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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36화 (36/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36화

그곳을 지키고 있어야 할 연구원들과 초인들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전원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잠시 그들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최정훈은 이내 냉정해졌다.

그리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던전 스탬피드?”

던전 스탬피드.

던전 안의 마수들이 가득 차서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그 때문에 마수들에게 인류의 터전을 빼앗긴 지역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강릉이 그러했다.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최정훈이 혼자 중얼거리는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상처들을 잘 살펴보세요.”

“상처들이요?”

신유현의 말에 최정훈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알아차렸다.

“이건…… 검에 의한 자상이군요. 그리고 탄 자국도 있고…….”

최정훈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무전의 연구원들과 초인들이 사망한 원인은 마수에 의한 상처가 아니었다. 초인들 간의 싸움에 의해 생긴 상처들이었다.

“감히 어떤 놈들이…….”

그 사실에 최정훈은 이를 갈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은 누군가가 베이스캠프를 습격하고 파천검가의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파천검가와 반목하는 조직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습격을 하고 가문의 일원을 살해하는 미친놈들은 없었다.

파천검가는 대한민국 4대 명문 무가들 중에서도 만병지왕이라 불리는 검의 일가였으니까.

그럼에도 습격자들은 파천검가의 일원을 건드렸다.

그건 곧 파천검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정훈은 자기도 모르게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때.

“부전주님.”

“……예.”

자신을 부르는 나직한 목소리에 최정훈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유현을 바라봤다.

신유현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처럼.

‘냉정하구나.’

그 모습에 최정훈은 평정심을 잃고 살기를 흘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최정훈이 어느 정도 진정하자 신유현은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마지막 연락이 온 건 언제입니까?”

“오늘 정오입니다.”

“그 이후에는 오지 않았습니까?”

“아라크네 둥지의 던전 베이스캠프에서 연락이 오는 건 하루에 한 번뿐입니다.”

던전 등급이 4성 이상이면 모를까, 아라크네의 둥지처럼 하위에 속하는 3성 던전들의 연락 횟수는 본래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럼 이상하네요.”

최정훈의 대답을 들은 신유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내려다봤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건 오늘 정오.

그렇다면 범인들은 적어도 정오가 지나서 습격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상합니다.”

최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유현의 말에 끄덕였다.

베이스캠프 바닥에 흘러나와 있는 희생자들의 피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 하루 이상은 지나 보였다.

그럼 대체 누가 오늘 연락을 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저의 관리 소홀입니다.”

순간 최정훈은 얼굴을 붉혔다.

오늘과 어제 연락을 한 인물들.

그들이 바로 범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현무전의 책임이었다.

연락을 해 온 인원들에 대한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소리였으니까.

“부전주님 잘못은 아니죠. 오히려 전주인 제 책임입니다.”

신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지는 검대원들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

던전을 연구하기 위해 파견된 인원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불찰이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베이스캠프에 파견한 인원에 대해 생각이 미쳤을 테고, 그랬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유현은 이전 삶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신유현이 가문에서 쫓겨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가 아라크네라는 말을 듣고 나서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신유현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최정훈은 끝끝내 자신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이건 제 책임입니다. 이 일이 생겼을 때 전주님은 중요한 임무로 바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은 제가 신경을 썼어야 했습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어제 신유현은 미확인 던전 게이트의 조사를 위한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긴 했었다.

하지만 신유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부전주님의 책임도, 현무전의 보고 담당자들의 책임도 아닙니다. 다들 규정은 지켰을 테니까요.”

암구호를 정해서 연락을 한다거나, 통신기의 비밀 주파수로 통신을 한다거나, 목소리를 확인한다거나.

현무전 또한 규정대로 확인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놈들이 한 수 위라는 사실이죠. 목소리를 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초인이 있을 수도 있고, 암호통신의 경우에는…….”

그렇게 말꼬리를 흐린 신유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원들 중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을 바라봤다.

다른 시체들 중에서도 유독 상태가 가장 처참했다. 손톱이 전부 뽑혀 나가 있었으며, 손가락들도 부러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뽑혀져 나간 손톱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팔 전체에 종기가 생겨나 괴사해 있는 상황.

‘세균 감염에 의한 고문의 흔적이군.’

분명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했으리라.

신유현은 최정훈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연구원을 고문해서 암호문이나 정보들을 알아냈겠죠.”

사실 어느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베이스캠프를 습격한 놈들뿐.

“감히!”

최정훈은 분개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가문의 사람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고문을 해서 죽이다니.

절대 용납할 수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놈들을 찢어 죽이러 갑시다.”

신유현은 베이스캠프에 쓰러져 있는 희생자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을 습격한 놈들은 철저하게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당한 만큼 확실히 되돌려 줄 생각이었으니까.

* * *

아라크네의 둥지는 개미굴 같은 동굴로, 직경이 최소 3미터가 넘을 정도로 넓고 컸다.

또한, 던전 입구에서 보스 방까지 구불구불하게 쭉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작은 공터 같은 방들로 가는 통로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길들과 이어진 수많은 방들 중 한 곳에 아라크네 둥지를 공략하러 온 현무검대원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대장님,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현무검대의 대원 중 한 명인 김현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때가 오길 기다려야지. 일단 연락이 끊기고 이틀이 지나면 본가에서 구조대가 오기로 되어 있으니 말이야.”

아라크네 둥지 공략대의 대장이자 3성 최상급 검사인 이대영은 대원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된다. 하루만 더 버티면 우리 모두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다.”

이대영은 부하들을 격려했다.

아라크네 둥지를 공략하러 온 현무검대는 일반 스파이더 마수들을 처리했다.

남은 건, 보스인 아라크네뿐.

그런데 그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초인들에게 기습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이 방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방 입구가 철창으로 막혀 있었던 것이다.

“본가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놈들이 우리를 살려 둘까요?”

그때 현무검대의 또 다른 대원인 이진규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길 바라야지. 아니면 탈출할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이 수갑만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탈출할 수 있지 말입니다.”

이대영의 말에 옆에 있던 또 다른 대원, 박영택이 맞장구를 쳤다.

지금 현무검대원들은 모두 무기를 빼앗기고, 배리어 코트도 벗은 채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봉마석으로 만든 수갑까지 차고 있는 상황.

그 때문에 현무검대원들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두 놈 정도라면 제압할 수 있겠지.”

비록 마나는 사용할 수 없지만, 파천검가의 기본적인 체술이나 기술까지 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강체술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한두 놈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지만.”

“대체 놈들은 왜 이곳에 온 걸까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놈들, 철화단의 목적이 보스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어. 우리가 보스를 잡으려 할 때 기습을 걸어왔으니 말이야.”

이진규의 물음에 이대영은 이를 갈며 답했다.

자신들을 습격한 초인들의 정체가 국제 초인 빌런 조직, 철화단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철화단에서 악명이 자자하기로 유명한 간부 한 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의 목적만큼은 알 수가 없었다.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겠군요.”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가문과 가까운 이 던전에 올 리 없을 테니까.”

김현석의 말에 이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3성 던전 아라크네의 둥지는 파천검가의 사유지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파천검가는 철화단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특히 가주인 신성일은 이를 갈 정도로 싫어했다.

그 때문에 철화단이 파천검가를 가까이하는 건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하물며 현무검대원들을 억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건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현무검대원들에게는 놈들의 목적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일단 지금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지 말입니다. 아라크네가 얼마나 버텨 줄지 걱정입니다.”

“그렇지.”

박영택의 말에 이대영과 다른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라크네는 3성 보스들 중에서 강한 편에 속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라크네의 둥지 던전에는 철화단의 3성 및 4성 초인들이 열 명이나 넘게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절반은 아라크네를 공략 중일 것이며 나머지는 다른 거미굴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전 막내가 걱정되네요.”

그때 마지막으로 현무검대원들 중 한 명인 이영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올해 초, 현무검대에 신입이 들어왔다.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현무검대의 막내이며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공략전 경험을 쌓아 주기 위해 이번 아라크네 둥지 던전에 데리고 왔다.

그런데 철화단 간부가 막내를 데리고 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무사하길 바랄 수밖에.”

이대영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이유로 막내를 데리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일은 아닐 터.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라. 정보를 캐려고 데려간 건 아닐 테니까.”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막내가 아니라 직급이 높은 이대영을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진규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올 거다. 그때 탈출해서 막내를 구하면 돼.”

“네, 알겠습…….”

순간 이대영의 말에 대답하던 이진규의 입을 옆에 있던 김현석이 급하게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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