가주 자리에 가까운 인물.
네이비 싱글 코트를 입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인 신성일을 닮아서인지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형님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예상치 못한 방문에 신유현은 살짝 놀랐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다.”
“이야기요?”
신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그러자 신철민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수행원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그 모습에 신유현은 대충 감이 왔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넌 정말로 가문의 가주를 노리고 있는 것이냐?”
쿠구구구궁!
신철민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위압감과 살기가 흘러나왔다.
전신을 압박해 오는 5성 상급 초인의 기세.
눈빛만으로도 신유현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유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마스터의 경지인 아버지 신성일의 기세를 버틴 적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게티아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
신유현은 내심 피식 웃음을 흘렸으나, 다급한 척 입을 열었다.
“그만 멈춰라.”
“그만 멈추라고? 신유현, 내가 우스워 보이나?”
신유현의 반말에 신철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기세를 올렸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님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뭐?”
순간 신철민은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신유현의 말에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죽음의 기운을.
“마스터에게 위해를 가할 거면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싸늘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 어느 틈에?’
신철민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악마의 모습이 되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슈브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꼬리는 당장이라도 꿰뚫을 듯 신철민의 뒷목을 노리고 있었다.
신유현이 멈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신철민의 목은 꿰뚫렸을 테지.
“슈브.”
“…….”
재차 자신을 타이르듯 부르는 신유현의 말에 슈브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철민의 목에서 꼬리를 치웠다.
“당신이 슈브였나. 역시 인간이 아니군.”
신철민은 슈브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악마의 모습을 한 슈브가 신유현의 소환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신유현이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은 가문으로 돌아온 레이드 공략대에게도 알려졌다.
신유현의 소환수를 구경하려고 현무전에 찾아오는 초인들도 있을 정도였다.
“한번만 더 마스터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각오하는 게 좋으실 거예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상냥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하는 슈브.
하지만 여전히 슈브의 꼬리에는 붉게 빛나는 마력 칼날이 입혀져 있었다.
허튼 짓을 하면 언제든지 꼬리를 날릴 테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신유현에게 충성하지?”
“한번 마스터는 영원한 마스터이니까요.”
“아쉽군.”
변함없는 슈브의 태도를 확인한 신철민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재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비록 슈브가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강자라면 충분히 영입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거기다 슈브는 아름다운 미녀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슈브는 불사왕 이외에 존재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방금 전 슈브의 대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신유현, 정말 너는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냐?”
다시 한번 신철민은 질문을 던졌다.
“예.”
신유현은 즉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었군. 포기할 생각은…… 없겠지?”
“예.”
신유현은 가문의 가주가 되기 위해 여러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천천히 실행 중이었다.
4성 초인이 되고 강해지는 것도 계획 중 하나였다.
최종적으로는 가문의 가주 자리조차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를 하나로 모아서 게티아 놈들에게 대항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녀가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
신철민은 힐끔 슈브를 바라봤다.
확실히 신유현의 소환수라고 하는 그녀는 강자였지만 한 명뿐이었다.
그에 반해 신철민은 파천검가 내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이끌고 있었다.
가문에서 가장 차기 가주에 가까운 인물.
신유라가 견제를 하고 있지만 살짝 역부족이긴 했다.
신철민의 세력은 청룡전을 시작으로 여러 부속전들이 딸려 있었으니까.
청룡검대뿐만이 아니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들, 마법사들이 기거하는 부속전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청룡전은 신유현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현무전이기도 했다.
이미 청룡전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재들이 활약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죠. 해 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유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신철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나는 내가 이룬 걸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신철민은 지금의 세력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가주가 되지 못한다면 전부 잃어버릴 수 있었다.
각 검전의 전주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낸 모든 것들을 가주에게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주가 된다 하더라도 형님의 세력은 가지가지 않을 테니.”
“뭐?”
신유현의 말에 신철민은 의아한 듯 바라봤다.
후계자 쟁탈전이 끝나면 각 검전은 차기 가주의 밑으로 귀속된다.
그런데 그걸 받지 않겠다고?
“아니, 애초에 형님 세력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 가지만 얻으면 되니까요.”
“그게 뭐지?”
“형님이요.”
신유현은 뜨거운 눈으로 신철민을 바라봤다.
가문에서 손꼽히는 인재는 누가 있을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문의 직계들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신철민만 해도 이전 삶에서는 6성의 벽을 뚫은 강자였고, 이끌고 있는 청룡전의 세력은 대규모 길드 정도는 되었다.
그런 그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형님이 내 편이 된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테지.’
이미 신유현은 가문의 모든 인원들과 자원들을 전부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 인원 중에 신철민도 예외는 아니었고, 백호전의 신유라나 무기고의 신지아도 마찬가지였다.
형과 누나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으면 굳이 싸울 필요 없이 각 검전의 세력을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재밌군. 나를 들러리로 쓰겠다는 거냐?”
“형님이 들러리요?”
그 말에 신유현은 한 차례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형님이 가주가 되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놈들이 있다면 한 가지뿐이겠죠. 어깨 위의 머리는 장식품인 빡대가리 놈들일 겁니다.”
신철민이 파천검가의 가주가 되지 못한다고 그 힘과 재능과 세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형님이 가진 힘과 세력은 더더욱 강해질 겁니다. 제가 가주가 된다면 도움을 드릴 수도 있겠죠.”
“…….”
신유현의 웃는 말에 신철민은 살짝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직계들은 가문의 가주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경쟁자들이다.
그렇기에 결코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쟁에서 탈락한 직계들은 가문에서 쫓겨난다.
최악의 경우 심한 다툼 끝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신유현은 가주가 되면 자신을 원한다고 말할 뿐만이 아니라 도움까지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신철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간단합니다. 모든 건 가문을 위해서니까요. 그리고 아버지와 숙부님 같은 관계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유현은 가문을 위해서라고 핑계를 댔다. 신철민은 파천검가의 힘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 두 분은 특별한 경우다. 애초에 숙부님은 경쟁을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협력하셨지.”
“경쟁한 끝에 승자를 따르는 걸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거로군.”
“예, 가문의 정점을 노려볼 생각입니다.”
“그럼 내가 가주가 된다면 나를 따르겠다는 거냐?”
“네, 물론이죠.”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동일하게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단, 주작전은 그냥 놔두세요.”
“주작전을?”
“네.”
신유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주작전의 전주는 공석이었다.
전주였던 신철진이 사망했으니까.
하지만 조만간 새로운 전주가 올라갈 것이다.
“주작전이라면 아버지께서 철호에게 맡길 모양이시더군.”
“네,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건 가신이신 이주혁 부전주님이 하겠지만요.”
파천검가의 막내인 신철호는 나이에 비하여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맞으나, 어린 나이만큼이나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당장은 부전주인 이주혁이 곁에서 보좌하겠지만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신철민이나 신유라가 틈을 파고들려 할지도 몰랐다.
신유현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주작전은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 나가는 쪽으로 놔뒀으면 합니다. 물론 형님께서 동의를 한다면요.”
사대수호검전은 각각 따로 발전해 나가는 편이 나았다.
각 검전마다 특색이 존재한 만큼 동일하게 세력이 커져야 균형이 맞으니까.
“알겠다.”
신유현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신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신유현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모든 건 가문을 위해서니.”
가주 후계자 쟁탈전은 결국 가문 내의 경쟁이었다.
만약 그로 인해 검전의 세력이 쪼개진다면 가문 전체의 힘이 약해질 수 있었다. 그런 일은 가문의 직계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문의 힘과 명예였으니까.
“가주 후보자 쟁탈전에서도 이기는 사람을 따르는 걸로 하지.”
“형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흥, 말은 잘하는구나.”
신철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가주 후보자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신철민도 신유현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문에서 마나의 재능이 없다고 무시당하던 셋째 동생.
솔직히 신철민은 신유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도 아니었거니와 가주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바빴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력을 개방했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굉장한 기세로 성장해 있는 게 아닌가?
지금의 신유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네크로맨서로서 소환수들만 해도 엄청난 전력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신유현이 자신의 편이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신뢰를 얻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라.”
“네.”
신철민의 말에 신유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던 큰 형의 얼굴이 조금 풀려 보였으니까.
그리고 신철민은 몸을 돌리며 한마디 했다.
“밥은 먹고 다녀라. 어머니가 걱정하시니.”
그 말을 남기고 신철민은 집무실을 나갔다.
무뚝뚝한 한마디였지만 나름 배려라고 해 준 말 같았다.
‘이것도 힘이 생긴 덕분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신철민이 신유현을 다시 봐 주기 시작한 이유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힘이 없었다면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잊으면 안 돼.’
약육강식의 초인 사회.
파천검가도 예외는 아니다.
힘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니까.
“후.”
신유현은 숨을 길게 내쉬며 집무실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슈브가 살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뜨거운 숨소리가 신유현의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