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41화
파천검법의 초식뿐만 아니라 가문의 다양한 검법 초식들을 물 흐르듯 끊임없이 펼치며 아라크네를 몰아붙였다.
키에에에엑!
상황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 아라크네는 뒤로 빠르게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신유현은 아라크네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해서 압박을 하며 달라붙었다.
그 때문에 최정훈의 공격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이미 대부분의 다리는 잘라나갔기에 움직임이 느려졌으며, 몸통에서 자잘한 상처들이 늘어나 녹색 체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신유현은 아라크네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 *
[축하합니다. 당신은 3성 보스 마수 아라크네를 처치하셨습니다. 3성 마정석과 30 소울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당신은 3성 던전, 아라크네의 둥지를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던전 최초 공략 보상으로 근력, 민첩, 체력이 1포인트씩 상승합니다.]
아라크네와의 전투는 길지 않았다.
5성인 최정훈과, 차크라 덕분에 4성에 가까워진 신유현이 있었으니까.
둘이 힘을 합쳐서 상대한 끝에 신유현의 흑염으로 휩싸인 마검 이그니스가 아라크네의 가슴을 갈라 버리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그리고 소울 포인트는 신유현이 직접 쓰러트린 마수에게서만 흡수가 가능했다.
그 때문에 아라크네 보스와 함께 나타난 20마리의 스파이더 마수들 중에서 신유현이 쓰러트린 절반인 소울 포인트 30을 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신체 관련 능력치가 전부 1씩 올랐네요.”
신유현은 최정훈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할 때는 보스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초인에게 보상을 준다.
그 때문에 최정훈은 신유현에게 막타를 양보한 것이다.
“감사라니요, 당연히 그래야죠. 아무튼 던전 최초 공략 보상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최정훈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근력, 민첩, 체력이 올랐다면 좋은 것이니까.
양보한 보람이 있었다.
이로써 신유현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신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끝이 났군요.”
“두 분 다 대단하시네요.”
전투가 끝나자 이대영과 김현석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들은 아라크네와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스파이더 마수들을 쓰러트리면서 기력이 다한 이유도 있었지만, 아라크네의 공격으로 충격파가 난무하는 전투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주님이 이렇게 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정훈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유현이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유현이 아라크네와 정면에서 맞붙으며 공격을 흘려 내는 모습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3성 초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부전주님 덕분이죠. 저는 아라크네의 시선만 끌었을 뿐이니까요.”
그들의 감탄에 신유현은 그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지.’
게티아 놈들을 상대하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져야 한다.
“아니, 저는 시선을 끄는 것조차도 못할 것 같은데요.”
이대영은 신유현의 대답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혼자서 3성 보스를 유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닌가요?”
김현석은 눈을 빛냈다.
“3성 보스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엣가시 같던 사사키 시로를 혼자서 제압하셨으니까요. 가주님이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최정훈 또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비록 사사키 시로가 근접전에 약한 마법사이기는 하나 4성 초인이었다.
따라서 그를 혼자서 제압한 신유현은 큰 전과를 세웠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위험에 빠진 가문의 사람들을 구하기까지 한 상황.
이번 일로 가문 내에서 신유현의 명성은 가파르게 상승할 터였다.
“그건 가문에 돌아갔을 때 이야기죠. 그보다 지금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요?”
“네.”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최정훈의 말에 신유현은 아라크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라크네의 머리에 박혀 있는 정체불명의 크리스탈.
“그러고 보니 이건 대체 뭘까요?”
“확실히 3성 보스인 것치고는 상태가 너무 강하다 싶었는데…….”
이대영과 김현석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아라크네를 바라봤다.
아라크네는 명백하게 3성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 주었다.
“아마 저 크리스탈 때문일 겁니다. 철화단 놈들의 짓이겠죠.”
신유현은 크리스탈 장치를 노려봤다.
아라크네가 3성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된 건 크리스탈 장치의 폭주 때문이었다.
“철화단 놈들이 이런 걸…….”
최정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크리스탈 장치를 바라봤다.
그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크리스탈 장치의 기술이 어딘가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현대의 마도공학 기술과 상당히 다르게 보였으니까.
“조사를 해 보면 이게 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신유현은 크리스탈 장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최정훈 일행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철화단의 목적을 눈치채고 있었다.
크리스탈 장치는 마수를 조종하기 위해 게티아들이 개발했다.
아마도 철화단 놈들은 크리스탈 장치로 아라크네를 조종해 파천검가를 기습할 생각이었던 듯했다.
3성 보스 아라크네에게는 성가신 스킬이 하나 있었으니까.
바로 산란이다.
그 말은 곧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수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철화단 놈들이 아라크네의 둥지를 노린 이유도 그 때문일 터.
그런데 크리스탈 장치가 폭주하면서 오히려 아라크네에게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한 것이다.
“이제 돌아갑시다.”
신유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대영과 김현성은 아라크네의 머리에 박혀 있던 크리스탈 장치를 조심스럽게 회수했다.
가문으로 돌아가서 조사를 해 본다면 이 시대의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다.
크리스탈 장치가 지구의 과학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모든 전리품들을 챙긴 신유현은 일행들과 함께 보스 룸을 뒤로한 채 던전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하얀 달빛이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는 어두운 밤.
신유현 일행을 제외한 나머지 현무검대원들은 던전에서 나온 후 베이스캠프에서 대기 중이었다.
“빌어먹을 놈!”
퍼억!
이진규는 이를 악물며 사사키 시로의 얼굴을 후려쳤다.
사사키 시로가 막내인 최승현을 잔혹하게 고문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 구석에서 담요로 몸을 두르고 바닥에 앉아 있는 최승현은 그 후유증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채였다.
그 때문에 이진규는 의자에 묶인 사사키 시로에게 분풀이 중이었다.
“그쯤해라. 죽으면 안 되니까.”
그때 이진규와 동기인 박영택이 말렸다. 어차피 가문에 돌아가면 사사키 시로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정보를 토해 낼 때까지 가혹한 심문을 받게 될 테지.
“야, 이 새끼야. 넌 돌아가면 두고 보자. 네놈이 했던 짓거리를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이진규는 사사키 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그 순간.
핑! 푸우욱!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퍼어억!
뒤이어 사사키 시로의 머리가 수박통처럼 터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붉은 피가 베이스캠프 내부에 튀었다.
“뭐, 뭐야?”
사사키 시로의 붉은 피를 뒤집어쓴 이진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엎드려!”
하지만 박영택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이진규를 덮치며 바닥에 엎드렸다.
쌔애애액!
그 직후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베이스캠프의 천막이 찢기며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다행히 일행들은 박영택의 외침에 바로 바닥에 엎드린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스캠프 안에 있던 기자재들은 이리저리 튕기며 박살이 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 잦아들면서 적막감이 찾아왔다.
‘대체 누가…….’
주위가 조용해지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박영택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베이스캠프의 양옆 천막은 넝마가 되었으며 내부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뭐야? 아직도 살아 있잖아?”
넝마가 된 베이스캠프의 천막을 걷으며 정체불명의 인물 두 명이 박영택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본 박영택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네, 네놈들은……!”
박영택은 눈을 부릅떴다.
왼쪽 눈에 검은색 안대를 하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30대 초반의 사내, 그리고 검은색 후드 코트를 입고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는 20대 후반의 미녀.
눈앞에 있는 인물들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처, 철화단의 간부…….”
박영택은 이를 악물었다.
철화단의 간부들은 따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사사키 시로 외에 간부들은 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여기서 철화단의 간부들이 나올 줄이야.
“죽어라.”
검은색 후드 코트의 미녀, 이설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빈손으로 활을 쏘는 자세를 취했다.
키이잉!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며 코트가 흩날렸다.
그녀의 고유 능력이 발동하면서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바람의 활과 화살이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인비저블 아처, 이설리.
그것이 그녀의 이명이었다.
“모두 피해!”
박영택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슈아아아악!
그 직후 보이지 않는 화살이 이설리에게서 떠나 박영택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욱!
“커억!”
보이지 않는 바람의 화살이 박영택의 어깨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박영택은 강렬한 충격을 받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설리의 화살을 피할 줄이야. 운이 좋군.”
스르릉.
검은 정장의 30대 사내, 진원호는 씨익 웃으며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철화단의 흑기사, 진원호.
입고 있는 정장도, 무장하고 있는 대검도 검은색이었기에 흑기사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모두 죽여 주마.”
거대한 흑검을 뽑아 든 진원호는 살기를 피워 올리며 가장 먼저 박영택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그때 강체술을 발동한 이영호가 진원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슈아악!
그리고 이어지는 깔끔한 발검이 진원호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까아아아앙!
하지만 이영호의 공격은 진원호에게 닿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막이 이영호의 검을 막았으니까.
진원호가 입고 있는 검은 정장 또한 배리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 방어구였던 것이다.
“흥. 겨우 이 정도인가?”
진원호는 피식 웃으며 대검을 야구방망이처럼 옆으로 휘둘렀다.
콰앙!
다행히 이영호가 입고 있는 코트에서 배리어가 발동하며 진원호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진원호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배리어와 함께 이영호를 날려 버렸다.
“허억!”
그 때문에 이영호는 비명을 지르며 수 미터 이상 튕겨 날아갔다.
이설리의 고유 능력이 투명한 활과 화살이라면, 진원호의 고유 능력은 어마어마한 괴력이었다.
“약해 빠졌군.”
진원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근처에 있던 이진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이제 막 몸을 숙인 채 도망을 치려 했었던 이진규는 강렬한 살기가 자신에게로 향하자 몸이 굳어 버렸다.
‘죽는다.’
이진규는 죽음을 직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