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93화
신유현은 질풍신보를 펼치며 지면을 날듯이 혈랑을 향해 내달렸다.
탓! 탓! 탓!
그리고 케이론의 몸을 밟고 뛰어오르자 신유현의 눈앞에 혈랑의 머리가 보였다.
화르륵!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에서 흑염이 피어오르는 순간.
현무중검(玄武重劍).
일식(一式), 초중발검(超重拔劍).
스으윽!
무겁고 느리지만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현무중검이 펼쳐졌다.
레바테인은 허공에 검은 흑염과 검은 오러의 궤적을 남기며 혈랑의 머리를 향해 느릿하게 날아들었다.
크아아아앙!
즈즈증!
언제나 그랬듯 혈랑은 발악과도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마나 역장을 전개했다.
나름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꽤 두꺼워 보였다.
하지만 파천검법의 위력적이면서 빠른 발검에 비해 초중발검은 느리지만 무겁고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었다.
초중발검 앞에 마나 역장은 한낱 유리와도 같은 것.
콰자장창!
마나 역장은 간단히 부서졌다.
그리고 초중발검은 혈랑의 머리를 후려쳤다.
빠악!
크헝!
혈랑 또한 얼굴 표면을 마나로 보호하고 있었기에 베이지는 않았지만 충격까진 막을 수 없었다.
초중발검에 얼굴을 적중당한 혈랑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크르르!
이윽고 혈랑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신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마에 피가 한 줄기 흐르는 것을 보아 완전히 막아 내진 못한 모양.
크아아아앙!
그때 혈랑이 신유현을 향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키이잉!
그러자 혈랑의 아가리 앞에 마나가 집속되면서 붉은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블러드 브레스라고?’
무려 혈랑의 S급 고유 스킬 중 하나.
아무래도 신유현에게 한 대 맞아서 열받은 모양이었다.
투확! 콰아아아아!
이윽고 혈랑의 아가리에서 붉은 광선 같은 브레스가 신유현을 향해 쏟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케이론이 혈랑과 딱 붙어 있어서 블러드 브레스의 공격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
그뿐만이 아니라 케이론은 아래턱으로 혈랑의 턱밑을 붙잡고 아가리를 쳐 올렸다.
콰콰콰콰쾅!
그러자 블러드 브레스가 지나간 실험실 내부의 바닥과 벽, 천장이 차례대로 폭발했다.
후우우.
잠시 후, 블러드 브레스가 잦아들며 혈랑의 아가리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르릉.
혈랑은 만족스럽다는 듯 아가리를 벌리며 히죽거렸다.
바로 그때.
“뭘 처웃지?”
혈랑의 목 아래에서 신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크헝?
순간 혈랑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 아래에 매달려서 납검을 한 채 발검세를 취하고 있는 신유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네.’
블러드 브레스가 덮치기 전, 신유현은 파천신법의 두 번째 걸음인 전광석화를 펼쳤다.
전광석화는 짧은 거리를 초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4성이 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더욱 실체 같은 분신을 허공에 남길 수 있었다.
마치 이형환위처럼.
“끝이다.”
신유현은 혈랑의 목 아래에서 납검한 레바테인을 다시 빠르게 뽑아냈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스파아앙!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흑염의 오러가 혈랑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정확히는 혈랑이 차고 있는 목걸이를 향해서.
슈가가각!
날카로운 참격이 목걸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쩌저저적!
혈랑을 옥죄고 있던 크리스탈 장치가 삽입된 목걸이가 두 조각이 났다.
크르르?
순간 혈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지금까지 목걸이의 크리스탈 장치를 통해 조종당하고 있던 혈랑이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예상대로군.’
신유현은 손짓으로 언데드 소환수들을 뒤로 물렸다.
크르르.
그러자 혈랑은 물러나는 케이론과 스켈레톤, 그리고 신유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뒤편에 있던 아이들을 발견했다.
크릉? 컹컹!
대체 얼마 만에 아이들과 만난 것일까.
혈랑은 반가운 표정으로 짖었다.
하얀 강아지였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처럼.
“복슬아!”
아이들 또한 후다닥 혈랑을 향해 뛰어갔다.
끼잉. 끼이잉.
혈랑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우며 아이들 네 명에게 얼굴을 비볐다.
하얀 강아지였을 때에 비하면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지만 행동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과 혈랑은 서로 교감을 나누며 잠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오빠.”
그때 아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소녀가 신유현을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복슬이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고맙슙니다.”
다른 아이들 또한 고개를 숙이며 신유현에게 고마워했다.
특히 막내는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발음이 어눌했는데, 그래서 더 귀여웠다.
파앗.
순간 아이들의 다리에서부터 하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며 빛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역시, 너희들은 이미…….”
아이들의 모습에 신유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아이들은 철화단 놈들에게 이미 희생당한 뒤였던 것이다.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셔도 돼요.”
“우리들은 이제 괜찮아요!”
“복슬이도 울지 마.”
“복슬이 아파? 호 해 줄게.”
아우------!
혈랑, 복슬이는 빛으로 변하며 사라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복슬이는 아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간부들에게 제압당하면서 실패했다.
그 후, 아이들은 차례차례 철화단의 실험에 희생되어 갔고, 결국 마지막 소녀마저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날 복슬이는 괴물이 되었다.
아이들을 애도하는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지키고 싶었지만 지키기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오빠, 복슬이를 부탁해요.”
“우리 복슬이를 아껴 주세요!”
“복슬이를 부탹해여.”
아이들은 신유현에게 복슬이를 부탁했다.
복슬이 혼자만 놔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에 영혼이 되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복슬이가 날뛰던 모습을 지켜보았으니까.
복슬이는 철화단을 상대로 혼자서 처절하게 싸웠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고.
만신창이가 되어 가면서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다시 한번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하얀 강아지는 붉게 물들어 갔다.
붉은 피로 물든 혈랑의 모습이 되어 가며.
그런 복슬이를 아이들은 도저히 놔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유현이 조종당하던 복슬이를 구해 준 것이다.
이제 복슬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복슬이를 맡길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났기에.
신유현은 혈랑이 된 복슬이를 바라봤다. 복슬이 또한 신유현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빛이 되어 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신유현의 대답에 아이들이 까르륵 웃었다. 드디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언니도, 놀아 줘서 고마워!”
“고양이 언니, 안녕!”
“까망이도 잘 지내!”
“바이바이~”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함께 놀아 주던 디아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복슬이도 잘 지내.”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
“다음에 만나면 또 놀자!”
“복스리 안녀엉~”
아우-----!
아이들의 마지막 인사에 복슬이는 구슬픈 울음소리로 배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들은 하얀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성불한 것이다.
“마스터.”
아이들이 사라지자 디아가 살며시 다가와 신유현의 손을 붙잡았다.
잠깐 사이에 정이 들었던 것일까.
디아는 허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눈가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 디아의 모습에 신유현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바로 그때.
파아아앗!
갑자기 복슬이에게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붉은 털을 가진 혈랑이었던 복슬이가 하얀색으로 물들어 가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복슬이는 혈랑이 아닌 백랑이 되어 있었다.
“모습이 변했네?”
크르릉.
백랑이 된 복슬이는 신유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췄다.
[백랑, 복슬이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당신은 영수(靈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불사왕의 히든 계약 스킬이 발동합니다. 복슬이와 소환수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뭐, 영수? 히든 계약이라고?’
신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설마 백랑이 영수였을 줄이야!
그리고 히든 계약 스킬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신유현은 정보창을 열어 영수와 히든 계약에 대해 알아봤다.
놀랍게도 복슬이는 혈랑에서 백랑이 되면서 영수로 재탄생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히든 계약 스킬은 신수나 환수종, 초월종, 영수 혹은 영물과 같은 존재들이 복종을 맹세했을 때 발동되는 불사왕의 숨겨진 권능인 모양이었다.
‘언데드로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네.’
대충 정보를 훑어본 신유현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히든 계약을 맺을 경우엔 백랑의 주인이 되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부릴 수 있었다.
“나와 정말 계약을 맺을 거냐?”
신유현은 복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크르릉.
그러자 복슬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신유현에게 다가와 혀로 핥았다.
할짝. 쩝쩝.
아니, 핥아 보고 왜 입맛을 다시는 거지.
복슬이의 행동에 신유현은 조금 당황했지만 자신과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 수 있었다.
“좋아, 계약을 하지.”
[영수 백랑과 계약을 맺습니다.]
번쩍!
순간 신유현과 복슬이의 몸에서 빛이 한번 터져 나왔다가 사그라졌다.
무사히 계약을 맺은 것이다.
[영수(靈獸) 백랑]
이름: 복슬이
등급: 5성
고유 스킬: 초회복(S), 초재생(S), 프로스트 노바 브레스(S)
일반 스킬: 상세 항목 참조
복슬이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혈랑이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다만 스킬 몇 가지가 이름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
아마도 혈랑에서 백랑이 되었기 때문인 모양.
“그럼 다음 층으로 가 볼까?”
철화단 놈들을 조지러.
크르릉.
백랑, 복슬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느꼈으니까.
* * *
“…….”
관제실에서 3층 거주 구역의 상황을 지켜보던 오르카는 할 말을 잃었다.
철화단이 가진 비장의 수단이 어처구니가 없게도 적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다, 단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오퍼레이터들 또한 얼빠진 얼굴로 물으며 오르카의 지시를 기다렸다.
“정보 전부 파기해라.”
“네?”
“서버실의 정보들, 다 파기하라고!”
오르카는 신경질적으로 오퍼레이터들에게 소리쳤다.
거주 구역에 두었던 혈랑은 비장의 한 수였다.
솔직히 오르카는 혈랑의 선에서 상황이 정리될 줄 알았다.
혈랑은 과거 철화단의 간부들이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제압할 수 없는 괴물이었으니까.
‘4층에 있는 병력은 시간 벌이밖에 안 돼.’
지하 4층에 철화단의 전력을 집중시켜 놓았다.
만에 하나 신유현이 혈랑을 뚫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신유현이 혈랑을 쓰러트렸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지쳐 있을 터.
그때 전 병력을 투입해서 신유현을 죽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혈랑이 신유현의 손에 넘어갈 줄이야!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