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8화
같은 조사대 멤버였던 이지수 일행이 자신을 노리던 암살자였었으니 의심할 만했다.
“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3성 하급이니.”
신유현이 봤을 때 순한 강아지 인상의 이상혁은 착한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위험인물 같지는 않았다.
“그럼 문제없겠네요.”
남연아는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신유현의 말은 이상혁을 믿을 수 있다기보다 문제가 생겨도 상관없다는 의미였으니까.
이상혁 정도의 실력이라면 문제를 일으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네. 오히려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유찬 씨와 우성 씨죠.”
“그렇겠네요.”
이상혁은 고작해야 3성 하급의 초인.
하지만 강유찬과 김우성은 4성 중급 초인이었다.
만약 그들 중 한 명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상혁과 비교도 되지 않을 터.
“이제 정말 문제가 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남연아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상혁 씨부터 찾도록 하죠.”
신유현은 남연아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차마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강유찬과 김우성 둘 중 한 명이 조사대 멤버들을 전멸시킬지도 모르는 조커라는 사실을.
그렇게 신유현은 남연아와 함께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상혁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크워어어어어어어!
어마어마한 괴성이 빌딩이 가득한 도시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괴성에 신유현과 남연아는 흠칫 놀라며 주변을 경계했다.
콰콰콰콰쾅!
순간 가까이에 있던 빌딩에서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빌딩 건물 파편들 중 일부가 신유현과 남연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큭!”
재빨리 자세를 낮추며 파편들을 피한 신유현은 옆 건물 빌딩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빌딩 건물 벽면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의 마수들을.
“이 녀석들은…….”
[3성 마수, 크롤러]
마수들의 머리 위에 정보가 떴다.
사람 크기만 한 크롤러 수십 마리가 빌딩 벽면에 붙어 있었다.
‘나왔군.’
신유현은 날카로운 눈으로 크롤러들을 올려다봤다.
“저, 저건 대체 뭔가요?”
크롤러를 본 남연아는 놀라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하얀 피부.
인간 형태이지만 하체가 없는 상체.
그리고 하얀 달걀 같은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카락도, 눈도, 코도, 입도.
저렇게 기괴하게 생긴 마수는 처음 봤으니까.
쩌억.
순간 크롤러의 얼굴에 십자 모양의 금이 생겨났다.
키야아아아악!
이윽고 크롤러의 얼굴이 사등분되듯 쩍 벌어지면서 징그럽기 짝이 없는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상어 이빨 같은 톱니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고 새빨간 목구멍이 보였다.
머리 전체가 입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상체 아래에는 내장이 다 드러나 있었고 등에는 하얀 촉수가 징그럽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런 크롤러들이 지금 최소 20마리가 넘게 빌딩 그림자 속에 숨어서 벽에 매달려 있는 상황.
코즈믹 호러가 따로 없었다.
그워어어어어!
이윽고 수많은 크롤러들이 빌딩 벽면에서 신유현과 남연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신유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준비하세요.”
“예? 싸울 생각인가요?”
“네.”
깜짝 놀란 남연아의 반문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크롤러의 모습은 이전 삶에서 들었던 대로였다.
그 말은 곧 크롤러의 능력이나 특징도 마찬가지일 터.
크롤러들의 성가신 점은 빠른 이동 속도였다.
그 때문에 크롤러들에게서 도망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소울 포인트를 벌어야 하니까.’
신유현은 크롤러들을 노려봤다.
쾅!
예상대로 떨어져 내린 크롤러들은 바닥을 양팔로 내려치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키야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크롤러 한 마리가 입을 벌리며 달려들자 신유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이그니스를 뽑았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파앗!
이그니스에서 붉은 검광과 함께 검은 화염이 터져 나오며 달려들고 있는 크롤러를 향해 날아들었다.
까앙!
흑염을 머금은 이그니스와 크롤러의 팔이 맞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단하네.’
신유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크롤러는 3성 일반 마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인 존재.
기민하게 움직이는 두텁고 단단한 양팔을 가지고 있었으며, 표면에는 마나 장벽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검인 이그니스의 검격을 버텨 냈다.
하지만.
캉! 캉!
신유현은 V자로 베며 크롤러의 양팔을 각각 위아래로 쳐 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크롤러의 몸통.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유현은 크롤러의 몸통을 향해 이그니스를 휘둘렀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삼식(三式), 격멸(擊滅)!
콰아아앙!
내장이 드러나 있는 크롤러의 배 부분에 격멸이 작렬하자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끄워어어어억!
충격파에 휩쓸린 크롤러는 비명 같은 괴성과 함께 땅바닥에 하얀 피를 흩뿌리며 튕겨 날아갔다.
‘역시.’
예상대로 크롤러의 약점은 내장이 드러나 있는 배 부분이었다.
그곳을 공격당하자 크롤러는 맥없이 쓰러졌다.
“배 부분을 노리세요!”
크롤러를 빠르게 한 마리 처리한 신유현은 남연아를 향해 소리쳤다.
신유현이 크롤러 한 마리와 전투를 시작한 사이, 남연아도 전투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알겠어요!”
이동용 아티팩트 마나 부츠로 크롤러의 공격을 피하던 남연아는 신유현의 말에 답하며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했다.
화르륵!
그러자 좌우로 움직이는 남연아의 머리 위로 파이어 애로우 두 개가 생성되었다.
남연아는 그것을 크롤러를 향해 빠르게 날렸다.
쌔애액!
붉은 화염을 허공에 꼬리처럼 길게 흘리며 파이어 애로우들이 크롤러의 상체 아래에 날아가 박혔다.
푸푹! 화르륵!
그워어어어!
파이어 애로우가 크롤러의 드러나 있는 내장을 불태우자, 크롤러는 비명을 쓰러지며 쓰러졌다.
“한 마리 처리했어요!”
남연아가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신유현은 그런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눈앞에서 크롤러 두 마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크롤러 무리들과 교전을 시작했다.
* * *
크롤러 무리들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스무 마리 정도였지만 싸우는 동안 계속 나타나더니 어느덧 오십 마리를 돌파했다.
그동안 신유현은 남연아와 함께 장소를 이동해 가며 긴 시간 동안 크롤러 무리들을 격파해 나갔다. 덕분에 소울 포인트를 많이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숫자가 많아.’
남은 숫자는 약 스무 마리 정도.
“하아하아.”
문제는 남연아였다.
그녀는 뜨거운 숨소리를 내뱉었다.
장시간 이어진 전투로 인해 지친 것이다.
‘빨리 끝내야겠군.’
그나마 다행인 건 더 이상 크롤러 무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신유현은 이그니스를 꽉 움켜쥐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크롤러 세 마리가 신유현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아아앙!
신유현과 크롤러들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아스팔트 바닥이 터져 나가면서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나며 흙먼지들이 치솟아 올랐다.
번쩍! 슈아악!
뒤이어 솟아오른 흙먼지 너머에서 검광이 번쩍이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흙먼지 너머에서 크롤러 세 마리를 잡고 있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4성 중급 초인.
강유찬과 김우성이 합류한 것이다.
잠시 후, 예상대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강유찬과 김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버티셨습니다.”
“나머진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그들은 아직 남아 있는 크롤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유현 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상혁이 저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살아남은 조사대 멤버가 전부 모인 것이다.
* * *
역시 4성 초인들의 무력은 대단했다.
그들의 등장에 나머지 크롤러들이 빠르게 정리되었으니까.
“두 분 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전투가 끝나고 강유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유현과 남연아에게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의 물음에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이지수 일행이 살인 청부업자들이었다는 사실에 강유찬과 김우성은 크게 놀라워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멤버들 중에 암살자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 말이네요.”
이상혁 또한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조사대 멤버들 중에 암살자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강유찬은 신유현과 남연아를 바라보며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정말로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증거는 있습니까?”
반면, 김우성은 신유현과 남연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는지 증거를 요구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증거라면 가지고 있습니다.”
이지수 일행이 암살자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당장 이상혁만 해도 옥상에서 남연아가 이지수 일행에게 공격받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그 일행들이 암살자라는 사실은 남두그룹의 이름을 걸고 제가 보증할게요. 여기 녹음 파일도 있고요.”
남연아 또한 이지수와 대화한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이지수와 이야기를 나눌 때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해 두었던 것이다.
“암살자들과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이지수 일행이 암살자라는 증거를 남연아가 보증하고, 녹음 파일도 보여 주었지만 김우성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조금 전 이야기한 게 전부입니다. 크롤러들이 나타나자 바로 도망치더군요. 아마 우리들이 크롤러들에게 살해당할 거라 생각한 거겠죠. 실제로 그럴 뻔했지만.”
김우성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신유현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흠.”
신유현의 말에 김우성은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신유현의 말대로 자신과 강유찬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전부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신유현은 생각에 잠겨 있는 김우성을 바라봤다.
이지수 일행을 심문하고 처리했다는 사실과 의뢰주가 남민혁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게티아와 숭배자에 관한 이야기도.
‘말해 봤자 좋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아직 믿을 수 없으니까.’
남연아를 제외한 다른 조사대 멤버들은 아직 믿을 수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강유찬과 김우성 중 한 명은 조커일 테니 말이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그들에게 이지수 일행이 도망쳤다고만 이야기했다.
그 편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어차피 시체는 찾지 못할 테지.’
이지수 일행의 시체는 흑염에 불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마 실종 처리가 될 것이다.
던전에서 헌터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되는 일은 흔한 일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김우성은 뭔가 납득되진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한발 물러났다.
신유현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김우성 씨와 강유찬 씨는 어떻죠? 이상혁 씨와는 어떻게 만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