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48화
‘누구지?’
신유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신유현과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거만한 눈빛으로 신유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네까짓 게 뭔데 남연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냐,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그의 좌우에는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사내 두 명이 있었다.
그들 또한 청년의 나이 또래로 보였다.
“야, 눈 안 까냐? 어딜 감히 천월검문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어?”
“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좀 하자.”
“천월검문?”
그들의 말에 신유현은 조용히 반문했다.
천월검문(天月劍門).
대한민국에서 파천검가 다음으로 유명한 검술 가문이다.
수많은 검술 가문들 중에서 유독 파천검가를 향해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경쟁하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높았으니까.
그 때문에 파천검가는 사사건건 천월검문과 반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월검문이 나한테 무슨 용무지?”
“뭐? 이 근본도 없는 자식이 감히 누구 앞에서 말대꾸야?”
“지금 네놈 앞에 있는 분이 누군지 알고 있냐?”
신유현의 말에 청년의 좌우에 있던 녀석들이 눈을 부라렸다.
“야, 아가씨 앞에서 너무 겁주지 마라.”
“네.”
신유현을 거만한 눈으로 바라보던 청년, 천월검문의 차남인 이천우의 말에 두 명은 뒤로 물러섰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수에 맞게 행동하지?”
이천우는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신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과 태도는 명확했다.
알아서 꺼지라는 소리였다.
“이천우 씨, 지금 뭐 하는 건가요? 이분은 제 손님이에요. 무례하게 굴지 마세요.”
그때 남연아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이천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천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손님? 연아 아가씨. 사람은 구분하면서 사귀셔야죠. 이런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놈이 뭐가 대단하다고 관심을 주는 겁니까?”
이천우는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 신유현은 그저 그런 평범한 초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3성 하급 정도겠지.
그에 비해 이천우는 어떤가.
이미 4성 경지에 올라섰으며 항상 심복으로 데리고 다니는 양팔 격인 인물들도 3성 최상급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천우는 남연아와 친해 보이는 신유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놈을…….’
이천우는 신유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남연아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연아는 그에게 파티의 초대는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 파티장에 도착하고 남연아를 발견했을 때 처음 보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그녀의 아티팩트 연구소에서 단둘이 보자고 말이다.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이천우 씨, 말조심하세요. 이분은 파천검가의 직계예요.”
남연아의 말에 이천우와 그 옆에 있던 사내 두 명은 순간 흠칫 놀라더니 안색이 변했다.
파천검가는 대한민국 최강의 검술 명가이다.
천월검문이라고 해도 파천검가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파천검가의 직계라고……?”
이천우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상대가 파천검가라고 해도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남연아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선물은 물론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연락을 하며 남연아와 인연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남연아는 이천우에게 학을 떼고 있었지만.
‘저놈이 정말 파천검가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물러설 수 없지.’
이천우는 피가 끓어올랐다.
파천검가는 천월검문의 최대 라이벌.
언젠가 파천검가를 제치고 검술 가문으로서 대한민국 4대 명가의 한자리를 차지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파천검가의 직계 중에 이런 놈이 있었나?’
순간 이천우는 의문이 들었다.
천월검문은 파천검가에 대해서라면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기에 어지간한 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이 파천검가의 직계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너, 정말 파천검가의 직계냐?”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거지?”
“내가 알기로 파천검가에는 너 같은 놈이 없는 걸로…… 아.”
순간 이천우는 떠올렸다.
파천검가에서 장남과 장녀인 신철민과 신유라는 유명했다. 대규모 공격대를 이끌고 고등급 던전 레이드 공략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차남인 신철진도 던전 공략을 할 때 전투광이 되는 걸로 유명했으며, 막내인 신철호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파천검가의 무기고를 지키는 차녀 신지아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천월검문의 눈 밖에 나서 안전하다고 판단된 인물이 있었다.
“네가 파천검가에서 무능한 쓰레기라고 불리는 신유현이구나. 너에 대해서라면 소문으로 많이 들었지.”
이천우는 신유현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기력 개방조차 하지 못해 파천검가 내에서도 무시당하고 경원시되는 인물.
설마 그런 놈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줄이야.
“에휴. 그놈의 소문.”
그리고 소문이라는 말에 옆에서 조용히 초코 케이크를 웅냠냠 먹고 있던 최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오빠도 고생이 많네요.”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최유리 또한 신유현에 대한 건 소문으로밖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신유현이 소문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런 사실을 이천우 패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고생은 무슨. 사실이지. 파천검가의 삼남이 자기 가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소문은 나름 유명하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이천우의 말에 신유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확실히 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신유현은 기력 개방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아니, 오빠. 아까랑 말이 다르지 않아요?”
그러자 최유리는 신유현을 밑에서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아, 그랬지, 참.”
신유현의 대답에 최유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 네가 아무리 파천검가라고 해도 쓰레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 가문에서도 버려진 놈이니까. 이제 그만 내 눈앞에서 꺼져라.”
이천우는 이제 아예 대놓고 신유현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지 않으면 쳐 죽여 버린다.
이천우는 신유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전음으로 욕을 퍼부었다.
남연아와 최유리가 뭐라 말하든 그가 알고 있는 신유현은 기력 개방조차 하지 못한 힘이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유현을 비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전음도 못 쓰는 버러지 새끼야.
전음은 기력 개방을 한 초인들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기력 개방을 하지 못한 신유현이라면 전음을 들을 수는 있어도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 병신 새끼. 지랄하지 말고 네가 딴 데로 꺼져.
신유현은 이천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
그러자 이천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음을 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신유현이 전음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데다가,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으니까.
“너, 너 이……!”
이천우는 신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이곳은 남두그룹에서 주최하는 경매 파티장이다.
여러 유명 인사들과 경지가 높은 초인들이 있는 장소였다.
이런 중요한 장소에서 사고를 친다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있을 남두그룹의 모든 이벤트 모임에서 제외 처리가 되는 건 물론, 등급이 높은 강자들의 눈 밖에 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천우는 구태여 전음으로 신유현을 도발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신유현이 이천우의 도발을 너무 잘 받아쳤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세가 좋아서 마음에 드는군.”
그때 신유현의 등 뒤에서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
그 소리에 이천우는 얼어붙어 버렸다.
“할아버지!”
어느 틈엔가 남두그룹을 이끄는 회장인 남현철이 그들 뒤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다가오자 최유리를 시작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 청년이 널 구해 주었다는 분이냐?”
“네, 맞아요.”
남현철의 물음에 남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신유현은 남현철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신유현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신유현과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눈 남현철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이천우 패거리가 있었다.
“자네들은 이야기 끝났나? 난 잠시 이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네, 넵. 물론입니다. 이야기 나누십시오!”
남현철의 말에 이천우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남두그룹의 회장, 남현철.
대한민국의 경제를 쥐고 있으며, 초인들의 필수 장비인 아티팩트를 공급하는 인물.
만약 남현철 회장의 눈 밖에 난다면 이천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천월검문의 존속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만큼 초인들에게 있어 아티팩트의 존재는 굉장히 컸으니까.
‘어째서 남현철 회장이 저놈을…….’
이천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남현철이 신유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단 말인가.
유감스럽게도 이천우가 속한 천월검문은 정보력이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신유현이 파천검가에서 현재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신유현이 3성 미확인 던전 게이트 조사팀에서 남연아를 구출해 왔다는 사실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헌터 협회와 남두그룹에서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은 물러나는 게 상책이었다.
신유현을 엿 먹일 방법이라면 한 가지 있었으니까.
‘경매 때 두고 보자.’
이천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파티에 참석한 초인들의 주요 목적은 경매였다.
분명 신유현 또한 경매품을 노리고 있을 터.
그리고 가문에서 버림받은 놈이 경매품을 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에 반해 이천우는 천월검문에서 지급받은 자금이 있었다.
‘네놈 손에는 아무것도 쥘 수 없게 해 주마.’
그렇게 이천우는 속으로 신유현을 비웃으며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내 손녀를 구해 주어서 고맙네.”
이천우 패거리가 사라지자 남현철은 신유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당연한 일을 하는 게 어디 쉬운가. 연아에게 들어 보니 자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 하더군.”
“제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전부 4성 헌터 선배님들의 희생 덕분이죠.”
신유현은 자신의 공을 당시 조사팀에 참가했던 강유찬과 김우성에게 넘겼다.
이미 그렇게 말하기로 남연아와 상의를 마쳤기도 했으니까.
‘암살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기로 했었지.’
“그리고 이미 보상도 받았으니까요.”
신유현은 남현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려 10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 있는 남두그룹의 블랙 카드를 받았다.
보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다 또 남연아가 신형 배리어 코트까지 선물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나중에 파천검가에 감사 인사를 보내도록 하겠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신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남두그룹.’
정보력이 좋았다.
이천우와 달리, 남현철은 신유현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알려진 정보와 달리 신유현이 무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애초에 신유현에게 실력이 없었다면 남연아와 함께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비명횡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유현이 원하는 건 파천검가에서 인정받는 일이었다.
남두그룹의 감사 인사라면 신유현이 가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될 터.
남현철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럼 다음에 또 이야기하세. 파티 잘 보내게.”
“네, 감사합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남현철 회장은 이내 동행한 인물들과 함께 멀어져 갔다.
“할아버지가 유현 씨 마음에 드셨나 봐요. 저렇게 웃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으시거든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오빠, 진짜 신기하다. 회장 할아버지랑 말하기 진짜 힘든데.”
최유리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기본적으로 남현철은 사람들을 대할 때 굉장히 사무적으로 대했다.
“그만큼 연아 씨가 소중하다는 거 아닐까?”
“인정, 인정.”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신유현의 말에 최유리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남연아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파티장 가장 앞에 마련된 단상에서 사회자 한 명이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