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8화
신유현이 마검 이그니스를 손에 넣은 지도 어느덧 나흘.
그동안 신유현은 현무전의 개인 지하 수련장에서 2성 보스를 잡기 위한 수련에 매진했다.
‘할 만큼 했지.’
지난 나흘간 밤마다 명상을 하며 차크라 연공법을 수련한 끝에 차크라를 2포인트 상승시켰다.
2성 하급이 된 것이다.
물론 신체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차크라가 물이라면, 신체는 그릇이었다. 그릇이 커져야 더 많은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신체 단련을 해야 더 많은 차크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차크라를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2성 보스를 잡기 위해 무기도 준비하고 차크라와 신체 능력치도 올릴 만큼 올렸다.
남은 건, 내일 가문의 지명 의뢰를 수행하러 2성 던전에 가는 것뿐.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일 던전에서 일어날 사건을 미리 막아 둬야지.”
내일 지명 의뢰를 수행하는 도중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을 막으려면 내일 아침 일찍 만나야 할 인물이 있었다.
내일 있을 사건의 원흉.
‘신철호.’
파천검가의 막내이자 신유현의 동생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현무전을 나선 신유현은 신철호가 있는 가문의 본가 근처에 도착했다.
‘이쯤에서 기다리면 되겠지.’
신유현은 나무 뒤에 몸을 기댄 채 본가를 바라보았다.
본가 건물은 넓은 부지를 가진 한옥이며, 주변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신유현은 숲속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애초에 이른 아침이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지만.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본가의 한옥 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문의 막내, 신철호였다.
‘나왔군.’
신유현은 본가에서 나온 신철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가와 현무전의 중간 지점쯤 되었을 때 신철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제 그만 나오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신철호는 낄낄 웃었다.
“뭐야? 누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나 했더니 병신 형이었네? 어쩐지 미행을 더럽게 못하더라.”
본가를 나섰을 때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기척을 느꼈다.
그래서 속으로 비웃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였다면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미행은 무슨. 그냥 네 녀석한테 볼일이 있어서 따라왔을 뿐인데?”
“뭐? 네 녀석? 형, 미쳤어?”
신철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그 나이 처먹고 고작 1성밖에 안 되는 쓰레기가 나한테 녀석이라고? 형이 이제 나이 좀 먹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다, 그치?”
초인 사회에서 나이는 가치가 없었다.
초인 등급만이 전부일 뿐.
한 등급만 해도 일반적으로 무려 세 배까지 강함의 차이가 났다.
그리고 신철호는 파천검가의 직계들 중에서 역대급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아직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2성 상급의 초인이었으니까.
거기에 S급 고유 특성, 천무지체(天武之體)까지 지니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2, 3년 안에는 4성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스무 살까지 줄곧 1성이었던 신유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 차였다.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하지만 신유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신철호를 바라보며 혀를 찰 뿐이었다.
그러자 신철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와, 뭐? 싸가지? 이게 진짜 미쳤나. 내가 형이라고 불러 주니까 만만해 보이지?”
결국 신철호는 본색을 드러냈다.
파천검가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신철호는 어렸을 때부터 애지중지하며 키워졌다.
그 탓일까, 신철호는 지랄 맞은 성격으로 자랐다.
둘째 아들인 신철진보다 더.
그래도 가문 내에서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지키는 편이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만방자하고 방약무인했다.
“그리고 형이 왜 현무전에서 살고 지랄이야. 거긴 내가 찜해 뒀으니까 처신 잘하라고.”
예전부터 신철호는 현무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현무전에서 지내고 있는 신유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이 현무전을 이끌게 된다면 신유현부터 내쫓을 생각이었다.
“쓰레기면 쓰레기답게 쓰레기장에서 살 것이지, 진짜.”
‘이 새끼가?’
신철호의 마지막 말에 신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현무전을 자기 것이라 말하는 건 참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신철호가 말한 쓰레기장이란 다름 아닌 신유현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의미했으니까.
퍼억!
순간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신철호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갔다.
“컥!”
신철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재능도 없는 쓰레기 같은 신유현이 자신을 공격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 탓에 무방비하게 방심하고 있다가 신유현에게 한 방 맞은 것이다.
“이런 시발!”
신철호는 입술이 터져서 입가에 흘러나온 피를 슥 닦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신유현은 그런 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넌 좀 맞아야겠구나.”
“이미 먼저 때려 놓고 무슨 개소리야! 개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어 주마!”
신철호는 악에 받친 표정으로 신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번개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신유현은 유연하게 몸을 회전하며 신철호의 주먹을 흘려 냈다.
“어?”
순간 신철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2성 상급인 자신의 공격을 고작 1성인 쓰레기가 피해 내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신철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운 좋게 한 번 피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마!”
“운 좋게? 그럼 이건 어때?”
신유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차크라에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강체술을 발동합니다.]
그동안 기운을 숨기고 있던 마나가 1문 차크라에서 흘러나왔다.
“헉!”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철호는 놀란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그사이 강체술을 발동한 신유현의 주먹이 빠르게 신철호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어억!
이윽고 신철호의 복부에 깊숙이 꽂혀 들어가는 주먹.
“끄허어어억!”
신철호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어, 어떻게……?’
신철호는 속이 뒤집히는 격통 속에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1성짜리 쓰레기 놈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아프냐?”
“이런 씨……!”
신유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신철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강체술을 발동했다. 그러곤 곧장 신유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턱.
신유현은 손바닥으로 신철호의 주먹을 간단히 막아 냈다.
그제야 신철호는 깨달을 수 있었다.
“기력 개방을 했다고? 대체 언제?”
신철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강체술을 발동한 자신의 주먹을 막아 낼 수 없을 테니까.
“며칠 전에 했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신유현은 신철호가 내지른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쥐며 잡아당겼다.
그러자 신철호는 속절없이 끌려왔다.
경험이 부족한 신철호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
그저 놀란 표정으로 끌려가던 신철호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공중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시원하게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콰앙! 쩌저적!
“크허어억!”
신철호는 비명을 토해 냈다.
이윽고 신철호를 중심으로 땅바닥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 생겨났다.
그나마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본능적으로 펼친 낙법이 아니었다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윽…… 마, 말도 안 돼.”
땅바닥에 쓰러진 신철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누구인가?
2성 상급 검사다.
기력을 개방했다지만 2성 최하급에 불과할 신유현에게 밀리다니?
자신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 내는 신유현의 모습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만 자라.”
신유현은 큰대자로 바닥에 쓰러진 신철호의 가슴에 손끝을 가져다 댔다.
“자, 잠깐…….”
뒤늦게 신철호가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신유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퍽! 터엉!
신유현의 주먹이 신철호의 가슴에 닿은 순간, 곧바로 마나가 몸속을 강타했다.
겨우 손가락 길이만큼의 공간을 이용한 펀치라기엔 큰 타격음이었다.
원 인치 펀치(One Inch Punch).
신철호의 가슴을 촌경으로 가격한 것이다.
“커허어억!”
그 때문에 신철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쓰레기 같은 놈.”
기절한 신철호를 싸늘하게 일별하며 신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확신했다.
‘확실히 강해졌군.’
보통 기력을 개방한 직후 초인 등급은 2성 최하급이다.
지금 신유현의 초인 등급은 2성 하급. 반면 현재 신철호의 등급은 2성 상급 정도.
단순히 등급으로만 본다면 신유현이 신철호보다 약했다.
그럼에도 신유현이 신철호를 압도한 이유는 기력이 아닌 차크라를 사용했고 회귀 전 실전 경험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역시 과거와 다를 바 없나.’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신철호를 내려다봤다.
앞으로 반나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상을 입은 탓에 당분간 마나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이전 삶에서 신철호는 신철진과 마찬가지로 신유현을 괴롭히던 인물들 중 한 명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멸시하는 건 기본이었으며, 대련을 이유로 구타까지 했었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롭히는 음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미리 손을 쓰길 잘했군.’
이번 삶에서 만난 신철호는 과거와 똑같았다.
분명 이번에도 신유현이 쫓겨나는 데 쐐기를 박는 사건을 일으킬 테지. 이번 지명 의뢰 참가자들 중에는 신철호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이제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지.’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문제를 회피하는 것?
아니면 문제를 막아 내는 것?
아니다.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럼 오늘 있을 사건의 근원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신철호다.
그랬기에 신유현이 신철호를 만나러 온 것이다. 신철호가 지명 의뢰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 같아서는 단단히 교육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신유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지명 의뢰를 하러 가야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만약 다음에 자신에게 또 시비를 건다면, 그때 제대로 천천히 교육을 시켜 주면 될 터.
신유현은 길 옆 인적이 드문 나무 아래에 신철호를 옮겼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 후 신유현은 지명 의뢰를 수행하러 갈 인원들이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약속 장소는 현무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천검가의 문하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입구 앞이었다.
문하생들은 대부분 1, 2성 초인들이며 파천검가의 정식 검사가 아닌 수련생 신분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전용 코트가 아닌, 보급형 배리어 능력을 가진 하얀 코트를 입고 다닌다.
하지만 3성이 돼서 정식 검사로 인정받고, 소속 신검대가 정해지면 전용 코트를 지급받게 된다.
기숙사 앞에 도착하자 이미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