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87화
스팟!
순간 신유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나를 압축시켜서 한계까지 신체 능력을 이끌어 내는 스킬,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
그 때문에 후유증은 크지만, 그만큼 지속 시간 중에는 엄청나게 강해진다.
그리고 이미 신철진은 인간일 때의 모습을 잃었다.
2미터 이상 커졌고, 전신에는 두껍고 질긴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이제 돌이킬 수 없어.’
한번 기생 마수에 감염되면 끝이었다.
머릿속에 촉수를 뻗어서 뇌신경과 융합하기 때문이다.
신철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아!
변형을 완료한 신철진은 마수와도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이, 이건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어마어마한 괴성과 함께 불길한 기운이 터져 나오자 현무검대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큰일이 생겼다는 사실만큼은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주작전의 전주인 신철진이 괴물처럼 변해 버렸으니까.
까가가강!
그사이 한계까지 가속한 신유현은 신철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치를 올린 덕분인지 몸의 부담이 조금은 나아진 느낌이었다.
‘지속 시간 안에 끝내야 돼.’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부담이 나아졌다고 해도 후유증까지 없어지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신철진을 쓰러트려야 했다.
연무장에 있는 대원들만으로는 신철진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 신철진은 명백히 5성 보스급이었다.
크아아아아아!
그때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받던 신철진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그러자 충격파가 터지면서 신철진의 주위에 흙더미가 치솟아 올랐다.
그 앞에 고속 이동 중이던 신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치솟아 오르는 흙더미 앞에서 자세를 살짝 낮춘 채로.
발검을 하기 직전의 자세였다.
화르륵!
우우우우웅!
흑염이 흘러넘치는 검집 안에서 금방이라도 쏘아질 듯 레바테인의 검신이 떨려 왔다.
그 상태에서 허리를 한계까지 뒤로 젖힌 신유현은 길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 순간.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현무중검(玄武重劍).
초중발검(超重拔劍).
파아앙!
검집 안이 폭발하는 파공성과 함께 레바테인이 엄청난 속도로 뽑혀 나오며 전방을 향해 휘둘러졌다.
스아아아악!
그러자 신철진의 주위를 치솟아 오르던 흙더미들이 갈라졌다.
그 너머에 있던 신철진도 갈라졌다.
마치 신유현의 앞에 있는 공간이 통째로 갈라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압축된 흑염의 칼날이 검은 궤적을 남기며 휘둘러졌으니까.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푹!
오버 드라이브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심한 탈력감을 느낀 신유현은 레바테인을 지면에 꽂으며 가까스로 자리에 버티고 섰다.
투두둑.
이윽고 갈라진 흙무더기가 다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스르륵.
하늘에서 쏟아지는 흙 너머에서 신철진의 몸이 두 조각이 나며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때.
끼에에엑!
바닥에 쓰러진 신철진의 입에서 작은 외눈알 하나가 기어 나오는 게 아닌가?
작은 눈알 같은 몸에는 실낱 같은 촉수가 수도 없이 뻗어 나와 있었다.
다름 아닌 기생 마수였다.
“본 스피어.”
신유현은 마지막 마나를 쥐어짜 내며 기생 마수를 향해 본 스피어를 날렸다.
푸우욱!
끼에엑!
도망치려던 기생 마수는 흑염으로 휘감긴 본 스피어에 꿰뚫리면서 불타올랐다.
[5성 기생 마수를 처치하셨습니다.]
‘빌어먹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철진을 바라보며 신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저, 전주님!”
“이, 이건 대체!”
그리고 그런 신유현을 향해 놀란 표정으로 현무검대원들이 달려오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 * *
파천검가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파천검가의 한 축을 담당하던 가문의 차남이자, 주작전의 전주인 신철진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문의 삼남인 신유현의 손에 의해서.
하지만 아무도 신유현을 탓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걸 가문에서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신철진의 시체는 빠르게 수습됐다. 신유현의 명령에 따라 현무검대원들이 시체를 챙겨서 냉동고로 옮긴 것이다.
가주인 신성일이 돌아오면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설마 이렇게 보내게 되다니…….’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철진이 개쓰레기 같은 놈인 건 이전 삶에서든, 이번 삶에서든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부하들을 이용해 자신의 단전을 폐쇄하려고 했었고, 언제나 자신을 무시했으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강해지면 신철진에게 들이박을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
‘내가 당한 만큼 두고두고 갚아 줄 생각이었는데…….’
신철진은 신유현을 무능하다며 무시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신철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신유현이 초인들의 정점에 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신철진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체면이 구겨질 터였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신철진을 보내게 될 줄이야.
‘어째서 지금 이 시기에 기생 마수가 나타난 거지?’
본래 기생 마수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년 뒤였다.
그런데 1년이나 더 빨리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신철진의 몸에 기생해 올 줄은 몰랐다.
잠입 경로는 분명 어제 철화단이 일으켰던 마수 습격 사건 때겠지.
‘나 때문인가?’
아라크네 둥지 사건 때부터, 아니, 3성 던전 미확인 게이트 사건 때부터 신유현은 과거를 바꾸었다.
본래라면 미확인 던전 게이트 조사 사건 때 죽었어야 할 남연아를 구출해 왔으니까.
그리고 아라크네 둥지 사건에서도 현무검대원들 중 두 명만 살아남고 철화단은 도망을 쳤어야 했다.
하지만 신유현이 개입하면서 철화단은 전멸했고, 모든 대원들은 살아났다.
그 때문에 철화단의 가문 습격 사건은 늦어졌으며 기생 마수까지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생 마수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마수 연구가. 그놈 짓이라는 거지.’
으득.
신유현은 이를 갈았다.
마수 연구가.
국적, 연령, 이름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
기생 마수는 마수 연구가가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놈이 신철진을 죽였다고 봐야겠지.’
기생 마수는 한번 감염되면 끝이었다.
그대로 괴물이 되어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학살하는 살육자가 된다.
그 때문에 기생 마수에 감염된 시점에서 이미 신철진은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사실이 신유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수 연구가의 손에 의해 신철진을 강제로 죽여야 했으니까.
‘마수 연구가가 움직였다면 철화단 뒤에 잿빛 교단이 있겠군.’
잿빛 교단.
국제 초인 빌런 집단 중 하나로, 훗날 게티아 숭배자들의 핵심 세력이 된다.
그리고 마수 연구가는 잿빛 교단의 간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철화단은 게티아 놈들의 크리스탈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지.’
크리스탈 장치는 게티아가 이 시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였다.
그말인즉.
‘설마 잿빛 교단은 이미 게티아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어쩌면 이미 잿빛 교단에 게티아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교단이라는 이름도 납득할 만했다. 게티아들은 자신들을 신이라고 자칭하는 놈들이었으니까.
게티아를 신처럼 숭배하는 집단이라면 교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테지.
‘일단 놈들을 한번 만나 봐야겠군.’
현재 파천검가에 포로로 잡혀 있는 철화단의 간부들.
놈들이라면 잿빛 교단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실패인가?”
파천검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속.
그곳에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설마 둘 다 임무를 실패할 줄은 몰랐는데.”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중년 남성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직 개량할 여지가 있는 건가?’
검은 후드의 사내, 마수 연구가는 팔짱을 끼며 멀리 떨어져 보이는 파천검가의 장원을 내려다봤다.
파천검가의 직계에게 기생 마수를 감염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파천검가의 직계 두 명을 암살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파천검가의 차남은 감염에 성공했지만, 삼남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기생 마수에 감염된 녀석보다 강하다니.”
마수 연구가는 흥미로웠다.
기생 마수에 감염되면 본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기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패를 하게 될 줄이야.
‘직계들을 암살하는 건 실패했다고 쳐도 다른 쪽을 실패한 건 뼈아프군.’
사실 신철진을 기생 마수에 감염한 것은 양동이었다.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병신 같은 놈들.”
병신같이 파천검가에 붙잡혀 버린 철화단의 간부들.
마다테 헤이타로와 이시이 히데키.
그 두 놈을 처리하는 게 진짜 목표였다. 자신들의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지.’
기생 마수들까지 투입했는데 실패했다는 말은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
‘철화단 놈들은 버리는 수밖에 없나.’
마수 연구가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철화단이 잿빛 교단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은 별 볼 일 없었다.
잿빛 교단은 철저하게 정보를 숨겼으니까.
‘흑기사와 인비저블 아처는 철수시켜야겠군.’
흑기사, 진원호.
인비저블, 이설리.
그들은 잿빛 교단에서 철화단에 파견한 간부들이었다.
파천검가에 포로로 잡힌 철화단 간부 놈들이 정보를 불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철수시키는 게 나아 보였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신유현이라고 했나? 교단을 방해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 주마.”
아라크네 둥지 때부터, 파천검가 습격 사건과 직계 암살까지.
그 계획은 전부 잿빛 교단이 추진한 일들이었다. 철화단은 잿빛 교단의 손과 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부 실패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신유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수 연구가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스르륵.
그런 그의 검은색 후드 코트 안에서는 기괴한 형태의 촉수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 * *
어두운 지하실.
가주전의 지하 감옥에 쇠사슬로 손목이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철화단의 간부 마다테 헤이타로와 이시이 히데키였다.
그들은 이미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손톱은 모조리 다 뽑혀 나가 있었으며 전신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정보는?”
“필요한 정보들은 얻어 냈어요.”
“거점도?”
“네.”
신유현의 물음에 슈브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신유현은 심문 장소에 와 있었다. 철화단 간부들에게 물어볼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유현과 슈브 뒤에는 흑영대 대원 두 명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아, 악마…….”
그때 이시이 히데키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가까이 다가갔다. 역한 냄새와 함께 처참한 몰골이 자세히 보였다.
“네놈들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다.”
신유현은 이시이 히데키를 가만히 바라봤다. 놈들 때문에 가문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사상자가 발생했다.
감히 가문의 사람을 죽이다니!
“당연히 이렇게 될 거라 각오했을 테지.”
“벼, 변호사를 불러 줘. 이, 이건 인권유린이야!”
“뭐? 변호사? 인권?”
이시이 히데키의 말에 신유현은 악귀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