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5화
“역시 언니 성격 맘에 드네. 내 독에 당하고도 여유를 보일 수 있을까?”
이지수는 독이 묻은 단검을 치켜올리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녀도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남연아의 도발적인 말을 들었지만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았으니까.
“미친년. 네놈들 대체 뭐야? 왜 날 노리는 거지?”
남연아는 이지수와 나머지 헌터 두 명을 노려봤다.
“그건 언니가 알 필요 없고. 그냥 얌전히 여기서 죽어 주면 되니까. 뭐, 쉽게 죽일 생각은 없지만.”
“오랜만에 받은 의뢰인데 우리도 재미 좀 봐야 하지 않겠어?”
“한동안 조용히 살았으니 스트레스 좀 풀어야지.”
그들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각자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 헌터 협회에 잠입해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예외였다.
아무도 없는 던전에서 사람 하나 없애고 뒤처리를 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시체를 마수들의 먹이로 던져 주면 될 뿐이었으니까.
“역시 암살자들인가?”
그들을 바라보며 남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과는 오늘 처음 만났다.
그러니 자신과 원한 관계는 없을 터.
그들의 말을 유추해 보면 암살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도공학자라서 그런가? 언니 머리 진짜 좋은 거 같다.”
“우리 정체를 알아 봤자 뭘 어쩌겠다고.”
“그러게.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건데 말이야.”
그들은 남연아에게 정체를 간파당했지만 애써 숨기지 않았다.
“쓰레기 놈들이……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여?”
“글쎄. 누님 혼자 뭘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실실 웃으며 남연아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연아는 이를 악물었다.
‘두 놈까지는 어떻게 해볼 텐데.’
세 방향에서 놈들이 포위를 해 오고 있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다.
‘이 여자 강하네.’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눈앞에 있는 세 명들 중에서 이지수가 가장 강했다.
3성 중급이라고 이야기했었지만, 실제로는 상급에 가깝지 않을까?
쿵!
순간 강체술을 발동한 이재강과 최승철이 지면을 박차며 남연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남연아는 이재강과 최승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팡! 팡!
그러자 그녀가 입고 있는 코트의 손목 아래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니 여성적인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마나 실드 전개]
남연아의 손목에서 튀어나온 건 실드 코어 아티팩트였다.
마나를 주입해서 던지면 코어에서 자동적으로 마력 장벽이 생겨나 적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스스슥!
남연아가 내민 손바닥에서 약 10센티 정도 앞에 마나 실드가 전개되면서 장벽이 생겨났다.
“이까짓 거!”
“이런 걸로 우릴 막겠냐!”
이재강과 최승철은 마나 실드를 향해 장검을 내려쳤다.
깡! 깡!
“크윽!”
남연아는 양손에서 전해져 오는 압력에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다행히 마나 실드는 부서지지 않고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날 잊으면 안 되지, 언니.”
쌔애액!
그때 남연아의 등 뒤에서 이지수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단검들이 쇄도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남연아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에서 또다시 여성적인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기스 MK2 발동]
까가가가강!
순식간에 나타난 푸른 장벽이 남연아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에서 배리어 시스템이 발동하면서 이지수의 독 단검들을 막아 낸 것이다.
“역시 언니 대단하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 모습에 이지수는 즐겁게 웃으며 소리쳤다.
‘큭!’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남연아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지만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반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세 명의 공격을 막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챙강!
“크윽!”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재강과 최승철의 검을 막고 있던 마나 실드가 깨졌다.
이 상황에서 이재강과 최승철의 공격까지 받게 된다면 아이기스는 버텨 낼 수 없을 터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콰아아아아앙!
그때 이재강과 최승철 등 뒤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 때문에 아스팔트가 깨지면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며 흙먼지가 수 미터 넘게 치솟아 올랐다.
“컥!”
“크악!”
그리고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이재강과 최승철을 덮쳤다. 충격파에 휩쓸린 그들은 수 미터 넘게 튕겨 날아갔다.
잠시 후, 치솟아 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한민족 고유 전통 의상인 한복을 코트처럼 개량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신유현이었다.
* * *
신유현은 이상혁과 함께 빌딩 안에 들어간 후, 마수들과 조우를 하지 않고 옥상에 올랐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백 층이 넘는 빌딩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백 층이 넘는 빌딩을 계단으로 오르기에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빌딩 옥상에 다다른 신유현과 이상혁은 무색 던전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빌딩들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였지.’
옥상에서 바라본 무색 던전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고층 빌딩들의 숲이었다.
옥상에서 바라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강릉이 아닌 건가?’
무색 던전의 위치는 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렇다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초고층 빌딩의 대도시는 강릉시를 의미했다.
하지만 강릉시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컸다.
그럼 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런 의문을 품고 신유현은 이상혁과 함께 강체술을 발동하며 옥상을 뛰어다녔다.
미확인 던전을 조사를 하기 위해서.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다.
남연아가 조사대 멤버 중 세 명에게 공격받고 있는 모습을.
그 모습을 본 신유현은 이상혁을 뒤로하고 곧장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 * *
신유현이 뛰어내린 충격파로 이재강과 최승철은 튕겨 날아갔지만, 아이기스 MK2의 마나 배리어에 감싸여 있던 남연아는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잠시 후, 치솟아 올랐던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신유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남연아는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파천검가의 삼남이 자신을 구하러 올 줄은 몰랐으니까.
“사람을 구하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신유현은 남연아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남연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 드리죠.”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괜찮다는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구할 만한 가치가 있지.’
웃고 있는 얼굴과 다르게 신유현의 머릿속은 냉철했다.
남연아는 무리를 해서라도 구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남두그룹의 장녀이자 천재라고 명성이 자자한 마도공학자.
분명 장래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터.
또한, 지금 당장 이 던전을 탐색해서 출입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남연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는 탐색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신유현은 남연아 너머에 있는 이지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들이 절 암살하려고 했어요.”
“암살이라고요?”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사대에 빌런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빌런이 강유찬과 김우성 둘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건만…….
‘저 셋이 빌런이었다고?’
신유현은 이지수 일행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빌런이 셋이나 섞여 있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신유현의 시선을 느낀 이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파천검가의 셋째 도련님이 끼어들 줄이야. 이러면 좋지 않은데.”
신유현의 난입은 예상외였다.
하물며 상대는 파천검가의 3남이지 않은가?
거기다 3성 초인이라고 해도 100층이 넘는 빌딩에서 떨어져 내렸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신유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만큼 생각보다 신유현이 강하다는 의미겠지.
“누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증거 인멸을 해야 합니다!”
그때 충격파에 튕겨 날아갔던 이재강과 최승철이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그들 모두 강체술을 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네. 의뢰를 실패할 수는 없으니.”
결국 이지수도 이재강과 최승철의 의견에 동의했다.
거기다 이미 남연아가 신유현에게 자신들이 암살자라는 사실을 말해 버린 상황.
“파천검가의 도련님에게는 미안하게 됐네. 보답으로 도련님은 내가 기분 좋게 녹여 줄게.”
이지수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뜨거운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즉, 독으로 고통스럽게 죽여 주겠다는 말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신유현은 이지수의 말에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이재강과 최승철이 열을 받았는지 빡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파천검가의 쓰레기 놈이!”
“네놈은 누님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 우리가 죽여 주마!”
그들은 이미 신유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유현이 가문에서 재능이 없다고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럼 닥치고 덤벼.”
신유현은 자세를 낮추며 허리에 차고 있는 이그니스를 꽉 움켜쥐었다.
발검을 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그리고 당연히 강체술을 발동했다.
“건방진 놈! 우린 이미 조직에서 네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재능도 없는 쓰레기 자식아!”
이재강과 최승철은 빠르게 남연아를 지나치며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파천검법(破天劍法).
영식(零式), 개(改).
발검(拔劍), 무명베기(無明斬).
화악!
신유현을 중심으로 주변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이그니스가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순간, 검은 화염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깡!
뒤늦게 날카로운 쇳소리가 길게 한 번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소, 손이!”
뒤이어 이재강과 최승철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속도로 뽑혀 나온 이그니스가 그들의 검을 날려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의 손아귀는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마, 말도 안 돼.”
“파천검가의 쓰레기라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들은 이를 악물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신유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신유현이 가문에서 재능이 없어서 무시받고 있다는 사실은 대외비였다.
파천검가는 힘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가문.
신유현이 욕을 먹는 건 어디까지나 가문 내에서의 일이었다. 외부까지 퍼져 나가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눈앞에 있는 놈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조직에서 들었다고 했지?’
신유현은 그들이 암살자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암살자 조직이라면 유명한 곳이 있었다.
만독(萬毒) 가문, 최씨 일가.
대한민국 4대 명가 중 하나로, 일만 가지의 독을 다룬다고 전해지는 암살자 가문이다.
또한, 4대 명가 중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다른 가문과 다르게 본가의 위치가 어디인지 숨겨져 있으며,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곳은 분가였다.
“만독 가문의 일원인가?”
“만독 가문? 하! 우릴 그런 하찮은 가문과 비교하지 마라!”
“만독 가문이 하찮다고?”
이재강의 대답에 신유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만 가지 독을 다루는 독왕(毒王), 최대현이 있는 가문이다.
그런데 만독 가문이 하찮다니?
그럼 대체 그들은 얼마나 대단한 조직이라는 말인가?
“네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 우리는 오직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를 따르니까.”
이재강은 신유현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
이전 삶에서 어느 단체의 인간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마 네놈들 게티아 숭배자들이냐?”
“……!”
조용히 내리까는 신유현의 한마디에 이재강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이재강!”
그 순간 이지수가 나무라듯 소리치며 죽일 듯이 이재강을 노려봤다.
간접적으로 이재강이 자신들의 진짜 정체를 인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수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설마 파천검가의 삼남이 그분들에 알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네놈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인류를 배신한 대가를.
눈앞에 있는 놈들의 정체를 알게 된 신유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차가운 살의를 보이며 이재강을 향해 다가갔다.
“컥!”
게티아에 대해 신유현이 알고 있다는 사실과, 숨 막힐 것 같은 살의에 당황하고 있던 이재강은 순식간에 머리채를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재강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움켜잡은 신유현은 그의 얼굴을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찍었다.
쾅! 쾅! 쾅!
“그, 그만…….”
아스팔트 바닥에 몇 번 내려찍힌 이재강은 피떡이 된 얼굴로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런 이재강의 귓가에 신유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시작이야.”
그렇게 게티아 숭배자들을 향한 신유현의 잔혹한 복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