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75화
“저는 마스터의 계약자입니다.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슈브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붉은 눈이 매혹적으로 빛났다.
[세븐 아크스 거문성의 지배자, 슈브 라니그두가 매혹의 마안을 사용합니다.]
슈브의 자애로운 붉은 눈동자와 최정훈 일행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요.”
최정훈 일행들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신철호와 현무검대원들, 그리고 뒤늦게 이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슈브가 사용한 매혹의 마안은 약간 호의를 가지게 만들 정도로 약한 출력이었다.
만약 전력으로 사용했다면 신유현을 제외한 전원이 슈브의 꼭두각시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슈브보다 높은 등급의 초인은 없으니까.
‘이게 먹히네.’
그 모습을 지켜본 신유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슈브에게 매혹의 마안을 사용하라고 시킨 건 다름 아닌 신유현 자신이었다.
그녀가 악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마안을 사용하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먹힌 것이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튼 그 덕분에 가문의 초인들은 산양 같은 악마의 뿔을 가진 슈브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겠지.’
신유현은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었다.
아직 동쪽, 서쪽, 남쪽은 마수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북쪽은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뭐?”
갑작스러운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 탐지 마법에 던전 게이트 반응이 걸렸어요. 장소는 그리 멀리 않은 곳이고 여기 초인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인간들도 있군요.”
“던전 게이트라고?”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미간을 좁혔다.
던전 게이트 반응에 이질적인 느낌의 인간이라.
‘역시 철화단 놈들인가?’
으득.
신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전 삶에서 철화단 놈들이 마수들을 이용해서 가문을 습격했던 시점보다 늦어져 있었기에 혹시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아마도 철화단 놈들 짓이겠군.”
“이 짓을 한 게 철화단 놈들이란 말입니까?”
조용히 중얼거린 신유현의 말을 용케 알아들은 최정훈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얼마 전에 가문 근처 던전에서 놈들과 한바탕했었으니 말이죠. 아무래도 가문을 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최정훈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신유현은 그 속에 숨겨진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 철화단 놈들은 현무전의 대원들을 건드렸다.
거기다 인류의 적인 마수들을 이용해 가문을 습격해 왔다.
감히 대한민국 4대 명가 중 하나인 파천검가의 체면을 흙발로 짓밟은 것이다.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가문을 수호해야 하는 현무전의 부전주로서, 최정훈은 철화단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전주님은 놈들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당연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신유현 또한 철화단 놈들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마수들을 이용해 가문을 습격한 놈들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슈브, 놈들이 있는 장소는?”
“여기서 멀지 않아요. 직접 안내해 드릴게요.”
“알았어.”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최정훈이 입을 열었다.
“전주님,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부전주님이요?”
“네. 파천검가를 짓밟으려는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지 않겠습니까?”
최정훈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또한 철화단을 용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한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철화단 놈들을 잡으러 가는 건 소수 정예로 갈 생각이었다.
철화단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단, 한 놈도 놓칠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니 5성 초인인 최정훈이 함께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디아와 케이론은 놔두고 가야지. 스켈레톤 솔저들은 절반 정도 데려가면 될 테고.’
신유현은 스켈레톤 솔저들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까망이의 그림자 보관 스킬로 조용히 운송할 수 있으며, 철화단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신유현은 슈브와 까망이, 그리고 최정훈과 함께 철화단 놈들이 잠복 중인 장소로 향했다.
* * *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네요.”
파천검가의 장원에서 떨어져 있는 산속 언덕 위.
그곳에서 30대 초반의 청년, 마다테 헤이타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전부 그분 덕분이지.”
헤이타로의 말에 30대 후반의 사내 이시이 히데키는 진중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은 지금 산속 언덕 위에서 파천검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다양한 빛을 내뿜고 있는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3성과 5성 사이의 던전 게이트들.
“그분의 말대로네요. 이만한 마수들을 뽑아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사키 시로 놈이 실패했다고 들었을 때는 식겁했었지만 말이야.”
이시이 히데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수들을 조종하기 위한 실험이 실패한 것도 모자라, 파천검가 놈들에게 당했다고 들었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그분의 계획에는 빈틈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이룩해 냈다.
지난번 실패를 교훈 삼아서 크리스탈 장치를 더욱더 개량을 한 끝에 성능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던전 게이트까지 열 수 있을 줄이야. 대체 이 크리스탈 장치는 정체가 뭘까요? 이걸 만든 그분은 대체…….”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마다테 헤이타로의 말에 이시이 히데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밀을 알려고 하면 죽는다.’
마수는 인류의 적이다.
그런데 그런 마수를 조종할 수 있고, 공간을 비틀어서 던전의 균열을 만들어 낸다니?
이시이 히데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위험하다는 느낌이 전신을 내달렸다.
그가 가진 위험감지 스킬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탈 장치의 능력을 봐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돼. 괜히 쓸데없이 목을 내밀 필요는 없지.”
“그건 그렇죠.”
이시이 히데키의 말에 마다테 헤이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화단의 간부인 그들조차 크리스탈 장치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철화단은 하부 조직이었다.
간부라고 해도 거의 말단이나 다름없으며 상부 조직에서 까라면 까야 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상부 조직에서 내려온 명령은 크리스탈 장치를 사용하여 파천검가를 습격하라, 였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파천검가를 습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녀석들 생각 외로 버티네요? 마수들을 벌써 몇 백 마리나 쏟아붓고 있는 건지…….”
마다테 헤이타로는 질린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대한민국 최강의 검술 가문다웠다. 현재 파천검가의 핵심 전력인 검왕 신성일과 후계자 자리의 1, 2위를 다투고 있는 신철민과 신유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버티고 있다니.
“북쪽은 어떻게 되었지?”
“글쎄요. 지금쯤이면 다른 곳은 몰라도 현무전이 있는 북쪽은 개박살이 나지 않았을까요?”
“그래야지. 사사키 시로가 병신 같긴 했어도, 감히 철화단의 간부를 건드렸으니까. 대가를 치러야지.”
마다테 헤이타로와 이시이 히데키는 사사키 시로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철화단 간부들 중에서 최약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사사키 시로 또한 철화단의 간부였다.
그 때문에 사사키 시로를 죽게 만든 현무전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철화단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들어 보니 현무전의 전주라는 놈이 방해를 했다고 하던데 그놈은 어떻게 할까요?”
“분명 신유현이라는 놈이었다지? 최근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던데.”
“네. 파천검가의 직계 3남인데 재능이 없다고 무시받던 놈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능력을 드러내면서 후계자 경쟁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흥.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방해한 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
“놈을 어떻게 할까요?”
“파천검가나 한국의 다른 가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줘야지. 철화단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그럼 생중계로 고문 방송을 하면 좋겠네요. 손톱과 발톱을 뽑고 눈알도 뽑고. 손가락, 발가락도 뽑으면 싫어도 알게 되겠죠.”
“산 채로 해부 쇼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마다테 헤이타로와 이시이 히데키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들은 파천검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천검가의 가주이자 검왕이라고 칭송받는 신성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검왕보다 더 두려운 자를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등한 인간 따위가 감히!”
화르륵!
순간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꽃 채찍이 뱀처럼 마다테 헤이타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쫘악!
“끄아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흑염의 채찍이 등을 할퀴고 지나가자 마다테 헤이타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그 모습에 이시이 히데키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언덕 뒤쪽 울창한 나무 아래 그늘 속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채찍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야, 이 개새끼야!”
그 뒤를 이어 채찍이 날아든 곳의 그림자 속에서 한 인물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난 최정훈이었다.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엄청난 속도로 보법을 펼치며 이시이 히데키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 넌 뭐야?!”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시이 히데키는 뒤늦게 강체술을 발동했다.
그는 4성 최상급 실력의 무투가였다.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검집째로 얼굴을 향해 휘두르려고 하자 건틀렛으로 무장한 양팔을 들어 올렸다.
빠악!
“커헉!”
하지만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검집은 페이크였다.
갑자기 검의 궤도가 휙 바뀌더니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검집이 휘둘려 온 것이다.
“이 찢어 죽일 놈들!”
최정훈은 검집째로 오러를 둘러서 이시이 히데키를 마구 내려쳤다.
하지만 이시이 히데키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건틀렛으로 가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크윽! 컥!”
하지만 이시이 히데키는 4성 최상급 초인.
그에 반해 최정훈은 5성 초인이었다.
아무리 가드를 했다고 해도 광분 상태로 있는 힘껏 검집을 내려치는 최정훈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없었다.
빠악!
“으억!”
검집으로 머리를 맞자 이시이 히데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피가 튀었다.
“이 쳐 죽일 자식들! 뭐? 전주님을 어떻게 하겠다고? 네놈들은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그렇지 않아도 최정훈은 놈들에게 쌓인 게 많이 있었다.
그런데 신유현과 슈브의 그림자 은신 스킬로 숨어서 놈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정훈이 꼭지가 돌아가 버린 것이다.
최정훈의 공격에 이시이 히데키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최정훈은 발을 치켜들며 내려치듯이 이시이 히데키의 팔을 짓밟았다.
콰드득!
“끄아아아악!”
이시이 히데키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이시이 히데키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 주제에 마스터를 감히 어떻게 하겠다고?”
“그, 그만…… 끄르륵.”
마다테 헤이타로는 분노한 슈브에게서 지옥 같은 고통을 받으며 조교를 당하고 있었으니까.
슈브는 흑염 채찍에 몸이 불타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마다테 헤이타로를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럼 이제 감도를 다섯 배로 올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