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83화
“역시 전이 반지로 돌아갈 수 있나 보네.”
신유현은 웃으며 전이 반지를 바라봤다. 이제 전이 반지를 통해 간편하게 지구에서 시련의 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한 번은 돌아가야겠지.’
1층을 공략하는 데 거의 이틀은 걸린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가지고 왔던 식량이 다 떨어져 버렸다.
이 상태로 2층을 공략하러 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했다.
1층은 평원이었지만 2층은 또 어떤 장소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신유현은 전이 반지를 발동시켰다.
[지구로 귀환합니다.]
* * *
신유현은 현무전의 지하 수련장으로 돌아왔다.
“일찍 오셨네요?”
“마스터!”
뀨!
신유현이 돌아오자마자 슈브, 디아, 까망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결과는 어땠나요?”
“당연히 성공했지.”
신유현은 웃으며 착용 중인 퀴네어를 보여 주었다.
“굉장히 좋은 장비를 얻으셨네요.”
퀴네어를 보여 주자 슈브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시련의 탑 보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보상이 뭔지 몰라?”
“네. 시련의 탑은 계승자님을 위해 초대 불사왕님이 준비하셨거든요. 그래서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에요.”
“그런가? 그럼 명계의 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명계의 신이요?”
갑자기 찔러 오는 신유현의 말에 슈브는 아주 잠깐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그 움직임을 신유현은 캐치해 냈다.
기척 감지 덕분에.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슈브가 얼버무렸다.
“모른다고? 그럼 신들에 대해서는?”
“제가 말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네요.”
계속되는 질문에 슈브는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다.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미안하군.”
신유현은 몸을 돌렸다.
‘말할 수 없다라.’
등골이 서늘했다.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신유현은 여신과 접촉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의 여신이라는 존재와.
그런데 신들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없다니?
신들과 무언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들에게 금제를 당했거나, 혹은 신들의 존재에 대해 아예 말도 꺼내서는 안 되는 계약을 맺었다거나.
‘더 이상 파고드는 건 좋지 않겠지.’
신들에 관해서 슈브가 말하지 않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신들에 대해서 듣는 건 강해지고 난 이후도 늦지 않을 터였다.
“그럼 철화단 간부에 대한 일은 맡겨도 되겠지?”
“네.”
신유현의 말에 슈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해 보이는 미소였다.
* * *
신유현이 지하 수련장으로 돌아온 후.
슈브는 이시아와 함께 가주전으로 향했다. 가주전 지하에 있는 심문실에서 철화단 간부놈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미 어제 가문 회의에서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에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남은 건, 슈브가 정보를 얻어 오는 걸 기다리는 것뿐.
[현재 시련의 탑 2층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일주일 뒤 입장이 가능합니다.]
“바로 입장을 못 하네.”
신유현은 혀를 찼다.
슈브를 가주전에 보내고 잠시 쉰 다음 시련의 탑 2층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뜬 것이다. 다음 입장이 가능한 시간은 일주일 뒤였다.
‘어쩔 수 없지. 현무검대원들이나 보러 가 볼까?’
그렇게 생각한 신유현은 지하 수련장에서 디아와 까망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그리고 현무전의 야외 연무장으로 나갔다.
야외 연무장에서 현무검대원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그들 중 3성 최상급 검사인 이대영이 가장 먼저 신유현을 알아보더니 다가왔다.
“아니, 전주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대련을 좀 해 볼까 해서.”
신유현은 이대영에게 하대를 했다.
이제 이대영보다 신유현의 초인 등급이 더 높으니까.
하지만 이대영은 신유현의 하대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제 신유현이 가진 힘을 봤기 때문이다.
“전주님이요?”
“아니.”
신유현은 그림자 속에서 스켈레톤 세이버 한 마리를 불러냈다.
그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랑 대원들이랑 비무를 한번 시켜 보려고.”
* * *
‘신유현, 이 자식을 어쩐다……?’
신철진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재능도 없는 놈이 현무전의 전주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경의 경지이자 마스터인 검왕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으면서도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다니!
아버지의 얼굴에, 그리고 파천검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가문에서 쫓아내기 위해 지명 의뢰를 시켰는데 훌륭하게 완수해 낸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기력 개방까지 하고 2성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가문에서 온갖 소문이 무성해졌다.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느니, 이제야 재능이 꽃폈다느니.
하지만 신철진은 알고 있었다.
‘그놈이 실력을 숨기고 있었을 리 없지.’
지금까지 얼마나 놈을 괴롭혔는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 하나.
이제야 재능이 드러난 것일 테지.
실제로 몇 달 사이 신유현은 눈부신 성장과 활약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런 건 신철진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위협일 뿐이었다.
“썩을 놈 같으니.”
신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유현의 성장은 위협이었기에 미리 싹을 밟아 두려고 했다.
그런데 정태성 일행들이 초를 쳐 버렸다.
실패를 한 것이다.
‘그때 그냥 단전 폐쇄나 당할 것이지.’
그랬으면 재능이 없는 주제에 초인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인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의 신유현은 너무 커 버렸다. 손을 대기에는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가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아버지의 관심까지.
거기다…….
“숙부님마저 그놈에게 가 버렸지.”
예전부터 신철진은 숙부인 신성현을 포섭하려고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신유현이 가문의 지명 의뢰를 완수하자 상황이 변하고 말았다.
신성현이 신유현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유현과 내기를 걸면서 파천신단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빌어먹을 자식!”
쾅!
갑자기 격분한 신철진은 책상을 내려쳤다.
가문의 쓰레기라고 무시하던 신유현에게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놈을 이대로 놔두면 안 돼.’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신철진의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특히 어제 신유현과 함께 있던 슈브의 모습이 떠오르자 배알이 꼴려 왔다.
설마 그렇게 아름다운 미녀를 부하로 두었다니!
어제 처음 슈브를 본 순간, 신철진은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
눈처럼 하얀 피부와 검은색 공막에 위험하게 빛나는 금색 눈.
그리고 조각상처럼 아름답고 글래머러스한 몸매까지.
그런 미녀가 신유현을 따른다는 생각에 신철진은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내 걸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어제 신유현을 찔러 봤다.
하지만 결과는 슈브에게 위압감을 받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차가운 살기가 신철진의 감각에 위험신호를 보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고작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신철진은 슈브의 아름다운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 슈브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 불리하다고 생각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다만 질투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신유현 같은 무능한 쓰레기 곁에 슈브처럼 아름답고 강한 미녀가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재능이 생겼다고 해도 아직 나보다는 아래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라면 뻔하지.’
대체적으로 네크로맨서는 소환수들이 강할 뿐, 자기 자신은 강하지 않았다.
실제로 슈브는 신유현과 계약을 맺은 소환수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신철진은 그런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슈브를 가지고 싶을 뿐.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신유현 자신이 강해진 건 아닐 거야. 그렇다면…….’
현재라면 충분히 신유현을 자신의 힘으로 짓밟을 수 있을 터.
신철진은 사고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달아 갔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당분간 신유현을 지켜볼 것이다.
특히 어제 가문을 위기에서 구한, 큰 공헌을 세운 직후인 지금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신철진은 감정이 앞선 상황이었다.
거기다 신철진은 어떤 성격을 가졌던가?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다혈질이었다.
그러니 어제 가문 회의에서 신유현에게 들이댄 것일 테지.
‘더 크기 전에 밟아 놔야지.’
신철진은 자신을 합리화했다.
지금보다 더 크기 전에 밟아 주자고.
그리고 자신이 신유현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한다면 많은 게 바뀔 것이라고 말이다.
일단 슈브가 신유현을 버리고 자신에게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생각을 정리한 신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상황에서 신유현을 밟아 줄 수 있는 수단이 한 가지 있었다.
후계자 후보들이 자신이 가진 지분을 걸고 벌이는 싸움.
‘후계자 후보 자리를 건 비무를 제안한다.’
신철진은 파천검가의 사대수호검전 중 하나인 주작전과 현무전을 걸고 비무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끝을 보자, 신유현.”
신철진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신유현과 가문의 후계자 지분을 건 결투를 할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신철진의 눈은 점점 더 붉게 충혈되어 갔다.
그 때문에 신철진은 보지 못했다.
눈앞에서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혼돈의 기운에 잠식 중입니다.]
* * *
“뭔가 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스켈레톤 세이버를 본 이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봤던 스켈레톤과 모습이 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 스켈레톤 솔저들도 뼈 장비 강화를 한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은 무장을 한 검사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세이버 클래스를 부여하자 겉모습이 좀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신유현조차 달라진 스켈레톤의 모습에 놀랄 정도였지만.
“업그레이드를 좀 시켰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예 변신을 했네.’
신유현은 흐뭇한 눈으로 스켈레톤 세이버를 바라봤다.
이전에 클래스 부여를 하면서 스켈레톤 강화 목록이 바뀌었다.
뼈 강화 Lv10(MAX)가 강철 골격으로 바뀌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지금 세이버의 골격은 메탈 재질의 회색 광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으며, 장비도 살짝 좋아졌다.
여전히 재질은 뼈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회색으로 변하면서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잠시 스켈레톤 세이버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신유현은 현무검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을 도발했다.
“그럼 누가 먼저 싸워 볼래? 내 스켈레톤 솔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그러자 현무검대원들 중 한 명이 발끈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