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34화
“저희에 대해 알고 싶은 건가여?”
“그래.”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왕이나 세븐 아크스들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으니까.
“저희들은 각자 다른 차원에서 왔어여.”
“다른 차원이라고?”
“네. 하지만 초대 마스터이신 불사왕 다니엘 님은 마스터와 같은 지구 출신이에여.”
“불사왕이…… 지구인이라고? 다른 차원 출신이 아니라?”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븐 아크스들이 다른 차원 출신이라는 건 납득할 수 있었다.
게티아들 또한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불사왕이 지구 출신이라니?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서도.
신유현은 불사왕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불사왕이 지구에 있었다면 게티아들에게 인류가 허망하게 지지 않았을 테지.
“넹. 지구라는 차원에서 오셨다고 들었어여.”
하지만 디아는 불사왕이 지구의 존재가 맞다고 답했다.
신유현으로서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왜 지구에서 그를 볼 수 없었던 거지?”
“타임 크라이시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여.”
“타임 크라이시스? 그건 대체 무슨 사건이지?”
프나코틱 바이블의 세븐 아크스 항목 설명에서도 나왔던 사건이다.
차원 전쟁 중 발생한 타임 크라이시스 사건으로 인해 세븐 아크스들이 흩어졌다고 말이다.
“죄송해영. 기억이 나지 않아여.”
디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디아는 등급이 낮은 탓에 일부 기억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필 봉인된 기억은 차원 전쟁이나 타임 크라이시스와 연관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저희는 다른 차원으로 다 흩어졌어여. 마스터와도 헤어지게 되었구여. 그리고 저만 프나코틱 바이블에 봉인되어 있었어여.”
디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유현은 생각에 잠겼다.
디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불사왕은 차원 이동이 가능한 존재라는 것과,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븐 아크스들과 계약을 맺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타임 크라이시스라는 사건 때문에 불사왕이 잊혔다는 사실까지도.
잠시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신유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더 기억나는 건 없어?”
“아, 슈브 언니나 루베르 언니라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여!”
다리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 그리고 검은색 공막에 금안을 가진 서큐버스들의 여왕, 슈브.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뱀파이어들의 여왕인 붉은 진조, 루베르.
세븐 아크스들 중에서도 강대한 힘을 지녔으며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흠. 그녀들을 찾든가, 아니면 디아의 기억에 걸린 봉인을 풀든가. 둘 중 하나겠군.’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
하지만 디아가 기억에 걸려 있는 봉인을 풀려면 최소 6성은 되어야 했다.
문제는 현재 디아의 등급이 3성이라는 사실이었다.
6성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아 있는 상황.
슈브와 루베르를 찾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둘 다 동시에 진행하면 되겠지.’
“문제는 그녀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가.”
신유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디아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슈브 언니라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영!”
“뭐? 알고 있다고?”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디아가 슈브의 위치를 알고 있을 줄이야.
만약 슈브를 찾을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슈브는 불사왕의 언데드 군단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었으며, 불사왕을 보좌하는 비서와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찾을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
신유현은 디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슈브는 어디에 있지?”
* * *
그날 저녁.
신유현은 가주 회의에 참석했다.
가문의 가주인 신성일이 직접 명령을 내렸던 미확인 던전 게이트 조사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신유현의 보고를 들은 신성일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서 생겨난 예상치 못한 사고.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조사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세 명은 합류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끗 차이로, 조사대가 전멸하고 이상혁으로 변장한 네임드 보스가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
“조사대에 참가한 4성 헌터들이 먼저 싸워 준 덕분이죠. 그들이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대담하게도 신유현은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에게도 보고 내용을 각색했다.
암살자에 관한 내용은 쏙 뺀 것이다.
그리고 네임드 보스 이자르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4성 헌터들이 먼저 싸워서 힘을 빼놓은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4성 헌터들도 잡지 못한 네임드 보스 이자르를 자신이 어떻게 잡았는지 설명하려면 불사왕에 대한 것과 고유 스킬,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에 대해 설명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4성 헌터들을 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그럼 네놈은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거냐?”
신유현의 말에 신철진이 비아냥거리며 시비를 걸어왔으니까.
그 모습에 큰형인 신철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큰누나인 신유라와 작은누나인 신지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막내인 신철호는 안절부절못했다.
곧장 가주이자 아버지인 신성일의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예상했으니까.
“신철진, 그 입 다물어라.”
역시나 신성일은 신철진을 나무라며 지그시 노려봤다.
“하지만 가주님! 신유현이 한 일은 가문의 수치이지 않습니까! 저라면 함께 싸웠을 겁니다!”
신철진은 불같은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신성일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쿠구구구궁!
그러자 신성일을 중심으로 강렬한 압박감과 함께 진동이 흘러나왔다.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무거운 목소리.
“신철진, 그 입 다물라고 했다.”
“……넵!”
신성일의 서슬 퍼렇게 빛나는 차가운 눈초리에 신철진은 더 이상 아무 소리 못 하고 입을 닫았다.
그렇게 신철진이 입을 다물자 신성일의 기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어서 신성일의 시선이 신유현을 향했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이걸로 끝이냐?”
“네.”
“다른 일은 없었고?”
“네.”
탐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역시 파천검가의 가주라는 건가.’
자신을 떠보는 듯한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만약 여기서 신유현이 조금이라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자신이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마스터 경지의 관찰안을 속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군.”
다행스럽게도 신성일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잘했다.”
아니, 오히려 신유현을 칭찬했다.
결과적으로 신유현은 4성 네임드 보스를 처리하고 던전까지 공략했으니까.
신성일이 의뢰한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으니 보상이 있어야겠지. 원하는 게 있느냐?”
신성일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보상이라고?’
신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릴 뻔했다.
확실히 실력과 실적을 중시하는 파천검가는 논공행상 또한 철저하게 따진다.
예상치 못한 네임드 보스의 등장과 조사대 대원들의 전멸.
그 속에서 신유현은 네임드 보스를 쓰러트리고 던전을 공략했다.
거기다 대기업 남두그룹의 회장인 남현철의 손녀, 남연아를 살려서 돌아왔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실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상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이번 임무는 정태성 일행들의 단전을 폐쇄하여 재기불능으로 만든 죄를 면책받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를 공략했다고 해도, 대부분의 공적을 4성 헌터들인 강유찬과 김우성에게 돌린 상황.
조금 전 신철진이 말한 대로 신유현은 뒤에서 구경을 한 셈이었고,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은 꼴이었다.
그런데 보상을 주겠다니?
“보상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원한다면 파천신단이나 레어 등급의 장비를 주마. 그래도 싫으냐?”
“아, 아버지……!”
“아니, 가주님. 그건 좀…….”
신성일의 말에 장남인 신철민을 시작으로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만류했다.
신성일이 제안한 보상이 상당히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겠다는데 불만인가?”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신성일은 눈초리를 치켜 올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요.”
가문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입까지 다물게 만든 신성일은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거라. 무엇이든 들어줄 터이니.”
신유현에게 한없이 관대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신성일.
하지만 신유현은 알고 있었다.
신성일의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다.
‘이건 좀 위험한데.’
신유현은 고작해야 3성 던전 하나를 공략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신성일이 제안한 보상은 너무 과했다.
방금 전 가문의 사람들이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보일 정도로.
거기다 파천검가는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않은가.
실적보다 과한 보상을 주겠다는 신성일의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 없었다.
보상을 빌미로 무슨 요구를 해 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거절하기 힘들어졌어.’
신성일이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 신유현에게 보상을 주겠다고 못을 박았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여기서 신유현이 끝까지 보상을 거절하면 가주인 아버지의 체면이 구겨진다.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 가주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그렇다면…….
“그럼 차 한 대 뽑아 주세요.”
“뭐?”
예상치 못한 신유현의 한마디에 신성일의 근엄한 표정이 깨졌다.
초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마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영약도 아니고, 초인의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고가의 아티팩트 장비도 아닌…….
고작 차를 한 대 사 달라니?
“그게 네가 정녕 원하는 것이냐?”
“네.”
의외라는 눈빛으로 묻는 신성일의 반문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방금 전 요구가 최선이었다.
자동차라면 이번 임무의 보상으로 받기에 적당했다.
아무리 차가 비싸다고 해도 파천신단이나 레어 등급의 장비에는 비빌 수 없었으니까.
그것들은 못해도 최소 수억은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차를 사 달라는 말이냐?”
“네. 현무전에서 공무용으로 쓸 차를 한 대 뽑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신유현의 대답에 신성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동안 회의실에서 신성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식들 중에서 차를 사 달라고 한 건 네가 처음이구나.”
신성일은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자식들이 원했던 보상들은 영약이나 명검이었다.
당연히 신유현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차를 한 대 뽑아 달라고 할 줄이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차를 뽑아 주마.”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유쾌한 듯 웃는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이 어떤 차를 뽑아 줄지 기대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