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94화
‘조용히 튄다.’
4층에 있는 병력이라면 자신이 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오퍼레이터들은 철화단의 정보와 자료들을 파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료가 워낙 많기에 지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터.
오르카는 조용히 몸을 뒤로 뺐다.
오퍼레이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두고 보자, 파천검가 놈들!’
그렇게 오르카는 관제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단장님! 4층으로 보낸 간부님들과 초인들은 어떻게…….”
오퍼레이터들 중 하나가 자료를 지우다가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오르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튀었네.’
‘벌써?’
오퍼레이터 셋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야, 우리도 튀자!”
“치사하게 자기 혼자 먼저 튀었네.”
오퍼레이터 두 명은 오르카가 사라지자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어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작업 덜 끝났는데…….”
“야, 이 미련한 새끼야!”
“지금 자료 지우고 있을 때야? 살려면 튀어야지!”
마지막 한 명의 말에 나머지 두 명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이미 단장이 튄 마당에 명령이고 나발이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일단 살고 봐야지.
그렇게 오퍼레이터 셋도 관제실을 버리고 도주했다.
* * *
지하 4층으로 내려온 신유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훈련용 장소인가?’
놀랍게도 지하 4층은 상당히 넓었으며 한쪽엔 폐허가 된 거리가 구현되어 있었다.
시가전을 상정했는지 낡아 보이는 4, 5층짜리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2차선의 작은 도로 위에 드문드문 폐차들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신유현은 디아와 함께 천천히 폐허 같은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쌔애액!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신유현은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즈즈증!
그러자 신유현의 손바닥 앞에서 디스토션 필드가 펼쳐졌다.
슈아아악! 푸욱!
손앞에서 펼쳐진 공간왜곡장에 원형의 파문이 퍼지면서 신유현을 노리던 화살이 급격하게 휘어지더니 콘크리트 바닥에 푹 꽂혀 들어갔다.
‘궁수?’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아무래도 빌딩 안에 철화단의 궁수가 숨어 있는 모양.
콘크리트 바닥을 가볍게 뚫는 걸 봐서는 최소 4성급의 실력자였다.
‘제법 실력이 있네. 간부급인가?’
설마 이 거리까지 화살에 마나를 부여할 줄이야.
일반적으로 무기에 마나를 부여하려면 계속 접촉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초인들은 검사나 창술사, 혹은 건틀렛이나 너클을 사용하는 무투가, 또는 도끼, 해머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전사들이었다.
그에 반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들은 초반에 성장하기가 힘들었다.
화살에 오랫동안 마나를 담아 두는 건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등급이 낮을 때는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마나가 끊겨 버린다.
그 때문에 궁수들은 성장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난하게 화살에 마나를 담을 수 있는 4성이 되면 왕귀, 즉 왕의 귀환이 될 수 있었다.
4성부터는 큰 활약을 할 수 있으니까.
“준비.”
끼이익!
신유현의 명령에 스켈레톤 아처들이 방금 전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
슈슈슈슉!
마나가 담긴 10발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푸푸푹!
이윽고 화살들은 빌딩 벽을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현재 스켈레톤들은 4성급이었다.
준비된 마나는 충분한 상황.
그뿐만이 아니다.
‘스켈레톤들도 심법 수련이 가능하지.’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유현은 파천심법을 가르쳤고, 스켈레톤 아처들은 파천심법을 운용해 화살에 마나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방금 전 신유현을 저격하려고 했던 궁수는 스켈레톤 아처들의 역습을 받고 조용해졌다.
건물 벽을 꿰뚫는 아처들의 화살에 비명횡사한 것이다.
신유현은 다시 폐허 형태의 훈련장 속으로 발걸음을 뗐다.
슈슈슈슉!
그 순간 이번에는 사방에서 마나 화살들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처음 날아왔던 화살에 비하면 위력이 약했다.
신유현이 있는 장소까지 날아오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겨우 유지될 정도였으니까.
“디아, 떨어지지 마렴.”
“넹.”
머리 위에 까망이를 올려놓고 있는 디아는 신유현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케이론과 복슬이는 그림자 공간 속에 대기시켜 놓았다.
그림자 속에 있다가 갑자기 불러내서 기습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터터터텅!
이윽고 수십 발이 넘는 마나를 머금은 강철 화살들이 디스토션 필드를 두들겼다.
하지만 결과는 첫 번째 화살과 같았다. 수십 발의 화살은 신유현에게 명중했지만 공간왜곡장에 막혀 휘어지면서 땅바닥에 떨어져 내린 것이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건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 신유현은 혀를 찼다.
철화단의 궁수들은 건물 안이나 옥상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도 신유현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화살의 숫자로 봐서는 20명 정도 되어 보였으며, 대략 3성급 실력자들로 추측되었다.
“귀찮은 놈들.”
궁수들이 얼마나 있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사방에 흩어져 있는 탓에 아처들을 활용해도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 귀찮을 뿐.
그렇다고 스켈레톤들을 이끌고 철화단의 궁수들을 한 놈 한 놈 찾아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놈들을 찾아내서 처리해라.”
신유현은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세이버 1기, 랜서 1기씩 2인 1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금 전 신유현을 향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서.
‘오래 걸리진 않겠지.’
세이버와 랜서들은 경신법을 펼치며 바람처럼 달려갔다.
머지않아 철화단의 궁수들을 전부 처리하고 돌아올 테지.
와장창!
그때 신유현이 서 있는 1차선 도로 옆의 건물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검은색 후드 코트와 칠흑의 창을 든 인물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신유현과 아처 20기를 포위했다.
철화단의 초인 창술사들이었다.
‘세이버와 랜서가 없는 틈을 노린 건가?’
신유현을 포위한 창술사들은 총 30명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유현의 정면에는 붉은색 후드 코트 차림에 붉은 창을 든 30대 초반의 사내가 있었다.
철화단 간부들 중 한 명, 붉은 전갈이라고 불리는 아카이 사소리였다.
“버러지 같은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사소리는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신유현을 향해 붉은 창을 내질러 왔다.
붉은 저주독창, 아카드.
무려 익셉셔널 레어 등급의 무기였다.
까앙!
철화단의 기습에 강체술을 다시 발동한 신유현은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을 빼 들며 붉은 저주독창을 쳐 냈다.
그와 동시에 창술사들이 아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가각!
아처들은 급한 대로 활을 들어 창을 막아 냈다.
뀨!
그 순간 디아의 머리 위에 있던 까망이가 촉수 두 개를 쭉 늘리면서 그림자도 함께 늘렸다.
스스슥.
그리고 순식간에 그림자 속에서 푸른 안광를 피어올리는 세이버 30기와 랜서 30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유현이 분할 사고를 발동해서 아카드의 공격을 쳐 냄과 동시에 까망이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스켈레톤들을 더 꺼내라고.
“헉!”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스켈레톤들이!”
아처들을 공격하던 철화단의 창술사들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철화단의 궁수들을 미끼로 신유현의 스켈레톤들을 분단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이 급습을 하면서 신유현을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스켈레톤들이 더 튀어나올 줄이야!
“네크로맨서에게 이런 스킬이 있었나?”
“시체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갑작스러운 창술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시체에서 언데드를 소환한다.
이렇게 시체 하나 없는 곳에서 스켈레톤들이 솟아나는 건 처음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철화단의 창술사들은 이를 악물며 신유현이 그림자 공간에서 불러낸 세이버들과 랜서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신유현은 사소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퍼어어억!
“어억!”
신유현이 저주독창을 위로 쳐 낸 탓에 사소리는 정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유현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그 때문에 사소리는 입에서 피와 함께 하얀 조각을 토해 냈다.
방금 전 일격으로 입안이 찢겨지면서 이빨까지 부러진 모양.
“이 새끼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소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유현을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신유현이 훨씬 더 화가 나 있었다.
철화단 놈들 때문에 가문의 사람들이 죽었을뿐더러 쓰레기 같은 놈이었지만 둘째 형인 신철진을 본의 아니게 자기 손으로 매장시켰다.
게다가 철화단 놈들이 아이들과 복슬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까지 알고 있는 상황.
“네놈들이 사람이냐!”
[퀴네어의 무장화(S)를 발동합니다.]
명계의 신인 하데스의 장갑, 퀴네어.
신유현이 장비하고 있는 전설급 장갑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더니 팔꿈치까지 덮은 건틀렛으로 변했다.
그 직후 저주독창을 휘두르는 사소리를 향해 신유현은 건틀렛으로 변한 퀴네어를 휘둘렀다.
까앙!
맑고 고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퀴네어로 저주독창을 쳐 올린 것이다.
“뭐, 뭣!”
그러자 사소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가?
상대에게 저주와 독을 거는 익셉셔널 레어 등급의 무기였다.
한 번이라도 적중시키면 온갖 저주와 독을 걸 수 있는 최흉의 창.
그런데 그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튕겨 내다니!
거기다 이번에는 건틀렛으로 변한 퀴네어로 저주독창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헛!’
순간 사소리는 자신의 정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저주독창은 건틀렛에 붙잡혀 있는 상황.
그 말인즉 신유현이 공격을 가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앗! 아, 안 돼!”
“돼!”
신유현은 레바테인을 움켜쥔 건틀렛으로 사소리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퍽! 퍽!
“억! 컥! 크어억!”
사소리는 남은 한 팔로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건틀렛으로 후려치고 있었기 때문에 막아 봤자 팔목 뼈만 박살이 났다.
그리고 얼굴은 걸레짝이 되어 갔다.
“그, 그만…… 사, 사려 줘…….”
잠깐 사이 이빨이 몽땅 부러진 사소리는 바람 새는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신유현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사소리는 과거 복슬이를 제압한 간부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신유현은 성이 차지 않았다.
‘까망아, 복슬이 불러와.’
신유현은 까망이에게 의사 전달을 보냈다.
뀨!
스으윽!
순간 까망이의 그림자가 바닥을 어둡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얀 털을 가진 영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영수의 모습에 창술사들은 물론이고 신유현에게 신나게 얻어터지던 사소리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사소리는 빠르게 깨달았다.
“서, 설마?”
과거 철화단을 괴멸시킬 뻔한 괴물. 블러드 울프, 혈랑.
그 혈랑이 하얀 털을 가진 백랑의 모습으로 사소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혀, 혀라아?”
사소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백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크르르.
그러자 백랑, 복슬이는 사소리를 내려다보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놈을 발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