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9화
“늦었군.”
기숙사 앞에 도착하자 이미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유현은 일단 고개부터 먼저 숙이며 사과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 자신에게 말을 건 인물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역시 인솔 교관은 최현성인가.’
이전 삶에서도 최현성이 교관으로 붙어 왔었다.
최현성은 20대 중반으로, 최근 가문에서 스카우트해 온 4성 검사였다.
그는 훗날 6성 초절정 검사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하지만 지금은 파천검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로 문하생들의 교관을 맡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하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아직 소속이 정해지지 않은 탓이다.
‘탐난다.’
신유현은 뜨거운 눈으로 최현성을 바라봤다.
최현성은 실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명예와 의리를 중요시 여기고 인품이 좋기로 유명했다.
만약 저런 인재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됐다. 아직 신철호도 오지 않은 모양이니 다음부터는 늦지 마라.”
가문의 직계라고 해도 정식 검사로 인정받는 3성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수련생들과 동일하게 대우를 하는 것이 파천검가의 규율이었다.
그렇기에 최현성은 신유현에게 하대를 했다.
“네.”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다행히 늦었다는 이유로 질책하진 않을 모양이었다.
‘역시 내 사람으로 만들면 좋겠는데.’
신유현은 곁눈질로 최현성을 바라봤다.
이전 삶에서부터 신유현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가문 내에서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가능하면 최현성을 포섭하고 싶었다.
다만.
‘형들이랑 누나가 문제지.’
이미 신유현의 형들 또한 최현성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일단 지명 의뢰부터 완수하자.’
이번 지명 의뢰에서 혼자 2성 보스를 잡는다면 가문 내에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최현성의 눈에 띄게 될 터.
“교관님, 정말 저 녀석이랑 같이 던전을 공략하러 가야 합니까?”
그때 한 청년이 신유현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유현은 그를 바라봤다.
‘이정훈 패거리로군.’
이전 삶에서 2성 던전을 공략한 2성 문하생들.
그들 또한 하얀 코트를 입고 있었으며 신유현과 동갑이었다.
그리고 이정훈은 2성 동기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으며, 현재 3성을 바라보고 있는 인재였다.
그들은 이번 의뢰를 완수하면 가문의 정식 검사로 인정받고 수호신 검대의 소속이 정해진다.
그런데 1성 검사인 신유현과 함께 2성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니!
“불만인가?”
“네. 저놈 때문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합니까?”
이정훈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진급에 차질이 생길 테니까.
신유현은 그런 이정훈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럼 가주님한테 직접 말해 보든가.”
“뭐? 갑자기 가주님은 왜…….”
“지명 의뢰는 가주님 직속 명령인 거 몰라? 내가 지명 의뢰에 참가한 건 가주님이 명령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불만이라고?”
“아, 아니, 잠깐!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신유현의 말에 이정훈은 흠칫 놀라며 당황했다.
철혈의 검왕이라 불리는 가주 신성일은 파천검가의 절대적인 존재.
그런 가주가 직접 내리는 지령에 거부는 용납할 수 없었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 뭐라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가주님을 모욕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신유현의 싸늘한 말에 이정훈은 말문이 막혔다.
뭐라 반박을 하고 싶어도 신유현이 먼저 가주를 내세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신유현에게 반론을 펼친다는 건, 곧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을 따르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신유현은 아버지를 팔았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막말을 해도 파천검가의 가주인 아버지를 내세운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테니까.
“아, 알았어.”
결국 이정훈은 꼬리를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신유현에게 말려든 것을.
이제 이정훈은 더 이상 신유현에게 불만을 터트릴 수 없게 되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최현성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신유현에 관한 건 소문으로만 들어 왔으며, 그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재능이 없고 무능하며 나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셋째 아들.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소문과는 이미지가 완전 달랐다.
‘역시 범의 자식은 범인가.’
확실히 신유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1성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약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신유현의 모습은 당당해 보였다.
최현성이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의 위광을 업고서 이정훈의 입을 막은 게 아니라, 모두가 아는 사실을 이용해서 정당하게 말문을 막았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재밌군.’
그래서일까.
최현성은 신유현에게 조금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관님, 언제 출발합니까?”
그때 신유현이 최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철호가 너무 늦는군.”
신유현의 물음에 최현성이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이미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이 10분이나 지난 상황.
“앞으로 5분만 더 기다려 보고, 오지 않으면 출발하도록 하겠다.”
“네.”
최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신유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명 의뢰는 가주의 직속 명령.
그렇기에 일정이 정해지면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정해진 기한은 오늘까지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던전을 공략하러 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주인 신성일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않고 불참한다면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 책임은 오로지 본인이 져야 한다.
잠시 후, 5분이 지나자 최현성은 칼같이 일행들을 데리고 2성 던전으로 향했다.
* * *
파천검가 부지 내의 2성 던전 앞.
2성 던전은 산자락 끝,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숲에 있었다.
산 아래에선 가문의 사람들이 임시 기지를 세우고 던전 게이트의 분석과 감시를 하는 중이었다.
신유현은 눈앞에 있는 던전 게이트를 바라봤다.
마치 거울이 깨진 것처럼 허공에 불규칙적인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파직! 파지직!
그뿐 아니라 균열 주위에는 2성 던전을 뜻하는 노란색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이렇듯 균열을 보기만 해도 던전의 등급을 알 수 있었다. 각 등급에 따라 색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입장하지 않는 이상 구체적으로 어떤 마수가 등장하는 던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던전이 낮은 등급이라 해도 가문의 숙련된 초인과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공략해야지.’
신유현은 마음을 다졌다.
눈앞에 있는 던전 게이트에서 어떤 마수가 등장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2성 마수, 타락한 고블린.
기껏해야 약 1미터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왜소한 체격인 데다가 2성 마수들 중에서도 최약체다.
그렇기에 눈앞의 던전을 공략하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 신유현과 신철호, 이정훈 패거리는 지명 의뢰를 실패했었다.
문제를 일으킨 놈이 있었으니까.
‘신철호, 그놈만 아니었어도…….’
신유현은 살짝 이를 갈았다.
이전 삶에서 신철호는 자신이 2성 보스를 잡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혼자서 던전 깊숙한 곳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다.
혼자 뛰쳐나갔던 신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왔다. 수많은 타락한 고블린들과 2성 보스를 데리고.
그 때문에 별수 없이 인솔 교관이었던 최현성이 개입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지명 의뢰는 실패했다.
가주 신성일이 내린 지명 의뢰는 교관의 개입 없이 던전을 공략하라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신철호는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최현성의 지시를 어겼다.
자신이 보스를 잡아 보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일대일이었다면 그놈 실력에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기본적으로 2성 검사 세 명이 달라붙어야 2성 보스 마수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천검가 직계 중에서도 역대급 재능을 보유한 신철호라면 보스와 일대일이라는 전제하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는 타락한 고블린들이 무려 100마리나 몰려왔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신철호 혼자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혼자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난리를 친 탓에 최현성의 부담만 가중되었다.
결국 최현성은 보스를 포함한 모든 고블린을 쓰러뜨리는 데는 성공하지만, 중상을 입은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지.’
그렇게 던전에서 가까스로 살아 나온 신철호는 최현성이 중상을 입고 지명 의뢰를 실패하게 된 이유를 전부 신유현에게 뒤집어씌웠다.
이정훈 패거리도 신철호에게 동조했고, 유일하게 신유현을 변호해 줄 최현성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아무도 신유현의 편을 들어주는 인물은 없었다.
오직 어머니밖에.
그 결과, 최현성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 신유현은 가문에서 쫓겨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현성이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가문에서 신유현을 부르는 일은 없었다.
분명 최현성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신철호였다고 말을 해도 묵살당하거나 무시당했을 테지.
가문의 입장에서는 가문의 수치라고 할 수 있는 신유현을 쫓아낼 좋은 기회였으니까.
‘생각하니까 열받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잠시 떠올린 신유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역시 다음에 또 신철호가 수작질을 부린다면 철저하게 밟아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이제 던전 안으로 진입하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신유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임시 기지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눈 최현성은 일행들을 데리고 게이트 앞에 섰다.
이윽고 최현성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게이트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으음.’
잠시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발이 지면에 닿아 있었다.
전이가 완료된 것이다.
[배틀 필드로의 전이를 확인]
[2성 던전 타락한 고블린의 숲에 입장하셨습니다.]
그 직후 일행들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배틀 필드라고 불리는 던전 내부의 공간.
이곳은 현실 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던전 게이트 주변에 있던 임시 기지의 연구원들만 사라졌을 뿐, 장소는 그대로였으니까.
다만 시간대가 낮에서 밤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통 던전의 시간대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밤이었다.
그리고…….
“저건 언제 봐도 기분이 안 좋아.”
던전에 입장한 이정훈은 속이 뒤집힌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 붉은 달이 걸려 있었다.
‘붉은 달의 세상.’
신유현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붉은 달을 노려봤다.
배틀 필드라고 불리는 던전 내부 공간에는 어김없이 붉은 달이 존재했다.
붉은 달이 무엇인지.
어째서 배틀 필드라고 불리는 던전이 발생하고 있는 건지.
던전이 처음 등장한 이후 많은 이들이 연구를 해 왔지만 무엇 하나 밝혀내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미래에서도.
그 때문에 던전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대체 던전은 어째서 발생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