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27화 (27/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7화

남두그룹의 장녀, 남연아.

그녀는 남두그룹에서 괴짜 취급을 받으며 경원을 당했다.

이유는 성격 때문.

아티팩트 개발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으니까.

아티팩트를 연구하다가 연구실이 불에 타거나 폭발하는 건 기본이었다.

오죽하면 연구실이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

그뿐만이 아니라 성능 좋은 아티팩트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로 초인 헌터들을 불러다가 실험 대상자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마치 테스트 파일럿처럼.

다만, 문제는 테스트를 하다가 아티팩트가 폭주하는 경우였다.

그 때문에 그녀가 개발한 아티팩트들을 테스트하던 헌터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아티팩트를 연구하는 일이었으니까.

“끄어어억.”

덜컹.

아이언 메이든의 강철 문이 열리자, 하얗게 눈을 까뒤집고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실성한 듯 보이는 최승철이 쓰러지듯 나왔다.

“고문 체험을 한 기분은 어때?”

아이언 메이든 옆에서 남연아는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최승철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개발한 시작형 아이언 메이든은 일종의 유사 체험 장치였다.

아이언 메이든 안에 포박된 대상자는 약물을 주입당하고 갖가지 자극을 받으며 자신이 고문을 받는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메이든 블러드(Maiden Blood)라고 불리는 약물이 대상자를 환각에 빠뜨리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작은 자극만으로도 대상자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지수, 이재강, 최승철은 아이언 메이든 안에서 갖가지 자극을 받았다.

이 고문 기구 속에 속박되어 있는 정신적 압박감.

메이든 블러드로 인해 현실과 환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민해진 감각들.

그 속에서 받는 강렬한 자극들은 진짜 고문을 받는 현실이나 다름없었다.

바늘로 손끝을 살짝 찌르기만 해도, 바늘이 손가락을 관통하는 환상과 함께 고통도 똑같이 느껴졌으니까.

“덕분에 데이터를 잘 얻었네.”

태블릿을 손에 들고 있는 남연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심심풀이로 만든 심문용 아티팩트 아이언 메이든은 윤리적인 이유로 실험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암살자들 덕분에 처음으로 실험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 지독한 년…….”

아이언 메이든 속에서 고문당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최승철이 이를 갈며 한마디 했다.

그 말을 들은 신유현은 최승철의 손 등 위로 검을 꽂았다.

푹!

“크아악.”

그러자 최승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네놈들이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말해 봐라. 네놈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죽였나?”

“우리는 의뢰받은 일을 했을 뿐이다!”

“의뢰라고? 웃기는군.”

화륵.

순간 이그니스에서 흑염이 피어올랐다.

“끄아아아악!”

자신의 손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최승철은 발버둥 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네놈들이 해 온 짓거리를 내가 모를 것 같나? 의뢰를 핑계로 살인을 즐겼겠지. 네놈들은 그런 부류니까.”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최승철을 내려다봤다.

인류를 고문하고 힘을 얻는 게티아들을 섬기는 숭배자 놈들.

그런 놈들이 제정신일 리 없었다.

실제로 게티아 숭배자 조직의 암살자들은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게티아들처럼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희생자들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끼는 쾌락 살인마 같은 놈들이니까.

“그, 그만……!”

손에서 시작한 흑염이 팔을 타고 어깨를 향해 다가오자 최승철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애원하듯 신유현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신유현은 차갑게 웃었다.

살의와 광기가 보이는 미소였다.

“네놈도 대가를 치러야지. 저놈들처럼.”

신유현은 손가락으로 이지수와 이재강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까맣게 타고 남은 재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승철은 몸이 불타오르는 고통 속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발작하듯 소리쳤다.

“야, 이 개……!”

화르르륵!

하지만 이내 전신을 집어삼키는 흑염 때문에 최승철은 욕설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최승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대단한 능력이네요.”

최승철이 재가 되어 사라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남연아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오러 능력으로 초인을 재로 만들어 버릴 줄이야.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녀의 성격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불타 죽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니까.

“연아 씨의 아티팩트만큼은 아니죠.”

신유현은 아이언 메이든을 바라봤다.

이지수 일행을 잔인하게 학대하며 정보를 불게 만들어 준 심문용 아티팩트.

그것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남연아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지수 일행이 아이언 메이든 안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데이터를 얻었다며 좋아했다.

“이런 더러운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받은 건 똑같이 돌려줘야죠.”

남연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살육을 즐기는 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준 것.

애초에 그녀가 아이언 메이든을 개발한 이유는 극악무도한 빌런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살인을 즐기는 놈들에게 희생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해 주고 싶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줘야죠.”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남연아를 바라봤다. 짧은 대화였지만 신유현은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받은 것이 있으면 돌려줘야 한다고.

그것이 원한이든, 아니면 은혜든지 간에.

“아무튼 덕분에 심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유현은 남연아를 향해 웃어 보였다.

‘역시 그녀는 쓸모가 많아.’

그녀 덕분에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지수 일행을 심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색 던전을 탈출하려면 그녀의 탐색 능력도 도움이 될 테지.

‘당분간 지켜봐야겠군.’

남연아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무색 던전에 있는 동안 그녀가 신유현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터.

그녀 또한 무색 던전을 탈출하려면 신유현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거기다 신유현은 위기에 빠져 있던 남연아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녀의 성격상 앞으로 신유현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정말인가요? 그쪽에게 도움이 될 정보는 없지 않았나요? 도움이 되는 정보는 오히려 제가 더 들은 것 같은데.”

남연아는 미소를 지으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이지수 일행을 심문하며 몇 가지 정보들을 알아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지수 일행은 말단 암살자들이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이 가장 알고 싶어 했던 현 시대의 게티아에 대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국에 있는 아르스 포올리나의 숨겨진 은신처나, 이지수 일행이 헌터 협회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잠입해 있었다는 정보들만 들었을 뿐.

애초에 게티아 숭배자들은 점조직 구조였기에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뇨. 저도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어요.”

“아, 몸에 바람구멍을 내도 시원찮을 놈 말이군요.”

“네.”

남연아의 거친 말에 신유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연아 씨를 노린 게 남민혁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 해도 수확이죠.”

남두그룹의 장남이자 정식 후계자, 남민혁.

놀랍게도 그가 남연아의 암살을 의뢰한 인물이었다.

어째서 그가 남연아를 암살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민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여야 할 놈들 중 하나지.’

이 시대로 회귀를 한 후, 신유현은 살생부를 만들었다.

앞으로 게티아 놈들에게 복수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인물들.

그리고 인류를 게티아들에게 팔아넘기는 데 크게 일조를 한 인물들 위주로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그 리스트 중에서 남민혁은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와 재벌이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 게티아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팔아넘겼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게티아들의 의뢰를 받아 더욱 효율적으로 오랫동안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게 하는 아티팩트들도 만들어 냈다.

“그놈은 제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남연아는 이를 갈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언 메이든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체로 써 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렸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두그룹의 후계자인만큼 어마어마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연아 씨를 노렸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힘들겠죠. 심문 영상도 소용없을 테니…….”

이지수 일행의 심문 장면을 영상으로 기록해서 증거로 삼을 수도 없었다.

말이 심문이지, 사실상 아이언 메이든으로 고문했으니까.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지수 일행을 증인으로 내세울 수도 없었다.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증인이 되어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무색 던전에서 그들은 위험한 짐덩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뒤통수를 쳐 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깔끔하게 태워서 증거를 인멸한 것이다.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죠.”

남연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 당장은 남민혁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저 증거를 모으며 남민혁이 꼬리를 드러낼 때를 기다릴 뿐.

“남민혁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제 연구소에 들어가면 아무리 그놈이라고 해도 제게 손을 쓸 수 없어요.”

남연아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단언했다.

그녀는 남두그룹의 천재 마도공학자.

아티팩트 연구를 이유로, 남두그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연구소는 요새와도 같은 철통 보안을 자랑했다.

아무리 남민혁이라고 해도 손을 쓸 수 없을 터.

“그렇군요.”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연구소에서 나오지만 않는다면 안전은 보장된다는 소리.

남민혁 또한 남두그룹 내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남두그룹의 체면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여기서 벗어나도록 하죠.”

남민혁을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지금은 무색 던전을 탈출하는 게 먼저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지수 일행과 싸우고 심문을 하느라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무색 던전의 마수들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거기다 신유현은 한 가지 사실이 걸렸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이상혁 씨와 함께 있었는데 걱정이네요. 바로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었는데 아직도 오질 않고 있으니…….”

아무리 100층이 넘는 빌딩을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해도 벌써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상혁은 오질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남연아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