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86화
“형이 여긴 무슨 일이야?”
신유현은 현무전의 야외 연무장에 나타난 신철진을 향해 다가갔다.
“검을 들어라. 나와 비무를 하자.”
“뭐?”
뜬금없는 말에 신유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신철진과 신유현은 가문의 후계자 후보들이기도 하며 사대수호검전의 전주들이었다.
그 때문에 직계들끼리 직접 싸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자신과 비무를 하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놈에게 후계자 후보 자리를 걸고 경쟁전을 신청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신유현은 애써 억누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후계자 후보 경쟁전.
가문의 가주 후계자 후보자들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일대일 결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보자 경쟁전은 궁지에 몰렸을 경우에나 할 뿐, 아직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은 정식 절차를 거쳐서 가주의 승인하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가문이 습격을 받은 지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
그런데 경쟁전을 하자니?
“형, 미쳤어?”
“닥쳐!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하지만 신철진은 앞뒤 가리지 않고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보통 검전의 전주쯤 되면 수행원이 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신철진은 혼자서 현무전에 찾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스르릉! 화르륵!
신철진은 다짜고짜 검을 빼 들며 신유현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런 미친!”
그 모습에 신유현도 다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레바테인을 뽑았다.
까아앙!
이윽고 붉은 화염이 휘몰아치는 신철진의 적열검 봉황과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는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이 서로 맞부딪쳤다.
화르륵!
신유현과 신철진을 중심으로 적염과 흑염이 서로 뒤섞이며 치솟아 올랐다.
그 상태에서 신유현과 신철진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형 미쳤…….”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치던 신유현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철진의 상태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에, 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입가에서 흐르고 있는 침.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건 또 무슨?’
신유현은 재빨리 사령안으로 신철진의 상태를 확인해 봤다.
[파천검가 차남, 신철진]
등급: 4성 최상급
상태: 혼돈의 광기, 흉폭화, 광폭화
‘이건 설마……?’
상대의 정보를 간파할 수 있는 불사왕의 스킬, 사령안.
원래는 자신보다 등급이 훨씬 높은 존재의 정보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신철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닐뿐더러, 등급도 신유현과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생 마수?’
까앙!
“크아아아아!”
적열검과 마검이 한 차례 충돌하면서 신철진과 신유현은 서로 물러났다.
“전주님!”
그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무검대원들이 신유현을 도와주기 위해 끼어들려고 했다.
현무전에서 신유현이 공격을 받았으니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지 마! 내가 상대하겠다.”
하지만 신유현은 그들을 막았다.
신철진의 상태가 이상했으니까.
그리고 사실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신철진을 때려눕힐 날을 말이다.
다만.
‘기생 마수에 감염된 건가?’
기생 마수.
1년 뒤 서울을 강타하는 대재앙이다.
기생 마수는 말 그대로 생명체에게 기생한다.
문제는 초인들에게 기생이 가능하며 4성급 초인들조차 기생 마수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생 마수에 감염돼서 흉폭화와 광폭화가 이루어지면, 서서히 이성이 마비되고 감염자의 욕망에 따라 마구 날뛰게 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신철진처럼.
“크아아아아!”
화르륵!
신철진은 검에서 붉은 화염을 일으키며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생각은 나중에 해야겠군.’
신유현은 신철진을 노려봤다.
일단은 신철진을 제압하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만약 신철진이 정말 기생 마수에 감염된 것이라면 돌이킬 수 없었다. 한번 기생 마수에 감염이 되면 회복은 불가능했으니까.
또한.
‘그놈이 나타났다는 소리겠지.’
신유현은 기생 마수를 조종하던 존재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쌔애액!
그때 적염이 치솟아 오르는 화염의 검이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신유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깡! 까강!
하지만 신유현은 신철진의 검격에 맞춰서 레바테인을 휘두르며 쳐 냈다.
신유현과 신철진 사이에서 적열검 봉황과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이 수도 없이 부딪쳤다.
까가가가강!
그럴 때마다 붉은 화염의 오러 와 검은 화염의 오러가 격렬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크아아아아아!”
흉폭화가 되어서 버서커가 된 만큼 신철진은 이성을 잃은 얼굴로 계속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지금 신철진은 평소보다 더 위력이 높은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신유현은 확신했다.
‘역시 기생 마수에 감염됐구나.’
사령안으로 확인한 결과, 현재 신철진의 상태는 흉폭화와 광폭화가 중첩되어 있었고, 거기다 혼돈의 광기라는 알 수 없는 효과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기생 마수의 특징 중 하나가 발휘되고 있는 상황.
봉황검(鳳凰劍).
사식(四式), 폭열참(爆熱斬).
쾅! 쾅! 쾅!
신철진이 휘두르는 적열검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주작전에서 신철진이 배운 봉황검의 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보통 흉폭화나 광폭화 상태가 되면 이성을 잃고 공격만 하게 된다.
스킬이나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생 마수에 감염되면 흉폭화가 되었음에도 생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더 위험했다.
“큭!”
정면에서 내려쳐 오는 적열검을 레바테인으로 쳐 낼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면서 신유현을 압박했다.
폭발과 동시에 생겨난 충격이 레바테인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일식(一式), 무명(無明).
슈아아악! 콰쾅!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폭열을 머금은 적열검이 좌에서 우로 신유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신철진 또한 파천검가의 직계이며 가주 후보자 중 한 명.
당연히 파천검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파천검가의 직계답게 신철진은 폭열참과 무명을 합친 초식을 신유현에게 날려 댔다.
그 순간.
화르륵!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에서 오러를 머금은 흑염이 거칠게 치솟아 올랐다.
봉황검(鳳凰劍).
사식(四式), 폭열참(爆熱斬).
신유현 또한 주작전의 검법들 중 하나인 봉황검의 초식을 펼친 것이다.
이윽고 적염과 흑염이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신유현과 신철진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충격파와 함께 적과 흑이 뒤섞인 폭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우와아아악!”
“어, 엎드려!”
갑작스러운 폭발에 주변에서 전투를 구경하던 현무검대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다들 지면에 엎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폭심지에서 신유현과 신철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쾅! 쾅!
그 폭발 속에서도 그들은 전투를 멈추지 않고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전주님이 봉황검을 사용하시다니…….”
폭염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현무검대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신유현이 다른 검전의 검법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파천검가의 직계들이자 각 검전의 전주들은 어릴 때부터 파천무를 수련한다.
파천검가의 핵심 무공으로 검법, 보법, 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 가문을 수호하는 사대수호검전에서 상승검법인 청룡검, 백호검, 봉황검, 현무검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상승검법은 하향 버전인 파생검법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봉황검에는 주작검법이 있으며, 현무검에는 현무중검이 있었다.
그리고 직계들은 보통 파천검법과 자신이 속한 검전의 상승검법을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설마 신유현이 다른 검전의 상승검법을 사용할 줄이야!
‘이전 삶에서 배워 두길 잘했군.’
게티아들에 의해 가문이 멸문당한 후 신유현은 복수심에 불탔다.
그 일환으로 가문에서 겨우 찾아낸 검법서들을 토대로 악착같이 검법을 수련했다.
그 덕분에 지금 신유현은 다른 검전의 검법들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역시 둘째 형이네.’
파천검가의 차남이자 주작전을 이끄는 전주답게 신철진은 강했다.
괜히 5성을 바라보고 있는 실력자가 아니었다.
거기에 기생 마수의 영향으로 신체 능력치가 더 강해진 상황.
사실상 5성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까가가가강!
붉은 화염을 휘감은 적열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르는 신철진의 공격에 신유현도 어지럽게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하지만 반경 2미터 내라면 내 간격이지.’
S급 고유 스킬, 기척 감지.
반경 2미터 안의 움직임이라면 전부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신유현은 신철진의 공격을 피하거나 레바테인으로 튕겨 냈다.
그리고 곧장 반격에 들어갔지만 신철진은 5성급에 도달해 있었기에 번번이 공격이 막혔다.
탁!
순간 신철진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곧장 적열검을 지면에 꽂아 넣는 게 아닌가?
‘이건 설마?’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봉황검(鳳凰劍).
오식(五式), 홍련봉황파(紅蓮鳳凰波).
신철진이 꽂아 넣은 적열검에서 방사형으로 붉은 화염이 충격파처럼 터져 나왔다.
“본 월! 본 실드!”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조금 전에 캐스팅해 둔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콰콰콰콰콰콰콰!
그러자 신유현의 앞 지면에서 하얀 뼈로 된 방벽이 솟아났다.
콰콰콰콰쾅!
그 직후 불새와 같은 홍련봉황파의 진홍의 화염이 본 월을 덮쳤다.
쩌저저저적!
강렬한 충격파와 뜨거운 열기 앞에 본 월은 금이 쩍 가면서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 월을 뚫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신유현이 중첩해서 소환한 본 실드가 있었다.
콰아아아앙!
이윽고 홍련봉황파는 본 실드까지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때 이미 신유현은 자리에 없었다.
타다닥!
총 4개의 계단처럼 쌓은 본 실드를 밟고 뛰어올라 본 월의 위로 올라가 있었다.
신유현은 두께 40센티 정도, 높이 약 4미터 정도 되는 본 월 위에서 신철진을 내려다봤다.
아직 신철진은 신유현이 본 월 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지면에 적열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유현은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을 천천히 치켜들었다.
화르르륵!
이윽고 굉장히 기세로 흑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 상태에서 신유현은 주저 없이 신철진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현무검전의 검법을 펼쳤다.
현무중검(玄武重劍).
삼식(三式), 중파참(重破斬).
슈아아아악!
어마어마한 기세로 신철진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리는 무거운 일격.
“크워?”
한 박자 늦게 신철진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신유현을 발견했다.
적열검을 뽑아서 막기에도 늦었고, 피하기도 늦었다.
그 상황 속에서 신철진의 몸에 기생한 마수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교차시키는 선택을 했다.
그 직후.
콰아아아아아앙!
검은 화염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얼마나 위력이 컸냐 하면, 신철진의 발이 야외 연무장의 흙 속으로 정강이까지 박혀 들어갈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철진을 중심으로 크레이터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이걸 막았다고?’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나름 강력한 일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신철진은 양팔로 불꽃의 마검 레바테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페이즈2인가?”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우득! 우드득!
순간 신유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신철진의 몸이 변형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
본격적으로 페이즈2 모드로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신철진도 이제 한계에 다다라 있다는 소리였다.
페이즈2 모드는 일정 이하로 생명력이 떨어지면 발동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끝을 내자.”
신유현은 다음 수를 발동했다.
[S급 고유 스킬,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를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