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38화
‘아무도 구해 주지 않는구나.’
최승현은 이 지옥 속에서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은 또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테지.
그 사실에 최승현은 파천검가에서도, 현무검대의 선배들에게서도, 이 세상에게서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체념했다.
이 절망 속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단지, 빠른 죽음이 오기를 바랄 뿐.
그렇게 사사키 시로의 고유 스킬, 세균 창조로 태어난 T세균 콜로니가 최승현의 몸에 닿을 찰나.
콰아아아아앙!
사사키 시로와 최승현이 있는 고문 방의 철창으로 된 문이 폭음과 함께 부서지면서 튕겨 날아갔다.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떤 놈이냐!”
사사키 시로는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방 입구를 노려봤다.
그는 자신이 즐기고 있을 때 방해받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겁도 없이 고문 방 안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사사키 시로는 곧바로 세균 덩어리를 침입자를 향해 날렸다.
그러자 검은 가루처럼 뭉쳐 있는 수도 없이 많은 세균 덩어리들이 방 안으로 들어온 인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화르륵!
흙먼지 속에서 검은 화염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검은 화염이라고?’
사사키 시로는 흠칫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흑염을 사용하는 초인은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자신의 세균을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흑염 속에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네놈은…….”
“저, 전주님……?”
사사키 시로와 최승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다름 아닌 신유현이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사사키 시로.”
신유현은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하얀 가운의 사내를 노려봤다.
매드 닥터, 사사키 시로.
철화단의 간부이자 극단적인 극우주의로 유명한, 대한민국을 일본의 속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초인 빌런.
초인 등급으로 치면 4성 최하급 정도 되는 4클래스 마법사로, 고유 스킬 세균 창조를 가지고 있는 탓에 대량 학살이 가능한 위험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헌터 협회에서 위험 등급 A로 지정했고 100억이라는 현상금이 걸리게 되었다.
“버러지 같은 조센징이 감히 내 이름을 불러?!”
사사키 시로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가뜩이나 한국의 초인들을 일본의 노예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다가, 파천검가의 인물들 중 쓰레기처럼 무능하다고 보고받은 신유현에게 단지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죽어라!”
사사키 시로는 양손에 3클래스 화염 공격 마법 파이어 볼 두 개를 생성하며 소리쳤다.
굉장히 빠른 무영창 공격 마법.
하지만 그사이 신유현 또한 강체술을 발동하며 사사키 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 안…….”
그 모습을 본 최승현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려고 했다.
최근 신유현이 강해졌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4클래스 마법사인 매드 닥터 사사키 시로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파천검법(破天劍法).
일식(一式), 무명(無明).
번쩍!
붉은 검광이 빛나는가 싶더니 사사키 시로가 쏘아 보낸 파이어 볼 두 개가 반으로 갈라지며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콰쾅!
두 조각이 나며 신유현을 스쳐 지나간 파이어 볼 두 개는 작은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뭐, 뭣?”
“어?”
그러자 사사키 시로와 최승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떴다.
설마 신유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화염 마법을 파괴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방심하고 있던 사사키 시로의 품속으로 파고든 신유현은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억!
“크허억!”
사사키 시로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마나를 머금은 신유현의 주먹이 사사키 시로의 명치에 그대로 꽂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마법이나 이능 같은 초상 능력을 가진 초인들은 검사나 전사들보다 육체가 약한 탓에, 방어 장비를 착용한다.
배리어 코트와 마찬가지로, 사사키 시로의 하얀 가운에도 방어 마법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신유현의 주먹은 너무나 쉽게 하얀 가운에 걸려 있는 배리어를 박살 내며 사사키 시로의 명치에 꽂혀 들어갔다.
“이 쳐 죽일 놈이!”
속이 뒤집힐 것처럼 아팠지만 감히 자신을 건드린 신유현에 대한 분노가 컸던 사사키 시로는 얼굴을 찌푸리며 빠르게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이스 자벨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키 시로의 몸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대한 얼음 창.
아이스 자벨린은 4클래스 마법으로, 사사키 시로의 비장의 수단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아이스 자벨린을 막아 내지 못하고 꿰뚫려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은밀히 고유 스킬까지 발동했다.
“어리석은 놈! 마무리를 하지 않은 게 네놈의 실수다!”
사사키 시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신유현을 향해 아이스 자벨린을 던졌다.
그런 놈에게 신유현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일부러 기다려 준 거야.”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 주기 위해서.
화르륵!
마검 이그니스의 붉은 검신에서 검은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 상태에서 신유현은 자세를 낮추며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아이스 자벨린 노려봤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이식(二式), 파쇄(破碎)!
쌔액!
순간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붉은 궤적이 아이스 자벨린을 갈랐다.
쩌억!
그러자 아이스 자벨린이 반으로 갈라지는 게 아닌가.
푸스스스스!
그렇게 두 조각이 난 아이스 자벨린은 신유현의 양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수증기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신유현은 흑염을 피워 올리며 검무를 추듯 이그니스를 휘둘렀다.
그러자 신유현의 주변에 수놓아지는 화려한 붉은 검광과 검은 화염들.
마치 신유현을 중심으로 흑염이 소용돌이치듯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사사키 시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이스 자벨린은 파이어 볼과 달리 4클래스 마법이다.
그런데 설마 파이어 볼처럼 두 조각이 날 줄이야!
어디 그뿐인가.
회심의 일격으로 숨겨 두었던 세균들까지 신유현의 검무에 전부 불타고 말았다.
‘예상대로인가.’
신유현은 이미 사사키 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성격도, 능력도, 공격 패턴까지도.
이전 삶에서 게티아 숭배자가 된 매드 닥터 사사키 시로와 여러 번 싸운 적이 있었으니까.
“그럼…….”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사사키 시로를 노려봤다.
이전 삶에서 사사키 시로는 한국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집요하게 고문하는 걸 즐겼다.
그중에는 신유현의 친구들도 있었고, 동료들도 있었으며, 자신을 챙겨 주었던 파천검가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단순히 놈을 죽여 복수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놈의 손에 신유현의 소중한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 나갔으니까.
신유현은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놈은 철저하게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고통 없는 죽음은 자비일 뿐이니.
사사키 시로 또한 신유현이 싫어하는 게티아 놈들과 같은 부류의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쾌락 살인마였으니까.
“이 빌어먹을 버러지 놈이!”
파스스!
신유현의 싸늘한 경고에 사사키 시로는 분개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전신에서 검은 가루 같은 세균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것도 어디 한번 막아 봐라!”
사시키 시로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에서 하얀빛이 생겨나더니 마법진이 발동했다. 현대 마도공학의 정수인 아티팩트 장신구였다.
현대의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대신해서 아티팩트 장신구로 빠르게 마법을 구현시킬 수 있었다.
스스스슥!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키 시로의 주위로 적어도 스무 발이 넘는 아이스 애로우가 나타났다.
거기에 사사키 시로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검은 세균 무리들까지.
아무래도 강력한 단일 공격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많은 횟수로 공격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예상대로군.’
하지만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사사키 시로의 공격 패턴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쿵!
신유현은 진각을 밟으며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빠르게 사사키 시로를 향해 돌진했다.
화르륵.
반쯤 내린 마검 이그니스에서 흑염이 흘러나오며 일직선으로 검붉은 빛이 허공에 남겨졌다.
쌔애액!
그때 수많은 아이스 애로우들이 신유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신유현도 흑염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마검 이그니스를 휘둘렀다.
푸화아아아악!
그러자 어둠처럼 새까만 화염이 확 퍼져 나오며 신유현을 감쌌다.
“멍청한 놈! 그깟 화염으로 내 마법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사사키 시로는 비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아무리 흑염으로 몸을 감싸 보호한들 스무 발에 달하는 아이스 애로우들을 막아 낼 수는 없을 테니까.
푸푸푹!
역시나 아이스 애로우들은 소용돌이치는 흑염을 손쉽게 뚫고 들어갔다.
“아직이다!”
하지만 사사키 시로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한 것이다.
“스톤 스플린터!”
4클래스 흙계열 공격 마법.
어느덧 사사키 시로의 주변에 단단한 돌조각들이 나타났다.
슈슈슈슉!
이윽고 아이스 애로우에 이어 곧바로 날아들기 시작하는 스톤 스플린터들.
이번에도 스톤 스플린터들은 너무나도 간단히 흑염을 꿰뚫었다.
“아…….”
그 모습을 본 최승현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신유현이라고 해도 지금 공격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크크큭. 어리석은 놈.”
사사키 시로 또한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분명 아이스 애로우와 스톤 스플리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테지.
하지만.
“어딜 보고 있는 거지?”
“헉!”
순간 자신의 왼쪽 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사사키 시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며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사키 시로의 왼쪽 옆구리에 흑염으로 불타오르는 신유현의 훅이 꽂혀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즈즈증!
일정 속도 이상 빠르게 신유현의 주먹이 날아오자 하얀 가운에 걸려 있는 방어 마법이 발동하며 배리어가 생성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급히 검은 세균들을 뭉쳐서 신유현의 주먹을 막아 내려고 했다.
화르륵! 콰장창!
하지만 검은 세균을 맹렬하게 불태운 신유현의 주먹은 배리어까지 깨부수며 사사키 시로의 옆구리에 깊게 꽂혀 들어갔다.
퍼어억!
“커헉!”
사시키 시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옆으로 몸이 꺾이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허공을 날았다.
콰직!
그리고 그의 갈비뼈 서너 개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쿵!
그 직후 신유현은 강하게 지면을 박차며 허공을 날고 있는 사사키 시로를 쫓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날고 있는 사사키 시로를 따라잡은 신유현.
신유현은 손을 뻗어 사사키 시로의 손목을 붙잡았다.
부우웅!
그리고 몸을 회전하며 사사키 시로를 땅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