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68화
신유현은 크리스탈 안에 있는 여성을 바라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
20대로도 보이고 30대로도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
머리 위 양옆에 솟아나 있는 검은 산양 같은 뿔과 허리 쪽에 펼쳐져 있는 검은색 깃털 날개.
그리고 하얀 문양이 들어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마성의 여인이 크리스탈 안에 있었다.
‘거문성의 지배자, 슈브 라니그두.’
말없이 한동안 슈브를 바라보던 신유현은 크리스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쩌적.
크리스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콰창!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금이 간 크리스탈은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슈브의 봉인이 풀린 것이다.
그렇게 슈브의 힘을 억누르고 있던 크리스탈이 깨져 버리자 검은 마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형상화되면서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로 인해 금색 머리카락과 드레스 자락이 흩날렸다.
스륵.
잠시 후 그녀의 눈이 조용히 뜨였다.
검은 공막에 차갑게 빛나는 금색의 마안이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눈앞에 있는 신유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유현 또한 가만히 그녀를 올려다봤다.
여신의 조각상처럼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와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미녀.
차가워 보이는 금색의 마안과 주변을 어둡게 만들 정도로 짙은 흑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금빛 여신처럼 보였다.
“불사왕의 계승자를 뵙습니다.”
신유현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지면에 착지하더니 드레스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날 알고 있나?”
“네. 그분과 같은 향기가 나고 있으니까요.”
슈브는 부드러운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오랜 시간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저에게 명령을 내려 주세요.”
“무엇이든?”
“네. 당신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봉사해 드리겠어요.”
슈브는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허리를 숙이며 상냥하고 자애로운 미소로 신유현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봤다.
그러자 검은 점이 찍혀 있는 그녀의 아찔한 가슴골이 드러나 보였다.
또한 신유현을 바라보는 금색의 마안이 불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경고! 정신 공격을 감지하였습니다.]
[유혹에 저항합니다.]
[매혹에 저항합니다.]
[음욕에 저항합니다.]
‘날 시험하는 건가?’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슈브는 유혹의 마안을 발동하며 신유현을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신유현의 정신이 100이라는 사실을.
“시시한 짓을 하는군.”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슈브를 바라봤다.
설마 자신을 유혹할 줄이야.
“역시 통하지 않네요.”
슈브는 아쉬운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녀는 신유현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유혹을 걸었다.
그런데 유혹에 저항할 줄이야.
“당연하지.”
슈브가 있는 방으로 오기 전.
신유현은 다양한 미녀들의 관능적인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그녀들 중에서도 슈브가 가장 위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 잠깐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신유현의 한마디에 슈브는 말없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신유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부디 실례를 용서해 주시길.”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주지.”
자신을 시험하려고 한 슈브의 사과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마스터라고 부르는 말에서 자신을 불사왕의 후계자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다시 인사드릴게요. 세븐 아크스 중 한 명, 거문성을 담당하고 있는 슈브 라니그두라고 합니다. 마스터를 다시 보게 돼서 기쁘네요.”
슈브는 관능적인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딱히 유혹을 할 생각은 아닐 테지만,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에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요염하게 느껴졌다.
“파천검가의 신유현이다.”
하지만 신유현은 그녀의 여신 같은 미소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페이스에 휘둘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역시 불사왕의 직속 소환수로군.’
신유현은 그녀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세븐 아크스, 거문성의 지배자.]
이름: 슈브 라니그두
종족: 서큐버스
나이: 불명
칭호: 거문성의 지배자, 어둠의 뒤를 걷는 자,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어둠의 화신
등급: 6성(봉인 제한 중)
클래스: 몽마의 여왕
고유 특성: 유혹의 마안(S)
고유 스킬: 정기 흡수(S), 황홀한 저주(S), 촉수 소환(S)
기본 스킬: 상세 항목 참조
능력치: 상세 항목 참조
설명: 불사왕 직속 세븐 아크스 중 한 명. 색욕의 신전에 봉인되어 있다가 풀려나왔다. 봉인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능력이 완전하지 않고 제한을 받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슈브는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크리스탈에서 이제 막 풀려나온 참이라 아직 힘이 전부 돌아오지 않았고 능력 봉인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등급이 무려 6성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완전히 풀리게 된다면 7성이나 8성까지 바라볼 수 있을 터.
7성 화경의 경지이자 소드 마스터인 검왕 신성일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둠의 존재를 의미하는 칭호부터 시작해서 고유 스킬 정기 흡수, 황홀한 저주, 촉수 소환은 위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럼 마스터는 앞으로 무엇을 하실 건가요?”
잠시 슈브의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녀가 신유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은 명확했다.
불사왕으로서 무엇을 이룰 것인지 묻고 있었다.
‘무엇을 할까라…….’
그녀의 질문에 신유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사왕의 힘으로 게티아 놈들에게 복수를 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거기에 복수와 연동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초대 불사왕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룰 생각이다.”
“그 말씀은……?”
“마수들을 몰아내야지.”
게티아 놈들은 마수들을 이용해 인류를 휩쓸었다.
신유현에게 있어 마수들은 게티아 놈들과 똑같이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역시.”
신유현의 대답에 슈브는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현이 초대 불사왕의 의지를 이어 가기로 했으니까.
초대 불사왕은 마수를 전멸하기 위해 전쟁을 걸었다.
하지만 결국 마수들을 몰아내지 못했다. 아니, 몰아내기는커녕 마수들과의 전쟁에서 초대 불사왕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세븐 아크스들 또한 뿥뿥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유현은 슈브가 봉인되어 있는 방의 벽화를 보고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마수들의 영향력이 우주까지 뻗어 나가 있으며, 마수들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 네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전부 말해 봐.”
“제가 알고 있는 정보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드리겠어요.”
“그럼 먼저 불사왕에 대해서.”
“죄송하지만 초대 불사왕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어요. 초대 불사왕님이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계약을 맺었거든요.”
“계승자인 나에게도?”
“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혀를 찼다.
초대 불사왕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는데 설마 계승자에게까지 말하지 말라고 했을 줄이야.
“그럼 불사왕의 능력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는 건, 능력은 원래부터 그분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밖에 없어요. 그리고 계승자님은 초대 불사왕님의 유산과 능력을 물려받으신 거죠.”
그렇게 신유현은 슈브로부터 초대 불사왕이 지녔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신유현이 예상하고 있었던 내용과 틀리지 않았으며, 초인 등급을 올려서 강해져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다른 세븐 아크스들을 찾고 소환수들을 강화시켜야 하고 말이다.
슈브로부터 불사왕에 대한 능력을 대략적으로 전부 다 들은 신유현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너희 세븐 아크스들은 처음부터 초대 불사왕과 함께한 건가?”
“아뇨. 저희들은 초대 불사왕님과 계약을 맺어서 동료가 되었어요.”
“계약을 맺은 거라고?”
“네. 저희들은 그분을 인정하고 소환수가 되기로 한 거거든요.”
“그런…….”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븐 아크스들은 불사왕의 직속 소환수들이었다.
그래서 불사왕의 능력으로 태어난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약으로 맺어진 존재였다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저희들은 초대 불사왕님뿐만 아니라 계승자님에게도 종속하기로 계약을 맺었으니까요.”
“너희들은 그걸로 괜찮은 거냐?”
“네. 그분의 계승자라면 그분과 다름이 없거든요.”
슈브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든 세븐 아크스들이 계승자인 자신에게 종속한다는 사실에 신유현은 마음을 놓았다.
“그럼 너희들은 어떤 존재지?”
“저희들은 초대 불사왕님께서 시간과 차원을 넘나들며 계약을 맺은 존재들이에요. 그래서 출신지가 다양하지요.”
“시간과 차원을 여행한다고? 시간을 달리는 사냥개의 힘인가?”
슈브의 말에 문득 신유현은 회귀를 하기 전, 시공을 넘어서 자신을 바라보았던 거대한 푸른 늑대를 떠올렸다.
시간을 넘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메시지에 소름이 돋은 적이 있었다.
시간을 달리는 사냥개, 아니 푸른 늑대의 힘이라면 시간과 차원을 여행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 그 당시 초대 불사왕님은 탐랑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탐랑성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가까운 차원이나 공간이라면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슈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신유현은 디아의 힘으로 슈브가 봉인된 신전이 있는 이 세계에 와 있지 않은가.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상당히 강한 존재들이겠군. 그런데 어째서 불사왕과 계약을 맺은 거지?”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요?”
신유현의 물음에 슈브의 기세가 변했다. 싸늘한 한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수들을 없애 버리기 위함이랍니다. 그리고 마수들을 만들어 낸 존재들까지도요.”
아무래도 슈브를 비롯한 세븐 아크스들은 마수들을 증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마수들에게 모든 것을 잃었을 테지.
사랑하는 존재나, 가족이나, 친구 등등.
그 때문에 모든 마수들을 멸망시키려고 한 불사왕과 세븐 아크스들은 서로 손을 잡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슈브의 말에 신유현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수들을 만들어 낸 존재들이 있다고?”
조금 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위화감.
방 안의 벽화를 보고 마수들 너머에 어떤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마수들을 창조해 낸 존재들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