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10화
게티아조차 붉은 달이나 배틀 필드라고 불리는 던전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은 단지 던전 아웃 브레이크 현상으로 현실 세계에 뛰쳐나온 마수들을 조종했을 뿐이었으니까.
“고블린 던전인가. 너희들 상대로는 딱 좋군. 여기서부터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나는 뒤에서 지켜보겠다.”
“알겠습니다.”
최현성의 말에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성 던전이라면 몇 번 입장했었지만 2성 던전은 이정훈 패거리도 처음이었다.
이전 삶에서는 신유현도 마찬가지.
하지만 고블린이라면 오래전부터 등급이 낮은 던전에서 단골처럼 등장해 왔기에 이정훈 패거리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놨었다.
덕분에 얼굴이 조금 풀어진 이정훈은 힐끔 신유현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던전은 우리가 공략할 테니 넌 그냥 뒤에 있어. 교관님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미친놈. 1성이 무슨 2성 던전 보스를 잡겠다는 건지…….”
“우리 발목 잡지 마라.”
그들은 노골적으로 신유현을 무시하며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
그들 또한 이미 신유현이 신철진과 내기를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신유현이 지명 의뢰에 참가한 건 가주 명령이니 넘어간다고 쳐도, 혼자서 보스를 잡는 건 인정할 수 없었다. 1성 초인이 2성 보스를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괜히 신유현이 보스를 잡겠다고 나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손해 보는 건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다.
‘뭐,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정훈 패거리의 반응에 신유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이전 삶에서 신철호 혼자 보스를 잡겠다고 나댔다가 망한 전적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신유현이 이미 2성 초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던전 공략에 집중해라.”
그때 최현성이 이정훈 패거리에게 바로 주의를 줬다.
그리고 신유현도 어깨를 으쓱이며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마. 너희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흥.”
신유현의 말에 이정훈은 고개를 돌리며 앞장섰다.
그런 이정훈의 등을 바라보며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나는 보스만 잡으면 돼.’
어디까지나 신유현의 목적은 2성 던전 보스였다.
그놈을 잡아야 둘째 형인 신철진에게 파천신단을 뜯어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일반 고블린 잡몹들은 이정훈 패거리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 * *
키에엑!
어둠이 내린 숲속에서 고블린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붉은빛의 눈동자.
잠시 후, 숲속에서 고블린 두 마리가 일행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이건?’
순간 신유현은 눈을 의심했다. 이전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블린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힘 좀 쓰는 2성 머슬 고블린>
고블린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명칭.
시스템 능력 덕분에 초인들은 마수들의 명칭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블린은 왜소하고 마른 체형을 가진 마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고블린은 체격이 크고 탄탄한 근육을 과시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끼에에에엑!
<약 빤 2성 고블린>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이 퀭한 고블린 한 마리가 경련하듯 머리와 몸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블린들의 어깨에는 징그러운 촉수가 하나씩 솟아나 하늘하늘 흔들거리고 있었다.
촉수는 모든 타락한 마수들이 가진 특성 중 하나로, 상대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한다.
촉수에 몸이 꽂히면 마나 드레인을 당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교관님?”
이정훈은 얼빠진 표정으로 최현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수들의 어깨에 촉수가 달려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이정훈 패거리가 알고 있는 타락한 고블린과 많이 달랐으니까.
신유현 또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눈앞의 고블린들은 처음 보는 특이 개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눈팔지 마라!”
그때 최현성이 이정훈에게 호통을 쳤다.
끼에에엑!
그 순간 약 빤 고블린이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이정훈을 향해 돌진해 왔다.
“우왁!”
갑작스러운 상황에 흠칫 놀란 이정훈은 재빨리 장검을 들고 앞을 막았다.
까가가강!
약 빤 고블린이 들고 있는 단검과 이정훈의 장검이 맞부딪치며 어둠 속에서 화려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이, 이게!”
갑작스러운 기습에 화가 난 이정훈은 장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무리 상태가 이상해 보여도 고블린은 고블린. 보스가 아닌 이상, 2성 일반 마수는 2성 초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죽어!”
이정훈은 머리 위까지 높이 치켜든 장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서걱!
이정훈의 장검은 약 빤 고블린의 몸을 살짝 가르고 지나갔다.
끼야아악!
그러자 괴성을 지르며 수풀 쪽으로 헐레벌떡 도망가는 약 빤 고블린.
“어딜 도망가!”
그 모습을 본 이정훈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약 빤 고블린의 뒤를 쫓았다.
마무리를 가하기 위해서.
그 순간.
끼에에에엑!
수풀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고블린 하나가 단검을 앞세우고 뛰쳐나왔다.
<2성 타락한 일반 고블린>
“헉!”
갑작스럽게 나타난 고블린의 기습 공격에 당황한 이정훈은 다급히 하얀 배리어 코트의 물리 보호를 발동시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물리 보호가 활성화되기도 전에 고블린의 단검이 먼저 이정훈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대로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터.
그 때문에 이정훈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챙!
이정훈 앞으로 붉은 검신에 검은 화염이 새겨져 있는 장검 하나가 끼어드는 게 아닌가!
이정훈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네가 왜?”
놀랍게도 신유현이 고블린의 단검을 쳐 낸 것이다.
신유현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정훈에게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내 발목은 잡지 마라.”
“뭐? 이 자식이!”
신유현의 말에 이정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신유현에게 주었던 비아냥을 그대로 돌려받았으니까.
물론 신유현은 단순히 비아냥을 갚기 위해 도와준 건 아니었다.
‘넌 모르겠지. 최현성이 얼마나 의리를 중시하는지 말이야.’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정훈을 도와준 이유는 다름 아닌 최현성 때문이었다.
최현성이라면 이정훈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신유현이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할 테니까.
‘좋은 인상을 심어 줘서 나쁠 것도 없고.’
이전 삶에서 최현성은 백호전 소속이 되어 첫째 누나인 신유라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 덕택에 가문에서 백호전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니 최현성을 잡을 수 있으면 잡는 게 좋았다.
또한 지명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정훈 패거리의 도움도 필요했다.
아무리 과거의 경험이 있다고 해도 이제 막 2성이 된 신유현 혼자 던전에 등장하는 모든 고블린들과 보스까지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
“넌 저쪽이나 도와. 나는…….”
그렇게 말한 신유현은 이정훈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전 이정훈을 기습하고 도망간 고블린을 향해 질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유현은 도망가던 고블린의 등에 이그니스를 찔러 넣었다.
푸욱!
키에에엑!
고블린은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지르며 절명했다.
그렇게 간단히 일반 고블린을 처치한 신유현은 다시 몸을 돌리며 이정훈 패거리들을 바라봤다.
다시 이정훈이 합류한 그들은 특이 개체 고블린 두 마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직도 못 잡은 건가.’
그 모습에 신유현은 혀를 찼다.
비록 특이 개체라고는 하나 세 명이서 두 마리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유현은 이그니스를 늘어뜨리며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의 근처까지 다가서자 조용히 한마디 했다.
“비켜.”
그러자 이정훈 패거리는 고블린들을 경계하며 각자 한마디씩 던졌다.
“넌 올 필요 없어!”
“이놈들은 우리가 잡는다!”
“머슬 고블린 딴딴한 거 실화냐?”
그들은 신유현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고 고블린들을 상대했다.
그런 그들의 뒤에 선 신유현은 늘어트리고 있던 마검 이그니스에서 흑염을 피워 올렸다.
우우웅!
진동하는 붉은 검신을 휘감으며 피어오르는 검은 화염.
“어?”
“서, 설마 기력 개방을……?”
“진짜냐?”
그 모습을 힐끔 돌아본 이정훈 패거리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신유현이 오러뿐만 아니라 검은 화염까지 발현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특히 그들보다 더욱 놀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최현성이었다.
“오러 속성을 발현했다고?”
최현성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게다가…….
“흑염의 오러라니…….”
최현성은 침음을 삼켰다.
기력 개방과 오러가 2성의 상징이듯, 오러 속성은 3성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1성으로 알고 있는 신유현이 오러 속성까지 발현했으니 놀랄 수밖에.
그뿐만이 아니다.
‘저건 설마 마검인가?’
아직 이정훈 패거리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최현성은 눈치챘다.
지금 신유현이 들고 있는 붉은 검신의 검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검이라는 사실을.
“신유현. 그 검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신유현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최현성을 뒤로한 채, 이정훈 패거리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고블린들을 향해 이그니스를 휘둘렀다.
파천검법(破天劍法).
일식(一式), 무명(無明).
그 순간 허공에 붉은빛 검광과 함께 흑염이 화려하게 수놓이며 고블린들을 덮쳤다.
키익!
그러자 고블린들은 각자 무기를 치켜들며 신유현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흑염이 깃든 마검 이그니스를 고블린 따위가 막아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스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고블린들은 무기와 함께 두 동강이 나더니 흑염에 휩싸이며 불타 버렸다.
[2성 타락한 머슬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2성 타락한 약 빤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일격에 반토막을 내다니…….”
이정훈 패거리는 믿기 힘든 사실에 경악한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자신들 셋이서 달려들었음에도 고전했던 놈을 단칼에 베어 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사왕의 가호를 발동. 귀속 스킬, 다크 소울 이터를 시전합니다.]
푸확!
순간 신유현의 등에서 검은 마나로 이루어진 깃털 날개가 솟구쳐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흩날리는 검은 깃털들.
“……!”
갑자기 등에서 검은 날개가 튀어나오자 신유현은 흠칫 놀랐다.
아무래도 다크 소울 이터는 근처에 마수들의 시체가 있으면 자동 발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현성과 이정훈 패거리는 검은 날개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다크 소울 이터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활짝 펼쳐진 양쪽 검은 날개에서 촉수가 하나씩 튀어나오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블린의 심장에 꽂혀 들어갔다.
‘으음…….’
촉수를 통해서 고블린들의 영혼을 흡수한 신유현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쾌락과도 같은 아찔함이 머리를 타고 흐르며 포만감이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신유현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