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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47화 (47/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47화

신유현과 눈을 마주친 어린 소녀는 먹고 있던 초코 케이크를 뿜었다.

- 아, 저거 티라미수 케이크, 비싼 건데.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의 머릿속으로 디아의 한탄이 들려왔다.

설마 은신 스킬을 쓰고 몰래 케이크를 먹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못 본 척하자.’

괜히 엮이면 골치가 아파질지도 몰랐기에 신유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뒤통수로 소녀의 시선이 아프게 꽂혀 왔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며 파티장 앞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신유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오빠.”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에 신유현은 뒤를 돌아봤다.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파티장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순순히 붙잡혀 준 것이다.

“저 봤어요?”

이제 10대 중반은 되었을까.

귀엽게 생긴 소녀가 신유현의 옷자락을 붙잡고 날카롭게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뭘?”

“케이크 먹는 거. 먹다가 뿜은 거 다 봤죠?”

“아니. 못 봤는데.”

신유현은 바로 부정했다.

“그럼 어떻게 제가 있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언니, 오빠들 중에는 아무도 몰랐었는데.”

소녀는 신기한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실제로 파티장에서 소녀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있는 인물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 애는 설마…….’

그리고 가까이서 소녀를 보고 이야기를 들은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상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만독가문의 최유리?”

“어? 오빠, 저 아세요?”

신유현의 중얼거림에 소녀, 아니, 최유리는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 반문했다.

“소문으로 들었지.”

만독가문의 천재 소녀.

어렸을 때부터 독과 은신에 뛰어나, 만독 가문의 직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만독왕 최대현이 가장 귀여워하는 손녀라고 알려져 있었다.

“신기하네요. 소문만으로는 제가 누군지 모를 텐데. 오빠는 정체가 뭐예요?”

최유리는 의심 반, 호기심 반이 어린 눈빛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만독 가문 내에서도 그녀의 은신술을 간파해 내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은신술을 간파해 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파천검가에서 왔어. 이름은 신유현이고.”

“에? 파천검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최유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더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신유현이면…… 설마 그 신유현?”

파천검가에서 신유현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가문의 위신이 걸려 있었으니까.

4대 명가의 직계가 기력 개방도 하지 못한 무능아라고 한다면 세간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결코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 고위층에서 소문이 조금 나돌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최유리는 4대 명가 중 하나인 만독 가문의 일원이었기에 신유현에 대한 소문을 조금 들었다.

파천검가의 직계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일반인이라고.

‘그런데 내 은신술을 간파한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빠, 지금 저 놀리는 거죠?”

“아닌데.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빠가 그 사람이면 어떻게 제 은신술을 알아챌 수 있어요? 그 사람 능력이 없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그땐 그랬지. 지금은 아니지만.”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은 아니라니…….”

“그럼 이거라도 보든가.”

신유현은 최유리의 눈앞에 남두그룹에서 보낸 초대장을 보여 주었다.

초대장에는 신유현의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헐, 대박.”

초대장을 확인한 최유리는 말문이 막힌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눈앞에 있는 인물이 파천검가의 신유현이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까 케이크 잘 먹더라. 체하진 않았니?”

“아니, 왜 갑자기 케이크 먹는 걸 이야기해요? 그보다 왜 파천검가에서는 오빠가 능력이 없다고 구라를…….”

“이거라도 먹어 볼래?”

신유현은 근처 테이블에 마련되어 있는 조각 케이크 하나를 최유리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아,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이게…… 우물우물. 중요한 게…… 우물우물.”

신유현을 향해 조잘조잘 이야기하던 최유리는 입안에 케이크가 들어오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초코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네.’

신유현은 다람쥐처럼 냠냠거리며 케이크를 먹고 있는 최유리를 귀엽게 바라봤다.

그녀에 대한 거라면 몇 가지 알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그녀는 유명했으니까.

‘유일하게 게티아를 독살한 인간.’

대부분의 인류는 게티아들에게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했지만, 만독 가문에서 유일하게 게티아 한 놈을 독살했다.

독왕 최대현이 해내지 못한 일을 최유리가 해낸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만독 가문의 초인들과 최유리까지 전원 사망하고 말았지만.

‘아버지조차 치명상을 입혔었을 뿐인데.’

사실 말이 치명상이지, 죽었어야 정상이었다.

당시 7성 최상급 마스터였던 신성일은 가시공 암두시아스와 사투를 벌인 끝에 심장을 날렸다.

전신이 가시에 관통되면서 망신창이가 되었지만 암두시아스의 왼쪽 가슴에 바람구멍을 시원하게 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암두시아스는 죽지 않았다.

‘설마 심장이 두 개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었지.’

놀랍게도 암두시아스는 심장이 두 개였다. 그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났던 것이다.

“그런데 왜 혼자 구석에서 먹고 있었어?”

신유현은 화제를 전환하며 최유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눈에 띄는 게 싫어서요. 은신 스킬 쓰고 먹으면 아무도 모르거든요.”

최유리는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파티장에서 사람들이 말을 많이 걸어온 모양.

그녀는 4대 명가의 일원이니까.

‘이런 애가 게티아들 중 하나를 해치웠다니.’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대략 7~8년 뒤에 일어나는 일.

그리고 만독 가문은 멸문하고 최유리 또한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만독 가문이 멸문당하지 않고, 최유리 또한 죽지 않는 미래를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어머? 유현 씨, 벌써 오셨네요.”

그때 신유현의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남연아가 있었다.

“언니~.”

그리고 최유리가 강아지 같은 얼굴로 남연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리도 있었구나.”

남연아는 자신의 가슴으로 뛰어든 최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각 초코 케이크를 입에 넣어 주었다.

‘주는구나. 케이크.’

옴뇸뇸.

최유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초코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 신유현이 남연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던전에서 돌아간 후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남두그룹의 회장인 남현철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남민혁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거의 개인 연구소에서만 지냈으며 가끔 남현철과 만났을 뿐이었다.

‘남민혁은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군.’

남연아의 대답에서 신유현은 남민혁이 아직 손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암살자를 보냈다면 남연아가 지금 이렇게 파티장에 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

분명 연구소나 자택에서 보호받고 있었을 테지.

“할아버지께서 유현 씨를 소개해 달라고 성화셨지만요.”

“회장님이 말인가요?”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손녀인 남연아를 어지간히도 애지중지하는 모양이었다.

“언니, 이 오빠랑 아는 사이야?”

그때 얌전히 남연아가 전해 준 초코 케이크 하나를 해치운 최유리가 고개를 치켜들며 물었다.

“응. 전에 언니가 던전에서 위험했다고 했잖아. 그때 구해 주신 분이야.”

“헐. 대박.”

최유리는 놀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남연아가 미확인 던전 게이트를 조사하러 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신유현이 남연아를 구출해 준 장본인이었을 줄이야.

“진짜 소문이랑 너무 다르네요.”

최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사팀에 4성 헌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들 둘만 살아서 돌아왔다니.

비록 4성 헌터들이 조사팀을 위해 희생을 했다고는 하지만 남연아는 신유현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말은 적어도 신유현이 소문과 달리 실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최유리 자신의 은신까지 간파했을 정도였으니까.

“확실한 정보가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마라. 언젠가 발목을 잡힐지도 모르니까.”

신유현은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실제로 이전 삶에서 최유리는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게티아를 기습했다가 오히려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살았을 텐데.’

게티아 숭배자들의 거짓 정보로 함정에 빠진 그녀는 죽기 살기로 싸운 끝에 게티아를 독살할 수 있었다.

그 대가는 만독 가문의 수많은 초인들과 그녀 자신의 목숨이었지만 말이다.

“와,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할아버지랑 같은 말을 해요?”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최유리는 신기한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라는 말은 독왕 최대현이 항상 하는 말이었으니까.

“할아버지가 현명하시구나.”

“우리 할아버지가 좀 그렇죠.”

신유현의 칭찬에 최유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연아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요?”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연아 씨와는 친한 사이인가 보네요.”

“네. 유리와는 자주 보는 편이에요. 아티팩트 관련 일 때문에.”

“연아 언니가 직접 제 전용 아티팩트 무기를 조율해 주거든요.”

최유리는 뿌듯한 표정으로 남연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독 가문의 간부들은 독특하게 생긴 독문병기를 사용한다.

주로 독을 다루는 그들은 커스터 마이징을 한 전용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유리 또한 양산형이 아닌, 특이하게 생긴 사슬이 달린 낫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유지와 보수가 까다로워서 종종 남연아에게 전용 아티팩트 무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말 나온 김에 저희 연구소에 한번 구경 오시는 건 어떤가요? 유현 씨가 쓸 만한 코트를 선물해 드릴게요. 얼마 전에 신형 코트를 개발했거든요.”

“신형 코트?”

남연아의 말에 최유리가 눈빛을 반짝였다.

헌터들이나 초인들이 사용하는 배리어 코트는 다양한 브랜드에서 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최상위권은 남두그룹의 배리어 코트로, 헌터 협회와 군용으로 납품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4대 명가에서 사용할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

다만 가격이 비싼 게 문제일 뿐.

그런데 남연아가 있는 아티팩트 연구소에서 신형 코트가 개발되었다고 하니, 초인이라면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반가운 소리네요.”

신유현 또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가문에서 지급하는 배리어 코트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등급이 높은 전용 배리어 코트는 성능이 월등히 좋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가 기능이 있었다.

특히 고등급 마정석과 고성능 연산처리능력을 가진 칩셋 덕분에 방어력이 보급형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다.

“이번에 나올 경매용 코트보다는 성능이 더 좋아요.”

남연아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대되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 경매에서 신유현은 전용 코트를 하나 구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경매용보다 더 좋은 성능의 코트를 선물해 준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됐네요.”

신유현은 3성 던전 아라크네 둥지에서 입수한 크리스탈 장치의 샘플 조각을 남연아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남연아와 그녀의 연구소라면 크리스탈 장치의 원리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주, 중요한 이야기요?”

“네. 가능하면 단둘이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크리스탈 장치에 대한 정보는 가능하면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남연아에게만 말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신유현의 말이 끝난 순간.

“야, 넌 뭔데 아가씨와 친한 척하는 거냐?”

등 뒤에서 다분히 시비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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