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0화
“가문의 명예 때문입니다.”
“가문의 명예 때문이라고?”
신유현의 대답에 신성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초인들이 금기시하는 단전 폐쇄를 한 이유가 가문의 명예 때문이라니.
“설명해 보거라.”
여전히 신성일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차가웠다.
“그들은 가문의 직계인 제게 단전을 폐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문을 지켜야 할 수호검대 대원들이 말이죠.”
파천검가를 지키기로 맹세한 사방수호신검대.
그중 하나가 주작검대다.
그런데 주작검대 대원들이 직계인 신유현에게 단전을 폐하겠다는 소리를 했으며 실제로 그러려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가문을 우습게 볼 겁니다.”
“감히!”
후웅!
순간 가주인 신성일을 비롯한 간부들에게서 강렬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누가 감히 가문을 비웃는단 말인가.”
그들은 가문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파천검가를 가볍게 여기는 놈들이 있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테지.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신성일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문이 비웃음을 받는 것보다 더 큰일이 있다는 것이냐?”
“네. 가문의 직계를 건드린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나머지 세 가문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성일을 바라봤다.
“분명 우리 가문이 만만해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감히 겁도 없이 가문의 직계를 건드린 놈들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다른 가문들이 파천검가를 만만하게 볼 거라는 소리였다.
“과연. 그래서 본보기를 보였다는 말이구나.”
그때 가주 신성일의 옆에서 조용히 신유현의 말을 듣던 가문의 대호법이자 숙부인 신성현이 웃으며 말했다.
“네.”
신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유현은 회의실에 있는 가문의 간부들과 직계 형제자매들, 그리고 일가친척들을 둘러봤다.
“가문의 직계인 저를 건드렸으면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전 그들이 하려고 했던 걸 그대로 돌려주었을 뿐입니다.”
파천검가의 직계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가문의 명예 또한 지킬 수 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신유현은 회의실에 모여 있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자신을 건드리면 똑같이 되돌려줄 것이라고.
‘얼마 전이었다면 먹히지 않았을 테지만.’
가문의 무능아, 재능이 없는 쓰레기 등등.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유현은 가문의 인정은커녕 온갖 멸시와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력 개방을 한 데다가, 무엇보다 아버지인 신성일에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계속 가문의 직계라는 말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제 신유현의 일은 파천검가의 일이 되었다.
“당한만큼 돌려주겠다라. 마음에 드는구나.”
신유현의 당돌한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성일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네가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헌터 협회에서 시끄럽게 굴 테니까.”
신성일은 엄격한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죽음과도 같은 단전 폐쇄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태성 일행 관련 사건은 헌터 협회에 보고를 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정당방위라고 해도 초인들을 관리하는 헌터 협회에서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하지만.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신유현은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정태성 일행들의 단전을 폐쇄한 책임은 온전히 질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곳은 헌터 협회가 아니라 파천검가이지만 말이다.
‘가문 내부에서 생긴 일을 헌터 협회에게 넘길 리가 없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이 신유현을 헌터 협회에 넘기지 않을 것이다.
파천검가는 헌터 협회의 간섭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신유현은 알고 있었다.
“S급 헌터 권한을 사용하겠다.”
‘역시.’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철혈의 검왕, 신성일.
그는 세계 헌터 협회에서 얼마 안 되는 S급 헌터였다.
그리고 S급 헌터에게는 여러 가지 권한들이 주어져 있으며, 그중에는 즉결심판권도 있었다.
오직 S급 헌터만이 가지는 특권.
이러한 특권을 S급 헌터에게 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인류가 마수들과 전쟁 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유현. 너에게는 하급 초인 세 명의 단전을 폐쇄한 죄로 미확인 던전 게이트의 조사 임무를 내리겠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
아직 인류는 던전 게이트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미확인 던전 게이트로, 위험하다는 사실밖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들어가 보기 전까진 어떤 등급인지 알 수 없는 게 무색 던전의 특징이었으니까.
“해 보겠느냐?”
신성일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 건가?’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신성일이 S급 권한을 사용해서 자신에게 의뢰를 맡길 거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색 던전의 조사를 맡길 줄이야!
“네.”
하지만 신유현은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다.
‘지금 이 시기에 무색 던전 조사라면 그곳밖에 없지.’
과거 강릉이라 불리던 도시.
하지만 6성 보스급에 해당하는 거대 괴수 한 마리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마수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는 상황.
그리고 그곳에서 마수들이 뛰쳐나올 수 있기에 세계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서 일정 숫자 이상의 초인들을 파견해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강릉 도시 외곽에서 미확인 던전 게이트가 발생한 것이다.
“그럼, 그래야지.”
신유현의 빠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성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또 강해진 모양이니.”
‘역시 숨길 수 없었나.’
신성일의 한마디에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차크라 연공법과 마나 제어법으로 최대한 마나를 숨기고 있었지만 신성일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유현이 3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마 그래서 신유현에게 무색 던전의 조사를 맡긴 것일 테지.
“예.”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자신의 등급을 속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불사왕의 능력만큼은 비장의 수단으로 숨겨 둘 생각이었다.
아직 가문을 어찌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건 아니니까.
“그럼 본 사문회를 마치겠다.”
신유현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신성일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사문위원회를 끝냈다.
* * *
뀨! >_<
현무전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까망이가 폴짝 뛰어오르며 신유현을 반겼다.
“잘 있었어?”
뀨뀨!
얼굴을 비벼 오는 까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신유현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피곤하네.’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 때문에 신유현은 피곤함을 느꼈다.
던전에서 스켈레톤들에게 검법을 가르쳤고, 정태성 일행과 한바탕한 후 기력 소모가 큰 단전 폐쇄까지 했다.
거기다 사문위원회까지.
하지만.
뀨이잉!
“이 녀석.”
신유현은 애교를 부리듯 몸을 비비며 귀여운 소리를 내는 까망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키세스 초콜릿처럼 생긴 까망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받는 느낌이었다.
신유현은 가슴 위에 올라와 있는 까망이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예상대로 일이 풀렸군.’
정태성 일행의 단전을 폐쇄하고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을 해 봤다.
분명 신철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가문에서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터.
실제로 신유현의 예측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리고 무색 던전이라.’
신유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등급이 높은 던전을 공략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신성일이 미확인 던전 게이트, 무색 던전의 조사 임무를 내릴 줄이야.
신유현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였다.
정태성 일행의 단전을 폐쇄한 일을 해결하고, 등급이 높은 던전을 공략하러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확실히 무색 던전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조사만 하는 거라면 문제없을 테지.’
신성일의 임무는 무색 던전의 조사.
공략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던전에 들어갔다가 등급만 확인하고 바로 나와도 된다.
그래서 헌터 협회에서는 비록 등급이 낮아도 서바이벌 능력이 뛰어난 헌터들을 조사대로 파견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대로라면 이번 무색 던전의 등급은 분명 3성이었지.’
신유현은 지금 이 시기에 발생한 무색 던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신성일이 말한 임무를 받아들인 것이다.
‘3성이면 공략도 불가능하지 않아.’
무색 던전은 위험한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만 3성급이면 조사만이 아니라 공략도 노려볼 만했다.
거기다 이전 삶에서 무색 던전을 조사하기 위해 헌터 협회에서도 나름 실력이 있는 헌터들을 파견했었다.
무색 던전의 등급과 헌터 조사대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무색 던전을 조사하러 파견한 헌터들 중에서 돌아온 사람은…….
4성 중급 헌터 단 한 명뿐이었다.
* * *
다음 날.
신유현은 아침부터 본가 별관 주택에서 어머니를 만나 아침을 먹고 왔다.
전날 있었던 정태성 일행의 습격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어머니에게도 흘러 들어갔었으니까.
그래서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만나고 온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무사한 신유현을 보고 그저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어머니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무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4대 명가 중 하나인 파천검가라는 사실을.
그랬기에 정태성 일행들의 단전을 어째서 폐쇄시켰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책임은 지렴.]
‘당연히 그럴 겁니다.’
어머니의 말에 신유현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앞으로 신유현은 수라의 길을 걸을 것이다.
게티아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가 와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티아 놈들에게 철저히 대가를 치르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전부 지워 버리기 전까지는.
책임을 지는 건 모든 게 끝난 후에 해도 될 테니까.
‘쉬고 있을 틈이 없어.’
어머니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무전으로 돌아온 신유현은 바로 개인 지하 수련장으로 향했다.
무색 던전 조사는 내일이나 모레는 돼야 갈 수 있었다.
정태성 일행들의 단전 폐쇄와 관련해서 헌터 협회에 설명하고, S급 권한으로 신유현을 무색 던전 조사에 보내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했으니까.
그동안 몸을 단련할 생각이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
그렇게 지하 수련장에서 땀을 흘리고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 찾아왔다.
“전주님,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신유현은 지하 수련장에 찾아온 인물들을 바라봤다.
현무전의 부전주, 최정훈.
인사부장, 이연화.
재정관리부장, 김재현.
그들은 현무전을 운영하는 핵심 부서의 책임자들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