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4화
실제 나이는 40대 후반이지만 겉모습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
파천검가의 가주이자 철혈의 검왕, 신성일은 지그시 신유현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에서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네, 가주님.”
신유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러자 신유현을 바라보던 친족들과 간부들 중 몇몇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지금 신유현이 느끼고 있을 압박감은 2, 3성급 초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마나의 재능이 없다고 알려진 신유현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신유현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왜 철호에게 손을 댔지?”
신성일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고 차가운 눈동자로 신유현을 직시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눈빛.
깊고도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유현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아버지를 속이는 건 힘들겠지.’
가주 신성일은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7성급 화경의 경지에 도달한 검사.
기만하는 짓을 한다면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철호에게 손을 댄 이유를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지명 의뢰에서 일어날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직고를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될 뿐.
“어머니를 욕했습니다.”
신유현은 눈빛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신철호는 어머니가 사는 집을 쓰레기장이라고 비유하며 욕을 했다. 그래서 그놈을 바로 후려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그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리고 신유현의 대답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어머니 욕은 못 참지, 라고.
“그래서 막내를 팼단 말이냐?”
“네.”
신유현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도 과하지 않느냐? 막내는 전치 2주의 내상을 입었다. 그 때문에 오늘 있었던 지명 의뢰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지.”
신성일의 말대로 신철호는 가주 회의에 불참했다.
가문의 의무실에서 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웃고 말았다.
천하의 파천검가 가주가 막내를 걱정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아무리 신철호가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는다고 해도, 그건 승자로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적어도 다른 직계들에게 패했다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직계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패하거나, 설령 가문의 직계라고 해도 재능이 없다고 무시를 당하던 신유현에게 패했다면 문제가 생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유현은 1성 초인이었으니까.
그만큼 신철호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으며, 패배한 자를 걱정해 줄 만큼 파천검가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건 불참한 놈이 잘못이죠.”
“크하하하하핫!”
신유현의 대답에 신성일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가주전 전체가 그의 웃음소리로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진 놈이 잘못이지.”
초인 사회는 강자지존의 세계.
그건 파천검가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당장 신성일의 말에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신유현은 불참한 놈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성일은 진 놈이 잘못이라고 답했다.
즉, 파천검가에서는 약하거나 패배한 놈이 잘못이라는 소리였다.
‘그래. 파천검가는 그런 곳이었지.’
신유현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오로지 힘으로만 돌아가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가문.
비단 파천검가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초인 사회의 풍조가 그러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훗날 게티아를 막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지금 당장은 재능이 없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능력을 개화시키는 대기만성형 강자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할 일이 많구나.’
게티아를 막기 위한 대기만성형 인재들을 발굴해야 하고, 그들을 추종하는 놈들도 숙청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하나씩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막내를 이겼지?”
“닷새 전에 기력 개방을 했습니다.”
“호오, 기력 개방을 했다고?”
신성일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성일은 가문 내에서 있었던 일들은 대부분 다 파악하고 있었다.
신유현이 마검 이그니스를 신지아에게 얻었다는 사실도.
신철호나 신철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오늘 아침 일찍 신유현이 현무전을 나서서 본가에 왔었다는 사실까지도.
‘지금까지 당해 온 걸 준비가 되자마자 갚은 것인가?’
신성일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씩 미소를 지었다.
신유현의 행동은 더할 나위 없이 파천검가의 사람다웠으니까.
“신유현.”
신성일은 나직한 목소리로 신유현을 불렀다.
신유현이 정말 기력 개방을 했다면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네, 가주님.”
“검을 뽑아라. 그리고 네가 가진 힘을 보여 봐라.”
“네.”
신유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이건 기회였다. 여기서 머뭇거리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힘을 어느 정도 보여 주고 가문의 인정을 받는 편이 나았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전 삶과는 달리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게티아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계획이 좀 더 수월해질 터.
스르릉.
신유현은 가주전을 경비하는 무사로부터 건네받은 장검을 뽑았다.
가주전에 들어올 때는 무장해제를 해야 했기에 이그니스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신유현은 가주전의 경비 무사로부터 받아 든 장검에 차크라를 발동하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다크 소울 블레이즈, 흑염을 일으키면서.
“검은 화염이라고?”
신유현의 흑염을 본 친족들과 간부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주인 신성일조차 눈빛에 이채를 띄었다.
신유현이 3성 검사의 상징인 오러 속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오러 속성을……?
“2성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속성을 쓸 수 있는 거지?”
“허…….”
여기저기서 신유현의 오러를 본 친족들과 간부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검은 화염이 넘실대는 신유현의 오러를 보고 놀라워했다.
2성 중급일 터인데 3성이 되어야 발현할 수 있는 속성을 벌써부터 쓰고 있었으니까.
그건 곧 신유현이 다중 오러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일부 초인들 중에서는 한 가지 오러 속성뿐만이 아니라 두 가지 속성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중 속성을 가진 오러는 희귀한 데다가 대부분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유현은 불사왕의 권능 중 하나인 흑염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가문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보여 주어야 할 때.
3성이 되어야 쓸 수 있는 속성을 보여 준다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 신유현이 숨기고 있는 비장의 패는 많이 남아 있었다.
차크라부터 시작해서 아직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불사왕의 권능들을 숨겨 두고 있으니 말이다.
“흑염의 오러라…… 좋은 속성이구나.”
“감사합니다, 가주님.”
“가주라 부르지 말고 앞으로는 어디서든 아버지라 부르거라.”
“……!”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탓일까.
신유현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흑염을 해제하며 답했다.
“예, 아버지.”
그러자 회의실에 있던 가문의 친족들과 간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신유현은 현무전에 기거하고 있기는 했으나, 실상은 현무전은 물론 가문의 일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신성일의 말은 이제 신유현을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어디서든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말은 신성일이 신유현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귀여워하던 신철호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었다.
본래라면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막내를 건드린 벌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벌을 내리기는커녕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중을 보이다니.
‘결국 이렇게 나오는군.’
하지만 신유현은 속으로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신성일의 숨은 의도를 알아차렸으니까.
‘역시 철혈의 검왕답구나.’
사자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절벽으로 떨어뜨린다고 했던가.
지금 신성일은 그와 같은 행동을 신유현에게 했다.
가문의 후계자 쟁탈전에 신유현을 한 발 떠밀어 넣은 것이다.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어차피 후계자 쟁탈전에는 참전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일정을 좀 더 빠르게 앞당기면 되고.
신유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해도 되니까.
“그러고 보니 아직 지명 의뢰에 대한 보고를 듣지 못했군. 어떻게 됐지?”
‘타이밍 좋고.’
신유현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신성일의 물음에 신유현은 지명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2성 던전 타락한 고블린의 숲을 공략한 일을 짧게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신성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지명 의뢰를 완료한 데다가 혼자서 2성 보스를 잡았다고 신유현이 이야기했으니까.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잘했구나.”
“감사합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지명 의뢰를 무사히 완수했으니 보상이 있어야겠지. 원하는 거라도 있느냐?”
그 말에 신유현은 직감했다.
지금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해도 괜찮을 거라고.
“네. 이번에 공략한 던전을 저 혼자 사용하고 싶습니다.”
신유현의 대답에 침묵이 찾아왔다.
2성 던전의 이용.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략을 완료한 던전은 가문의 문하생들이나 검사들이 주로 사용하니까.
다만, 신유현이 던전을 ‘혼자’ 쓰고 싶다는 발언이 문제였다.
던전은 어마어마한 이익을 창출한다.
그런 던전 혼자서 독점을 하겠다니.
그 때문에 친족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유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신성일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던전 하나를 그냥 내달라는 말이냐?”
“아니요.”
신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흘. 사흘간 제가 던전을 혼자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사흘이라…….”
신성일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회의실에 있던 친족들도 조금 얼굴이 풀렸다.
던전 하나를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흘간 빌려 달라는 소리였으니까.
“좋다. 사흘간 너에게 던전을 이용할 권리를 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신성일의 말에 신유현은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외에 더 원하는 게 있느냐?”
“아니요. 없습니다.”
신유현은 한 걸음 물러났다.
이미 받아야 할 건 다 받았다.
“그럼 신철진.”
“예?”
순간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신성일의 말에 신철진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 그에게 신성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유현과 내기를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