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56화
늦은 오후 시간.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클럽의 룸에서 이천우는 여자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양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천우의 오른팔인 이영수가 전화를 받더니 이천우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도련님, 놈이 움직였답니다!”
“뭐? 지금?”
천월검문의 차남, 이천우는 인상을 팍 썼다.
“아이, X발. 이 새끼는 왜 술 좀 마시려고 할 때 움직이고 지랄이야. 어제까진 가만히 있더니.”
처음 신유현과 만났던 경매 파티 날.
이천우는 신유현에게 받은 모욕감을 잊을 수 없었다.
무능한 쓰레기라고 소문이 자자한 신유현에게 경매에서 지고, 남연아까지 멀어졌으니까.
그래서 신유현을 조지기 위해 왼팔인 강대영을 시켜서 감시를 붙였다.
신유현이 파천검가에서 나오는 걸 파악하기 위해서.
“아, 진짜 짜증 나네.”
사실 이천우는 천월검문에서도 반쯤 포기한 망나니로, 평소 매일 클럽이나 룸살롱에 가서 유흥을 즐겼다.
파티 다음 날 신유현이 바로 움직일 줄 알고 대기를 탔었는데 파천검가에 그냥 박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오늘 술을 마시러 나왔다.
그런데 하필 오늘 움직일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움직였으면 끝을 봐야지.”
아직 술 파티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강대영에게 혼자 파천검가를 감시하게 할 수도 없었다.
꼬리가 길면 파천검가의 보안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지금도 감시라고 해 봐야 파천검가의 사유지로 들어가는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서 신유현이 나오나 안 나오나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대?”
“3성 던전에 혼자 들어갔다고 하던데요?”
“뭐? 던전에 혼자?”
“예.”
이영수의 대답에 이천우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던전이라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으니까.
“이놈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3성 던전에 혼자 들어갔다고?”
이천우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이영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무튼 잘됐네. 애들 몇 명 좀 모아 봐라. 가문에는 간만에 던전 공략 좀 하러 간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이영수의 대답을 귓등으로 들으며 이천우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두고 보자, 신유현. 내 발밑에 밟아주마.’
그 생각에 이천우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 *
‘후. 겨우 도착했네.’
신유현은 눈앞에서 초록색 스파크가 튀고 있는 공간의 균열을 바라봤다.
던전 게이트의 위치는 경기도 외곽의 어느 산자락이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지 못해서 좀 헤맸지만 다행히 찾을 수 있었다.
디아의 탐지 능력 덕분에.
[배틀 필드로의 전이를 확인.]
[3성 던전 타락한 맨티스 포레스트에 입장하셨습니다.]
균열에 발을 내딛자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신유현은 던전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기분 나쁘네.”
신유현은 어두운 밤하늘에 걸려 있는 붉게 빛나는 테두리와 중앙에 검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붉은 달을 올려다봤다.
3성 던전 맨티스 포레스트는 하늘에 걸린 검붉은 달 때문에 붉은빛이 은은하게 어려 있는 거대한 숲이었다.
‘이 던전의 마수는 맨티스들이지.’
3성 마수 맨티스.
맨티스들은 거대화한 사마귀 같은 마수들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그리고 3성 마수들 중에서는 상급 정도로 나름 강한 편이었다.
“디아야, 까망아. 나와 봐.”
- 넹!
뀨!
신유현의 부름에 디아와 까망이는 귀엽게 대답하며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꼬물꼬물.
까망이는 신유현의 몸을 타고 오르더니 왼쪽 어깨에 자리를 차지했고, 디아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의 왼손을 붙잡았다.
“마스터, 버프 걸어 드려영?”
“아니, 아직. 맨티스를 한번 상대해 보고.”
“넹.”
그 상태로 신유현은 숲속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쉬쉬쉭!
전방에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3성 마수 타락한 맨티스>
이윽고 울창한 숲속 나무 사이로 맨티스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물러나 있어.”
일단 신유현은 디아와 까망이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에 차고 있는 마검 이그니스를 움켜쥐며 맨티스를 노려봤다.
눈앞에 있는 맨티스의 모습은 신유현의 기억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등 부분에 하늘하늘거리는 징그러운 검은 촉수가 돋아나 있었다.
촉수는 모든 타락한 마수들의 특징 중 하나로, 촉수 공격에는 조심해야 했다.
촉수에 휘감기거나 몸에 꽂히는 날에는 마나 드레인을 당하니까.
쉬익! 쉬익!
맨티스는 신유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탐색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범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신유현이 혼자라는 사실과 내뿜는 기세를 보고 만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만 더 다가와라.’
신유현은 마검 이그니스를 움켜쥔 채로 자세를 낮췄다.
앞으로 한 걸음 더.
한 걸음만 더 오면 신유현의 사정거리 안에 맨티스가 들어온다.
쉬쉭!
슈아아아악!
순간 맨티스의 등에 하늘거리며 솟아나 있는 촉수 한 쌍이 신유현을 향해 날아드는 게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촉수 두 개가 공간을 가르며 신유현의 몸을 꿰뚫기 위해 쇄도했다.
그 순간.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검집 안에서 흑염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마검 이그니스가 뽑혀 나왔다.
음속을 넘어 휘둘러지는 붉은 검신.
그와 함께 신유현의 전방에 확 퍼져 나가면서 소닉붐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신유현을 향해 날아들던 검은 촉수들은 단숨에 갈려 나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파아아앙!
한 박자 늦게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쌔애액!
그 직후 날카로운 굉음을 비집으며 신유현을 향해 검은 촉수가 날아들었다.
처음 촉수 두 개는 페이크였고 시간 차로 두 개 더 날려 보냈던 것이다.
이미 파천검법 초식을 시전한 터라 다시 이그니스를 거두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한 상황.
그 틈을 노리고 촉수 두 개가 날아왔기에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디스토션 필드를 발동합니다.]
바로 그때 DF코트가 신유현의 주변에 공간왜곡장을 발생시켰다.
슈우우욱! 파바박!
검은 촉수는 신유현에게 닿지 못하고 날아가던 방향이 꺾이면서 지면에 박혀 들어갔다.
‘역시 중급형 코트.’
신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자동적으로 디스토션 필드가 발동하면서 신유현을 지킨 것이다.
DF코트의 성능은 신유현의 예상 이상이었다.
쉬에에에엑!
뒤이어 맨티스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울려 퍼졌다.
검은 촉수 두 개는 흑염과 충격파에 휩쓸리면서 갈려 나갔고, 나머지 두 개도 지면에 박히면서 상처를 입었으니까.
거기에 촉수 두 개가 지면에 깊숙이 박힌 상태라 잠깐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신유현은 놓치지 않았다.
파천신법(破天迅法).
두 번째 걸음, 전광석화(電光石火)!
눈 깜짝할 사이에 신유현은 맨티스의 앞에 섰다.
화르륵.
이윽고 마검 이그니스의 붉은 검신을 타고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검은 화염.
파천검법(破天劍法).
삼식(三式), 격멸(擊滅).
충격파를 머금은 흑염이 맨티스를 향해 덮쳐들었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맨티스는 지면에 납작하게 짓눌렸다.
파천검법의 3초식 격멸의 충격파가 맨티스를 내려친 것이다.
그 때문에 맨티스가 있는 지면에는 작은 크레이터까지 생겨났다.
쉬, 쉬에엑.
지면에 구겨지듯 처박힌 맨티스는 초록색 체액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버둥거렸다.
“잘 가라.”
푸욱!
신유현은 자비 없이 맨티스의 작은 머리 위에 마검 이그니스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버둥거리던 맨티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축하합니다. 3성 마수 타락한 맨티스를 처치하셨습니다!]
신유현의 눈앞에 맨티스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 마리는 혼자서 잡을 만하네.’
블레이드 같은 앞다리로 근접 공격을 할 줄 알았는데 촉수를 시간 차로 날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면 한두 마리 정도는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다크 소울 이터의 효과로 3 소울 포인트를 흡수합니다.]
그와 함께 신유현의 등에 흑염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활짝 펼쳐지면서 검은 촉수가 맨티스의 시체에 박혔다.
그리고 맨티스의 영혼을 흡수하면서 신유현은 숨을 들이마셨다.
“아, 씁. 이거 초록색이라 그런가. 맛이 좀 그러네.”
입안이 화해지는 강렬한 맛.
맨티스의 영혼은 혀가 짜릿한 맛이었다.
“마스터, 맛이 어때영?”
신유현의 중얼거림에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디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민트 맛이야.”
“치약 맛 싫어여.”
민트 맛이라는 말에 디아는 흠칫거리며 뒤로 펄쩍 물러났다.
단맛을 좋아하는 디아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맛이었으니까.
“치약 맛까진 아니지만 단게 당기긴 하네.”
“저도영.”
그렇게 디아와 대화를 나눈 신유현은 다시 던전 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타락한 맨티스 이후에도 다양한 마수들이 나타났다.
타락한 블레이드 맨티스, 타락한 포이즌 맨티스 등등.
다양한 종류의 맨티스들이 한두 마리씩 나타나며 신유현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신유현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차근차근 맨티스들을 쓰러트리면서 보스가 있는 장소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절반 정도 갔을 때쯤.
신유현은 맹렬한 속도로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기척을 느꼈다.
‘이제 왔군.’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경매장에서 봤던 이천우 패거리 중 하나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신유현은 그냥 놔두었다.
이제 이천우 같은 놈들 따위는 수십 명이 와도 상관이 없었으니까.
신유현은 디아를 몸 뒤로 숨기면서 고개를 돌렸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여기 올 줄은 몰랐지?”
어둠이 내리깔린 숲속 공터.
그곳에 은은한 붉은 달빛을 받으며 이천우 패거리가 나타났다.
경매장에서 봤던 똘마니 두 명뿐만이 아니라 세 놈이 더 있었다.
“날 엿 먹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이천우는 인상을 팍 쓰며 눈을 치켜뜨면서 신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이천우는 자존심에 금이 간 상태였다.
천월검문에서 수재라고 인정받은 자신이 파천검가에서 무능하다고 소문난 신유현에게 엿을 먹었으니까.
지금까지 천월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넣어 온 이천우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자신을 노려보는 이천우를 향해 신유현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넌 오늘 죽었어.”
그러자 이천우 패거리들은 살의를 피워 올렸다.
아무래도 끝장을 볼 생각인 모양.
“날 죽이겠다고? 뒷감당은 생각하고 말하는 거냐?”
“파천검가의 쓰레기 놈이 죽는다고 슬퍼할 사람이 있겠냐? 그리고 던전에서 헌터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야 흔하지.”
“그럼 각오는 하고 왔나?”
“각오? 무슨 각오?”
“네놈들의 목숨.”
“지랄하네.”
신유현의 말에 이천우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이놈 이거 미친놈인가?”
“진짜 또라이 새끼네.”
다른 패거리들도 미쳤냐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그리고 이천우는 패거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