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45화
“이분은……?”
“아, 소개할게요. 오늘부로 가주전에서 전주님의 비서로 파견왔어요.”
“이시아라고 합니다.”
인사부장 이연화의 소개에 여성은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신유현 또한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받으며 답했다.
‘역시 이시아였나.’
가주전에서 자신의 비서로 파견한 20대 중반의 미녀.
그녀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신 겁니까?”
“네, 가주님이 직접 명하셨습니다.”
이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군요.”
그녀의 대답에 신유현 또한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천검가의 가주인 아버지의 명령인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녀를 비서로 붙였다는 말은…….
‘감시로군.’
그녀의 본래 소속은 가주 직속 정보 조직, 흑영대였으니까.
또한, 그녀의 실력은 현무전의 간부들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설마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신유현은 마음 한편이 아려 왔다.
이전 삶에서 그녀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 게티아들 중 한 명인 가시공, 암두시아스에게 파천검가는 멸문했다.
하지만 그때 가까스로 도망친 자들이 있었다.
이시아는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후에 신유현 일행과 합류했을 때 후회하고 있었다.
가문의 사람들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도망쳤다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사냥의 신, 바르바토스에게 신유현 일행들이 쫓겼을 때 이시아가 홀로 뒤에 남았다.
일행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덕분에 신유현 일행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파천검가에서 게티아들이 떠났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되돌아왔을 때 신유현이 본 것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가문의 사람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채 꼬챙이에 꿰뚫려 있었으니까.
그 희생자들 중에 이시아가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몸통이 꼬챙이에 관통되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어 있는 모습으로.
으득.
처참했던 그때의 광경을 떠올린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막는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가능하면 내 사람으로 만들면 좋겠지.’
신유현은 잠시 이시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희생을 각오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기에 신뢰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가문의 가주이자 아버지인 신성일이 감시를 위해 붙여 놓은 인물이지만 좋은 관계를 가질 생각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그녀뿐만이 아니다.
현재 가문 내에서 신유현이 영입하고 싶은 인물로는 최현성이 있었다.
그 또한 명예와 의리를 중요시 여기고 인품이 좋은 자였다.
“아라크네 사건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유현은 최정훈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네. 아라크네 둥지에서 있었던 일들은 뒷수습이 잘 끝났습니다. 부상을 입었던 현무검대원들도 순조롭게 회복 중입니다. 가장 부상이 심했던 최승현 대원도 며칠 뒤면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신유현이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별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네. 아라크네 사건 외에 딱히 문제가 생긴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최정훈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신유현은 최정훈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이시아가 신유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두그룹의 남연아라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네? 연아 씨가요?”
순간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남연아가 연락을 했을 줄이야.
“네. 3일 전에 전주님을 남두그룹의 경매 파티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남두그룹의 경매파티라고요?”
이시아의 말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남두그룹의 경매 파티.
남두그룹에서 1년에 두 번 주최하며 오직 초대받은 인물들만 참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아무나 초대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무가의 초인들이나, 이름 있는 헌터들이 초대를 받아 오는 편이다.
왜냐하면 남두그룹에서 주최하는 경매 파티에서 구하기 어려운 유니크 장비가 나오기도 하니까.
‘초인이라면 누구나 초대받기를 원하는 파티인데…….’
설마 그런 곳에 남연아가 자신을 초대했을 줄이야.
“초대장도 이미 받아 두었습니다. 참석한다고 연락할까요?”
“네, 당연히 가야죠.”
이시아의 물음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두그룹의 경매 파티?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물품들이 경매에 나올 테니까.
남두그룹에서 개발한 신형 아티팩트가 나올 수도 있고, 던전에서 획득한 고등급 장비가 나올 수도 있었다.
‘연구용 소재로 마수들의 시체도 있을 수 있지.’
신유현은 눈을 빛냈다.
경매 파티에서 쓸 만한 3성급 보스 시체가 나온다면 언데드 데스워치 제작을 위한 소재로 사용해도 될 터.
그 외에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들이 출품되어 나올지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김재현 부장님.”
신유현은 더할 나위 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현무전의 재정관리 담당 김재현을 바라봤다.
“네, 네.”
신유현의 부름에 김재현은 불안한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 돈 좀 있습니까?”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신유현의 말에 김재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남두그룹이 주최하는 경매 파티에서 출품하는 물품들은 하나같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최소 수천만 원부터 수십 억까지 한다.
문제는 현재 현무전의 재정 상황이 간당간당하다는 것.
하지만.
“그거라면 저보다 이시아 비서에게 들어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재현은 곧바로 신유현의 비서가 된 이시아에게 폭탄을 돌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시아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남두그룹에서 믿을 수 없는 물건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문 내에서 기력 개방조차 하지 못해 무시받던 인물이 남두그룹의 영애를 구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다.
아무래도 소문은 사실이었던 모양.
“돈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초대장과 함께 블랙 카드가 하나 들어 있었으니까요.”
“블랙 카드라고요?”
이시아의 담담한 말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무려 남두그룹에서 발행한 블랙 카드.
남두그룹의 블랙 카드가 어떤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연회비만 250만 원이고,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모두 만들어 주는 게 아닌 희귀 카드이다.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한 액수가 들어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초대장과 카드는?”
“금고에 보관 중입니다.”
신유현의 물음에 김재현이 식은땀을 닦으며 답했다.
남연아가 보낸 초대장과 블랙 카드는 신유현의 개인 물품이었다.
그 때문에 가문에서도 맡아 두기만 했을 뿐 뜯어 보거나 확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블랙 카드 때문에 보안에 신중을 기했다. 왜냐하면 블랙 카드를 발행할 정도라면 최소 수십 억 이상은 들어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파티 날짜는 언제죠?”
“내일입니다.”
“타이밍이 좋았군요.”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폐관 수련이 하루라도 늦었으면 경매 파티에 참석을 하지 못할 뻔했으니까.
“그럼 파티에 참석할 준비를 할까요?”
“네.”
이시아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날 저녁.
신유현은 자신의 방에서 남연아가 보낸 초대장과 블랙 카드를 바라봤다.
‘이건 진짜 예상외인데…….’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남연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미확인 던전 게이트 탐사에서 남연아를 구해 주었던 것이고.
그런데 이렇게 빨리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남연아가 보낸 블랙 카드에는 무려 10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 있었다.
‘날 만나고 싶어 한다라…….’
초대장에는 블랙 카드에 세금을 제외한 100억을 넣어 두었고, 남연아의 할아버지이자 남두그룹의 회장인 남현철이 신유현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남현철 회장에게 있어 남연아는 소중한 손녀인 모양이다. 남연아의 목숨을 신유현이 구해 주었기에 남현철 회장이 좋게 봐준 것 같았다.
‘남두그룹과 가까워지면 나쁠 건 없지.’
남두그룹은 아티팩트의 연구 개발뿐만 아니라 던전과 마수에 대한 연구도 한다.
특히 던전과 마수에 대해서는 신유현도 알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던전 균열이 왜 생기고 있는 것인지,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붉은 달의 정체는 무엇인지.
마수들의 정체도 마찬가지였다.
‘게티아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전 삶에서 게티아들은 던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마수들에 관해서는 무언가 아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게티아들에게서 무엇 하나 정보를 캐낼 수 없었다.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하지만 남두그룹에서 던전과 마수에 관해 연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번 기회에 크리스탈 장치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현재 파천검가에서는 신유현이 회수해 온 크리스탈 장치를 연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연구 기술은 남두그룹이 훨씬 더 나았다.
기본적으로 파천검가는 힘을 추구하는 무력 집단이다.
던전과 마수에 대해 알기 위해 연구 부서를 따로 운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진 남두그룹 쪽이 더 나을 수밖에 없었다.
‘남현철 회장을 만나 보면 알겠지.’
남두그룹을 믿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을지.
“내일 경매가 기대되는군.”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아침.
경매 파티에 갈 준비를 마친 신유현은 현무전을 나섰다.
남두그룹의 경매 파티가 시작하기까지 서너 시간 정도 남은 상황.
현무전 정문 앞으로 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최정훈과 이연화, 그리고 김재현이었다.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네.”
최정훈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신유현은 검은색 정장 차림에 무장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가야 할 곳은 철통 보안으로 지켜질 남두그룹의 경매 파티장이니까.
- 너희들도 준비 다 됐지?’
- 넹!
- 뀨!
신유현의 의식 전달에, 디아와 까망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디아와 까망이만 현무전에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신유현은 이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디아와 까망이를 통해 무기와 장비, 스켈레톤 솔져들까지 준비한 상황.
그뿐만 아니라 그림자 속에 은신해 있는 디아와 까망이는 신유현과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 디아의 스킬을 신유현이 공유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디아도 세븐 아크스 중에 하나라는 건가.’
신유현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버프와 디버프 말고도 디아에게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스킬이 하나 있었으니까.
그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